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창착콘테스트 시 부문-국화 외 4편

by 혜루 posted May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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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삶의 끝이 어디인지

얼마의 시간이 주어진지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종착역은

남겨진 사람들의 곡소리의 시발점이다.


남겨둔 마음은 아니 가져가고

고인 가는 발걸음은 가벼웁지만

빈소에 맴도는 향은 무거웁다.

한마디라도 건네었으면 좋으련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후회는 눈물에 묻고

가시는 길 편하라 말하면서도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

저승 가는 길은 어여뻤으면 하고.

수의 자락이 닿는 길목은

국화꽃 향기가 맴돌았으면 하고.

국화향 넘치는 가실 길에

눈물은 소매에 훔치고

입가에 미소만을 머금으리.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 인걸까

자꾸만 빗겨 나간다.


시간이 왜 그리도 안맞는지

그 안맞는 것은 시간인지 아니면

너와 나의 마음인지

꼭 끊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인연같다.


너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너 또한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니

지나치지 않으려 어떻게든 엮어봐도

지나쳐가는것이 지금의 우리인가 싶다.


그 인연의 끈이 돌고 돌아 어쩌면

지구 한바퀴를 우주 한바퀴를 돌아

끊기지 아니하고 다시 돌아온다면

얇아졌다 한들 그만큼 질긴 인연이겠지.


애초에 얇디 얇은 인연이었다면

열걸음만 나아가도 끊어질 실이리라.


시간이 흘러 너가 내 마음과 같다면

그 실은 낡지도 녹슬지도 않고 처음과 같이

베일듯한 새로움을 갖고 있을것이니

잃지 말고 잊지 말고 그 실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다보면

그 끝은 나이니 걱정말고 찾아오기를.




너무나 어린 너에게


너무나 어린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

아프면 아프다고 외치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그런 감정 표현을 스스럼 없이 세상에 외치고.


어느순간 너가 정말 어른이 되면

그 감정들은 마음 한 가장자리에 꼬옥 숨겨두어야한단다.


세상은 매번 즐겁지 않고. 기쁘지 않고.

너를 바라봐주지도 않으니까.


그러니 그 역경과 고난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스스로 이겨내렴. 나는 너를 응원해.

어린 날의 너에게.




새벽



자정을 넘긴 어느 새벽

밖은 소나기의 향으로 가득하다.


나는 매일 밤 머리맡에 있는 창문을 열어

그 날의 기분을 마신다.


매번 다른 밤공기가 그 날 하루의 기분을 

대신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


오늘은 슬펐구나, 오늘은 행복했구나 하며

누구인지도 모를 3자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다가 나만의 기분에

또 그 감정을 맞추게 된다.


오늘의 너의 감정은 나와 같구나 하고

나지막히 말할때 온 사방이 고요해지고

너와 내가 같은 꿈을 꾸는 것 같더라.



가치



울려퍼지는 너의 그 깊은 목소리에

산 속 아득히 숨어있던 별들이 깨어나는구나.


깊은 곳 자리 잡은 그 고요함이

네 작은 몸짓에 부지런히 잠에서 깨어

귓가에 속삭인다.


너는 어둠이고, 빛이다.

어쩌면 자그마할지도 모르는

그 빛이 세상을 깨우고


생명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크고 작은 것들이

너의 그 여린 빛에 기지개를 피우니


너가 가진 모든 것들이

어쩌면 생명이고, 소리이며,

세상 전부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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