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메르의 비밀-[제1화] 환상의 행성 스강나하르

by korean posted Jul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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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공상과학소설]


모하메르의 비밀

mohammer to the mystery




사랑하는 아들 김형규와 

사랑하는 딸 김여진에게 이 글을 보낸다.



- 은유시인 -







프롤로그




  <모하메르의 비밀>은…….



  <모하메르의 비밀>은 머잖은 미래에 인류에게 닥쳐올 엄청난 재앙과 그에 대한 인류의 생존전략을 그린 가상의 이야기로 인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서술한 SF공상과학소설이다.

  저 광활한 우주에는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과 과학문명을 지닌 다른 생명체의 종이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할 수 있겠으나 그들 생명체가 반드시 인류와 경쟁자가 될 까닭이 없다. 이는 인간의 발가락 사이에 낀 각질(角質)이란 우주에 사는 나노종족과 인간이 결코 경쟁관계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인간의 적(敵)은 종을 달리하는 생명체나 외계인이 아니라 같은 종족인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두고 이 소설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머잖은 미래, 인류 가운데 극소수의 인간은 극초과학(極超科學)의 발달과 초영술(超靈術)의 개발로 시공(時空)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신체의 잠재된 에너지(氣)를 극대화한 초인적 능력과 신체의 변형이나 변이를 임의대로 구사할 수 있게끔 고도로 진화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반면에 절대 다수의 인류는 지능이 점차 퇴화하고 동물적 본능만 발달하는, 이른바 인류를 두 가지 계층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게끔 역기능을 부채질하였다.

  인간은 같은 종(種)인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인간들의 무리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경쟁하기를 즐기는 동물이며, 인간의 무리를 떠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 이외에 다른 인간들에 대한 배려에는 마냥 인색하기만 하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든 예외 없이 자신의 핏줄이 천세만세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랄뿐만 아니라, 보다 번성하고 보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한 바람은 동물적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번식의 욕구 외에 인간만이 지닌 짙은 이기심이 깔려있게 마련이다.   

  어떤 특정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권력은 인간의 무리에서 나오고, 모든 부귀영화 또한 인간의 무리에서 창출된다. 한쪽이 권력을 쥐면 다른 한쪽은 무조건 그 권력에 순종하게끔 강요되며, 한쪽이 부귀영화를 쌓아갈수록 다른 한쪽은 그만큼 빈곤해질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소수가 누리는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실제로 다수의 굴종과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부 세력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지탱시켜주는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 권력이나 부귀영화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겠는가.

  직원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회사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근로자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공장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관리인들이 모두 없어진 빌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요리사나 가정부나 정원사가 모두 없어진 대저택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사장이나 주인이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그 밑에서 떠받들며 대신 일 해줄 사람들이 없다면 회사나 공장이나 대저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니 일부 기득권층이 누리고 있는 권력과 부귀영화는 그들만이 잘나고 똑똑해서, 또 그들만이 지닌 재능과 재주만으로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양식 있는 인사들이 사회정의구현이란 대의명분으로 그들 기득권층에 부와 권력의 사회 환원을 꾸준히 요구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인 것이다.


  인간은 권력과 부귀영화에 한번 맛들이면, 그 또한 아편과 같은 강한 중독성이 있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만족하려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다른 인간들의 희생이나 좌절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확대하기위해 더욱 혈안인 것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사회규모가 커질수록, 인간관계가 무너질수록 인간은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인류가 파멸하든 말든, 지구의 종말이 오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금권만능주의로 극단적 이기주의로 발전하여 인류의 파멸이나 지구의 종말은 물론 자신의 파멸마저 서둘러 앞당기려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개발이란 미명 하에 산림을 마구 파헤치고 해안을 매립하여 땅을 넓히고 강줄기를 제멋대로 옮긴다. 그뿐만 아니라 독극물 처리비용을 아낀다며 남의 땅에 몰래 갖다 파묻어버리거나 강이나 해양에 몰래 쏟아버리는 인면수심의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지금, 선진 각국은 남아도는 돈으로 화성탐사다 토성탐사다 하여 인류가 이주하여 살만한 행성 발굴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가 맘 놓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다는 우주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 지구밖에 없다는 것이 거듭 확인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데 아무런 망설임이나 거리낌이 없다. 머잖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리란 징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구의 환경오염이 가속화되어 나타난 엘니뇨현상, 열대화현상 등으로 인해 지구의 환경생태계가 총체적 위기에 빠질수록 더욱더 우주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태양계가 소속되어 있는 은하계에만 지구와 환경이 비교적 흡사한 행성이 수억 개는 족히 되리라는, 또한 그런 은하계가 우주에는 수억 개가 되리라는 과학적 가설이 있는 만큼 ‘설혹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더라도 우주 어딘가의 사람이 살만한 행성을 발굴하여 이주해가서 살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기대를 하기마련이다.

  그러한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근거 없는 주장에 동조하고, 한편으로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에 ‘지구를 온전하게 보존해야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라는 지극히 온당한 소수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조차 못 쓰게 만든 인간이라면, 설혹 지구와 흡사한 행성이 발견되어 못 쓰게 된 지구를 버리고 그 행성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행성 역시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겠는가. 이 너른 우주에 지구처럼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 수천억 개가 있더라도 극단적 이기심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결국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끊임없이 떠도는 우주의 방랑자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






[제1화]


환상의 행성 스강나하르 

Sgangnahare



 

서막



지구 최후의 날

지구, 영원한 암흑에 잠기다 



  인간의 잠재의식에는 선(善)과 함께 악(惡)도 엄연히 공존하고 있다. 선이 나 이외의 타인에 대해 베풀고 욕구를 인내하는 것이라면, 악은 타인으로부터 빼앗고 욕구를 억제치 못하는 본능인 것이다. 

