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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모하메르의 비밀





[제2화]

스페이스디벨롭파100 
오, 아름다운 스강나하르여! 



1

  인간의 교만함과 사악함이 극에 달하자 마침내 만물을 주재하는 우주의 영(靈) 절대신(絶對神)께서 기어이 인간을 저버렸음인가? 
  서기 2037년11월25일 오후3시 정각. 우주의 영롱한 보석 지구가 죽음의 행성으로 바뀌는 순간, 인류는 바야흐로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지하 깊숙이 파고들어 죽음을 겨우 면한 인류 또한 지상으로 나다니기는커녕 오도 가도 못하고 지하에 갇힌 신세가 되었음은 물론, 그들 중 극히 일부만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이 생식능력까지 잃었기 때문이다.
  뉴나치즘에 세뇌된 극렬과격테러단 싸이파에 의한 인류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인 광양자화학탄 데쓰루의 투하 직후 폐허가 된 지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요, 지옥 그 자체였다. 천지를 시꺼멓게 뒤덮은 잿빛 먼지로 태양도 제 빛을 잃었고, 뜨거운 열기가 휩쓸고 간 도심의 곳곳은 사람들과 동물들의 녹아 뒤엉킨 사체들로 즐비하였으며, 시체 썩는 냄새와 코를 쏘는 듯한 자극적이고도 매캐한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오로지 단 한 발, 광양자화학탄 데쓰루의 폭발과 함께 애꿎게도 32억에 이르는 인류 가운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지상에 머무르고 있었던 24억에 이르는 인류가 그날의 대참사로 일시에 목숨을 잃었다. 범 지구연합국가 유니타스의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도 자신의 집무실에서 여러 측근 및 몇몇 방송사 기자들과 함께 순직하였으며, 싸이파의 수장 드윈 스뮐러도 자신이 갇혀있던 세 평 남짓 감방에서 형체도 없이 산화되었다. 
  죽음의 사신은 인류만 덮친 것이 아니다. 지표상의 모든 생명체, 코끼리든 사자든 발 달린 동물은 물론 지렁이나 달팽이, 그리고 그보다 못한 작은 개미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녹여버렸다.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식물들과 해양의 깊숙한 곳에 서식하던 아주 작은 생명체까지 훑고 지나갔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폭발 당시의 뜨거운 열기와 방사능, 강한 산성으로 녹아 없어진 것이다.
  특수보호막이 설치되지 않은 허술한 지하대피소로 숨었던 3억 남짓의 인류들도 당장은 화를 면했다지만, 그들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보름이나 한 달 사이에 모두 맥없이 죽어갔다. 그렇듯 최소 3미터 두께의 특수보호막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지상의 모든 인류들이 일거에 죽어간 것이다. 
  재벌이나 특권층 등 신귀족층이 구축해 놓은 지하세계의 두터운 특수보호막에 가려져 겨우 살아남은 5억의 인류마저도 대부분 고밀도 방사능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 변이로 인한 신체 변화로 고통을 겪게 되었고, 인류의 대를 잇게 할 생식능력을 잃었다. 즉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정자 생산능력을,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난자 생산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살아남은 인류는 그저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설마 했던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파괴력 또한 상상을 초월했기에 살아남았어도 다행이라 여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지표면의 상황은 실시간대로 지하도시의 인류들에게 공개되었다. 지상으로 올려 보내진 로봇 탐사장비들에 의해 지표면의 상태를 촬영하고 채집된 자료의 분석에 의해 대기권과 해양, 토양의 상태들이 어떠한 상황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난 궤도별로도 수천 대의 인공위성들이 실시간대로 지구의 상태를 분석한 데이터와 사진들을 보내왔다. 인공위성 사진들은 레이저 투사영상기법을 적용하여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모습이 얼룩이 가미된 단순한 검은 점으로만 찍혀왔는데, 이는 이온화된 중금속 혼합물질이 지구의 대기권에 고농도로 분포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표면은 독성이 강한 탄화물 가루에 휩싸여 짙은 어둠에 묻혔고, 기온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여 온대지역의 도심권도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져 고온에 녹아버린 사물들도 얼어붙었다. 데쓰루의 폭발압과 파장으로 인해 일부 연약지반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지는 짙은 농갈색의 미끈거리는 부유물로 덮여 악취를 풍기고, 대양은 거품과 부유물로 덮인 채 독성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떠한 생명체도 온전하게 살 수 없는 죽어버린 행성, 그것이 인류의 원초적 고향인 지구의 종말이었다. 

