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회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울지 않는 아이 외 4편>

by 자브리스 posted Apr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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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

 


흔들리는 나무사이 꽃향기마저 포근했던 날.

어느 옥상 위에서 두 그림자를 만났다.

 

영원한 휴식에 들어 미동도 없던 그림자.

싸늘한 할머니는 눈물마저 굳었다.

 

살랑이는 빨래사이 울지도 않던 그림자.

어린 신고자는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

 

소방관 품속에 안겨 경찰을 맞이한 아이.

가장 아름다운 날에 가장 아픈 기억을 가졌구나.

 

의젓한 아이가 눈물을 삼킬 때,

위로에 서투른 난 고개를 떨궜다.

 

포근한 봄바람에도 씁쓸함을 느낀 지가 5년.

나는, 그리고 너는, 어떻게 살았을까.





나미브의 노을 -

 


물병소녀가 떠난 곳에 푸른 바다가 남았다.

모래소년은 푸른 잔상을 담는다.

 

초라해진 사막엔 쓸쓸함이 깃든다.

상극되는 색으로 함께 걸은 길 무극인데

 

보내고 나서야 보색(補色)임을 알았다.

물병과 모래는 섞이지 않아 조화롭다.

 

모래소년이 떠난 곳에 빈 물병이 남았다.

바다는 외로운 잔상을 담는다.

 





연정(戀情)의 소원 -

 


모두가 달뜬 밤, 기분까지 밝히는 다이오드.

커다란 나무에 소원이 달린다.

 

네가 날 사랑하게 해달라고 적을까.

아니다. 너를 바꾸는 건 이기적이다.

너는 너 그대로여야 한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적을까.

아니다. 남을 빌리는 건 구차하다.

나는 나 그대로여야 한다.

 

거짓된 사랑에 순수함이 담길 수 없지.

그래, 사랑은 얻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는 그대로여야 한다.

 

성탄일 밤, 가벼이 즐기는 허황된 놀이.

빛나는 나무 어딘가에,

너의 행복을 빌었다.






목적지 -

 


적막한 구급차를 노인의 고함이 흔든다.

붙잡힌 손목이 노인을 달래지만,

 

노인은 병원에 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붉어진 손목에 분노가 서린다.

 

차문이 열리고 긴장이 풀리면,

젊은 손목은 노인의 분노가 두려움이었음을 깨닫는다.

 

노인의 볼 위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풀려난 손목은 억세었던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눈다.

 

결국엔 병동이었다.

또 한 명의 치매 노인과 지친 보호자의, 마지막 목적지가 되었다.


 




격리 후에 -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은,

과거를 그리는 우리의 운명.

아득해진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인연이 얽히는 건 두려울 게 아니다.

추억은 고독을 견디게 하고

기억은 희망을 싹틔우는 법

그리움이 반가움 되는 날

경이로운 기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억만 겹 시간 속에 스쳐간 날 순간이어도,

반가움이 밝힌 불은 고립을 녹여냈다.

그러니 내게 오라,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름    : 국진호

이메일 : wistice@naver.com

연락처 : 010-2208-2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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