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팽이
- 은유시인 -
팽이는 박달나무가 최고라 했지 단단하기로는
서슬 퍼런 낫으로도 좀처럼 깎이지 않아 몇 번인가
헛손질에 상처 자국만 남는 팽이 깎기에 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둥근 가지
적당히 잘라내어 돌려가며 비스듬히 깎다 보면 고만고만한
시선들이 둘러앉아 하루해 짧은 줄 모르고 군침을 삼키지
팽이는 균형이 잘 잡혀야 잘 돈다고 했지 빙글빙글
돌려가며 눈으로 가늠해 보고 어느 쪽으로 둘러보아도
쪼매만 어긋나도 안 된다 했지 윗면은
평편하고 둥글게 파 들어간 옆면은 저 옆집 순실이 엉덩이처럼
살집이 도톰하니 보기도 좋아 고만고만한 손가락들이
다퉈가며 어루만지려 하지
팽이는 팽글팽글 멈춘 듯 돌아야 한다고 했지 밑 부리에
자전거 베어링에서 뽑아낸 작은 쇠구슬 박고 새색시인 양
알록달록 단장 끝내고 한 뼘 대나무 마디 잘라내어
가늘고 길게 여러 가닥으로 가죽 허리띠 갈라 매듭진 채찍으로
쉴 새 없이 어르고 달래야 고만고만한
탄성이 어우러지지
동네 아이들 식전부터 몰려들어 저마다
팽이를 돌려 대는데 팽팽 팽팽 팽글팽글 팽글팽글
잘만 돌아가지 임금이가 설 식모 살다
애 배 갖고 왜 돌아왔는지 깔깔이네 큰 아들네미 까목소에
왜 들어갔는지 팽이처럼 돌고 돌아봐야 알 수 있다고
오늘도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지칠 줄 모르지.
- 2007년 ‘시인과 육필 봄/여름호 게재작 -
2004/05/30/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