 


2

  서기 2037년12월10일, 지구 최후의 날을 맞고 보름이 지났다. 그 보름이란 시간의 중압감은 절망에 빠져있던 인류에게 있어 1년이란 세월의 흐름과 같았다. 
  한때는 풍광이 수려하여 지상낙원이라 불리었던 온두라스 지하 별궁에 살아남은 원로원 의원 7명과 93개 지역 대표들이 원로원 부의장 영국계 셀마 블레어(Selma Blair)가 인류 생존대책을 위해 발의한 비상소집에 의해 모여들었다. 모여든 그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음울하고 침통하여 활기라곤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셀마 블레어가 데쓰루 투하 이래의 경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설마 했던 것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올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데쓰루로 말미암아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과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 원로원 의장을 비롯하여 23분의 원로원 의원들……, 그리고 수많은 지역 수장들과 27억에 이르는 인류가…… 처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남아…… 이 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심히…… 죄스럽고, 더불어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셀마 블레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자 장내에 모인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도 오열을 참지 못하고 쏟아냈다.
  “돌아가신 분들은…… 모두…… 의연하였습니다. 테러에 맞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던 분들입니다. 자비네 마이어 원로원 의장의 경우 지하벙커에 피신할 것을 그리 간곡하게 청을 했어도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과 32억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시더니…… 끝내 산화하셨습니다.”
  장내는 숙연해지고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비통함에 잠겨 눈을 감고 턱을 괴고 앉았거나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거나 콧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분들이 남긴 숭고한 뜻은…… 살아남은 우리가 지구를 재건하고 인류가 더욱 번성하여 우주의 주인이 되길 바라는 것일 겁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지도자들께서 먼저 가신 분들의 뜻을 남아 있는 인류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한 마음 한 뜻으로 앞장 서 주시는 겁니다.”
  셀마 블레어는 장내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데쓰루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지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를,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다시 인식시켜주었습니다. 데쓰루로 인해 지상의 생명체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가 없을 만큼 지구는 완전히 초토화되었습니다. 유사 이래 인류가 건설해 온 온갖 시설물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찬연한 문화 유적지도 과학문명의 결집체들도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정체성도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은 우리에겐 더욱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인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입니다. 국적을 떠나, 인종을 떠나,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함께 손잡고 가야 할 운명 공동체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지도자급 인사들뿐만이 아니다. 생중계를 통해 온두라스 인류생존대책회의를 지켜 본 모든 인류는 절실히 공감하고 있었다.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며 신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처럼 오만하였고, 그러면서도 지독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타인과 함께 스스로를 자멸시키려 한 결과였다. 따라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모든 인류가 기존의 벽을 허물고 혼연일치되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류생존대책회의는 시종일관 침통한 분위기에서 3일 동안 진행되었다. 대책회의에서는 지구환경 복원과 화성 및 천왕성 외에 인류가 집단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의 개척, 지하도시의 지질적 안전성 확보와 인체공학적 바이오시스템 개선, 방사능으로 인한 인체 오염의 원상회복과 종족 번식 등 1천2백여 항목의 안건을 처리했다.
  또한 유니타스 제5대 대통령으로 중국계 짜이오 왕(Zzaiho Wang)을 선출하고, 전 세계에 위급전시상황에 준하는 1급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극소수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류를 냉동시켜 생명을 지속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비축된 식량과 물은 물론 공기마저 5억의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1년을 못 버틸 정도로 빈약하였으며, 그나마 자연계에선 더 이상 그러한 물질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니타스는 생존하고 있는 모든 인력과 활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하여 지하 300m에서 깊게는 1500m 지점에 건설되어 있는 기존의 230여 개소의 지하도시를 더 넓게 확장하거나 재정비하고 초대형 냉동창고 건설에 나섰다. 인류의 생존과 연관된 사업인 만큼 모든 계획이 일사불란하고도 치밀하게 이루어졌으며, 공정의 진척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류가 그때처럼 인종이나 이념, 신분격차를 초월하여 단결된 예가 없었다.
  5억 개 가까이 되는 바이오아이스캡슐(Bio Ice Capsule) 생산도 대단한 역사(役事)였다. 캡슐들은 완성되는 즉시 노약자와 어린이, 그리고 여성 순으로 인체의 수분이 결빙되는 것을 막는 특수처리 후 캡슐에 넣어졌으며, 그들 캡슐들은 초저온 순간 냉동되어 냉동창고 안에 수만 개씩 설치되어 있는 대형 아이스컨테이너에 20구씩 보관되었다. 아주 먼 미래, 좋은 세상이 도래한 어느 날 누군가 캡슐 문을 열어주기를 고대하면서 불안하고도 긴 동면에 들어간 것이다.
  한편, 유니타스는 과거 미국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진행하여 오던 우주개발계획 미저리-4의 화성 연구기지를 천왕성 스페이스벤처유알 우주개척기지로 옮겨 합병하고, 우주개발계획을 앞당겨 진행하기 위한 대규모의 우주기지를 건설하였다. 유니타스는 수많은 과학자, 엔지니어링 기술자, 전투병력들을 보내어 우주를 빠른 속도로 유영할 수 있는 초광속 운송수단과 대규모 스페이스스테이션(Space Station)의 건설도 함께 추진하였다. 그리고 정밀검사를 통해 분류하여 알파샬롬에 수용한 1,372명의 팅거휴를 천왕성으로 보냈다. 천왕성 우주기지 내의 베타샬롬에도 엄격한 테스트에 의해 선정된 21,429명의 팅거휴가 있어 그들과 합류를 시킴으로써 마지막 인류의 희망인 팅거휴는 남성 9,376명, 여성 13,425명 등 모두 22,801명으로 집계되었다.
  천왕성에 건설한 연구기지 스페이스벤처유알의 주된 연구는 우주개척, 종족의 보존과 형질개량, 자원의 개발과 과학문명향상 및 방위체재개발 등 세 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러한 연구는 70년간에 걸쳐 극비리에 진행되었는데, 그 프로젝트명을 이른바 스페이스디벨롭파100(Space Developper 100)이라 명명하였다.

