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 이름과 가게 이름이 같아지면서
엄마는 간판 귀퉁이에 쌓이는 흙을 퍼내느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왔다
빈집은 어두워지면 더 소외된다
그림자에는 주름이 없어서 좋다고
집으로 돌아올 땐 고개를 바닥으로
맨홀 아래 누가 사는지 궁금해
돌멩이 하나 던져 본다고
안부는 문득 조차도 돌아보지 않고 잠이 들었다
가족사진에 사람이 셋
동생의 그림일기 속 바윗길을 오르는 코끼리
울음소리에서 엄마의 비명을 들었다
입버릇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은 어디에 피어 있나요
한겨울 빨랫줄에 민들레 수건 하나 걸었다
마른 입안이 휴지 뭉치를 씹은 듯 퍽퍽하다
식탁에는 밥 대신 오이와 수박
물을 대신할 수 있는 음식과
도마 위 죽음과 척 사이를 집요하게 물고 있는 생선 한 마리
누군가 먹이를 주어도
가족이 있는 물고기는 절대로 침을 흘려서는 안 된다
편의점 우산
꺾여야 할 자리에서 마땅히 꺾이고
몇 개의 구석이 모인 골목에 위치해 볕은 잘 안 들지만
풍수지리적으로 좋다는
발걸음이 충돌하는 반지하 방에 삽니다
애타게와 지겹도록 두 짝을 구겨 신습니다
우산을 들고나와 공간을 펼칩니다
집마다 사연이 있다고 하던데
집과 집 사이에 서서
내리는 사연을 받아냅니다
우산을 냉동실에 얼립니다
요동치는 빗소리
고요해지면 다시 꺼내야지
고체의 발음 속에 액체가 숨어 있습니다
어는점도 모른 체
머리맡에 우산을 펼치고
3천 원짜리 공간에 눕습니다
천장에 야광 스티커
17살의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행성입니다
바라만 보는 허공을 띄우며
밀고 밀리지 않아도 되는 곳
쉬어 갈 수 있는 자리
창문도 없는 집에서 도둑맞는 꿈을 꿉니다
이렇게라도 일상이 흔들려서 좋습니다
매일 같은 자세로 잠을 자는 건
유일하게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남들은 나를 져버린 꽃이라 수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수군거림에 젖어 마를 날이 없습니다
계속 내리는 장마가 품지 못한
잠시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손톱
여름에 버린 손톱은 얼마나 자랐을까요
화분에 버린 손톱
자란 건 민들레일까요 손톱일까요
나의 결핍은 자라서 자랑의 복선이 됩니다
탯줄을 끊고 태어날 때
동아줄도 같이 끊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은 말이지
그때 내가 말이야
자랑을 위해 곪은 결핍을 헤엄칩니다
기억하는 일을 유료로 하면 불면증이 사라질까요
주머니에는 남은 부스러기와 거스름돈이 가득합니다
한쪽으로 기우는 줄 모르고
남은 것들을 계속 꾸겨 넣습니다
울었다고 치자
마른 손톱으로 입가를 닦습니다
생계가 묻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또 꺼내 씁니다
뚝
뚝
뚝
빈틈을 만들어 바깥세상으로 굳이 나온 소리
잠긴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진다
몸에 달고 살던 링거액처럼 한 방울씩
염색약의 흔적이 묻은 욕조
몸을 담고 있으면
가려진 내면이 풀렸다
병이 옮겨오듯
전염병으로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나는 우리라는 단어로 피어난다
뚝
띄엄띄엄
뚝
나를 위해 도망친다
어머니는 모이를 찾는 비둘기처럼 병원 앞을 서성였다
뇌는 아버지의 몸에서 회오리치는 곳을 짚어냈다
몸에 못이라도 박혔는지 걸려 넘어지는 일이 많다
일 년 정도 치료받아야 합니다
의사의 말은 아래에서 위로 비 오는 날은 내려오기도 했다
피워내길 바라는 기지개
무리하지 말고 순탄히는 가능한가요
거른 끼니처럼 가로등은 불빛을 잃어간다
저녁 밥상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기다리신다
오징어 눈알을 뽑으려다 손을 벤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징어에 이빨이 있었구나
오징어는 죽어도 귀가 열렸는지 물먹고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숟가락에는 무만 올라온다
아버지는 어쩌다 오징어 국이 드시고 싶으셨나
이가 안 좋으신 아버지는 먼저 방에 들어가셨다
식탁에는 홍시 껍질만이
계절 끝에 앉아 홍시만 내내 드신다
밥 먹기 전에 단 걸 먹더니 결국
약봉지에는 굶주린 지문이 묻어 있다
국그릇에는 잘게 잘라놓은 오징어만
다리 한쪽 부러진 빨래집게에
어깨가 기울어진 아버지는 걸어두고
등 두드려주시는 어머니
그저 앞니만 딱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