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응모 <아름다운 구두> 외 다수

by 애찬성 posted Jul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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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구두 >

                             허 대 현

오래 걸어서 다다른  길 끝

덩그러니 길바닥에 남겨져

여기저기 긁히고 갈라터진 채

세상 궂은 일 온몸으로 겪으면서

오래 자리 잡혀 다시 펴지지 못할

깊이 패인 내 아버지 주름살과 같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을 아름다운 상처.

 

< 황 태 >

          허 대 현

고향 떠난 지 오래

속 잃은 허기를 채운

바람소리가 밀려 나온다

너른 골마다 빼곡하게 널려

칼바람에 물기 죄다 뺀 채

세상을 펄럭이다

홀로 야위어 속만 퍽퍽해 지면서

낮과 밤 가로질러 온

별 빛이 내리박혀

이름도 몸도 금빛 속살이 되다.

 

< 곶 감 >

                                허 대 현 

어느 집 처마 아래

껍질 벗고서야

허공에  달려 

발갛게 열꽃을 피어내고

 

싱그런 바람과 햇살 아래

 시나브로  늙어가며

수줍게 분 바르던 지독한 기다림

 

쫀득한  달콤함에

나 어릴 적 울음 그치게 하던

 

깊이 아껴두었던 사랑

누가 볼 새라 살며시 쥐어 주시던

        외할머니의 미소가  떠올랐다.

 

눈 꽃              허 대 현

 

겨울바람의 뒷발질에

소리 없이 펑펑 울며

밤새 지천으로 뿌려지던 날

그리움에 굽 자란 나뭇가지마다

눈부시게 하얗게 내려앉는

울며 피는 찬란한 눈꽃.

 

  <미세 먼지 >

                           허 대 현

희뿌연한 세상이 밀려온다

하늘이  내린 형벌인가보다

말을 삼가라

마스크에 입이 가려진다

보이지 않은 먼지가 떠돈다는 이유로

 

어김없이 우리에게

아침마다 마스크를 강요한다

가끔은

마치 침묵 명상을 하라는 듯

 

그럴수록  사람들은 할 말이 많은가 보다

여기저기 아랑곳하지 않는 

지그럭대는 세상  속 하루

로봇주둥이 같은 모양의 세상 입이  막힌다.

 

 <  어느    > 

                   허 대 현

멍하니 초저녁이 서 있었다

때 이른  하나

넌지시 나와 반짝인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에게

저도  그냥 가만히 내려다본다

 

눈물겹도록

하기는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그 때 나는 행복했었다.>

허 대 현

그 때 그대와 나는   

밤이 깊어지고서야

                              

머물렀던 자리를

달빛에게 내 주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지나간다

 

새벽마다 거리에는

다른 하루가 쓸려간다

별이 가득한   그 때                     

너와 함께 나누던 이야기보다

 

별들이 지던 날

스스로 간절히 기원했던 말들이

입술에 고여  오래 남아  있었다.

 

< 지나가면서 세상을 >

허 대 현

세월의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세상을 뒤집어놓는다

 

우리들은 왜

같은 방향만 바라볼까

 

잃어버린 인연을 추억하는

몸짓이 저런 것일까

 

계절이 지나가는데

눈물겹지도 않은 것들조차

 모두 함께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바 람 >

허 대 현

 

새벽빛 창밖

지고 메마른 풀섶에서

시린 바람 찬 서리가 속살거린다

 

칼바람 속에서

가장 사나운 숨탄것은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침

 

하늘을 날아오르는

파들거리는 날 것들의

날갯짓이 눈부시게 흩어진다.

 

 람의    >

 

                            허 대 현

하얀 속살 들어낸 채

온 몸으로 부딪쳐 와도

껴안을 가슴이 없어

어디론가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 달려가야 하는 너는

푸르른 세상을 향해

비상하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하늘 속 깊이 날아오르다

 

날마다 밤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안에 들어와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다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연신 무심한 날갯짓으로

지나온 흔적을 되 지우며

홀연히 먼 길 떠나가는 너, 바람

저만치 그리움 하나가 서 있었다.

 

<내 마음 >

                      허 대 현

 

빗장 풀리던 날

깊이 숨어 있던 것들조차

 

다가와 연신 온몸을 부벼댔다

 

모두가 아득히 떠나간 후

문이 걸어 잠기자

 

긴 외마디가

내 눈썹 위에 얹힌 채

 

오래 쓸쓸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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