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회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공모 <의문> 외 5편

by 봄가을여름겨울 posted May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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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너의 화내는 모습에도 웃음이 나는 까닭은, 나는 모르겠다.

웃지 말라며 화를 내다 이내 같이 웃는 너도, 잘 모르겠단다.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에도 왈칵 끌어안으면 온전히 나를 받아준다.

포만감 이상의 포만감에도 속이 거북하지도 체하지도 않는다.

 

간혹 짓궂은 행동에는 딱히 의미가 있지 않았다.

걷는 속도를 맞춰 발을 맞춘 이유도 배려가 아니었다.

 

너가 가면 나도 따라간다.

너가 먹으면 나도 먹는다.

너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너가 좋으면 나는 더 좋다.

 

너의 자는 모습을 한없이 보게 되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잠결에 뒤척이다 너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너도, 잘 모르겠단다.






속 빈 번데기

 

고요하게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 속에 오늘도 시들어간다.

피곤함에 절어 마시는 새벽공기가 불쾌하다.

 

되려고 하는데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하려고 하는데 하지를 않는다. 그러다보니

보려고 하는데 보지를 못한다. 그러다보니

 

-, 내가 지금 뭘 하고 있()?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 해를 보기 민망해 오늘도 누웠다.

차갑지만 익숙한 내방엔 생기가 없다.

 

지고 있다. 나는. 자부심에 근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막연한 행복을 그리는 자위도 오늘은 진통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두려운 것은, 사라진 자부심의 근거에 되도 않는 고상함이 깃들여

스스로가 숭고한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할 내일.

 

따뜻한 햇살과 작용하지 못하는 오늘도 나는 시들어간다.






오래된 부부

 

사랑이다. 다 사랑이다.

너를 미워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랑이다.

 

지긋지긋함 속에 있건마는 의리에 차마 거부 못하는 것도,

넌더리 칠 정도로 미우면서도 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 답답한데 없으니 그리운 것도,

 

다 사랑이다.

 

못 잡아먹어 안달 내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나를 위한 너의 바램이 깃들어 있다.

나만 보면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나로 인한 너의 서운함이 담겨 있다.

 

쨌든 사랑이다. 시간이 지나 형태가 변했다 해도

사랑이고 사랑이다.

 

크기가 줄었다 보다는 깊이가 깊어졌으니

꽉 채우기 보다는 유유히 흘러들어가고 있으니

변한 것 같아도 다름이 없고 달라진 것 같아도 틀림이 없으니

사랑이고 사랑이니 사랑이다.

  




입대

 

와 여적까지 안 들어가고 있는교

내 걱정은 하지 마이소 쫌, 어매도 내 알다시피 어데 가서 못 어울리는 거 봤소?

내 어매 닮아 카 어델가나 싹싹하게 잘할 거 뻔히 알면서 뭘 그리 걱정을 하요.

 

아이고 울긴 또 왜 우소, 영영 못 보는 것도 아이고 퍼뜩 들 가이소.

2년 금방이랍디다. 요즘에는 휴가다 외박이다 암튼 자주 들릴 거니까 나중에

왜 또 나왔나 구박이나 하지 마이소.

 

참 어매요 귀찮다고 약 거르고 하지 맙시다. 내 휴가 나오면 어매가 차려준

밥이 제일 먹고 싶을 거니까 내 밥상 차려 주려믄 건강하셔야 하니께 뭣보다도 끼니랑 약은 꼭 제때 챙겨 드이소.

 

일주일 있으면 아부지 기일인데 차매 아쉽소. 아부지 기일 못 챙기는 것도

캥기지만 특히나 울 어매 혼자 을마나 바쁠지 안타깝소. 이번엔 전부 다 하지 말고 좀 간소하게 하이소.

아부지도 이번엔 이해하지 않을까 싶소.

 

어매요 내 들가서 편지랑 전화 할려니까, 이제 그만 후딱 들가이소.

그렇다고 또 마냥 전화기 앞에서 아들놈 안부한줄 들으려고 동동 애태우지 마이소.

 

아이고 늙은이 주책이야 진짜 왜케 울고 그라요. 내 진짜 갑니다.

절 받으이소 어매. 우리 어매. 워쩐다. 이제 곧 추수철 인디 혼자 고생하겄네.

 

그만 우소 진짜 어매 그리 울면 아들 발걸음이 떨이지지가 않는다 카이.

뭐 내가 죽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이제 그마 하이소. 내 후딱 갔다 올게.

 

약 잘 챙겨 드시고, 나는 진짜로 갑니데. 어매요 건강 하이소! 어매요 건강 하이소!

 

어매요 부디 건강 하이소!






외로움 그리움

 

외딴섬에 홀로앉아 여유를 즐기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외롭지 않냐는 그대의 질문

 

그대 만나기 전엔 몰랐었소. 외로움을

떠나간 자리에 남겨두었구려 수고스럽게.

 

다시 담아가면 좋으련만 택도 없겠지요.

 

혼자인 것보다는 이제 그대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탄을

그럼에도 그대가 남겨 놓고 간 향기에 감탄을

 

차라리 오지 않았다면 혼자 있던 이 섬에

그렇다면 그랬으면 외로움을 배울 필요도

그리움을 느낄 필요도 없었을 탠데.

 

그대라는 자취가 사치가 되었네.

 





관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렁이는 마음

소모 될 법도 하건만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마르지 않는 내 마음을 보며 의문이 들 때 즈음,

! 당신 또한 내게 채워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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