  악은 선에 비해 극히 유동적(流動的)이고 파상적(波狀的)이며 격동적(激動的)이다. 선이 소극적이고 그 파장이 은근할 정도로 미약하다면, 악은 적극적이며 그 파장이 가히 파괴적이다. 




1


  서기 2010년 이래 지구의 자연생태계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욱 조직화된 인간의 무계획적인 개발로 인한 파괴행위로 급속히 황폐화하였다. 그 결과 2018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원시수림이 소멸되고 자연엔 고등식물군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동물이나 조류들도 그 개체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크게 감소하여 그들 동식물을 보려면 동물원이나 식물원, 생태공원을 찾아가야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다. 

  오염은 육지뿐만 아니라 너른 바다까지 잠식하였다. 온갖 중금속이 함유된 산업용 폐수와 생활하수가 걸러지지 않고 계속 바다로 유입되면서 비소나 수은, 카드뮴, 납 등 중금속으로 인해 수많은 어패류들이 사라지고 적조가 급속히 확산되어 대양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뿐만 아니라 해저 깊숙이 매몰한 다량의 핵폐기물로부터 방출된 방사능으로 마침내 바다는 정화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음은 물론 바다 그 자체마저 거대한 오염물질로 전락하였다. 

  환경의 오염으로 농작물이나 가축의 생산도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대체 식량의 생산도 한계에 이르게 되자 인류 대부분이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굶주림에 의해 또는 원인도 규명할 수 없는 온갖 질병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특히 기형아의 출산이 부쩍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임신하기를 두려워하였으며, 그로인해 기형아들은 낳기가 무섭게 몰래 산 채로 태워버리거나 땅에 묻거나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다. 

  더군다나 0.3%에도 못 미치는 극소수의 신귀족층이 전체 경제력의 84.6%를 장악함으로써 빈부의 격차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 신귀족층은 자신들만을 위한 신낙원(新樂園)건설을 암암리에 추진하는 한편, 70억을 훌쩍 넘어선 인류의 개체수를 최대 5억으로 줄이고 그들을 노예화하겠다는 엄청난 음모마저 획책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절대다수의 하층민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굶주림과 질병, 절망 속에서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다. 


  서기 2022년6월12일, 국제환경기구는 마침내 우려해왔던 대기권의 오존층이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선언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환경론자들이 오존층의 붕괴로 인한 가공할 피해를 예상하여 인류에게 숱한 경고를 보내왔지만, 그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로 재앙은 미처 손 쓸 겨를 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걸러지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유해광선과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들은 방열, 방광 처리한 특수복으로 온 몸을 감싸듯 입지 않고서는 밖으로 나돌아 다닐 수도 없게 되어 생활에 큰 불편을 겪기 시작하였다. 

  지표면의 온도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대기 중의 수분이 대부분 증발하면서 지구의 열대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지구촌 곳곳이 고온 건조한 기후로 대형화재가 빈번해지고, 초원이나 농경지 대부분이 사막으로 변해갔다. 남북극의 빙하가 급속히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육지의 상당부분이 바닷물에 잠기게 되었으며, 그러한 바닷물에 의한 침수현상은 갈수록 심해져 대부분의 육지가 바닷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육지의 침하는 과거 인류가 이루어낸 수많은 시설물과 주거지역이 바닷물에 수장되는 비극을 초래하였으며, 그나마 침수되지 않고 남아있던 육지마저 예기치 못하게 거듭되는 해일, 태풍, 홍수, 지진, 고온건조 등 기상이변으로 인류를 괴롭혔다. 게다가 신종 변이바이러스의 창궐 등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인간들이 거주하는 곳마다 약탈과 살상행위도 끊이질 않아 그 아비규환이 마치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렇듯 지상이 오염으로 황폐화되고 폭력 등으로 살벌해지자 대부분 재벌이나 권력층으로 구성된 신귀족층은 그러한 재앙을 피해 지하 몇 백 미터 깊숙이 지하도시를 건설하여 숨어들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해왔던 그들 신귀족층이 모두 지하로 잠적해버린 지상의 세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기존의 법질서와 체계마저 완전히 붕괴되어 약육강식의 세계, 인륜보다 생존이 우선인 세계, 즉 인간세상은 지옥이나 다를 바 없이 황량하게 변해갔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굶주리고 병든 인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폭력과 약탈, 살상이 난무했지만 모든 국가의 공권력은 그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인류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하는 것은 유전자변이에 의한 기형인간들의 속출이었다. 

  대규모의 자연재앙과 도시마다 휩쓸고 지나간 각종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창궐, 기아와 영양결핍 등으로 한때는 73억에 달했던 인류가 불과 수년 사이에 절반도 넘게 희생되었다. 비로소 전 세계의 양식 있는 수장(首長)들과 국가 정상들은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멸종과 지구의 종말’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지구적 차원의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일국가로 통합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서기 2022년10월1일, 몰리브와 네팔 등 10여 개국이 불참한 가운데 220여 개국의 정상이 스위스 몽트뢰에 모여 마침내 단일국가로 통합하는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명실공히 초강력연합국가 유니타스(Unitas)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대 대통령으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당시 미국대통령인 프랑스계 리처드 말콤(Ricard E. Malcom)이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모든 인류는 지구의 환경개선과 인류의 생존을 위해 개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포기해야한다. 이에 유니타스는 인류 유사 이래 그 어떤 군주제나 독재정권보다도 더 가혹한 통치를 하게 될 것이다.”