  서기 2045년3월20일, 천왕성의 우주과학자들은 하나의 한계우주(리미티드 스페이스:LS:시간과 속도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우주공간)와 네 개의 무한계우주(언리미티드 스페이스:ULS:한계우주와의 경계가 왜곡, 뒤틀림에 의해 시간과 속도만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우주공간)의 실체를 파악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로써 정삼각형 네 개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형태의 우주모형을 완성하였다. 그렇게 완성된 우주모형을 통해 실질적인 우주 윤곽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주탐험에 좀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지구가 속한 우주는 한계우주로서 내우주로 칭하였으며, 나머지 네 개의 무한계우주를 외우주로 칭하였다. 네 개의 각기 다른 외우주는 한 개의 한계우주에 맞물려 있으나 흔히 아인슈타인-로웬(Einstein-Lowen)의 다리로 일컬어지는 스페이스웜(블랙홀과 화이트홀로 연결된 우주이동통로)에 의한 심한 굴절로 스페이스웜을 통하지 않고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태양계 및 안드로메다은하(Andromeda Galaxy), 북아메리카성운(North American Nebula), 오리온성운(Orion Nebula) 등을 포함하는 내우주 안에는 직경 1만km이상 되는 행성만 4,728억6,700여만 개로 밝혀졌으며, 그중 생명체가 있는 행성이 2억2,764만5천여 개이고,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춘 고등지능생명체가 있는 행성도 47개로 밝혀졌다. 네 개의 외우주에도 현재까지 밝혀진 직경 1만km이상 되는 행성은 모두 2,646억2천여만 개로 그중 생명체가 있는 행성이 1억124만여 개이며, 고등지능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도 24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 많은 행성 중 유일하게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을 지닌 행성은 지구로부터 12억 광년 떨어진 외우주의 B블럭 바카(Baca) 은하계 소속, 스강나하르(Sgangnahare)행성 하나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3

  서기 2100년5월25일, 옛 북아메리카 로스엔젤리스 동남쪽 120킬로 지점의 해저신생도시 프리덤에 위치한 대통령궁 스피릿트하우스(Spirit House)의 대회의장에는 유례없이 연합정부 고위관료들과 원로원 의원들, 개별 지역수장들을 비롯하여 3천여 명의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전인 2099년8월4일 유니타스 제18대 대통령 모잠비크계 코난 디말루(Conan Dymaloo)의 서거로 1개월 후인 9월2일 제19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한국계 질레 박(Jille Park)의 요청에 의한 소집이었다. 
  그날은 광양자화학탄 데쓰루의 투하로 지구가 황폐화한 지 어언 63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으로 그동안 4억8천여만명의 인류는 급냉상태로 지하 냉동창고에 보관되어 세월의 흐름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으나 그간 인류의 과학문명은 절정을 이르고 있었다. 

