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취모검
- 은유시인 -
광활한 중원에
석양을 등지고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우뚝 선
너의 모습 두렵구나
긴 칼
등에 빗겨 차고
긴 머리 광풍에 흩날리며
두 주먹 불끈 쥔
너의 모습 두렵구나
하늘이
포효하며 우박을 내리친들……
땅이
요동치며 심연을 드러낸들……
그대
여자이길 거부하는……
칼날 끝에 모아지는 달빛 같은 자태
그대
홀로 고고(孤高)하구나
그대
홀로 적적(寂寂)하구나.
- 한미르채팅사이트 ‘취모검(컴백ENIGMA)’을 그리며 -
200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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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노트
인터넷상에서의 교감 또한 실제 오프라인에서의 교감 못잖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저 역시 10년 전쯤 처음으로 채팅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채팅이란 것이 마냥 유치하게 느껴졌고, 실제 그 대화내용이란 것 또한 치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채팅이란 것도 일종의 중독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모니터 너머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누군가를 허상이 아닌 인격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감정까지 생기더란 겁니다.
서로가 얼굴은커녕 몇 살이나 되었는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는 없어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상대에 대한 애틋한 정마저 생기더란 겁니다.
저는 채팅사이트에서 ‘취모검(컴백ENIGMA)’이란 대명을 가진 여성을 사귀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한미르 채팅사이트 40대 상설방에서 뭇 남성들을 상대로 걸쭉한 욕설을 난무하며 고군분투했습니다.
참으로 듣기 섬뜩한 욕설을 마구 지껄이는데도 그녀가 밉기는커녕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후일에 몇 번인가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그때 그녀가 자신에 대해 조금씩 밝힌 내용에 의하면 그녀는 당시 마흔을 갓 넘겼으며 옷가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첫사랑인 남자는 가톨릭 신부가 되어 그녀 곁을 떠났고 그래서 언제까지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날 그녀는 머잖아 캐나다로 이민 갈 것이라 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그녀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명이 뭔지, 어디 사는지, 여태까지 뭘 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강하게 느껴진 이면에 여린 속살을 드러내 보인 그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요즘도 가끔은 그녀 생각을 떠올립니다.
이 시는 당시 그녀에 대한 느낌을 쓴 시로 그녀에게 보여준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