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진흙 도락꾸
- 은유시인 -
1
아스라한 기억 끄트머리쯤
한 평 남짓 초가 단칸방
댓살 코흘리개 저 홀로 논다
까까머리 사촌형 뻘건 진흙 개어 만들어준
진흙 도락꾸
성냥갑 크기 몸체 둥글납작한 네 개의 바퀴
성냥개비 바퀴 축인 양 전지 없이 잘만 구른다
웨애앵…… 방방…… 또르르르……
고사리 손 떠난 진흙 도락꾸
비스듬한 방안 구른다 그만의 세상 넘나든다
활짝 열어젖힌 방문으로 바람이 인다
댓살 코흘리개 얼굴에 엉겨 붙은 코딱지 왠지 서럽다.
2
흙먼지 풀풀 이는 그을린 아궁이
불씨 꺼진지 이미 오래고
거북등 같은 가마솥 뚜껑
불쑥 튀어나온 손잡이 마냥 무겁다 주발에 얼핏
반 남은 꽁보리밥
뻘건 고추장 듬뿍 넣고 비벼 후끈 달아오르는
입속 후후거리며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삽 샅 코 꿰인 맹꽁이는 맹맹맹맹……
울대 벌럭이면서도 그 눈길 저만치 무심하다
죙일 방바닥 엎디어 굴리고 굴리고 또 굴리고
손때 묻은 진흙 도락꾸 또르르르……
댓살 코흘리개 눈물 반 콧물 반 왠지 서럽다.
3
사물(事物) 고요하고 마른 정적 흐르는 한낮
먼 밭 나간 이모 까마득 기척이 없다
사방에 보이는 것 푸른 풀 푸른 벌레 누런 황톳길
옥수수밭 콩밭 감자밭 고구마밭
오뉴월 따가운 햇살 마다않고 맨발로 텃밭 뒤진다
놀란 방아깨비 메뚜기 귀뚜라미 펄떡인다
한참 쫓고 쫓아도 제자리 맴돌고 삼각머리
갸웃거리는 사마귀 무섭다 풀 섶 매달린
달팽이 건드리면 또르르 말리는 노래기
조그만 구멍 속 분주하게 설쳐대는
개미떼들 마냥 신기하지만
댓살 코흘리개 그래도 혼자라서 왠지 서럽다.
4
바람 찰랑이는 뒤 곁 대나무 성성(盛盛)한 텃밭
저만치 물러난 햇살 눈부시지 않다
열린 된장독마다 구더기 들끓고
황금갑옷 치장한 금파리들 쉴 새 없이 앵앵거린다
핵교 간 헝아들 언제 올려나, 언제 올려나……
밭일 나간 이모 언제 올려나, 언제 올려나……
덕산장 간 이모부 언제 올려나, 언제 올려나……
그늘진 처마 끝자락 어른 반키만큼 대롱거리는
채반 속의 삶은 고구마 삶은 옥수수
발돋움하여 손에 쥔 고구마 껍질째
콧물 섞어 꾸역꾸역 먹어도
댓살 코흘리개 전혀 흥겹지 않다.
5
저 산등성 너머 저 흰 구름 닿는 곳
저 눈부신 햇살 닿는 곳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또 누야가 있고
또 아가야가 있다
젖비린내 스며있는 엄마 그립고
파르스름한 턱수염 따가워도 아빠 그립다
방바닥으로 쏟아지는 뉘엿한 한조각 햇살 마냥 따스하다
엎디어 한손 턱 괸 채 침 질질 흘리며
고단한 꿈결 이어진다
웨애앵…… 방방…… 또르르르……
진흙 도락꾸 구르는 동안
오늘도 댓살 코흘리개 하루해 덜 지겹다.
※ 註: 나 어릴 적,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면 상하리에서/1956년6월 어느 날
2002/11/09/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