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저기 뵈는 푸른섬
오동도
섬이 되고 픈 이들이 떼지어 들어간다
방파제 길 따라
겨우내 바닷바람에
검푸르게 반짝이다 뻣뻣해진 이파리
횟불 집어 삼킨 커다란 눈동자
뚝뚝
떨어진다 불 타는 꽃송이
잠시 섬이 된 이들의 눈길 같이 타오른다
어쩌란 말이냐, 너
이쁘다 이쁘다 입다물지 못하던 이들
해가 뉘엿하니
육지 불빛으로 되돌아 나간다
섬이 되기엔 바다를 견딜 수 없는 이들이
53세 여자
열다섯
하얀 속옷 위로 빨간 꽃송이 뚝
떨어져 화들짝 혼자 놀라고 얼굴 붉혔는데
싸늘한 아픔 붉게 번지며
꽃 봉오리 달님따라 피고 졌는데
어느 날 빠알간 꽃이 피고
노오란 꿀샘 속에 동박새 아늑했는데
비밀의 꽃밭위로 달님 둥실 차오르고
옹골찬 붉은 열매 환하게 내게 왔는데
자궁 비밀의 섬
내 몸 안의 동백섬 오동도
울컥 쏟아지는 검붉은 꽃송이
푸른 나무 아래
땅을 물들인다
다시 찾는 붉은 꽃
3월의 오동도
동백꽃
식물의 행동
부동성-원래 이곳에서
지속성-늘 그렇게 쭈욱
참을성-참고 견디면서
장수- 살아 남았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내가 늘 조상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내가 늘 참기만 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살아남은 지금
나는 당신과 만났습니다
할 얘기가 많습니다
배롱나무 깍지벌레
너를 버리러 온 곳에서
너를 더 많이 알고 간다
풀꽃문학관
오후 해를 맞서며 넓은 주차장 인접
화단 돌담 굽은 길 올라 옛 적산가옥
계십니까
한적한 평일 오후
시인은 출타 중
지나가는 손님의 물음에
그냥반 좋다면 나도 좋아요
삶의 속살 흔쾌히
보여 주신 안주인 넓은 무릎 위
차가운 내 손 녹인다
잠시 후 귀가하신 시인께
나를 부탁하며 시인의 저녁밥 지으러 퇴근하신다
과분하지 과분해
답답한 우매자가 찾고 찾던 스승을 만난 일
현자의 조언을 넉넉히 베푸신 노시인
사랑은 필요에서 온다는 시인의 연애법
육성으로 시를 듣는다
나오다보니 마지막손님이 되어버렸다
머물다 떠나는 풀꽃문학관
시인의 손길 묻은 머리를 매만지며 귀에 꼽고
천천히
벗어 놓은 신발을 신고
구식 미닫이문을 닫는다
현관 여닫이문도 닫는다
뺨을 식히는 서늘한 바람
발 아래 펼쳐진 시가지가 낯설다
낭떠러지 뵈는 작은 앞마당 귀퉁이
여름내내 목이 타서
온 몸 비틀며 기다리던 배롱나무
뒤꼍에선 부지깽이나물 아무것도 모른 채
환히 꽃 피워 웃고 있는데
떨쳐내지 못하고 꽉 붙잡힌 팔뚝
아프구나 하얗게
비탈길 돌담에 앉아 너를 적는다
기다림의 황홀에 대해 적는다
자전거를 끌고 퇴근하는 시인
아이고야 니 아즉 있었나
차마 그냥 못보내고 안아 주신다
붉은 해가 사위어가고
언제나 어둠이 먼저 드는 검은 돌이끼 틈에
비밀스런 사연의 씨가 떨어진다
때 맞춰 니가 도착한다
여섯 시 반 십오 분 전
휑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헤드라이트
눈부시게 다가온다
오늘의 행운은 멈추질 않아 두려워
공산성 바라다뵈는 강기슭 갈대숲
꿈꾸며 동행한다
지름길
동그란 원이 하나 있다
원을 이루는 무수한 점들이 모여있다
직각으로만 직각으로만 순간 순간 찾아야하는 원 위의 길
지나고 뒤돌아 보면 동그랗게
말려있는 길
동그란 원이 하나 있다
중심을 향해 서면 텅빈 공간
길 없는 길
지름길
강물따라 굽어지다
억새꽃 날리는 산언덕에 오르고
어느 틈에 달라 붙은 도깨비바늘
지름길들이 만나는 곳
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