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말 지독하게 안 듣는 놈
- 은유시인 -
모든 어버이가 한결같이 자식에게 타이르는 소리가
-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들도 잘못 끼워진단다
- 인생에는 각기 그 시기마다 해야 할 일이 있거늘
그 시기를 놓치면 남은 인생이 고달파진단다
뉘라서
제 자식 교육에 자신 있다 하겠는가
하물며 어느 교육자 왈
- 내가 남 교육엔 자신 있으되
뜻대로 안되는 게 있다면 바로 내 자식이 아니겠는가
아들아,
어쩌면 놀부의 심술보가
고스란히 네 뱃속에 들어앉았느냐
이런 청개구리가 세상에 또 없구나
타이르고 또 타이르고
매질하고 또 매질하고
하여 억장 무너지길 네 나이의 제곱 만큼이라
그런 웬수가 또 있겠느냐
차라리 남의 자식이라면
느긋한 마음이라도 있지 않겠느냐
그도 저도 정 안되면
손이라도 탁탁 털어버리지 않겠느냐
가슴이 아려오며
행여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내가 뿌린 씨앗이라 또 하나의 나이겠기에
돌이켜보면 내가 바로 네가 아니겠느냐
못된 것부터 배우려드는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도무지 힘에 부쳐 못 다스리니
어느새 덩치로 제 아비 누르려 하는구나
아들아,
말 잘 듣는 놈 출세하고
말 안 듣는 놈 거덜 나겠느냐
내가 걸어온 길 내 의지대로 걸어왔듯이
네가 걸어갈 길 네 의지대로 걸어가거라
아들아,
결코 잊지 말아라
너는 세상에 덧없이 태어난 게 아니다
세상에는 네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네가 이루어야 될 일이 있다
내게 주어진 생명의 원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너의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희미하게나마 비춰줄
등불 밝히는 기름이 되어주마
내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
마지막 한순간까지
너의 자존심을 허물지 않게
너를 지탱시켜줄
너의 든든한 언덕바지를 쌓아주마.
2001/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