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져버리는
최선희
항상 원하고 원해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묻어버리지
가슴 속 이 용암은
너무 뜨거워 타버릴 것만 같아
그러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지
참다가, 또 참다가
겨우 참고있는 나의 등을 두드리며
'말해, 말하지 않으면 몰라'
다독임인지 협박인지 모를 나의 등을 두드리며
겨우 참고있던 용암을 터트릴 때조차
다 쏟아내지 못하고
멈칫거리며 천천히 용암이 식길 기다리지
그 용암이 이따금 또 식을때쯤
다시 딱 그만큼만
내 용암을 터트려도 금방 식을만큼만
딱 그만큼만
아주 조금씩 층을 쌓아
내 용암을,
아니, 내 마음을
망망대해
최선희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알아?
난 그 기분이 너무 좋아
쓸쓸하긴 해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아
외롭긴해도 아무의 마음도 신경쓰지 않아도 돼
가족의 따뜻함이 좋아?
나는 바다위에서 느끼는 햇살이 더 좋아
친구의 위로가 좋아?
나는 내 위를 빙글빙글 도는 갈매기들이 좋아
항상 반복되는 일상이 편안하니?
항상 반복되는 내 일상이
난 불안해, 두려워
내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나에게 내일이 있다면
내가 있는 곳은 망망대해이길
사막
최선희
사방엔 아무것도 없다
집 하나, 호수 하나, 사람 하나 조차
소리쳐본다
'거기 아무도 없나요?'
휭휭 불어오는 바람에
눈 아프게 불어오는 모래에
정적만 불어온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 언덕을
걷고, 달리고, 또 걷다가
힘들면 어디든 누워 잠을 청하고
또 걷고 또 걷는다
아무 것도 없는 이 사막 위를 끊임없이
아무 정처도 없이 계속해서
눈길위의 발자국
최선희
낙엽들이 힘들어 가지의 손을 놓은 날
가을 꽃들이 추워 숨어버린 날
새하얀 눈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
아스팔트 무채색으로 덮여있던 도로도
모두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혹여나 넘어질까 땅만보고 걸었다
앞은 보지도 않은채
바닥에 찍힌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은 맞춰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내가 멈춰선 곳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았다
내가 따라가던 발자국은 없다
새로운 눈을 맞이한 나는
나의 길을 만들어
나의 발자국을 눈길 위에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