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창작콘테스트 - 시 <물망초가 되어 외 4편>

by 안다영 posted Apr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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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가 되어


넓은 품으로 낳아 품 깊은 물줄기 위로

솟아난 손바닥 만한 작은 바위 위에

물망초 한 송이 홀로 남아있다.

함께 꽃봉오리 울리던 형제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득한 풍경에 반해 덜렁 길을 잃었나 보오


물망초가, 물망초가 되었을 때

아직 성숙하지 못하던 물 속으로 발 한쪽 담구고,

마른 가지 하나 동무 삼아 길 찾아 해맸다

여전히 세상과 맞보던 그 작은 바위에게서

유일한 연인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그 물망초 한 줌을

자신의 연인에게 던져 주었다

물망초가 어여쁘다던 그녀에게,

그녀 곁으로 돌아 갈 순 없었지만

미소만큼은 어느때보다 환히 보여 주었으리라

물망초가, 물망초가 되었을 때

그는 그저 바랐을 지도 모른다


한 송이의 물망초를 감싼 푸른 잎들은

푸른 잎들이 감싼 노오란 마음은

작고 작은 그 한 송이의 꽃은

사랑하던,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떠난

그가 그녀를 기억하는 마음일지도

그녀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우리는 그저


지나가던 개 한마리

하찮다고 생각치 마라.


모래 사이로 기고 있는 개미를

작다고 함부로 죽이지 마라.


세계에서 보는 우리는

지나가는 작은 동물 만큼이나

작은 존재이고,


우주에서 보는 우리는

먼지보다 작은

미세한 존재이다.


우리는 그저.

개나, 개미보다 아주 조금 더

그저 조금 더 클뿐이다.


가공되지 않은 것


검은 잉크를 품고있는 펜을 손에 쥐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새하얀 종이를

갈기갈기 파헤쳤다.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지내던 종이 한 장.

제 가슴에 난도질 된 검은 상처에

물들어 버린 검은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갔다.


마침표를 찍고 나자.

누워있던 종이는 더 이상 숨쉬지 않았다.


이제부터 요리를 시작하겠다.

고치며 자르고,

고치며 볶고,

고치며 장식했다.


힘겹게 요리를 하던 것은

진공포장 된 닭다리 하나.


가공된 닭다리가 유일하게 가진 짧은 다리 하나로

자신의 어린 글을 가공하고 있었다.


주시(酒詩)


빗소리가 병풍같이 나를 감싸던 날

나는 걸쭉한 막걸리에 취해

고요한 고양이의 몸부림을

바라본다. 아무 생각없이


아롱아롱 비치는 머릿속엔

구름위에서 춤을 추 듯

가벼운 발자국 만이 멤돌고

뜨슷한 열기가 메운다.


고양이 다리 핥는 모습이

처마 끝 빗방울 내리는 소리가

침대 위를 구르는 내 몸뚱이가


모든것이 하가로와

모든 것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것이


어느 토요일의 일상


어릴 적,

지금 같이 비어 버리기 이전에


학교가 일찍 끝나던 어느 4월 후반의 토요일에

마당의 수돗가 터에 앉아서

햇볕을 쬐었지


4시즈음 지나가는 햇볕은

날 좋게 말린 이불같이 포근했고

봄 같은, 여름 같은, 그런 햇볕이 좋았지.


마당을 가로지르며 곧은 시멘트 바닥에

등을 두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곤 했지

발랑발랑 누워도 아무도 보는 사람 없었고

시멘트의 스산함이

내 두 날개를 지나 두 팔로, 내 어린 등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나는 참 좋았지


돌고 돌며 봄기운을 두고 다니느라

힘빠진 바람을 맞으면 누워있는 것이 좋았지


나는 너를 그렇게 좋아하였지

나는 참 좋았지


돌아갈 수 없어서 그저 나는

좋았다고만 하지.




응모자 : 안다영

이메일 주소 : ekdud4542@naver.com

HP연락처 : 010-8433-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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