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는 세월
- 은유시인 -
나 비록
세상에 나와
여태껏 천륜 저버리지 않고 살았거늘
지나간 세월 마냥 허무할진대
가슴 속 쌓여있는 감정의 찌끼들
하나같이 욕지기들뿐이로구나
내 살아온
세월 줄기 곳곳엔
구부러지고 뒤엉키고 굵어지고 가늘어지고
뿌리 깊은 옹이마저 박혀
밋밋하거나 그리 곱지 못하니
내 살아온 줄기 마냥 부끄럽구나
그래도 내 어미
자식 낳았노라 미역국 드셨지
그것도 아들놈이라고
금줄에 빨간 고추 드리우셨지
그것도 맏아들이라고
많은 기대 걸으셨겠지
어느덧 내 인생
오십 사계(四季) 까먹은 오십 마루에
이미 탕진해버린 꿈같은 세월보다
눈치껏 주어질 세월 그 절반도 못 미칠 텐데
그 세월마저 하루하루 쏜살같구나
눈물이 나도록 재촉하는구나
인생 큰 마루 넘어
지나온 길 되살펴보니
한없이 아득하여 가물거리기만 하고
내 그토록 탐닉했던 그 모든 것들
저 만치 스멀거리며 사라지려하는구나
기껏 쌓아올린 탑마저 안개속의 허상 같구나
시간 공간 틈바귀에서
그토록 허우적거리며 갈구해왔던
그 모든 것들 결국 흩어지는
한줌 연기만도 못하니
저승길 문턱 이르러야
겨우 철이 들려나보구나
서릿발처럼
깨깽이는 음울한 기억
내 안에 서성이는 노곤한 슬픔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 내일이면 저승길인데
얼마 남지 않은 그 길마저 걷기
왜 이다지도 힘이 드는지.
2002/12/21/2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