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내가 조금 더 코가 높게 태어났다면
내가 조금 더 활발한 성격이었다면
내가 조금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조금 더’를 원했는데
너무나도 많은 ‘조금 더’들이 나열된다.
난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했으면 했지만
사실 아주 많은 행복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신호
생각 없이 꺼낸 젓가락의 짝이 맞았을 때는
내게 곧 사랑이 다가올 것이라는 신호.
타려던 버스가 잠시 후 도착 예정이라는 건
오늘 그 사람과 가까워질 기회가 있을 거라는 신호.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서 있을 땐
내일 시험 결과가 꽤 괜찮을 거라는 신호일거야.
내겐 이런 좋은 신호들이 넘쳤으면 좋겠다.
순간순간이 기다려지는 오늘을 산다면 잠드는 순간에도
행복에 사무쳐 꿈에서까지도 설렐 텐데.
흔들어
내 등 뒤로 바람이 불어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들이 추워 보여 마음이 안 좋다.
방향을 틀어 뛰려 하니 내가 아까 그 버들들 같다.
지금 보니 버들들은 바람에 산들산들, 시원해 보인다.
바람은 변하지 않는다.
방향에 따라 바람에 그저 흔들리거나 휘둘리는 것일 뿐.
반하다
땀냄새가 좋다고 느낀 건 같이 운동을 한 후,
하얀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네 흰 손을 보고 예쁘다 생각했을 때부터
너의 고민을 들었을 때
내 자신이 위로에 소질이 정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너를 글로 표현하는 걸 보니
난 네게 반했다는 거겠지.
죽음과의 관계
평소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가장 힘들 때 먼저 찾는 건 죽음이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행복에 죽음과 멀어진다.
그러다 또 다시 죽음을 원한다.
죽음이 미운 적이 딱히 없다가도
주변인의 죽음에 죽음이 너무 밉고 원망스럽다.
죽음은 항상 곁에 있지만
내가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유일하고 항상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