  질레 박이 단상 중앙에 자리 잡자 그 뒤로 원로원 의원들과 연합정부 관계자들이 착석을 하고, 단 아래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수장들이 정해진 자리에 속속 착석하였다. 이어서 회의장 양측의 단상에 설치되어 있는 무빙플로어(Moving Floor)에는 레이저빔(Laser Beam)에 의해 미처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인사들의 홀로그램(Hologram)이 재생되어 자리하였다.
  질레 박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원로원 의원 합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정상 각하와 대사, 그리고 연합정부 관계자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도래하였음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착석 인사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박수소리는 거의 10분 동안 계속 지속되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오랜 시간 끊이질 않고 이어진 이유는 몇 십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처음이지만, 오랜 기간 참담한 영어의 세월을 보내 온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있어 꿈에 부푼 새로운 세계가 막 개벽하려는 역사적 순간이었기에 너무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유니타스 산하 천왕성 소재 우주과학연구기지 스페이스벤처유알에서 지난 70여 년간 진행해 온 역사적인 우주계획 스페이스디벨롭파100이 이룬 성과를 보고 드림과 동시에 이를 추인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우주이주계획 드림언더스페이스100(Dream on the Space 100)을 승인 받고자 여러분을 모신 자리입니다.”
  질레 박의 유창한 한국어연설은 참석자들은 물론, 지하도시나 우주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 인류들도 스페이스넷 방송을 통해 각기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자동 통역되어 전달되었다.
  “돌이켜 보건데, 60여 년 전인 2037년11월25일 오후3시 정각은 우리 인류 유사 이래 가장 비극적이고도 참담한 순간이었습니다. 전 인류 공동의 적으로서 전 인류를 말살하려 하였던 뉴나치즘이란 악령의 지배를 받던 극단적 테러리스트 싸이파, 그 악마의 화신 싸이파에 의해 그토록 아름답고 영롱한 지구는 일순간에 영원한 죽음의 별이 되었습니다.”
  질레 박은 초대형 멀티스크린을 통해 과거 아름다웠던 지구의 자연환경과 갖가지 생명체가 눈부시게 화려한 모습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보이며 예찬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먼 과거의 추억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지구를 죽음의 별로 만든 책임은 비단 싸이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류에게 있습니다. 우리 인류 모두가 지녀왔던 안일함과 방만함, 극도의 자만심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한 것입니다. 싸이파에 의해 투하된 단 한 발의 광양자화학탄 데쓰루, 그 무엇이 그 어떤 명분이 그 테러분자들로 하여금 하나뿐인 지구를 인류로부터 앗으려 하였을까요? 한 순간의 치기어린 행위로 보기엔 그 어떤 대단한 명분에 의해 저질러진 행위로 보기엔, 인류의 생존을 담보로 게다가 인류가 살아가기엔 가장 이상적이고 유일한 지구를 황폐화함에 있어 절대악으로 단정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레 박의 연설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는 인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에서 오는 설렘과 그로인한 흥분 속에서도 일견 인간 심성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악의 성향에 대해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보호막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모든 생명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은 물론, 인류의 대다수도 무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설혹 보호막에 의해 살아남은 인류라 할지라도 방사능 등 오염으로 인한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유전자변이에 의한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생식능력마저 상실하였습니다.”
  질레 박은 정확한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천왕성 개척기지 내의 특별통제구역 샬롬에 생식능력을 갖춘 극소수의 팅커휴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대는 끊기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음을 천만다행이라 말했다. 따라서 팅커휴는 인류의 꺼지지 않는 등불로서 존재할 것이며,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결코 꺼뜨려서는 안 될 마지막 불씨라고 강조했다. 질레 박의 그러한 다짐의 말에 참석자는 물론 스페이스넷 방송을 통해 그의 담화를 들은 인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우리 유니타스는 과거 미국정부가 화성에서 극비리에 추진해 오던 우주개발계획 미저리-4를 인수하고, 그 후 각 지역 수장들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 천왕성에 대규모의 연구기지를 건설, 그 계획을 현재까지 차질 없이 추진하여 왔습니다.”
  초대형 멀티스크린이 다시 펼쳐지면서 천왕성에 건설된 개척기지이자 연구기지 스페이스벤처유알의 위용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면적이나 규모로는 과거 미국 동부도시 로스앤젤리스를 능가하는 초대형 도시의 규모를 갖춘 모습이었다. 특이한 것은 도시 전체가 외관상으로 보기에 하얀 송이버섯 군락을 연상케 했고, 그 버섯 하나하나는 거대한 돔으로서 큰 것은 직경이 3,200미터에 이르렀다. 
  “앞서 주지한 바와 같이 스페이스벤처유알의 연구목적은 세 개 분야로 나뉘어 진척해 왔으며, 첫 번째 분야는 우주개척분야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지구와 가장 유사한 행성을 찾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분야는 종족의 보존과 형질개량의 분야로 순수한 인간의 맥을 영영세세 이어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세 번째 분야는 자원의 개발과 과학문명을 향상시키고 어떠한 파괴자로부터든지 우주를 지킬 수 있는 방위체제 구축에 관한 것입니다.”
  초대형 멀티스크린에 의해 장시간에 걸쳐 세 개 분야의 진척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질레 박은 회의장을 돌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그들의 공을 치하했다. 단상으로 돌아 온 질레 박은 긴장한 낯빛으로 장내를 둘러봤다. 모든 참석자들의 시선들도 자연스레 질레 박을 향했다. 질레 박은 천천히,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듯 말을 이어갔다. 
  “먼저……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부터……,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발표하고자 합니다.”
  질레 박은 다음 말을 몹시 아껴가며 꺼내려는 듯이 한참 뜸을 들였다. 탁자 위에 놓인 물 컵을 천천히 들어 올려 몇 모금 음미하듯 마셨다. 그리고 단숨에 내뱉듯 다음 말을 이어갔다.
  “이미 23년 전인 2077년11월11일, 지구의 생태계와 거의 유사하여 당장이라도 이주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별, 지구로부터 12억 광년 떨어진 외우주 B블럭 바카 은하계 소속의 스강나하르 행성을 발견하였으며, 20년 간의 대 역사 끝에 오늘 이 자리에서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스강나하르 제1차 도시기반시설이 완공되었음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순간 대회의장은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동시에 터져 나왔고, 한동안 대회의장이 떠나갈듯 계속 이어졌다. 

