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
허공에 들리는 목소리가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고
손으로 만져진다
행복을 보았고
기쁨을 들었으며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더 이상 목소리는
내 곁에 오지 않았고
내 두 눈에는
물방울이 맺혔다
로봇
반복적인 일상 속
소란이 생겨 내민 얼굴
생기조차 없고 무미건조한 표정
툭하면 쓰러질 듯 한 걸음걸이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쳐
멀리 달아난다
하루가 반복되고
소란은 잦아들며
내게도 생기는 사라졌다
우리는 로봇이라 불린다
편지
잔잔한 저녁 노을지는
따스한 달빛아래
조용히 편지를 쓴다
아무도 들을 이 없고
받을 이 또한 없지만
한 편의 글을 적어
편지를 보내본다
떠나버린 이들에게
닿지 못할 글을
하나 그려본다
기억방울
빗방울이 멈춰있다
공중에 그대로 멈춰있다
방울방울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들이,
나의 모습 또한
스쳐 지나간다
땅에 닿은 빗방울들은
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저 멀리 스며든다
그에게 기억을 맡기고
우리는 잊어버린다
내면
나는 헝클어진 머리다
그저 눌리고 떠
지저분하게 보일 뿐이다
그대들은 외적으로만 볼 뿐
내적으로는 보지 못한다
나는 과연 헝클어진 머리일까
내면마저 흐트러졌을까
그대들도 똑같은
헝클어진 머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