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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

 연신 울려 대는, 오전7시를 알려주는 알람을 끄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 시우였다.

 어제 무리하게 운동을 한 탓에 온 몸은 피곤함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학교는 가야했기에 천천히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으윽. 머리아파서 기억이 잘 안 나네. 뭔가 오랜만에 꿈을 꾼 것 같았는데. , 꿈은 꿈일 뿐이니까. “

 기지개를 펴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아침밥을 먹고 가볍게 씻은 뒤 조금 두터운, 소매가 긴 교복을 입었다. 시우는 그다지 추위를 타지 않아 10월에도 춘추복을 입지 않고 하복을 입고 버티는 시우지만 아무리 그래도 12월이 되면 동복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고 따뜻하고 두터운 파카도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교복을 다 입고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간 시우는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반팔만으로도 더운 여름이었으나 어느새 칼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 얼마 전 이라고는 해도, 계절이 빨리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즐거운 시간을 빨리 지나갈 뿐이다.

 

-

 

 모든 일과가 끝나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드르륵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시우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의 옆에 서서는 물었다,

 “뭐해?”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시우는 그 목소리를 좋아한다.

 시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시우 곁을 떠나 창가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길고 긴, 흑발의 생머리가 찰랑 하고 휘날렸다. 이내, 강한 바람에 의해 그녀의 머리가 엉망이 될 때 즈음-.

 “으으 겨울은 역시 춥네.”

 그녀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창문을 닫았다. 머리칼을 정리하여 다시 단정한 머리가 되기까지 그녀는 이쪽에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먼저 질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듯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이쪽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그녀는 창가와 가장 가까운 책상에 걸터앉았다.

 “! , 네가 뭐하냐고 물었지! 뭐해?”

 아무래도 그녀가 시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것은 자신이 그에게 질문 했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 아마 시우가 뭐하는지 알 듯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아도 넓은 아량으로 그녀는 그를 이해할테지만 시우는 대답했다. 그저, 그녀의 또랑또랑하고 맑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 숙제 중."
 "이제는 안 알려줘도 잘 푸네?"
 ", 덕분에."
 이렇게 걸핏 보면 따분하디 따분한 대화이지만 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그녀 덕분이겠지.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 창문 밖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시우는 문득 그 아련한 표정을 시우 본인이 미소로 바꿀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시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렇게 까지 관계가 발전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관계는 단순 같은 반 아이에서 친한 남녀 친구 사이가 될 뿐이었다.

 한 때는 그녀의 웃음이 너무도 예뻐서, 혹여나 자신으로 인해 그 미소를 망가뜨릴까봐.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것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 날은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시우는 눈을 비비며 알람을 끄고 적당히 밥을 먹고 교복을 입은 뒤 적당한 시간에 집을 나섰다, 그는 중요한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적당히 해서 적당한 등수를 받았다. 시우가 뭐든 적당하게 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시우는 못 해도 눈에 띄고 잘해도 눈에 띄니 평범하게 중간에 있자. 그러려면 뭐든지 적당히 하자. 라는 것이 그의 결론 이였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려는 시우 앞에……,

 “안녕!”

 이번 학기에 학급반장이 된 김연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눈에 띄게 밝고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고 눈에 띄게 예쁘다. 따라서 조용히 살려는 시우의 타입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 그 연우라는 아이는 요즘 들어 계속 시우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런 것을 관심의 표현. 이라 하던가? . 귀찮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일이 대꾸해주는 시우였다.
 그 연우라는 아이는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반장 일을 도맡아서 한 것이다.
그런 연우가 시우에게 말을 거는 것은 단순 호기심인지, 아니면 [반장]이라는 꼬리표의 의무인지는 시우로서는 알 턱이 없다.
 다만. 적어도 시우는 자신과 정반대인 그 아이와 어울릴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시우는 반장의 의무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말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반장이 막 되었을 때는 여러모로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반장이 되고서도 2달이나 지났다.

이제 조금 주변을 볼 여유가 생긴 것이리라. 게다가 자신은 극히 평범하고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은 넘치고 넘쳐나니까.
  연우와 사귀어본 남자들 또한 그랬다. 어느 한곳에 탁월했다. 축구를 잘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피아노를 잘 치거나. 그뿐만 아니라 얼굴도 잘 생겼다. 그러한 것들과 동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말 그대도 김칫국 마시는 격이다.
 시우는 내면으로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연우는 시우 곁을 떠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등교하는 아이들이 늘어 빈자리가 하나, 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시계는 정각 9시를 가리키고 종이 쳤고, 얼마 안 있어 선생님이 들어와 조회를 시작했다.

