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란 무엇인가
< 부제 : 시(詩)는 항상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
- 은유시인 -
시(詩)는 심저(心底)에 스며드는 독백이다
시(詩)는 저 무한한 우주를 향한 절규이다
태고의 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탄생이 있다면
영겁의 어둠 속에 갇혀야 하는 죽음이 있다
절절히 끓어오르는 사랑이 있다면
칼날같이 차가운 증오가 있다
영롱한 무지갯빛 닮은 희망이 있다면
천 길 낭떠러지로 치닫는 절망이 있다
열락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이 있다면
한 조각 남김없이 갈가리 찢기 울 것 같은 슬픔이 있다
하늘을 치솟을 것 같은 희열이 있다면
땅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절규가 있다
연연(戀戀)히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다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 하는 회한(悔恨)이 있다
천군만마로 광야를 휘덮는 승리자로서의 자만이 있다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에 자신을 내던져야 하는 굴욕이 있다
어머니, 그 따사로운 품속 같은 자애가 있다면
오열을 토하며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야 하는 학대가 있다
잔잔한 호숫가 한 마리 잠자리가 풀잎에 앉는 평화가 있다면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는 저 활화산 같은 분노가 있다
저 코발트 가을하늘에 뜬 흰 구름 같은 자유가 있다면
쇠사슬과 채찍으로 담금질되는 굴종이 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가 있다면
무지조차 인지 못하는 우매함이 있다
베풂과 거둠이 공존하는 곳
관용과 엄단이 공존하는 곳
갈구와 좌절이 공존하는 곳
정의와 불의가 공존하는 곳
신의와 배반이 공존하는 곳
지존과 타락이 공존하는 곳
승리와 패배가 공존하는 곳
만족과 노여움이 공존하는 곳
어울림과 독선이 공존하는 곳
시(詩)는 항상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200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