1. 적막
달그락거리는 얼음 소리마저
귀에 거슬린다
너와 나의 거리는 손을 건네면 닿을 거리지만
적당한 얘기, 금세 옅어지는 미소
몇 번의 눈 마주침, 다시 정적
닿을 듯 닿지 않는 너와 나는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고
마주한 우리는 마주하지 않은 채
애꿎은 식탁보만 만지작거린다
….
무엇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인 걸까
이야기들은 꼬리를 감춘 채
연결될 수 없는 꼬리잡기를 하는 모양새다
적당한 온도
둘은 극단적이게 미지근한 대화만 나눌 뿐
뜨거워지지 못한다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 없으며
가까워지지만 멀어지고 있다
아이스 잔에 담긴 얼음을 빨대로 다시 한 번 굴려본다
금고 비밀번호를 맞추듯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우리 사이의 정답은 좀처럼 맞춰지지 않는다
얼음 두어 개를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본다
으적 소리를 내며 깨물어 보고 잔 얼음을 다시 굴려도 본다
시끄러운 얼음 소리가 오늘따라 고요하다
더 차가워지기 전에 집에 가야겠다.
2. 숙취
어
지
운 러
세
상
일
렁 는 불빛들……
이
역겹게,
아…... 뒤엉킨
네 모습 술잔들
온갖 그리움
뒤섞인 기억이 어지럽게 나를 더욱 만든ㄷ…...
게워내고 또 게워내도
목젖을
잡는
무엇인가 분명히 있다
다시! 한잔
술
러
세상이 어 지
워 진다……
3. 동그라미
동그라미 그리는데
힘을 너무 세게 쥐었나?
원 주위로 흑심의 파편이
삐뚤빼뚤하게 튀어나간다
하얀 스케치에
지우개를 스윽 문질러 보지만
주위로 크게 번져만 간다
어떡하지? 이게 첫 장인데……
수많은 얼룩이 뒤덮일 동안
동그라미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득 바라보니
처음의 것과 너무 닮아서
더는 그릴 수 없겠다
흐린 자국 사이에 비친
첫
동그라미
가만히 스케치북을 바라보니
웃기다
미련스럽게도
한 장의 도화지가 헤질 때까지
다음 장으로 넘기지 않았네
내가 가두려던 원 안에 내가 갇혔네
아파트사이에 가려진 택시들이 빨간 불을 켜고있다. 누군가의 발이 되어 주기 위해, 베란다 앞에서 방황하는 나처럼 목적 없이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