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인생은
우리들의 것보다
낫길 바라는 마음에
기대가 너무 컸다
그 기대가 너희들을
너무 힘들게 했구나
- 부모의 기대
먼 길이라도 갈 수 있냐는 우문에
길의 끝과 길의 단장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치언에
좁아 터진 조선 땅에서
멀다는 말은 무의미한 것이라 했다
두 발이 없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너에게로 갈 것이다
- 몸이 멀어지면 마음은 깊어진다
올라갈 땐 못 보았던 것이
어찌하여
내려갈 때 눈의 띄는 꽃
함께할 땐 몰랐던 너의 매력
어찌하여
멀리 있는 지금에서야 그리운가
- 후 훼
우연히 다가와선 필연처럼 떠나갔다
바랄 땐 오지 않더니
마음을 비워서야 찾아왔다
마음을 비우기를 바란다면
비워지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비우려는 마음을 비워본다
마음을 비우려는 마음을 비우기를 바란다면
마음을 비우려는 마음이 비워지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비우려는 마음을(…)
- 맴 비우스의 띠
사람의 행복은 집착하는 것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그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찾아온다
그런데 왜 너를 내려놓은
지금의 나에겐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아니, 난 왜 너를
내려놓을 수 없을까
- 놓지 못 행
맞은 편에 자리한 여인이
나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나도 그런 그녀를 흘깃흘깃
쳐다보게 된다
눈이 마주친 순간
빨갛게 물들었다
- 빨간 맞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수 많은 고비들이
오늘에서야 끝이 났고
여유로운 내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오늘의 공기를 들이킨 순간
여기 까지라는 말은 사라졌고,
지금 부터라는 말만 남았다
- 아침헰살
빨래할 땐 그 많던 옷들이
외출 직전엔 다 사라진 것처럼
공부를 시작할 때
샘솟던 의욕이
자리에 앉자 마자
온데간데 사라졌다
- 지옷미
벚꽃이 만개하여
갑자기 봄을 안겨주듯
구름이 걷히면서
어느샌가 빛을 안겨주듯
우연히 너와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
너가 숨기지 못한
마음을 보아버렸고
봄처럼 태양빛처럼
나에게 너를 안겨주었다
- 갑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