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들숨마다 바람을 마신 적이 있지
스물을 처음 마시던 날과 같은
주어진 칼날이 무디고
젖은 땅은 꽤 수근댄다는 걸 모르던 어린 날
스물의 어귀가 비스킷처럼 와사삭,
부서질 줄 몰랐지
바람은 쉽게 부풀어 오르다
한숨 한 숨에 빠지곤 했다
사십일곱번째 자기소개서는 어차피
단단한 쓰레기통에서 활자를 지워나갈 예정
편의점의 조명은 눅눅하고
매일은 딱 구백 원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정도의 가격이다
가끔 걸음을 늦출 때가 있다
걸어도 풍경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채던 날
-어쩌면 풍경이 다 같은 걸지도 모르지
조금의 사치로 천오백원 컵라면을 사 먹었다
닳은 지문이 떨어뜨린 나무젓가락
학생은 밥도 잘 안 먹지 않느냐며
고무장갑을 뒤집어놓던 어느 아주머니
그녀는 고장 난 가스에 대해
고생은 젊을 때나 해보는 거라고 했다
결국 쥐어준 건 모퉁이가 바스러진 네 평의 방과
입을 앙 다문 추위뿐이지
오래된 CCTV에 잡힌 나
나는 씨익,
웃었다 그는 내가 범인이라며 날 내몰고 결국
가난은 죄가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일흔 여덟 번째 자기소개가 흩어질 때야
붉은 실을 붙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름아름 따라간 길의
구인공고는 초라했고 가벼웠지만
누구는 오늘 여든 번째 이야기를 끼적일 것이다
어차피 읽히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도
죽은,
의 수식을 물어본 아이들이 있지
단식원을 뛰쳐나온 듯 기름진 입술을 삐죽이는 아이들
그들은 검은 표범을 닮았다
죽은 문장을 끼적이면서
카르페 디엠
만약 현재가 나의 것만은 아니라면 어떡하지
육삼빌딩에서 번지점프라도 할까
아니 그냥 육십삼 번 버스를 탈게
결국 잔뜩 움츠린 채로 죽은 어느 노숙자 시인
또는 사회 그래서 시인의 사회
아무도 시인은 될 수 없는데
락밴드를 연주하는 게 시라면 우리는 매일
시를 즈려밟고 있다
인간극장 흑빛 화면에선 아직도
암울한 사람들이 자기를 소개하다
갑부가 되었다
나는 그러는 법도 몰라
대충 날카로운 단어들을 어설프게 엮었다
잘 엮어도 오래 쓰일 순 없는 걸
모든 죽은 것들은 물 위를 부유하지
그래서 나는 부유하다 한 줌
기포로 퐁, 터졌다
흩어졌다
호흡
헌 지느러미를 퍼덕이면
오늘의 운세를 알 수 있지
가끔 물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고개를 딱
휘젓는 날
그런 오늘의 날들은 검은
바위 밑으로 쉽게 숨어버리고는 해
물의 온도는 언제나 이십일 점 삼도
허파에 퍼런 물이 스미기엔 좋은 날씨지
파랑이 사실 가장 차갑다는 걸 알고 있니
또는 가장 지겹다는 걸
뻐끔이는 동안 꿈을
함께 뱉어내는 사람들 결국
언젠가 오를 수 없는 곳을 마주할 텐데
우리는 모두 쉽게 꿈꾸고
쉽게 호흡을 뱉어낸다
백원으로 긁어낸 인생 어느 취업불가 청년은 매일
기대를 오물거리다 끈적이는 가래침처럼
허무함을 토로해
삼천오백원 싸구려 담배를 꼬나물어
열넷,
가장 삭막한 숫자의 개비들
우리에겐 왜 찢어진 지느러미밖에 주어지지 않는 거야
우리는 매일을 잊고 매일을 잃어가
삭아버린 비늘처럼 허무한 날들
삭은 바늘을 품은 목덜미엔
웃음이 하얗게 피어나는데
나는 호흡을 하지 하나,
둘
코에선 식은 물거품이 퐁, 퐁 피어올라
적도동경증
북극성을 마신 소년
그는 엎드려 모든 별들을 마시는 것이 소원이지
작은 손으로 움켜쥔 카메라가 긴 주둥이로
피사체에 키스하듯 그는 한 쪽
눈을 잔뜩 찡그리곤 찰칵,
밤하늘을 들이마실 것이다
적도에 가면 모든 별들을 볼 수 있지
소년은 푸르스름하게 웃거나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동경은 너무 뜨겁고 생채기는 쉽게 터져버리니까
소년은 머리께에 머플러를 둘렀다
정수리 부근으로 희망들이 빠져나갈까봐
사막에선 전갈에 물려야 성인이 돼
개 몇 주둥이에 물려 너덜너덜해져도
온전히 아픔을 삼켜야 한자
별빛은 사실 꽤 차가웠으므로
너무 뜨거운 온도로 태어난 아이들과
쉽게 식어가는 양수
적도에선 제왕절개의 수술자국을 태워낼 수 있지
소년의 꿈들은 엉성하고 꽤
단단했다
언젠가 적도에서 우주를 와그작,
와그작 씹고 싶어
적도는 금방 달궈지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고개를 육십육점 오도 정도 기울이고,
찰칵
하늘을 마신다
검은 장례식
침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숨겨진 몸
아침마다 발차기를 배우는 건
숨겨진 웃음을 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웃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욕설을 내뱉듯,
나지막이
소문을 들킨 소녀는 빠르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
어린 유방과 같은 제물
소녀는 열일곱 어린 나이에 만삭을 경험했다
종종 사람들은 돌고래를 닮아갔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해체시킨 이야기들
소문은 가볍고 약하고
차갑다
이빨의 온도처럼
반년마다 돌아오던 시험이 이젠 1년으로 늘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군,
결국 멀수록 더 느린 건 과학적 법칙이다
죽는다는 건 새하얗게 바래간다는 것
새하얀 천장과 백열들 불빛과
흩날리던 눈발과 선물 받은 국화는 이미 죽어있거나
죽음이 결정되어 있는 법이다
하얀 비석 위에 새겨지던 이름처럼
제21차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접수합니다.
이소현 (010-8956-2717)
'증언' 외 4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