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보따리를 싸며
- 은유시인 -
넓은 보자기 활짝 펼쳐놓고
내 묵은 찌꺼기들 모두 끄집어내어 층층이 쌓는다
결코 값나갈리 없는 바랠대로 바랜
내 낡은 인생 몽땅 보자기에 주워 담는다
남들만큼 공평하게 갖출 것 갖추고 태어난 육체
남들만큼 공평하게 주어진 생의 시간
남들만큼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삶의 기회
남들만큼 잘 사용하지 못한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곰팡내 역겨운 나의 찌꺼기
손끝 살짝 스쳐도 바스러지는 삭을 대로 삭은 나의 찌꺼기
쌓고 또 쌓아도 포개고 또 포개도
나의 보따리는 중량(重量)이 없다
그래도 오늘
난 처연한 마음으로 보따리를 싼다
내 묵은 찌꺼기 내 낡은 인생
보따리에 몽땅 구겨 넣는다.
2002/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