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차 창작콘테스트 응모작 탄생 외 4편

by 탐미주의 posted Jul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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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세계관 하나가

태어났다

식물인 줄 알다가

생니가 돋아나는 걸 보고는

짐승의 나라임을 깨달았다

 

사나워질수록 군림할 수 있는 게

늘어나는

이 세상이 뜨겁고 역겹다

세계관 하나가

어저께 새로이 태어났다

 

차츰

이빨이 돋아난다

육식을 배워야할 차례이나

육류의 맛을 아직은 알고 싶지 않다

굶주림은 늘 너무 멀게만 있다

 

채식주의자의 삶을 영원히 소화시켜낼 수 없을 것만 같다

 

 

 

 

 

 

나의 것

 



탐험가의 눈짓으로

보물이 숨겨진

섬과 나라

온갖 곳에 침범하여 타액을 묻혀놓고

도망쳐 나온다

 

도둑질로 삶을 배워온

그녀가

냉큼 땅에 파묻힌 황금 열쇠를 찾아냈다

천만 원을 타냈다

카드 한 장이 의미하는 탐험가의 생

 

그녀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이었으므로

마다할 여지가 없다

분할한 나의 몫

오백 만원

 

그녀의 목숨은 나의 목숨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죽음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늘의 슬럼프가 구름으로 표현되었다.

 

 

비웃음 살 소나기가 한바탕 마음을 쓸고 지나간다

방금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그가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쏟아질 묵직한 먹구름을

두 다리에 데리고 다닌다

신호등 불이

바뀌길 기다리지만

사신이 맞은편에 서 있는

찝찝한 기분을 어쩐지

지울 수가 없다

죽으려고 하는 것인가

이 남자

알약의 개수를 머릿속으로 샌다

시끄럽게

떠들며 웃는 연인을 흘겨본다

입을 가볍게 맞추는 그들의

혀와 입술을 본다

녹색불로 바뀐 걸

미처 보지 못했다

연인들 때문에

금세 빨간불로 바뀌었다

또 한 번

이 지긋지긋한 생을 기다려야 한다

연인은 다시 길고도 짧게

입을 맞춘다

서로의 입술을

횡단 한다

남자는

살의를 느낀다

죽을 만큼

우울한가

하늘이 여전히 예뻐 보이는 걸 보면

아직 우울한 정도는

누군가를 죽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글감

 


 

네가 흔한 인상인가

네가 흔한 하늘인가

우리가 흔한 장면으로 남았던가

확실히

너는 나와 같은 저녁을 가지진 않았다

내가 눈에 담은

하늘 중에 가장 황홀하였다

네가 바라는 꿈의 철길에

뛰어들고픈 나는

전생에 타오르는 불나방이었던가

다리의 결함 때문에

양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새가 된 것 같다

전멸된 걸음으로

하늘을 걷는다

난다는 행위가 글감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새의 세상이

전염되어

너와

내가

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타기 위해

태어난 불나방은 과연

자유일까

불나방으로 환생하고 싶다는

너의 말에

두 다리를 잃는 기분이 든다

 

 



 

세탁기

 

 

 

누군가 세탁기에

얼굴을 숨겨두었다

여자의 얼굴이었다

남자의

얼굴이기도 했다

팔리지 않은

도자기였다가

불법으로 포획한 동물

헤엄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물개 한 마리

수족관보다는

청결한 세탁기가 차라리

호사라는 횟감떼도 있다

이토록 더러운 하루가 어떻게

세척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푹푹 찌는 여름

여전히 미용실 앞 진분홍색 수건이

탐스럽게 널려있고

벽돌 주택가 빨랫줄엔

옷가지를 널어뒀는데

언제 세탁기 안에

사람 머리를 숨겨두고

물개와 생선떼를 벗기고 죽이고

남의 머리를 두고 부지런하게

무언갈 먹고 기부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랑을 나누는지

언제 그럴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지

이 어린 여자가

눈을 반쯤 뜬 채 돌아가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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