 


4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거의 수그러들 즈음 초대형 멀티스크린을 통해 스강나하르행성의 위용이 드러났다. 그리고 물 흐르듯 거침없이 흘러가는 영상을 설명하는 여성의 아름답고도 매끄러운 멘트가 흘러나왔다.
  “스강나하르행성은 추정행령 125억 년 된 행성으로 쏘울드법칙(Sold Method)의 은하중력다변이동 계산식에서 이미 밝혀 진 바와 같이 은하계중력의 다변이동으로 생성된 행성이며, 외형은 마치 팽이를 닮은 정교한 원추형의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성들이 자체 중력과 공전에 의해 공처럼 둥근 원형인데 반해 위 아래로 길쭉한 참으로 독특하게 생긴 행성이었다.
  “경도 직경이 62,162km, 수직위도 직경이 94,659km, 총 부피는 약 7.553 곱하기 10의13승 입방km로서, 이는 지구의 부피와 비교할 때 42.3배가 더 크고 총 질량은 약 249.142 곱하기 10의27승 그램으로 39.34배 가까이 됩니다. 표면적 또한 72.45배 가량 더 넓으며, 평균 밀도는 5.442로 지구의 5.525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스강나하르행성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촬영한 영상들이 나타났다. 형태는 지구와는 전혀 딴판이었으며, 특히 바다로 여겨지는 넓은 부위가 짙은 초록색을 띠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스강나하르는 특이하게도 지구와 같이 자기(磁氣)를 갖고 있는 행성이며, 위성이 하나인 지구와는 달리 13개의 위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 선샤인(Sunshine)이라는 위성이 마치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발광하며 스강나하르를 137.45시간을 주기로 돌고 있어, 스강나하르의 낮과 밤을 구분지어 주고 있습니다. 나머지 12개의 위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지만 표면의 독특한 성분 구조로 말미암아 반사광에 의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내는 일순간 스강나하르의 장관에 넋을 잃고 탄성을 질렀다.
  “와!”

