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황소
- 은유시인 -
남들 지붕은 슬레이트다 기와다 슬래브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만
언제나 야트막한 초가지붕에 안방 윗방 삼십 촉 전구 하나로 모두 밝히는
그 지지리 궁상 벗어나려 남의 집 귀신 된 지 열여덟 해만에
무리해서 백육십만 원 주고 사들인 누런 송아지 한 마리
얼마나 감격에 겨웠던지 숭실네 수년 전 여윈 지아비만큼 눈물겹기를
어언 태산처럼 우람하고도 훤칠한 장부(丈夫)되었구나
그 험한 농사일 마다않는 앞마당 단감나무 아래 외양간 황소
그 하는 짓이 하도 가여워 새벽부터 득달같이 내닫아 꼴 베러 다니랴
저녁마다 매운 연기 눈 비비며 쇠죽 끓이랴 똥줄이 탄다
오늘도 해거름 이르도록 땅굴 같은 어둔 골방에 홀로 갇혀
갸르릉 갸르릉 가래 끓는 소리 뱉으며 시름에 잠겨있던 숭실네
미국산쇠고기니 뉴질랜드산쇠고기니 캐나다산쇠고기니 뭐니 뭐니
지천에 널린 게 수입쇠고기라지만 한우 값이 갯값이라 마냥 서럽다
집안 살림 대들보라 떠받들어온 황소 가격 잘 받아야 육백만 원
훌쩍 뛰어오른 숭실이 대학등록금 턱 없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듬직한 황소 엉덩이 어루만지며 깊은 시름 달래고
저만치 달려오고 있을 한 점 혈육 숭실이 생각에
흐릿한 눈망울로 긴 밭고랑 너머 아릿한 길 기웃기웃 살핀다.
2010/01/2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