 

 항상, 평범한 일상의 반복 이였다. 선생님의 조회가 끝나 나가시면 아이들은 제각기 취향이 맞는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종이 치면 과목 선생님이 들어오고 자신의 자리에 후다닥 앉는 것을 반복하는 일상. 자신은 항상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그런 광경들을 구경해 오거나, 잠을 이기지 못하면 10분이라도 잠을 청하거나. 그런 일상들의 반복이었는데.

 이었어야 했는데.
 이놈의 연우라는 자는 시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주변을 맴돌며 질문 공세를 했다.
 …….짜증나.’
 그녀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해대는 것도 짜증이 났고, 그녀가 자신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반 아이들의 결코 좋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것도 짜증이 났다. 지금은 조회시간이니 주변의 몇몇 아이들만 힐끔 거릴 뿐이었다. 시우는 그런 힐끔거림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감하기 보다는, 그냥 주목 받고 싶지 않았다.

 하다하다 시우는 연우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저기, 왜 나한테 계속 말거는 거야? 반장의 의무라면 하지 말아 줄래? 귀찮고 짜증나니까.”
 시우의 말을 듣고 연우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우를 바라보았다. 질문하느라 바쁘게 나불거리는 입은 어느새 조용해졌고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말하고 나서 시우 본인도 놀랐다. 꽤 날카롭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말하였다.
 딱히 반장의 의무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네게, 관심이 있으니까.”
 주변은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우는 의문에 휩싸이고만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왜? 어째서? 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런 의문들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머릿속은 이미 셰이크를 숟가락으로 헤집듯이 엉망이었다.

 그런 시우의 머릿속을 그나마 진정케 한 것은, 반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잠잠케 한 것은 그들의 담임 선생님 이었다.

 “. 다들 조용해봐! 오늘은 전학생도 있는데 너희들이 이 모양이여서 되겠니?”

  선생님의 전학생이라는 말에 그들의 관심사는 시우 본인에서 전학생으로 바뀌었다. 시우는 속으로 그 전학생에게 감사를 전하고, 그 전학생을 바라보았다.

 전학생은 여자였다. 반 아이들은 꽤나 예쁘다고 하지만 글쎄, 얼굴만 따지면 연우 쪽이 나은 듯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쁘게 말한다고 해도 못생겼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을 얼굴이었다. 이목구비 또한 뚜렷하여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호감을 사기는 쉬운 얼굴이었다.

 ……!’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생각한 시우 이었지만 전학생은 금세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고 시우도 별 개의치 않고 그녀의 소개를 들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살다 온 박은향이라고 해. 어렸을 때 여기서 살다 캐나다로 간 거라, 다시 여기로 왔어. 쭉 해외에만 있어서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까 친절하게 알려주면 고마울 것 같아. 잘 부탁해!”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시답잖아. 전학생 같은 거 처음 보나.’

 “. 그럼 은향이는 저기 앉아 줄래?”

 “.”

 선생님의 손끝이 향한 곳은 시우 옆자리 이었다. 연우가 인상을 구기고 전학생을 바라보는 것은 기분 탓이었으리라.

 “안녕!”

 은향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

 시우는 그게 전부였다.

 전학생 때문인지는 몰라도 평소 보다 더욱 더 떠들썩한 교실 속에서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시우였다. 그런 바람들은 언젠가 이루어지기 마련. 수업도 전부 끝난 방과 후. 그와 그녀의 사이가 가까워 진 것은 우연히 시우가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있었을 뿐이고 시우 밖에 없는 이런 빈 교실에 우연히 은향이가 찾아왔을 뿐이다.

 “? 시우? 맞지! 뭐해?”

