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들은 말
김서원
있잖아, 나 오늘 진짜 술이 먹고 싶다.
아니, 먹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지쳐가지고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허무하기 때문.
나 요즘 정말 나약하다.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씨발, 하는 소리에도 움찔하고.
됐어요, 라는 말 한마디도 너무 너무 슬프다.
공기만 바뀌어도 숨소리가 바뀌어서 비참하다.
내 바뀐 숨소리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는 낄낄 웃었다.
그럼 나는 적응한 건가. 아니면 내가 나를 비웃기 시작한 건가.
엿들은 말 2
김서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더럽다고 할 때, 삶은 끝난다.
술에 쩔어 아스팔트 바닥에 드러누워 자기 숨을 막는 토악질을 할 때 말이다.
그 때 삶은 끝난다.
말끔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세련된 그녀
김서원
화장기가 거의 없는 밍밍한 얼굴에 날카로운 외모였다. 여유가 삶의 기본 값인 양, 사는 것이 쉬워 보였다.
오만하지만 오만함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오만하다’는 것은 그녀에게 적용할 수 없는 형용사였다.
그녀는 매우 세련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나는 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그림자에 가려, 컴컴한 그늘 밑에서 눈살 찌푸릴 일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나는 애초부터 빛이 나지 못하여 그녀 뒤에 숨는 것이 나만의 ‘빛나는 법’이었다.
가끔은 그늘을 벗어나 나대로 빛을 내보고도 싶었으나, 며칠 되지 않아 나는 늘 그녀의 그늘 속으로 돌아왔다.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었으므로.
그녀는 내게 말 한 마디 걸어주는 법이 없었다.
차가운 그녀.
그러나 그늘 속에 가만히 있는 나를 내쫓는 법 또한 없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아주, 세련된 사람. 세련된 그녀.
사랑하는,
김서원
누군가의 이름에 사랑하는, 을 붙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너무 어려우니까.
그렇지만 그런 사랑이 너무 간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네 이름을 조용히 외칠 때.
그냥 아무렇지 않게 부를 수가 없는 그런 이름이 있다.
그런 이름이 서너 개 떠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삶은 절반 혹은 그 이상 성공했다.
이름 : 김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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