  리처드 말콤은 취임하자마자 전 인류를 상대로 인권포기 선포령을 내렸고 그로써 유래 없는 철권통치를 예고했다. 유니타스는 즉각 전 세계에 전시상황인 1급 계엄령을 선포하고, 주요 도시마다 최정예특수요원으로 구성된 이른바 인류에게 인간사냥꾼부대로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될 헤이븐 밀리터리(HM)를 배치하였다. 

  에치엠의 가장 큰 임무는 지구의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중단시키는 것과 치안유지로서 그에 대한 범법이 인정될 경우 죄질의 크고 작고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부여받았다. 

  리처드 말콤은 인류의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먼저 집단거주체제와 철저한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한동안 개개인의 인격과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는 조치와 규제들로 인류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리처드 말콤에 의한 강력한 통치, 이른바 죽음의 행진으로 불리는 리사이클링프로그램(Recycling Program)에 의해 지구의 환경은 불과 10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리사이클링프로그램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환경관련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이다. 인류의 주거지를 태양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층권 28킬로미터 상공에 2억4천 평방킬로미터의 넓이와 두께 3.2킬로미터에 이르는 인공오존층 헬로우 파파(Hallow Papa)를 형성하고, 수몰된 지역의 복원을 위해 총 연장길이 2천6백40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인공수막(人工守幕)을 설치했다. 그리고 육지와 대양을 막론하고 만연된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극초자극성(極超磁極性) 순환펌프도 개발되었다. 


  리처드 말콤은 연합국가 유니타스 대통령에 세 번 연속 연임하면서 잔혹한 철권통치로 인해 인류로부터 숱한 원성을 샀다. 그리고 그 결과 일부 기득세력의 부추김을 받고 일견 영웅심리에 사로잡혀있던 그의 최측근 이집트계 압살라 키케르(Apssaler Cicer)에 의해 대통령궁 집무실에서 근접 총탄세례를 받고 피살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그때가 서기 2033년12월22일 오전11시13분경으로 인류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잃게 되었음은 물론, 4년 후엔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재앙을 불러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구의 환경은 리처드 말콤 집권 11년 만에 눈에 띄게 좋아졌다. 빗물을 직접 받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대기권이 맑아졌다. 강에는 물고기들이 모여들었으며 산야에는 푸른 초목이 되살아났다. 

  리처드 말콤의 사후, 폭정의 잔혹함에 진저리를 쳐왔던 유니타스 각료회의에서는 대통령의 절대적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32인으로 구성된 원로원 집정제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원로원회의의 영향력은 대통령의 권위를 누를만한 초법적이었으며, 그에 속한 인사의 명단은 특1급 국가보안으로 처리되어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원로원회의에서는 유니타스 연합국가 제4대 대통령으로 러시아계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Alexandro Mikhailov)를 선출했고, 다음해인 2034년2월10일 미하일로프는 대통령직에 정식 취임함으로서 리처드 말콤의 임기 잔여기간을 승계했다. 


  한편 리처드 말콤 유니타스 전 대통령 암살범 압살라 키케르는 사건발생 7개월 만인 2034년7월23일 안데스산맥 중턱의 한 비밀스런 지하별궁에서 에치엠에 의해 사로잡혔고, 다음날 콜로라도주 록키 플래츠에 위치한 아나콘다 특별재판소의 구치소로 긴급 이송되었다. 

  서기 2034년9월18일, 재판부는 비공개재판을 통해 압살라 키케르를 산 채로 밀랍인형으로 가공하여 영구히 인류에게 공개할 것을 명하였다. 그 형벌은 리처드 말콤 사후 그 즉시 인권회복이란 차원에서 즉결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당시로서는 정식재판을 통해 언도할 수 있는 최고의 극형에 해당하는 형벌이었다. 

  따라서 압살라 키케르는 자신의 이름과 이력, 죄명을 소상히 밝힌 대형 안내판과 함께 진열된 유리관 속에 벌거벗겨진 채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밀랍인형으로 가공된 압살라 키케르는 두뇌의 일부분과 시각 및 청각기관만 제 기능이 살아있을 뿐, 그 외 나머지 부분은 미이라로 만들어져 아무런 감각을 못 느끼게 되었고 손가락은커녕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보고 듣고 생각만 할 수 있는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압살라 키케르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히 많은 장치들이 고안되었다. 머리 뒤쪽에 연결된 가는 호스로 미량의 필수영양분이 공급되고, 인체에서 생성된 노폐물과 불순물은 저절로 여과되게끔 자동혈액순환장치가 설치되었다. 또 깜빡이지 못하는 눈꺼풀로 건조된 안구를 보호하기위해 머리 위에 설치된 노즐이 7분 간격으로 오르내리며 눈동자에 생리식염수를 분사했다. 

  압살라 키케르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거나 움직임을 볼 수 있고 생각하는 것도 예전과 같았다. 그러니 압살라 키케르의 입장에선 사람들이 바로 코앞에서 빤히 쳐다보며 욕하고 침 뱉고 윽박지르는 것을 그저 보고 듣고만 있어야한다는 것이 여간 큰 고역이 아닌 것이다. 

  “이 사람이 대통령을 죽인 아주 나쁜 사람이란다.” 

  “엄마, 이 사람 진짜 악질처럼 생겼다. 무서워.”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구경나온 젊은 엄마의 설명에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하는 소리였다. 

  “이런 쳐 죽일 놈 봤나, 네놈이 그래 인간의 탈을 썼을지언정 지옥의 악귀만도 못한 놈이지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주독이 잔뜩 든 딸기코를 가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50대 남자 하나가 욕을 퍼붓더니 압살라 키케르의 얼굴에 걸쭉한 가래를 ‘퉤!’하고 내뱉었다. 가래는 그의 얼굴에 못 미치고 대신 유리면에 철썩 달라붙어 조금씩 누런 흔적을 남기며 흘러내렸다. 

