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기우(祈雨)

by 은유시인 posted Jul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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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기우(祈雨) 

- 은유시인 -



                                           뽀얀 자갈밭길 휘덮고
                                           내빼는 완행버스는
                                           한낮의 권태로움 뒤로 남기고
                                           수초(水草)식당 문에 기대
                                           손짓하는 자야 얼굴엔
                                           정녕 태양의 찌는 열기 서려있다

                                           이끼 낀 거뭇한 바위들
                                           습기 잃은 채
                                           해갈(解渴)을 기다리고
                                           나도야
                                           다소곳 비는 자세로
                                           하늘을 우러르고…….



197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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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作노트



  이 는 내 머리에 털 나고서 처음 써 본 글이요, 詩이다.

  이것도 라 할 수 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내게 있어서 처음으로 써 본 라 애틋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변두리 술집들은 하나같이 니나노집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맥주는 물론 소주도 귀했던 시절이니 하물며 양주란 술은 극상위층만이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당시 술집엔 술을 따라주고 노래로 흥을 북돋던 작부들이 많았다. 손님이 들면 그네들은 한 상 그득 안주를 차려오고 막걸리나 동동주를 양은주전자에 담아내왔다.
  잔술이 한 순배 돌쯤 하여 ‘방랑 김삿갓’이나 ‘눈물 젖은 두만강’ 등등……. 그런 신파조의 노랫가락들이 예외 없이 목청껏 뽑혀졌는데, 젓가락이나 숟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려가며 메들리로 연거푸 부를 땐 그렇게 흥에 겨울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술에 거나해지면 속칭 ‘쭈물탕’이 시작되었다. 곁에 앉은 색시들의 치맛자락을 들추고 허연 속살을 주물러대는 것이다. 그렇게 매상을 적당히 올려주고 나면 공짜 오입도 즐길 수가 있었다.

 

  옛날 대개의 시골길은 자갈투성이의 비포장도로였다. 오가는 차량도 드물었지만 오가는 행인들도 뜸하여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특히 가뭄이 지속되는 한 여름엔 모든 것들이 물기를 잃고 생기마저 잃게 마련이었다. 
  지나치게 한적하여 스쳐가는 나그네마저 반가웠던 시절, 어쩌다 지나가는 완행버스가 다가올라치면 뭔가 까닭모를 기대를 잔뜩 갖게 했다. 아는 얼굴이라도 내리려는가, 아니면 낯선 얼굴이라도 내리려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버스는 간이역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내빼듯 지나가는 버스 뒤꽁무니엔 뿌연 흙먼지만 자욱하게 남았다.


  가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지닌 수초식당. 식당이라 밥을 팔지만 대부분 한잔 술에 이끌려 잠시 들른 길손에게 막걸리나 동동주 등도 팔았다. 
  자야는 여기저기 술판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술집 접대부로서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한적한 시골 길가에 자리한 수초식당에 머물게 되었다. 그녀는 접대부로서는 이미 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인물도 변변찮았지만, 나이도 서른이 넘었고 거기에 병색마저 짙었다.
  자야에겐 친인척도 친구도 없었다. 그러나 자야는 늘 누군가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버스마다 지나가는 길손마다 그녀에게 뭔가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 가뭄은 만물을 지치게 했다. 오랜 가뭄 속에서는 모든 생명체들이 활기를 잃고 화석처럼 굳어 있게 마련이다. 가뭄은 기다림이다. 막연한 기다림이다. 희망이 없는 자야의 기다림과 같은 것이다.


  이 시를 쓸 당시에 나 역시 기다림 속에 살았다. 
  뭔가를……,

  막연히 뭔가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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