  멀티스크린은 화면이 바뀌어 사막같이 건조한 모래바다와 기암괴석 따위로 뒤덮인 광활한 광경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독특한 형태의 빙산과 천년설로 이루어진 장엄한 광경들을 보여주었다.
  “적도 부위의 경우 낮 최고온도는 섭씨172도, 밤 최저온도는 영하16도이며, 남극권은 평균 섭씨 영하76도, 북극권은 평균 섭씨 영하54도입니다. 스강나하르의 여러 지역 중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역은 북위 13도에서 32도, 남위 12도에서 27도 지역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지역도 주야 온도차가 심하여 인류 거주지역엔 자동 대기온도조절장치 스프링엑시머(Spring Excimer)를 운용하고 있어 인류가 생활하기에 아주 쾌적한 온도를 자동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멀티스크린에는 캐주얼한 차림의 100여 명쯤 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테니스코트에서 복식경기가 치러지는 모습이 보였는데, 모두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카메라 앵글을 향해 손가락 두 개로 브이(V) 자를 그려 보이기까지 했다.  
  “대기권에는 산소 37%, 질소 56%, 알곤 1.2%, 이산화탄소 0.025%, 탄화수소 3%, 무기질 2%로 산소가 다소 높고,  그 외에 스강나하르에만 존재하는 게발트(Gebalt) 0.275%, 헬세이(Helsay) 0.032%가 함유되어 있으나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안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쾌청한 하늘에 몇 개의 조각구름이 떠있는 장면이 나타났다.
  “지표는 화강암, 퇴적암, 변성암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주요 성분으로는 규소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외 철, 구리, 망간, 알루미늄 등은 지구와 거의 유사한 분포를 보이며, 지층에서는 탄화물과 185종의 각종 금속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스강나하르 중심부는 대부분 고밀도의 써든헬륨(Sudden Helium)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멀티스크린에는 입체적으로 영상화된 지층 구조도가 나타났다.
  “원소 종류도 지구보다 더 다양하여 그간 발견된 원소는 모두 138종에 이르며, 특히 다른 우주에서도 발견된 바가 없는 이 행성만이 가진 희귀성분의 원소가 14종이나 되는데, 그중 중요한 성분으로는 아타나바(Attanaba), 듀얼크롬(Dualchrom), 써든헬륨, 수지펀(Sujipyeun), 드롱(Drong), 써리얼(Surrial) 등이 있습니다.”
  멀티스크린에는 스강나하르에서 새로 발견된 원소들의 화학구조 모형과 설명이 자막으로 나타났다. 이후 정립된 각 원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아타나바는 전도율이 구리의 30배가 넘는 초강력 전도체로 그 매장량도 12억 톤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 듀얼크롬은 다이아몬드보다 경도와 마모력이 훨씬 뛰어나고, 빛을 흡수하나 반사하지 않는 금속으로 암흑 같은 색을 지녔다.
  - 써든헬륨은 헬륨과 같은 질량을 지닌 무거운 금속으로 스강나하르 행성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며, 이 행성의 중심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장을 띄고 있는 성분이다.
  - 수지편은 물고기 비늘 같은 편상(片狀)이며, 듀얼크롬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성분으로, 열이나 전파는 물론이고 레이저나 방사능을 철저히 차단하는 성분이다.
  - 드롱은 천연의 상태에서는 짙은 암갈색의 액체로 존재하지만, 섭씨 2,130도의 고온에서 탄소와 반응하면 투명해지면서 탄성을 지닌 고체로 변형되며, 쉽게 가공이 되고, 가공 후엔 변형이나 웬만한 충격에도 부러지거나 깨지는 경우가 없고 가볍기 때문에 인체의 뼈 등 의료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물질이다.
  - 써리얼은 지구에서도 미량으로 발견되는 우라늄 계열로 스강나하르엔 무려 2.8억 톤이 매장되어 있으며, 핵융합 시에는 우라늄 버금가는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원소이다. 그러나 써리얼에는 우라늄과 같은 방사능이 없어 인류가 발견한 가장 안전하고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원료로 사용되는 성분이다. 써리얼은 발견 이래 한동안은 연합국가 유니타스에서 직접 관리하고 개인 소유를 일체 불허하였다. 후에 금을 대신하여 기본 가치로 인정하고, 이 원소의 소유량으로 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멀티스크린은 장면을 바꾸어 이번엔 웅장한 스강나하르의 자연경관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온대지역에 해당하는 지표면에는 높이 30m가 넘는 거목(巨木)들의 원시림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스강나하르의 전 표면의 84%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지구의 해양과 같으나 염분이 없는 것이 큰 특징이며, 녹색의 미세 프랑크톤 쉬잘(Syzal)로 초록빛을 띄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강나하르의 대양이 진초록색으로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코발트블루의 하늘색과 눈부신 흰빛의 구름, 둥두렷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오색으로 알록진 달들……. 참으로 환상적이고 화려한 장관이었다. 화면은 다시 스강나하르의 12개 위성들을 번갈아 보여주고 그중 대낮에도 일곱 개의 달이 한꺼번에 잡힌 바로 손에 잡힐 듯 근접하여 떠있는 장관을 보여주었다. 알록달록한 유리구슬처럼 그 모습들이 한결같이 환상적이었다. 장내는 다시 탄성으로 출렁거렸다. 
  “물론 스강나하르행성에도 2억 종으로 추산되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형태와 습성을 가진 괴상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으나, 다행히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스크린 화면은 자연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진기한 모습의 동물들과 형형색색의 식물들이 ‘줌인 앤 아웃’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떻게 저런 생물들이 다 있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세계로구나!”
  “너무 아름다워 마치 파라다이스 같다.”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과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화면은 다시 개척기지의 끝없이 펼쳐진 웅장한 모습과 최첨단 시설들을 보여 주었다.
  “스강나하르의 개척기지에는 제1차 도시기반시설로서 현재 1억2천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도시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또한 승객 3천명과 2천 톤의 화물을 동시에 탑재할 수 있는 스페이스트라인(Spacest Line) 30기가 동시 접안할 수 있도록 스페이스 도크(Space Dock)가 3개소에 건설되었으며, 개인승용 스페이스카(Space Car)를 2,000대 수용할 수 있는 전용공간도 1,500여 개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운 장면에 모두 일어나서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였다. 개척기지의 그 거대하고도 웅장함은 물론, 인류를 스강나하르로 이주시킬 거대한 스페이스트라인의 위용과 중앙통제방식의 자동 컨트롤로 웬만한 거리는 순간이동을 한다는 자가용 스페이스카 등등, 그 모든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옆 사람들에게 ‘이게 꿈인지 아니면 뭔가에 홀린 건지’ 서로 간에 확인하기에 바빴다.
  “단일 시설의 규모 면에서도 인류사 초유의 것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멤사스센터(Memsas Center)의 경우 총 2,220층 규모의 빌딩으로써 지하로는 120층으로 땅 밑으로 673m를 파고 내려갔으며, 지상은 2,100층으로 하늘로 치솟은 높이만 7,777m에 이릅니다. 이는 과거 2028년에 로스앤젤리스에 건설되었던 지하 22층, 지상 220층짜리 아마겟돈빌딩(Armageddon Building)의 열 배에 해당되며 연면적 12억 평방미터는 2018년 한국의 용인에 건설되었던 밀레니엄홀리데이빌딩(Millennium Holiday Building)의 7천만 평방미터와 비교할 때 열일곱 배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그 모든 영상들이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여 만든 컴퓨터그래픽의 합성이 아니라면 실현 불가능하다 여겨졌기에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지식 및 정보 공유를 위해 각 세대, 각 정부부처와 기관, 각 기업들을 중앙 초집적지능헤드에 연결하는 토탈세이브라인(Total Saveline)은 폐허 직전 지구의 모든 광케이블의 총 용량 50배가 넘는 125억 헥사(Hexa)규모로 모든 생활권역을 스페이스넷화하여, 항차 인류의 쾌적하고 편리한 삶을 보장할 것입니다. 이는 곧 모든 환경이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해 최적의 상태로 스스로 유지되고 관리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회의장은 놀람과 흥분에 겨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아니, 20년 만에 어떻게 저런 시설들을……. 도대체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이라도 된단 말이요?”
  “언제 저런 일들이 벌어진 건지,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소.” 
  “이건 우리를 갖고 놀려는 사기극이다. 우릴 까마득하게 속이고…….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저 사람들은 저기서 꿈같은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린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허송세월 보낸 것 같소. 안 그렇소? 여러분!”

