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커피를 마시며
- 은유시인 -
늦은 밤 잠 못 이룰 때
난 커피를 마신다
머그잔 그득
난 커피를 마신다
온갖 상념 떨쳐버리려고
난 커피를 마신다
커피향 내 코끝 스치면
문득 난 고향에 간다
고향의 짙은 향수 머그잔에서 피어나고
안개 낀 구릉의 습기 찬 내음이 풍겨온다
고향의 슬픈 전설 기억해 내곤
가슴을 녹색물감으로 물들인다
난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맛과 색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마신다
커피의 초콜릿 닮은 색깔은
더 이상 혼탁해질 것 같지도 않은
영욕(榮辱)의 찌꺼기
내 걸어온 삶의 자취와 같음을 안다
성취와 좌절
오만함과 비굴함
풍족함과 빈한함
이원적 모순 속에 길들여져 온 지난 세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죽은 세월이기에
마음을 어둠 같은 밤색으로 물들인다
머그잔 속의 남은 커피가
싸늘하게 식었을 때
남은 온기의 미련을 버리고
마지막 한 모금으로 홀짝 들이킨다
밍밍한 그 맛은 차라리 씁쓸하다
정지된 시간처럼 차라리 무의미하다.
200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