  상황이 그러할진대 한때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압살라 키케르로선 여간 죽을 맛이 아닌 것이다.


  후일 인류 최고의 명예헌장 노엘(Noel)에 헌정된 네덜란드계 니머라이 박사(Dr. Nimerai)의 스퀘어식 대량육질양생법에 의해 최소의 비용으로 양질의 살코기를 대량생산하게 되었고, 과일이나 야채 등도 수중에서 재배하는 청정재배방식에 의해 양산됨으로써 인류의 식량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부의 축적을 위해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일삼았던 인류는 그로인해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많은 교훈을 얻었다. 보다 진보한 생명과학의 힘으로, 그리고 인류의 단합된 복원의지로 지구의 생태계가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하자 인류는 어느덧 평온을 되찾고 조금씩 자유를 누리는 듯했다. 


 



2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지구를 파괴하려는 반인륜적 조직과 음모는 예나 다름없이 늘 존재해왔다. 오히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인간의 극단적 이기주의는 더욱 심화되었고 반인륜적 음모 또한 비례하여 더욱 지능적으로 조직화, 고도화되었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래로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연생태계를 철저히 유린하여왔으며, 특히 엄청난 살상력과 파괴력을 지닌 대형무기의 개발경쟁과 그것을 개인의 치부수단으로 또는 권력을 장악하려거나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미치광이가 존재하는 한 인류와 지구의 미래는 항상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추정 45억년 된 지구는 리처드 말콤 사후 4년 후인 서기 2037년11월25일 오후3시 정각, 뉴나치즘(New Nazism) 테러리스트 싸이파(Ssyper)들이 터뜨린 단 한 발의 300기가급 광양자화학탄 데쓰루(Detheroo)의 하얀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암흑세계로 돌변했다. 동시에 지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물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잿더미로 변했다. 

  자연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당시의 통계인구 32억의 인류 중 살아남은 인간은 싸이파의 테러 경고시한을 앞두고 지하세계로 피신해있었던 신귀족층을 비롯해 채 5억이 되지 않았다.

  지구 지표면의 98% 이상이 독성화학물질로 오염된 농갈색의 부글거리는 바닷물로 덮이고, 대기는 끈적거리는 복합탄화물질이 부유하여 지표면과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태양광선이 지표면까지 도달하지 못해 바로 코앞도 식별할 수 없어 마치 암흑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한 순간에 지구는 더 이상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행성으로 바뀐 것이다.

  싸이파의 테러 이후 운 좋게 살아남은 일부 인류는 죽음의 바다로 변한 지표면의 심각한 오염을 피해 더 깊은 지하로 파고들어 보다 안전한 지하세계를 구축하였으나, 미래에 대한 꿈을 저버린 채 죽음과 같은 삶에 적응해야했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은 그들 또한 방사능에 오염되어 온갖 질환에 시달려야했으며 생식능력마저 상실하여 더 이상 인류에겐 어떠한 희망도 없는 듯이 여겨졌다.

  인류, 엄밀히 말해 신귀족층이 구축한 대부분의 지하도시들은 지표면으로부터 300미터에서 최고 1,500미터 깊이에 건설되었으며, 그곳에는 오하이오바이오센터(Ohio Bio Center)와 같은 거대한 냉동공장이 들어섰다. 전 세계 도처에 230여 군데의 지하도시가 건설된 직후 일부 과학기술자를 제외한 인류 대부분은 급속냉각 처리되어 바이오아이스캡슐(Bio Ice Capsule) 속에 담겨지고 냉동창고의 아이스컨테이너 안에 차곡차곡 안치되었다. 비록 막연하지만 그 언젠가 그 어느 누군가에 의해 해동될 그날이 틀림없이 올 것이란 기대를 하며 생명의 끈을 잇기 위해 기나긴 동면에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데쓰루 투하 이래 유니타스가 생존한 5억 인류들을 대상으로 종합정밀검진을 실시한 결과, 건강에 아무 이상 없고 유전관련 질환은 물론 생식기관에 전혀 하자가 없는 그야말로 생식능력을 완벽하게 보존한 인간의 개체수가 남성 129명, 여성 1,243명 등 모두 1,372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화성의 개척기지 마르스센텀시티(Mars Centum City)와 천왕성 우주개척기지 스페이스벤처유알(Space Venture UR) 내에서도 당시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던 우주과학자나 엔지니어, 전투병력, 그리고 거주민간인 등을 대상으로 정밀검사가 이뤄졌으며, 그중에 남성 9,247명, 여성 12,182명 등 모두 21,429명의 건강하고 생식능력이 완벽한 인간을 가려냈다.

  유니타스 정부는 남성 9,376명, 여성 13,425명 등 모두 22,801명의 건강하고 생식능력이 완벽한 인간을 팅거휴(Tingger Hu)라 명명하고 그들에게 각기 고유 디멘션(Dimension)을 부여한 뒤, 극비리에 건설된 특별보호구역 샬롬(Salrom)에 그들을 집단거주토록 하여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지구에는 비교적 덜 오염된 지역인 알래스카 지하 7백 미터 지점에다 알파샬롬(Alpha Salrom)을 건설하였고, 천왕성에는 스페이스유알 개척기지 안에 베타샬롬(Betta Salrom)을 건설하였다. 

