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추우(秋雨)
- 은유시인 -
해도 이미 저문 어둠 속 아스팔트길을
질주하는 저 차량들의 빗물에 부대끼어 질척이는 소리
붉게 드리워진 시그널 불빛들
그 음울한 소리만큼이나 그 흐릿한 불빛만큼이나
내 속 깊은 곳엔 차가운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형태를 알 수 없이 바스러뜨리며 나불거리는 저 빗줄기
그 점점이 따가운 칼날이 되어
감정(感情)을 난도(亂刀)한다 이성(理性)을 도륙(刀戮)한다
2막4장의 연극이 끝나 진한 화장으로 치장한 배우들이
퇴장하고 조명마저 꺼져버린 썰렁한
무대 위에 소리 없이 맴도는 관객들이 흘린 박수소리
아직도 들리는 듯 그들이 흘린 웃음과 슬픔과 탄식과 함성이
차라리 한줌 피어오르다 사그라진 연기 같구나
차라리 한줌 허공 향해 내지르다 제풀에 지친 한숨 같구나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은 이 가을비 마지막 배차시간에 쫓겨
시내버스종점에 들어선 버스 속 취객의 넋두리 같구나.
2002/10/18/19: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