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전생에 춤사위였다
그대는 전생에 망나니의 칼날 춤사위였다
술을 들이부어 광기 어린 눈초리로
과장 어린 형벌을 행위 하던-
지켜보던 사람도, 지시하던 사람도
밤에 타오르는 가여운 짐승의 그것처럼
그대는 전생에 기생의 치마폭 춤사위였다
술 따르는 손과 마음에도 없는 눈웃음으로
교태어린 가락을 몸짓 하던-
지켜보던 사람도, 지시하던 사람도
밤에 타오르는 가여운 짐승의 그것처럼
그대는 전생에 비구니의 흰 소매 춤사위였다
술 한 모금 없는 옷매무새에 눈물 이상의 감정으로
지켜보던 사람이, 지시하던 사람이 있건 없건
정화된 아침 기다렸다가 운명인 듯 샘솟는 그것처럼
자신을 세상에 꺼내 보이던 그들에게
찰나를 보여주곤 하던 그대는-
그대는 전생에 춤사위였다
데칼코마니
그들은 비대칭으로 이뤄져 있다
데칼코마니도 사실 양면이 다르니
이상할 건 없다. 연인이 서로 다르다는 것쯤
그래 있을 수 있다
서로를 위하던 입술에서 괴롭게 뱉어내는
불안의 찌꺼기 속에서도 믿고 싶으니까
똑같지 않은 서로를 똑같다며
우린 운명이라고, 외롭지 않을 줄 알고
그들은 마주 보지도 못하고 있다
데칼코마니처럼 참 닮아가더니
이상한 게 있다. 연인이 서로 지쳐버린다는 건
항상 안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기심에 묶였으니
이제 맞닿은 입술로 찍어내자
우린 데칼코마니, 우린 잘못도 서로 닮았으니까
처음 쓰는 시
폐휴지를 겹겹이 붙여놓아 적당히 자른 토막에라도
내 이름 석 자 파내어 갖고 싶다 청했다
지식이 넘쳐나건 말건 이미 많은 이들이
명예를 새기고 사람답게 사는 게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반대로 된 이름을 받더라도
모두의 종이에 옮겨놓으면 바로 보이는 유일한 거울
그동안 잃어버렸던 막도장들은 찾을 필요가 없었다
찾아도- 소용없었다
찍어내기에서 온 진리는 벗겨내고 기억해야만 한다
내가 왜 시를 처음 썼는지
후회를 돌이켜보며
바람 몹시 부는 날
너 묻을 곳 찾아왔다
반듯이 누울 자리 하나쯤
네 생일 때마다 함께 울던
내가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니
생전엔 구경꾼들 많더니,
장례식엔 나밖에 없어 다행이다
거짓일 때 생겼던 허물이 벗겨지고
미워할 때 더럽던 거울이 빛을 받으니
그만 용서하는 이 자리에서-
너 이제 편히 쉬어라
바보와 바보 아닌 자
내가 안다는 것들을
다 의심해야 할 때가 와도
나는 그것들을 믿고 싶다
그리고 갇히길 자처하는 것이다
누우면 얼굴을 짓누르는 안경의 무게가
너무나 익숙해서, 너무나 친근해서
껌 대신 젤리를 씹는다
도로 뱉지 않아도 되므로
생각 없이 뱉어도 안되고
생각 없이 읽어도 안되는데
아가는 내 품에서
그저 다 잊으라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바보일 수 있는 자들과
바보들이 함께 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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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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