  그들 팅거휴는 특별보호구역 안에서 철저히 통제된 상황 하에 집단으로 거주하게끔 강요당했는데, 그로인해 운신의 폭이 대폭 좁아진 그들의 불만은 한동안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인류의 종(種)보존이란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번식을 위해서 그들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하에 유니타스의 계획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규정된 공간 내에서 유해한 일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원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어 학자나 과학자의 경우 학문이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뿐더러 그 외에 취미활동이나 게임 등을 즐길 수 있었다. 

  이로서 인류에게는 크나큰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때나마 지구상에 번식했던 대부분의 생명체들도 사전에 유전자정보와 함께 그들 생체 중 일부를 간(幹)세포로 냉동 보관하여 기약 없는 미래를 대비하였다. 





3


  싸이파에 의한 데쓰루 투하 8개월 전인 서기 2037년3월16일, 이른 아침이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베링거(Behringer)마을의 회관 앞 너른 광장에는 수천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인구 3천명 내외의 한적한 시골마을은 며칠 전부터 그들과 그들이 몰고 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마을의 호텔은 물론 레스토랑과 술집도 발 디딜 틈 없이 그들로 붐볐다.

  그들은 모두 순수 게르만혈통을 이어받은 독일계 백인들로 연령은 1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다양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병사들이 입었던 옛 나치스문양이 선명한 군복을 착용하였고, 마치 제식훈련이 잘 된 현역군인들 못잖게 절도와 군기가 제대로 잡혀있었다.


  오전10시 정각, 광장에 도열한 10만여 장정들 앞에 가로놓인 단상 위로 서너 명의 건장한 청년을 앞세우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육군정복차림에 대장 계급장을 단 덩치 큰 중년의 사내 해머 스콧트(Hamer Scott)가 올라섰다. 해머 스콧트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서더니 사자가 포효하듯 큰 소리로 외쳐대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드윈 스뮐러(Dwin Smiller) 각하를 모시고 세계를 평정하기 위한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드넓은 광장은 숨죽인 긴장감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했다. 순간 주먹을 불끈 쥔 오른팔을 하늘로 향해 쭉 뻗어 올리며 사자후를 연상시키듯 해머 스콧트의 구호선창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새로운 제국 슈틀러(SSuttler)를 위하여……!”

  이어 일제히 터져 나온 수천 장정들의 복창소리가 마을을 진동시켰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이 내지른 무수한 오른팔들이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허공을 찔렀다.

  “슈틀러를 위하여……!”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드윈 스뮐러를 위하여……!”

  “드윈 스뮐러를 위하여……!”

  곧이어 해머 스콧트의 안내를 받으며 키가 작고 깡마른 60대 초반의 사내 드윈 스뮐러가 단상 위에 올라섰다. 장정들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리로 잠시 소요가 이는 듯했으나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해머 스콧트의 구령이 이어졌다.

  “일동……, 차려 엇!”

  ‘착!’

  “드윈 스뮐러 각하를 향하여……, 경례 엣!”

  “하잇, 스뮐러……!”


  해머 스콧트의 우람한 체격과는 대조되리만큼 왜소한 체격의 드윈 스뮐러가 마이크 앞으로 한 발 성큼 다가서자 청년 하나가 황급히 따라붙으며 마이크의 높이를 낮춰주었다. 드윈 스뮐러는 짙은 회색정장에 꼬리를 위로 말아 올린 특유의 카이젤수염을 하고 있었고, 하이칼라스타일의 머리형에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빗어 넘겼다.

  드윈 스뮐러는 시종일관 영국황실의 근위병과 같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여 그로부터 풍겨오는 느낌은 칼칼함과 고지식함, 그리고 다분히 신경질적인 것이었다. 어찌 보면 히틀러를 쏙 빼닮은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동안 광장에 운집한 장정들을 쭉 훑어보고는 가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하였다.

  “친애하는 열혈동지 여러분! 지금 온 세계는 불순분자, 불온세력들에 의해 점거되어 제멋대로 유린되어가고 있다. 이는 과거 환경오염으로 인류가 굶주리고 기형인간이 대량 속출하던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오직 하늘이 내린 우리 게르만혈통만이 이 오염된 세계를 정화시킬 수 있으며, 바로 여기에 모인 여러분에게 그런 막중한 사명이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이러한 하늘의 뜻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이제부터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함이다. 때가 왔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며, 우리는 힘을 합쳐 분연히 일어나야한다. 새로운 제국 슈틀러를 위하여……!”

  연설도중 드윈 스뮐러도 주먹을 불끈 쥔 오른팔을 하늘로 향해 쭉 뻗어 올리며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수천 장정들의 거수와 복창소리가 이어졌다.

  “슈틀러를 위하여……!”


  드윈 스뮐러가 컵의 물로 목을 축이는 동안 광장은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듯 고요하여 물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광장 끝에 있는 장정들 귀에도 들렸다.

  “친애하는 제군 여러분! 우리는 과거 위대한 총통 히틀러 각하께서 미처 이루지 못한 역사적 과업, 독일민족지상주의를 대신하여 전통계승하고, 이를 반드시 성취해야할 막중한 임무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이 지상에서 열등인종과 무능한 집단들을 영원히 도태시키고, 우리 순수 게르만혈통만이 영구히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하늘의 섭리이다. 우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분연히 일어나야하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우리 게르만족의 대 단결을 외치자. 새로운 제국 슈틀러를 위하여……!”

  “슈틀러를 위하여……!” 





4


  드윈 스뮐러는 1986년2월14일, 독일의 전형적인 공업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그란츠 스뮐러(Glanz Smiller)는 철저한 나치신봉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산하부대 작전참모로 근무하다가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연합군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고, 종전 후 네덜란드전범재판소에서 10년형을 언도받아 실제론 6년간을 전범형무소에서 복역한 전력을 지닌 위인이다.