 은향이의 호의적인 물음에 시우는 그저 자동 로봇처럼 딱딱하게-.
 "학원숙제."
  라 대답한다. 흥미를 잃을 법도 하지만 은향이는 자기 자리에 앉아 어린 아이가 처음 보는 물건에 호기심을 갖듯이 초롱초롱하고 생기 있는. 나이에 맞지 않게 탁하지 않고 맑은 눈동자로 시우의 숙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시우의 숙제 일부분을 손가락을 짚더니
 "여기, 틀렸어."
 펜으로 미끄러지듯 글씨를 써 내려가던 시우의 손이 멈춤과 동시에 그는 고개를 들어 은향이를 바라보았다.
 "도와줄까?"
 은향이는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는 건 분명 처음일 테지.
 그녀가 자기소개를 할 때도 느낀 거지만 막상 자세히 보니 갈색 기운이 도는 눈썹에 짙고 긴 속눈썹, 예쁘게 자리 잡은 쌍꺼풀, 오뚝하진 않지만 결코 낮다고 할 수는 없는 코, 화장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뽀얀 피부를, 저도 모르게 넋 놓고 보게 되었다. 그 얼굴을 시우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서.
 "……."
 긍정을 답했다. 시우의 숙제를 도와주며 은향이는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그의 생각보다 빨리 그녀와 쉽게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아무리 친화력이 좋은 그녀라지만 어째서 이렇게 빨리 가능하게 된 것인지 시우 본인 자체는 의문이었지만, 아마도 그것은 시우 몰래 그의 감정 속에서 꿈틀 거리는 게 있었으리라.

 

 다음날 사이가 좀 가까워져서 그런지 말을 더 터놓는 은향이였다, 시우도 그럭저럭 받아주고 있지만 역시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 이었는지 수업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버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0분의 숙면으로 인해 목이 말라와, 음료수를 사러간 시우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있지, 은향이 좀 별로지 않아?”

 연우 목소리 이었다. 항상 밝기만 하던 연우가 이런 면이 있으리라고는 시우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 ? 괜찮은데. 밝고 착하잖아.”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학생은 그녀의 뒷담이 불편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과연 착할까? 내숭이겠지. 걔 어제 전학 왔다고? 그런데도 나랑 아직 친해지지도 못한 시우랑 금세 친해졌잖아. 아무리 짝이라고 해도. ! 짝이라서 그런가? 분명해. 은향이 걔, 시우한테 꼬리 친 거라고. 어떻게 꼬리친 거지? 언제 한번 밟아 주겠어.”
 ……그거 질투?”
 아니거든! 어쨌든 짜증나.”

 연우와 그녀의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사라졌다, 친구 쪽은 여전히 그녀의 뒷담이 불편한 듯 했지만 왜 솔직하게 뒷담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지 못 하는 걸까. 의문을 가진 시우였지만, 오히려 의문을 가졌기 때문에 여자들은 복잡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들은 무섭구먼.’
 그렇게 생각하며 음료수를 사들고 반으로 갔더니, 정작 뒷담화의 당사자인 은향이는 그런 이야기가 오르내리는지도 모르는 체 금세 사귄 친구들과 깔깔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은향이는 시우의 기척을 눈치 챈 듯 시우를 바라보며 시우를 바라보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시우야!”

 시우는 이제, 그런 은향이의 부름이 싫지 않은 듯 작게 손을 흔들어 보았다. 주변 아이들은 의외라는 듯이 시우를 보더니 그 둘을 번갈아 보기 시작 했다.

전학생이기 때문인지 연우 때와 달리 기분 나쁜 수군거림은 없었다. 그런 점들도 곁들려 시우는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이내 결심하고 은향이에게 맞인사를 하려 입을 연 것과 수업종이 친 것은 거의 동시라 볼 수 있었기에, 시우는 도로 입을 닫았다.

 

  학교가 끝나면 어제와 같이 은향이는 시우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었고, 시우가 모르는 부분을 은향이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뿐이었다. 그렇게 매일 남다 보니 그와 그녀는 당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우가 엉뚱한 소리를 할 때마다 그녀는 바보 같다면서 웃어보였고, 그 웃음을 지키고 싶다고 시우는 생각했다, 언제 부터였을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시우는 그녀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기에 주말에도 시험이 끝나, 수고했다면서 놀자고 그녀에게 불려 나갈 때 외에는 만남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 오면서 어느 덧 겨울이 되었다.

   

 다시 현재


 은향이는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추운 겨울 날씨와 따뜻한 교실 공기 차로인해 생겨버린 뿌옇게 된 창문에 그림을 그리며 말 했다.

 “숙제는 잘 되어가?”

 “.”

