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회 창작콘테스트 - 시부문 응모 (화장 외 4편)

by imgoyo posted Apr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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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火葬)

 

 

가로등이 뛰어드는 나방을 삼키는 동안

당신은 주름도 없이 작아집니다.

표정은 증명할수록 거짓이어서 텅 빈 얼굴로 당신을 보냈습니다.

피어나는 연기에 당신이 고이고

 

입술을 구분하는 건 오직 색 뿐

잇자국만 앙상한 사과에 당신의 입술이 새겨지면

사과는 받지도 주지도 않고 그렇게 갈변되어

전혀 능동적이지 않은 자세로 변해가는 것은 정말 사과입니까?

 

그건 그저 허공의 색일 뿐

괜스레 공허로 잘못 알아듣고 며칠을 앓다가

 

호주머니 속 손처럼 잔뜩 웅크린

당신의 남긴 숨이 한꺼번에 찾아와

 

온도를 어림잡으려는 듯 뜨거워지고

중얼거리는 언 발로 한 참을 서서

하품하는 법을 영영 잊기를 붉었던 사과

당신의 손에 아직 고였을 때


-


새가 되는 과정

 

 

 

모두 다물고 있는 형식으로 내 앞에 머무는 시간

 

매일 밤 입으로 불린 쌀을 가득 문

새의 얼굴을 보았다

새에게 표정이 없다는 건 정말 슬프지

 

달빛에 빛나던 쌀알이 누군가의 걱정 같아

가만히 입안으로 부어주던 온기의 모양으로 태어난 네게 고백했다

 

작은 파열음에도 깨어질 연약한 공중에 터를 잡고

그래서 신중하게 땅을 움켜쥐던 발걸음이 꼭 전생에 펼쳐보이던 빈 손 같아

운명에 동조하듯 불안한 각도로 끄덕이는 곁을 헤매다 바깥이 된 사람

 

아무것도 들키지 않으려 눈알을 굴리는 네 동공의 안쪽에서 얼굴들 화석처럼 발굴되고

    

바깥에 갇힌 새들이 흰 달을 물어다 입속으로 저무는 날들이 무수히 이어졌다



-



달팽이는 달팽잇과

 

 

 

이마를 찧을 때마다 입술을 깨물어

신중히 걷다 오늘은 달팽이를 주웠어

크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놈으로

 

나는 달팽이를 좋아한다고 자기소개서에 썼는데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으나

그날 주워온 달팽이를 죽였어 죽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는 가만히 두었어야지 좋아한다면

 하지만 좋아한다는 건 진심이야 나는 닭도 좋아하거든

 

튀긴 거나 삶은 거나 다 좋아한다고 함부로 떠든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다만 오해했을 뿐

너는 어디에나 널렸고 특히 내 눈엔 아주 잘 띄지 말했잖아 좋아한다고

그래서 같이 있으려고 옮기려던 것 뿐 인데

 

맙소사, 너는 이미 집이 있었구나

내가 네 등에 업혀 울 수는 영영

느리게 산책하는 너를 내가 죽였어

미처 도망쳐 라고 외치기도 전에 튀어나온 너의 긴 내장

 

함께 축축해질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귓속에 너를 위한 시구(棺)를 짜놓았어

이젠 내가 집이 되어줄게

귓가에 한 행씩 읊어준다면 너의 시로 온통 진동할 거야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 끝에 네가 걸려

어쩌면 신이 지나간 자리면 어떡해

 

절박하게 무서워져서는

반짝이는 길에 대고 애도의 표시로 다만 네게도 곤충처럼 통점이 없기를

두 손 모아 소원해 그게 모자란다면 가곤한 어느 화가처럼

귀를 잘라 보낼게


-



 

잠기는 돌

 

 

 

물속으로 돌을 던져

파장을 보고 부피를 가늠했다

 

분주할 것 없는 아침엔 매일 앓느라 바빠

 

오늘은 쓸데없이 자를 샀다

얼마나 쓸데없는 마음 이었는가 재어보려고

함부로 말하는 재단사야

 

허밍은 어느 절을 꺼내도 슬픈 단조

빈 차라는 빨간 불빛을 보면 괜히 붙잡고 싶어 괜히 라는 말은 또 얼마나 무력해

우리의 공간이 부피를 가지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고 멀어지기만 할 수 있을까

그럼 언제고 골똘해져

서로의 거리만큼 마름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바닥에 그림자를 길게 혹은 짧게 기워내는

뿌리를 드러낸 나무 등허리로 휜 물고기를 품은 숙맥의 손등을 가진 재단사야

 

네가 그늘을 자르면

목울대에 호수가 일렁이고

 

나무의 자세로 고꾸라진 고요가

다정히 돌을 적셨다

 

잘린 그늘들이 물결 따라

안으로 쏟아져 내린다


-


꾀병

 

 

 

발들을 찾기 위해

병들을 깨느라 분주한 아침이면

 

나는 재가 된 채로 긴 마라톤을 했다

타들어가도 들어갈 수 만 있다면

 

날아가는 잿빛에는

발보다는 날개가 어울렸다

 

정강이 뼈 위로 작은 발들이 철마다 필 때마다

 

나는 여러 개의 병을 주워

돋아난 발들을 하나씩 뜯어 넣었다

 

발을 가진 병들이 저마다 길로 떠나면

 

끝내 두발만 남은 사람

발들을 찾기 위해

병들을 깨느라 분주한 아침이면

 

공병을 줍는 노인에게

함부로 증상을 얘기했다

 

소년이라고 발음하면 노인의 뒤통수가 보여

 

볕으로 깨진 병들을 보고 별자리처럼 노인은 병명을 붙여주었다

 

그가 나를 부르자

홀연 내가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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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지은이) : 김미소

생년월일 :1989.5. 28

이메일 : rlaalth119@daum.net

h.p.: 010 _4699 _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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