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회상(回想)
- 은유시인 -
1
한 코흘리개
술 취해 비틀거린다
걸음새마저 제대로 못 가누는데
새빨개진 얼굴 가쁜 숨 몰아쉬고
주절대는 소리 자못 어른 같구나
동네 꼬마들 손에 끌려
막걸리공장 하수구 통해 흘러나온
술비지 떠먹고 그게 그리 신이 났다네.
2
한 코흘리개
소방타워 꼭대기에서 소리 지른다
비좁은 사다리타고 높이 솟은 전망대
하늘 끝닿은 데 올라가보니 발아래 세상
오밀조밀 개미세상처럼 보이는구나
저 아래 사람들 웅성웅성
두 팔 휘저으며 질러대는 소리소리 마냥
자랑스러워 그게 그리 신이 났다네.
3
한 코흘리개
가랑비 온몸 젖는 줄 모르고 앵두를 딴다
한손엔 빨간 앵두 소담히 담긴 노란바가지
자장가처럼 흐르는 가랑비 머리 적시고
얼굴 적시고 질척이는 앵두 밭 종일 헤매는구나
손닿지 않는 저 높은 곳 유난히도
많이 달린 탐스런 앵두 그러나
낮은 곳 앵두만으로도 그게 그리 신이 났다네.
4
한 코흘리개
지하실에 감춰놓은 사과 몰래 먹는다
좁다란 지하실 서늘한 공간 온갖 잡동사니 속
허름한 사과궤짝 못 풀린 판자 들춰낸 벼 껍질 속에
숨겨진 보물 찾듯 사과를 찾는구나
쌀겨 떨칠 새 없이 시린 이빨
덜덜 떨며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솟는 그게 그리 신이 났다네.
5
한 코흘리개
갓 난 동생 이층난간 아래로 밀쳐버렸다
엄마는 못생긴 아가만 젖을 준다고
아빠는 못생긴 아가만 호해준다고
누나야도 못생긴 아가만 업어준다고
아가는 병원에 입원을 하고 엄마한테 볼기짝 맞고
또 맞았지만 집에 아가 없는
것만으로도 그게 그리 신이 났다네.
< 나 어릴 적, 인천시 송현동에서……. 1958년 >
2002/11/10/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