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내가 아주 작았을 땐
아침마다 소변을 보는 것이 부끄러웠다
선율들이 날 지켜 줄 것이라 착각하고
우주에는 망령들이 돌아다닐 것이라고
재작년 여름엔 내가 너무 마른 게 싫었다
거울은 모두 빈방에 넣어두었다
밤에 물가에 앉아 잡았던 손과
그때의 기억들과 함께
책상 속에 숨겨둔 모양자를 꺼내어
동그라미를 그린다
세모는 날카롭고 네모는 딱딱하고
동그라미는 닳아 모양을 잃었던
밍밍한 기억들
클리셰
그의 속설은 대부분이 클리셰이다
주름진 서사에는 독이 서려있다
청년시절
술에 취해
엉덩이까지 씨뻘건 그는
좌식 변기에 앉아
말을 타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한껏 부풀었던 가슴의 숨을 내뱉는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이다
테이프 줄에 늘어진 교향곡들은 뚝뚝 끊기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튕겨지는 음이 아직 선명하다
그는 더 이상 흰머리를 뽑지 않는다
생의 전반을 차지한 좌식생활 때문인지
낡은 책상에 앉아
시집을 펼쳤다가
시의 중후반에는 책을 덮는다
기대했던 아픔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발바닥을 적시는 물이 좋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 비가 오는 날이면
하나둘 우산을 어깨에 뉘어 거리를 걷곤 했다
빗속을 걷는 사람들은 아가미가 달린 것 같아서
아이는 호흡을 멈추는 연습을 한다
플래시가 터지듯
눈 앞에 잔상은 흐려지고
귀 세운 짐승 마냥 청각은 곤두선다
툭 던진 말의 심해 바닥을 향해 헤엄치다가
몇 번 씹다 뱉은 말은 장난 취급하고
사람들이 모순적이야?
아이가 되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하나둘셋넷
아이는 노인이 말을 씹는 횟수를 센다
다섯여덟일곱여덟
말을 튀기는 대신 물을 튀기자 발장구는 말이 없어 좋더라
아홉열...
그리고 발장구 소리
삶은 장마라고 누가 그랬는데
노인의 말을 듣고 아이는
비가 내리면 물에 갇혀 아가미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의 아가미는 호흡이 길어서
생각은 늦게 죽는다
말을 조금 짧아서
더 빨리 죽는다
발장구는 조금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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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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