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비 오던 밤
엄마와 버스에 탔더랬다
창에 맺힌 빗방울이 만드는 왜곡
세상이 아름답다 속삭였더랬다
너희 참 아름다워
물방울 하나하나 정을 주고 있노라면
작정이나 한 듯 저들끼리 합쳐져
흘러가버린다, 인사할 새도 없이
줄지은 물 자국
정 줄 데 없다 느낄 때
창 너머 화려함이 가식이라 읽힐 때
세상과 나를 가로막는 김마저 서려왔다
젖은 소매로 문지르던 매정하고 고독스런 분리
그 덧없음에 느껴지던 안팎의 온도 차
울면 안 돼 혼자가 될 거야
뜨거워질 공기가 세상을 더 부옇게 할 거야
가만히 나의 젖음을 감싸주던 마른 소매가 있었다
차분히 커튼을 드리워주던 손길이 있었다
보이지 않았기에 볼 수 있던 존재가 있었다
더워진 눈가를 묻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물방울 흘러감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
내 손으로 커튼을 걷겠다 다짐했더랬다
문득 그런 날
네가 올까 하는 마음이
여러 날의 고단함을 재우지 못하던 밤이었어
허덕이다 켜버린 촛불
어둠을 쫓아내기엔 너무 작고 둥글었지만
데어버린 살갗에 남은 백합향기
훅 –
짧은 숨을 내뱉기엔 미련이 너무 깊어진 거라
연필을 잡아도 시작할 수 없어진 네 초상화
종이 위로 원 네 개가 사그라 든다
추억 한 장으로 남으려 꺾이었을지
피어날 초록을 위해 양보했을지 모르는
떨어진 벚꽃 잎을 다시 밟지 않으려,
칠 년 전의 네 눈빛이 쌓은 바리게이트
그 젖은 허덕임을 넘어온 하루를 갚으려
고개 숙여 하루를 걸어가기로 했어
뒤돌지 않겠다 약속하며 말이야
수술실
습관처럼 중얼대던
전 괜찮아요
펄스옥시미터에 그려지던 요동과
숨 가쁘게 급한 기계음이
말로 바뀌어 고막을 때렸다
아니 넌 떨고 있어 넌 사실 겁이 많아
씩씩하다 믿어온 수많은 순간
거짓임을 들키면 안 되었다
나는 그러면 안 되었다
걱정 어린 시선의 무게를
처음 소유하던 날의 혼란이었다고
그렇게 그렇게 변명하다 눈이 감기었다
햇살 속 오선지
소녀의 발자국마다 음표가 새겨지던 날
건너를 향해 컹컹 짖어대는 강아지들아
이상하지, 오늘은 너희가 시끄럽지 않아.
길 잃고 울먹이던 소녀가 찾은 행복은
다른 걸음이 덧입히는 색색의 하모니
아 너희는 인연을 만들면서 사는구나
탄식 끝 어린 마음이 낸 용기는
마주하는 얼굴에 대하는 싱긋거림
소녀의 발자국마다 음표가 새겨지던 날
파동처럼 번지는 미소가 네게 닿아
이상하지, 세상이 새로운 선율로 가득 찼어
Me too
모진 내 말에도 남아주면 안될까
혼자인 밤이면 악마가 나타나
쉴 새 없이 도망쳐 온 이곳에서 깨달아
죽은 도시에 떠오르는 태양이
다시는 희망을 피워내지 못하듯
꽉 감은 눈 속에
일렁이는 하얀 빛은
어김없이 모여들어 그 짐승을 그려내
그 짐승은 나야, 내 안에 살아
은하수 저 편, 항상 해가 뜨는 시간
하늘과 우주와 맞닿은 그 곳에선
두렵지 않을까
어둠이,
짐승이,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