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섬
안개의 섬이 저기에 있어
소리없이 노 저어 가네
구름 속 끼인 집들 사이
한 켠에 불 들어온 너와 나의 집
천장엔 손 닿지 않고
두 발 뻗어도 끝이 없는 집
짙은 나무향 가득한 색
창 열어 바람이 나를 감싸네
섬은 내 맘에 가까운데
배는 자꾸만 왼쪽으로 돌아
아득한 물 위로 허공을 맴도네
돌이킬 수 없는 인생, 영원이란 이름
저 멀리 안개의 섬에 가려하네
나 홀로 강물에 선을 긋네
안개에 숨은 너를 찾아
오늘은 함께 가자, 우리의 집으로
소통의 벽
너와 나 사이에
흰 벽이 있어
입을 떼 말 하려도
메말라 버린 흰 벽
고요한 대중들 사이
홀로 끼어 울던 널
발견하고 소리쳐 외치려 했다
나도 여기 서 있다고
너와 나 사이를
가로지른 흰 벽
내 맘 속 깊은 공간 속
너와 나란 마지막 존재들
노인들이 사는 섬
노인이 사는 섬은
사실 시인이 사는 섬이다
풀도 꽃도 나비도
눈에 들어오면 모두 시가 된다
바람이 날리듯 한 포기 풀처럼
그렇게 날아간다
어느 멋진 날에
어느 멋진 곳으로
사람이 사랑이 되는 날에
노인의 나라는 사랑을 한다
봄날의 아지랑이 사라지듯
민들레 바람에 흩날리듯
한 가운데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그 한 가운데
내가 여기 춤 추고 있다.
하늘 하늘
춤 추고 있다.
바람이 얼굴 스치고
사람들도 스쳐 지나갈 때에
춤 추고 있다.
그러나 희망도 세찬 바람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
슬픈 기억은 아른 아른
나의 영혼을 뒤흔들고
그대 심장소리 귀에 들리는 듯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마저
날 떠나가는 듯 할 때
그럴 땐 나 홀로
살아야만 하는가 깨닫고
홀로 뒷짐지는데
별빛이 빛나던
어느 날 밤에
노래 소리 어디선가
풍뎅이 날갯짓과 실려와
나의 귓가에 속삭여
밤은 평등하고
내 시간은 바로 여기 있다고
어둠 속 고요의 정점에서
고요히 날 바라보는 나의 영혼
빨간 책
빨간 책을 쓰고자 한다.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산 속 깊은 작은 책방에
서가 한 켠에 놓인 빨간 책.
내 마음에 있으나
그 누구도 모를
작고 소박하고 발칙한 이야기들
모아 놓은 빨간 책
그러나 그 곳으로 가는 오솔길
언젠가는 파헤져 지고
저녁 노을과 함께 바스라져
소망도 없이 쓰러질 것을
그것은 나도 모를
빨간 책이었다.
죽음과 장례와 묻힐 땅 속
깊은 지구 밑 빨간 책.
토양 속에 놓인 미련은
나를 감싸는 조문 객들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리라
그들은 모두 나를 바라본다.
관 속에 나와 나의
빨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