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탈피(脫皮)
- 은유시인 -
철부지적 한땐
세상이 오로지 나 때문에 존재하는 듯했지
그 빛나는 태양하며
그 넓고 짙푸른 하늘하며
그 수많은 자연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하며
그런 세상 모두가
오로지 나 하나 때문에 존재하는 듯했지
내겐 맞지도 않는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기나긴 세월 화려한 변신을 꿈꾸며
죽은 듯이 살아왔지
세상이 나로 하여금
환희의 물결 속에 출렁이는
부질없는 꿈만 꾸다
속절없이 스스로의 올가미에 걸려들었지
홀로 한 긴 어둠의 세월
눈부신 저 밖이 낯설기만 한데
단단한 껍질에 갇혀 가쁜 숨만 고르더니
홀로 나서기가 이다지도 두려운 것인지
껍질 깨기가 머리가죽 벗기는 고통일지라도
석화된 사지를 농락하여
온몸 구석구석 절개하는 고통일지라도
빛 속으로 세상 속으로
시린 홑 껍질 움츠리며 홀로 떨고 있는 것인지
부대끼는 숱한 냉소 씻기지 않는 치욕일지니
온기라고는 내 안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뿐인지
두고 온 껍질이 마냥 아쉬워
지금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내가
저 차가운 시선보다 더 낯설기만 한 것인지.
2002/12/22/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