  그리고 그의 부친 에릭 스뮐러(Eric Smiller) 또한 조부의 영향을 받아 조부와 마찬가지로 나치즘 부활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세월을 보냈던 인물이다. 서른셋의 나이로 열여섯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스와츠 린네(Swarz Linne)와 결혼한 에릭 스뮐러는 결국 나이어린 아내와의 불화 끝에 이혼을 하고 당시 네 살 된 아들 드윈 스뮐러만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때가 1989년10월경이었다.


  드윈 스뮐러는 늘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데다 유약한 체격을 지녔다. 성격 또한 극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라 어려서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계집아이란 놀림과 함께 집단따돌림을 받기도 했으며 그로인해 부친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도 못했다. 반면에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히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 그의 수리적이고 분석적인 명석한 두뇌는 성장하면서 특히 과학과 관련된 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마찬가지로 부친 에릭 스뮐러의 나치즘에 큰 영향을 받고 자랐다. 때문에 과학분야에 유독 집착을 보이던 그가 하버드법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후 다시 미국 뉴요크주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것도 다분히 부친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너는 게르만족의 위대한 지도자인 히틀러 총통의 유일한 후계자다. 따라서 너는 이제부터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운명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야한다. 히틀러 각하의 사후로 나치즘의 위세가 많이 꺾였다지만, 전통 게르만족의 혈통과 위상은 영원할 것이다. 네가 히틀러 각하의 유지를 이어받도록 하라.” 


  미국 육군에 장교로 투입된 드윈 스뮐러는 극도로 치밀한 수리적 능력과 대입분석능력을 지니고 있어 군사작전과 군사정보에 쉽게 통달할 수 있었다. 또한 원자핵물리학과 각종 군사장비에 정통했으며, 특히 핵과 화학탄두미사일이 그의 전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군에서 습득한 1급기밀의 군사정보들은 훗날 그의 야망을 성취하는데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군에서도 그는 여전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보인데다 지나칠 정도로 냉소적이어서 그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견해를 달리하는 그 누구와도 타협이 통하지 않는 철저한 외골수였다. 한때는 군 상급자나 동료들로부터 그로인해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하의 사소한 실수도 절대 용납하는 일이 없어 냉혈한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군에서의 그의 위치는 흔들림 없이 늘 확고부동했으며 그에 대한 진급 또한 예상외로 파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드윈 스뮐러는 미국 육군소장으로 복무하던 해인 2026년2월4일 오후2시20분경, 오랜 기간 그의 직속참모로 함께 일 해온 그의 최측근이자 그의 신봉자인 해머 스콧트 대령과 함께 불법무기거래에 연루되어 미육군정보국(AI)과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전격 체포되었다. 당시 그들이 불법무기판매로 빼돌린 자금만 2억 달러가 넘었으나 그 두 사람은 수사기관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금의 행방을 토설하지 않았다. 

  드윈 스뮐러는 육군형무소에서 11년의 형기를 마치고 얼마 전인 2037년3월14일에 만기 출소하였다. 또 당시 함께 체포되었던 해머 스콧트는 8년형을 언도받았으나 감형되어 그보다 5년 먼저 출소하였다. 해머 스콧트는 출소 이래 5년여 동안 드윈 스뮐러의 지령에 따라 은밀히 싸이파 결성을 위해 헌신하여온, 그야말로 드윈 스뮐러의 수족과 같은 인물이었다.


  해머 스콧트는 유니타스 대통령 리처드 말콤이 최측근에 의해 살해된 직후, 유니타스 정부의 기강이 안일해진 틈을 타 암암리에 에치엠 요원 가운데 순수 게르만혈통을 지닌 요원들을 대거 포섭하였다. 그리고 싸이파 정예부대를 창설하고 그 비밀 본거지를 베링거마을에 세웠던 것이다.

  해머 스콧트는 마을에서 북동쪽 70여 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3천2백여만 평방미터나 되는 광활한 황무지에 훈련캠프를 건설했다. 그 지역은 대부분 험준한 산악과 암석들로 이루어졌고 수심이 꽤 깊은 호수도 끼고 있어 외부와의 접촉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군사훈련하기에는 적격이었다.

  평활한 땅에는 대형 군 막사들이 줄줄이 들어섰고, 요소요소마다 암벽을 깎고 지하터널을 뚫어 어떠한 포격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벙커를 수도 없이 만들었다. 전투기나 미사일로는 쉽게 파괴시킬 수 없는 자연이 제공한 그야말로 비밀스런 철옹성이었다.

  해머 스콧트는 드윈 스뮐러의 만기출소에 맞춰 그 모든 사전작업을 불과 1년 반 만에 끝냈으며, 이틀 전인 3월14일 오클라호마 주 캔스빌의 유니타스 특별수형자형무소로 찾아가서 방면된 그를 직접 맞아 베링거마을로 함께 돌아왔다. 





5


  폭력조직이든 테러조직이든 크나큰 불법을 자행하는 조직일수록 철저한 비밀유지를 전제로 하며, 이를 위해 조직원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조직이 비대해질수록 위계에 따른 절대적 복종을 강권하게 마련이며, 세력을 확대하고 견고히 유지하기위해서는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한다. 

  드윈 스뮐러가 이끄는 테러조직 싸이파는 최종목표가 세계 정복인 극단적 조직인 만큼, 많은 수의 조직원과 가공할 무기의 확보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금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통해 조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드윈 스뮐러는 2004년 하버드대학에 입학했을 당시부터 ‘순수 게르만족이 이끄는 이상세계 슈틀러제국’을 꿈꿔왔던 로트링 쿠버(Rotring Kuber)  법학석좌교수와 깊은 연관을 맺어왔고, 그 다음해인 2005년6월부터는 비밀결사조직 싸이파를 결성하여 세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이파 조직은 2018년3월 그가 미육군 중령으로 미전략무기통제사업단(SACP:Strategic Arms Control Project) 실무책임자가 되고부터 급성장을 거듭했다. 그는 전략무기들을 빼돌려 제3국에 팔아넘기고 막대한 자금을 챙길 수 있었으며, 그 자금으로 싸이파 조직의 세를 불려나갔던 것이다.

