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도 명천마을>
함박눈이 송이송이 내리는 밤
노루꽁지만한 하루 해 싹둑 잘라먹은
명천마을 사내들 네댓 명
선창가 폐선으로 누운 선술집
뻘건 갈탄난로에 둘러앉아
시린 해풍에 저린 몸 미역처럼 말린다
이따금 토해지는 굽갈래 기침소리
갈탄난로 위 여린 꼬막들은
해소끼 같은 허연 거품을 내뿜고
먼 바다 거센 파도
수만 번 접었다 폈을 늙은 사내는
구릿빛 마디 굵은 손마디 뚝뚝 꺾으며
누런 양푼에 찬 소주를 친다
바다의 삶이란 때론
만선의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때 아닌 난파에 찢긴 걸그물 같아
순항치 못한 영광과 포부
짠기 배인 시린 눈빛에 지우며
막배 끊긴 선창가
눈은 소문난 허풍쟁이처럼 나리고
더 이상 비울 것 없는 사내들
저마다 뜨건 가슴에 찬 술을 부으며
오래 전 목젖 깊숙이 삼킨
질기데 질긴 허연 침묵
밤새도록 찌개처럼 끓인다
<고니>
징글맞을 배암을 목도리마냥 두르고 연습했다는
이 나라 명궁(名弓)들의 소문이
세상 파다하게 떠돈 날
인력소를 공친 나는 물 풀린 샛강에 나가
고니를 본다
멀리 가까이 처연히 돌부리에 올라
내 한 번도 겨냥 못한 과녁, 빈 허공
일점을 향해 시위를 당긴다
내 예전 뒤틀린 맘에 무방 쏘아댔던
그 빗나간 화살들
지금 어느 가슴 시린 상처로 꽂혀 있을까
검은 활촉 겨드랑에서 뽑아 든 고니
일순간 바람의 힘줄 출렁이며
몇 방울, 물 돌부리 튕기자
치솟아 날아오르는 화살,
그러나 지상엔 상한 자 없다
<진눈깨비 허기지게 내리는 날>
몇 날을 공치다 집 부수러 간다
처음 해보는 일이나 하루 일당 팔만 원
가슴 뛰는 액수다
머리통만한 쇳덩어리로 집을 부순다는 게
내겐 드물게도 신나는 일인지라
무너져라 벽장을 내리칠 적마다 힘이 더한다
가능한 한 방이다
부실한 내 삶의 외곽을 깨부수듯
단 한 방에 끝장내는 거다
나는 그렇게 손에 침 바르며
벽장을 내리치는데
난데없이 천장 위에 악쓰는 소리,
저 새끼, 순서도 모르는 순 깡통 아녀!
삽시간 달려온 십장
내 시린 양 볼을 내리갈긴다
나는 그렇게 반나절도 아니 되어
뺨 맞고 쫓겨났다
쌀눈 같은 진눈깨비 허기지게 내리는 날
<서울로 가는 황소>
이젠 떠나야할 시간
싸리문 밖 1.5톤 트럭 당도하고
워낭을 떼고,
고삐를 풀고,
멀리 집 떠나는 자식 위해
다순 밥 한 끼 내주듯
데운 뜨물에 여물을 쑨다
시리고 매운 연기 탓만은 아니리
숯검정 부지깽이 아궁이에 처넣으며
오래 된 정한 말로서 풀지 못할 속엣것
고개 접어 저린 가슴에 묻고
소처럼,
소처럼,
먼 산 향해 젖은 눈발울 굴리시는 할매,
황소,
그 맘 진즉 다 안다는 듯 조용히
발을 뗀다
<귀한 잣대기 >
오만 궁리 끝에 잣대기를 머리맡에 두었다
진종일 마른 볕 한 조각 들지 않는
음습한 천장
일 년 열두 달 질기데 질긴 어둠을
시도 때도 없이 파먹는
저 놈의 서생원들
나는 저들의 소행을 곰곰이 생각하건데
저문 이 하루도 어제나 별반 다름없고
오늘 살고 살아지는 게 늘 가슴 휑하거늘
쌀 한 톨 없는 마른 천장
복창 터지게 난장을 쳐대는지
차라리 맵싸하고 짭짤한 내 가난이나
속 시원히 물어 가면 좋으련만
저 달리 나 여기 뜨면 갈 곳 없고
먹여야 할 식속들 또한 많아
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기인 잣대기로 꾹꾹
마른 천장 내찌르는 건데
그 맛도 요사이 솔솔 재미나
빈둥빈둥 일삼아 찔러보는데
이런 내 맘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당장 천장을 뜯어 고치던지
아랫초시*로 이사를 가던지
양자 택하라며 휘익 걷어차부린다
내 귀하데 귀한 잣대기를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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