  회의장의 어수선한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멀티스크린 화면은 계속해서 진기한 자연생태계와 괴이한 동식물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원시림을 보여주었으며, 그러한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극락이 있다면 바로 화면 속의 장면이 그것일 것이다.
  “이 행성에는 현재까지 480여만 종에 이르는 동물과 1,200여만 종이 넘는 식물, 700여만 종의 단세포생물, 23종의 무형생명체가 살고 있음이 밝혀졌으며, 밝혀지지 않은 종까지 대략 2억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무형생명체 가운데 이즈레라(Ezrera)라는 동물이 있는데, 분홍빛을 띈 연기 형상의 생물로 붉은색의 초미세 단세포들이 세포 간 거리를 산소화합물을 삼중 고리로 하여 연결하고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고, 생명체들이 갖고 있는 소화기관이나 배설기관 등이 없어 한동안은 이즈레라가 생명체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이즈레라에겐 놀랄만한 기억소자를 지니고 있어 이 불가사의한 능력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회의장 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질레 박 대통령을 향해서 ‘장난을 그만 치라’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고, 걔 중에는 ‘인류를 위로한답시고 벌이는 코미디 쇼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시름을 잊을 수 있어 좋은 것이니 그리 흥분할 게 못 된다’는 여유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멀티스크린은 장내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스강나하르의 장관을 연출하였다.
  “스강나하르는 천연환경도 지구와 거의 유사하여 자연에 그대로 인체가 노출되어도 아무런 장애 없이 쾌적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천국을 연상시키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동물들이 쉬잘이란 프랑크톤을 먹이로 하기 때문에 품성이 온순하고 인간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음을 확인하였습니다.” 