  당시 자연생태계가 걷잡을 수 없으리만큼 황폐화로 치닫자 ‘생태계의 파멸과 인류의 멸종은 곧 슈틀러제국 건설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란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싸이파의 세력을 보다 증강하고 최첨단무기로 무장시키기 위해 무기밀매 외에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의 치밀한 작전에 따라 전 세계에 걸쳐 무자비한 테러와 약탈이 자행되었고, 마피아나 삼합회, 야쿠자 등 전 세계 폭력조직들과 결탁하여 마약 및 인신매매에도 적극 가담하였으며, 과학자들을 납치하여 대규모살상용 화학무기개발에도 열을 올렸다. 

  드윈 스뮐러는 그렇게 불법으로 조성한 막대한 자금을 이용하여 첨단무기들을 비축하는 한편, 전 세계의 모든 게르만혈통을 지닌 독일계 청소년들을 회유하여 싸이파에 투신시키는데 그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드윈 스뮐러의 모든 작전들은 외부 어떤 세력에 의해서도 감지되지 않도록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모든 작전은 일체의 통신을 배제하고 오직 임마누엘(Immanuel) 포털사이트만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암호화된 언어체계로 전달되었다. 싸이파 개개인의 신분도 철저한 위장을 의무화하고 비밀누설의 방지를 위해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하였다. 절대적 상명하달식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정보누설은 곧 죽음’임을 늘 주지시켰다.

  싸이파는 각 지부산하 지역별 점조직형태로 결성되었으며, 오로지 중앙의 통제와 지휘 하에 관리되었다. 시설들 또한 용병양성을 위한 일종의 훈련소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이도록 철저히 위장되었다. 모든 시설들은 열 감지나 레이저, 엑스레이, 감마선, 자외선 등을 차단할 수 있도록 특수차단막으로 보호되어 정보위성에서도 중요시설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유니타스 소속의 정보기관 유씨씨(UCC)에서조차 눈치를 챌 수 없었다.


  드윈 스뮐러의 싸이파 조직은 결성된 지 32년 만에 전 세계에 180여 지부를 설치하고 조직원 수만 80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직의 활동범위는 테러, 살상, 납치 등 가공할 범죄 외에 마약 및 무기밀매, 국제매춘, 살인청부업에까지 뛰어들어 인류로부터 비난이 빗발치는 조직으로 전락하였으나 그 실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인류에게는 베일에 싸인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6


  서기 2037년6월20일 오후4시, 베일에 싸인 인물로서 전 인류를 상대로 무차별적 테러와 살상을 일삼던 가공할 테러조직 싸이파의 실세인 드윈 스뮐러의 유씨씨에 의한 체포는 모든 인류를 경악케 했다.

  연일 매스컴들은 그에 관련된 내용들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유니타스 정부의 그에 대한 향후 조치는 모든 인류에게 있어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니 저 자그마한 사람이 어떻게 감옥 안에서 그 거대한 테러조직을 이끌 수 있었단 말인가.”

  “저 사람 저래 뵈도 아이큐가 200이라카데. 저 사람이 지닌 박사학위만 다섯 개가 넘는다지 아마.”

  “아이큐 200짜리가 어딨노? 130만 되도 천재라카든데…….”

  “하여튼 캐리어를 보니 대단하더구먼……. 콩밥 먹기 전에 빼돌린 돈만해도 수억 달러는 될끼구먼.”

  “싸이판지 뭔지도 대번에 절딴나겠구먼.”

  그는 유니타스 특별수형자형무소에서 11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지 불과 3개월여 만에 또다시 전격 체포되었고, 그로써 싸이파 조직을 이끌어 온지 32년 만에 그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드윈 스뮐러의 체포는 그에게 충성을 맹서했으나 결국 사소한 것에 불만을 품게 된 가장 가까운 최측근, 즉 내부자고발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1억7천만 유니타스 달러란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었다. 그 고발자는 유니타스의 철저한 보호 하에 비밀장소에 숨겨져 있어 관계자 몇몇만 알고 있을 뿐 언론에서는 이니셜 ‘디(D)' 즉 듀크(Duke)로 소개될 뿐이었다.  

  그간 싸이파에 의한 대규모 폭탄테러와 살상행위가 벌어졌을 때마다 그 배후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폭탄테러 이후 어쩌다 사로잡힌 테러범들을 상대로 기억회생프로그램에 의해 정밀추적을 했어도 그에 관한 자료는 물론 싸이파와 관련된 그 어떤 자료도 전혀 얻을 수가 없었다. 테러에 투입되기 직전에 이미 테러범들의 기억을 완전히 삭제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싸이파의 조직은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부조직들끼리도 상호정보교류 없이 별개의 조직으로 행동했으며 아지트들도 일반거주지에 은폐되어 있어 어쩌다 유씨씨가 알고 덮친들 이미 아지트를 옮긴 직후로 번번이 허탕 치기 예사였다. 


  한동안 우려하였던, 그의 체포를 계기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았던 싸이파에 의한 테러도 불식된 듯싶었다. 간혹 국지적인 테러행위가 있긴 했으나 싸이파를 모방한 테러행위이거나 아니면 싸이파와 전혀 관련 없는 테러단들의 테러행위로 밝혀졌다. 인류로서는 드윈 스뮐러의 체포와 함께 구심점을 잃은 싸이파들이 해체위기를 맞은 것으로 오인하기에 족했다.