 시우는 항상 이쪽을 바라 봐주며 이야기를 하던 은향이가 오늘 따라 어째서인지 이쪽을 바라 봐주지 않아 불만이 생겨버렸다. 그런 자신의 감정에 놀랐다, 아니,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그런지.
 그래, 그저……. 숙제를 도와주고, 도움 받는 사이의 관계였으면 좋았으련만. 유감스럽게도 시우는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하였으며, 거듭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 감정을 전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와 그녀의 관계는 그저 친한 남녀사이의 관계어서 멈춰 버린 것 이다, 썸이라는 그런 느낌도 전혀 없었다. 아마 그들이 조금 비슷하게 생겼더라면, 그들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들을 남매로 오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시우는 은향이의 웃는 얼굴을 볼 때 마다 두근거림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로 인해 붉어지는 얼굴을 한여름의 더위 탓으로 돌렸지만, 은향이는 시우의 거짓말을, 그의 핑계를 눈치 챘을까-? 그 더운 여름도 지나 지금은 벌써 겨울. 지금도 핑계 대려면 추워서 그런 거라 핑계 댈 수 있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시우다.
 "……저기."
 시우 부름에, 은향이는 그제야 시선을 창 밖에서 시우 쪽으로 돌린다.
 시우는 은향이와 막상 눈이 마주치니 전하려던 감정이 입안에서 만 맴돌 뿐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시우가 말을 하지 않자 은향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 표정은 어딘가 익숙했다. 하지만 실루엣뿐인 그 기억은.

 

 지금의 은향이와 달리 좀 더 머리가 짧은.

 

 ‘아아. 그렇구나.’

 시우는 깨달았다.

 

 10년 전 여름에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한 사람은…….

 

 

 “안녕!”

 "너, 시우 맞지? 나랑 친구하자!”

 유치원에 다녔을 무렵 잠깐 이 마을로 놀러온 은향와의 첫 만남이었다.

 은향이와 시우는 금세 친해졌지만, 은향이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채 자신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날 잊지 말고 꼭 기억해주기를 바라.”

 “. 잊지 않을게. 약속해.”
  그런 시우의 말을 뒤로하고 은향이는 떠나버렸다. 한동안 시우는 그녀를 계속 생각했지만 학업 때문에 하루하루가 빠듯해져 갔고 은향이를 떠올리는 횟수는 줄어들어 점점 잊혀 갔다. 완전히 잊었을 무렵 은향이는 다시 시우 앞에 나타났다.

 

 그런 과거를 떠올리며 시우는 다시금 다짐했다.

 “있지. 은향아.”

 무슨 일이야?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미안해.”
 ?” 
 뜬금없이 사과하는 시우에게 은향이는 질문해왔다. 그렇다. 보통은 그게 정상이다. 은향이의 질문에 시우가 대답한다.
 기억, 못해서 미안해. 이제야 기억났어. 은향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어쩐지 신기하다고 생각한 시우였다. 사람과는 별로 친분을 쌓지 않는 시우와 금방 친해져버린 은향이를 보며, 단순 호감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분명 그건. 시우도 모르는 은향이에 대한 익숙함이 남아 있었음이 분명했다.

 시우가 사과에 대한 이유를 밝히자 은향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제대로 기억해 냈잖아? 사실 좀 걱정 이었어. 전학 오고 나서 짝이 되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어, 그 뒤로 거의, 계속 함께였는데 기억 못하는 눈치라 초조했거든.”
 기억하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은향의 웃음은 언제나 예뻤다는 것을. 은향이는 시우의 첫사랑 이였고 다시금 시우는 은향이에게 사랑에 빠졌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사랑도 전부. 은향이가 앗아간 셈이다. 시우는 그런 은향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런 표정이 좋다고.
 항상 웃으며 뭐든지 알려주는 은향이의 상냥함이 좋다고. 은향이가 풍기는 아우라가 좋다고. 사람과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을 응시하는 그녀의 습관이 좋다고. 더럽히기 어려운 맑고 생기 있는 올곧은 눈동자가 좋다고. 가방을 매는 법, 머리를 정돈하는 법, 자리에 앉는 법 그녀의 모든 것이 좋다고, 그녀의 미소가, 목소리가, 행동이, 눈짓이 전부- 좋다고.

 이제 더 이상 참기만 하면서 숨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제어할 만큼 간단하고 가볍고, 쉬운 감정이 아니었다.
 "좋아해. 나와, 사귀어 주지 않을래?"
 그리고 지금 시우의 고백에 살짝 붉어진 얼굴로,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우를 바라보는 은향이를 그는 무척이나 좋다는 듯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은향이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만 반복 할뿐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흘렀고 시우는 당황한 듯 했다.

 “저기. 왜 울어?”

 한참이 지난 후 다짐했다는 듯 그녀는 입을 열어 말했다.

 “그렇지만, 기뻐서. 나도 시우를 좋아해. 10년간 쭉, 계속. 좋아했어. 내 첫사랑…….이었으니까.” 
 그 눈물을 보고 시우는 확신했다.

 여름 끝에 있는 기억. 그 속에 있는 것은, 바로 은향이였다.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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