 


5

  이어서 멀티스크린에는 첨단시설들의 웅장하면서도 일견 그로테스크한 위용과 모든 시설들이 복잡한 구조의 토털세이브라인과 연결된 자동제어시스템에 의해 스스로 제어되고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엔 신축 중인 거대한 플랜트 현장이 나타났는데, 그 수효를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로봇과 탱크처럼 생긴 로봇 등 온갖 형태를 갖춘 로봇들이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주변에는 그들을 지휘 감독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스강나하르에서 우리 인간들은 노동이나 위험하고 험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도시계획부터 토목시공, 플랜트건설, 자동화설계, 전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은 중앙컴퓨터의 지시와 통제를 받는 로봇이 대신합니다. 모든 설비의 이상 유무는 컴퓨터가 체크하고 스스로 점검하기도 하지만, 외부의 충격 등으로 파손되었을 경우 전담 로봇이 수리를 합니다.”
  장내의 소란이 어느 정도 멎었다. 참석자들 모두는 얼이 빠진 상태로 멀티스크린만 응시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하나의 잘 만들어진 공상과학영화처럼 느껴졌기에 ‘어쨌든 봐둬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느냐’라는 심리가 작용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가사를 전담하는 로봇이 있는가 하면 유아를 돌보는 로봇도 있고, 각종 연예활동이나 스포츠선수로서의 역할을 하는 로봇도 있습니다. 또 로봇이 관광가이드도 하며, 안마나 마사지 등 서비스산업에서 봉사하기도 합니다.”
  장내에선 잔잔한 웃음소리가 일었다. 비록 잘 만들어진 공상과학영화라 여겨지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등장하고 과거 인류의 일상생활이었던 장면들이 나타나자 절로 즐거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유니타스는 지난 20년간 극비리에 8만여 명을 스강나하르에 이주시켜왔으며, 그들 이주민들은 대부분 과학자와 엔지니어들 그리고 일부의 전투병력과 인류의 미래라 할 수 있는 팅거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스강나하르엔 그곳에서 태어난 2세를 포함 10만8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우주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특수훈련과 특수군사작전을 익힌 4,300여 정예 병력들이 스강나하르를 지키고 있습니다.”

  멀티스크린은 마지막으로 막강한 방위력을 보여주는 첨단무기들의 기동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1인승 뱀파이어 스페이스(Vampire Space) 전투기들이 수직 이착륙과 순간발진 장면을 연출했다. 그 전투기들은 수직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 전투기들은 이착륙뿐만 아니라 출격 목적지나 요격 대상물까지 모두 초집적 지능헤드 에니악(Eniac)에 의해 조종됩니다. 전투원이 조종간 좌석에 앉는 순간 모든 기기들은 자동으로 제어가 되고, 이륙에서 최고 속도 3다이징(Dising)까지는 0.3초 밖에 소요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1다이징은 지구속도로 초속 12만 킬로미터입니다.”
  전투기들은 밋밋하고 동글동글한 형태가 언뜻 보기엔 돌고래를 본 뜬 듯했다. 크기도 작아 평균 신장을 지닌 어른이 팔을 넓게 벌린 크기에 못 미치며. 어른 둘이 양쪽에서 번쩍 들어 보일만큼 가벼웠다. 전투기라기보다는 과거 유원지에서 흔히 보이는 범프카(Bump Car) 수준이었다. 장난감이라면 모를까 도무지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을 작고 미약한 모습을 지녔다.
  “그리고 이 전투기들은 미사일이나 레이저 등 재래식 무기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어떤 목표물이든 선택적으로 분해시켜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전투기가 이해력을 돕기 위해 하늘 높이 치솟은 2,100층짜리 멤사스센터 중간 층 쯤의 한 대형 유리창에 붙여놓은 10센티미터 정도의 황금으로 만든 하트를 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공격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는 마치 바닷가의 너른 백사장에서 모래 한 알만을 선택하여 사라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투기의 모습이 언뜻 보이더니 황금하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멀티스크린은 멤사스센터의 그 유리창이 아무런 손상도 없이 원상태 그대로임을 보여주고, 다시 전자현미경으로 백만 배 확대하여 황금하트가 미세한 원소가루로 변해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전투기는 폭발에 의한 파괴력, 방사능이나 독성 등을 이용한 그 어떠한 재래식 형태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단지 목표물만을 선택하여 그 목표물이 지닌 특성을 분석, 진동의 강약으로 목표물의 구조를 와해시켜 애초에 그 목표물이 지닌 기본원소로 환원시킴으로써 그 목표물 특성자체가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목표물과 특성을 달리하는 물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방사능이나 소음, 파편의 확산으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없습니다.”
  대회의장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무리 과학의 세계가 도깨비방망이 같다한들 화면만 보고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갑자기 단상 위로 뛰어 올라 갔다. 얼굴이 벌게진 그는 한참동안 대회의장 좌중을 훑어보았다. 심상치 않은 그의 기색에 장내는 아연 긴장하면서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는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 맞지요?” 







- 제3화에서 계속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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