  그가 싸이파를 통솔해온 그 32년 동안 싸이파에 의해 인류에게 자행된 갖가지 범죄는 유니타스 범죄조사위원회에서 집계한 총 범죄건수에 있어 3분지1에 해당하는 31.24%를 차지했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에 예외 없이 싸이파가 개입되지 않은 건이 없었으니 수법도 잔혹하기에 이를 데 없었지만 상당히 치밀하여 아무리 하찮은 작은 것이라도 증거를 남기는 예가 없었다.

  최근 발표된 유니타스의 집계에 의하면, 리차드 말콤 전 유니타스 대통령 시해(弑害) 이후 2034년1월부터 2036년12월까지 최근 3년간 전 세계를 상대로 자행된 온갖 테러에 의한 인명살상의 경우 전체사망자 3,224,627명 가운데 92%에 해당하는 3,012,656명이 싸이파에 의해 살해되었고, 폭파테러 등으로 인해 파괴된 건물, 플랜트, 공공시설 등 재산상 피해는 실로 막대하여 동일기간 테러 등으로 인해 입은 재산상의 손실 유니타스 달러 7,267억9,460만 달러 가운데 82.4%에 해당하는 5,988억7,875만 달러가 싸이파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싸이파의 테러행위는 지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인류가 이용하는 시설이라면 지하든 해저든 대기권이든 구분이 없었고, 인류가 이용하는 모든 운송수단도 망라되어 있으며, 우주에까지 그들의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뻗어있었다. 따라서 유니타스는 많은 대중이 이용하는 운송수단과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시설물에 대해 1급 경계경보를 발동했으며, 특히 우주건설현장으로 파견되는 엔지니어들이나 우주여행 탑승객들 가운데 독일계열인류를 철저히 배제하여 독일계열인류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미 싸이파의 무차별적 테러로 인해 전 인류 사이에는 독일계열인류에 대한 노골적인 강한 거부감이 조성되어있었고, 언론들도 그에 동조하는 성향이 짙어갔다. 특히 보수성이 짙은 최대 규모의 스페이스넷(Space Net) 방송채널 유니온메가넷(Union Mega Net)의 경우 독일계열인류를 색출하여 다른 행성에 집단거주토록하자는 주장을 거듭 제기했다.

  “왜 하필 독일계열이냐? 싸이파 구성원들이 모두 독일계열이란 증거가 있느냐?”

  “독일계열이라 하여 싸이파의 테러행위를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독일계열인들 가운데 절대다수는 싸이파의 테러행위를 비난하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세계평화가 깨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독일계열인류의 차별에 대한 불만의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독일계열인류에 대한 개별적인 테러가 빈번해지면서 사회문제로 비화(飛火)되기까지 했다.


  다음은 드윈 스뮐러가 체포되고 그 이틀 뒤인 2037년6월22일 오전11시부터 전 우주로 내보낸 유니온메가넷의 방송내용이다. 주요 패널로는 유니온메가넷 상임논설위원인 일본계 다나까 요시히로(Tanaka Yosihiro)와 인류학자인 헝가리계 아그네스 다로찌(Agnes Darozzi), 유니타스 범죄수사위원회 대테러감시국장인 프랑스계 에티엥 클라리(Etienne Clary), 유니타스 원로원의원인 미국계 레슬리 호프(Leslie Hope)와 이집트계 나왈 엘 사다위(Nawall El Sadawei), 이탈리아계 미카엘 케룰라리오스(Michael Kéroullarios)가 참석했다.   

  진행자 겸 패널인 상임논설위원 다나까 요시히로가 말문을 열었다.

  “싸이파의 수괴 드윈 스뮐러가 체포된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인류의 우려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싸이파의 활동이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쩜 바람으로 끝날 수 있겠습니다만, 싸이파 조직이 완전히 붕괴되어 더 이상 인류를 상대로 한 위협적이고도 무차별적인 테러가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간 싸이파의 테러행위에 가담했다 잡힌 테러리스트 대다수가 순수 독일계열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 나치즘에 세뇌되어있는 이탈리아계와 포르투칼계, 스페인계, 영국계가 극소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쩜 그 극소수조차도 독일계열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류학자 아그네스 다로찌가 그 말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재 전체 인류의 수는 31억8,400여만 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그 중에 독일계열인은 1.42%인 4,402만여 명에 이릅니다. 그 독일계열인들 가운데 3%남짓이 현재 싸이파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대략 130만 명을 웃도는 수준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 투가(Tuga)로부터 도출된 확률분석에 의하면 독일계열에 속하는 4,400여만 명의 인류 가운데 87%인 3,820여만 명이 싸이파에 적극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로원의원 미카엘 케룰라리오스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고함을 질러댔다.

  “듣자 듣자하니 넘 지나치구료. 이봐요, 마치 독일계열인이라면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싸이파와 한 통속이란 식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요? 독일계열인 또한 여러분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선량한 인간들일진대 어찌 일방적으로 테러리스트집단으로 몰고 가려는 게요? 여러분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싸이파는 곧 독일계열인이고 독일계열인은 곧 싸이파란 등식으로만 몰고 가려는 것으로 보이요. 그리고 싸이파가 130만 명을 웃돈다느니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독일계열인이라느니 독일계열인들 가운데 87%가 싸이파에 동조한다느니 하는 엉터리통계는 또 뭐요? 그렇게 정확하게 그들의 신상파악을 했다면 왜 그들을 모조리 잡아넣지 못하고 있는 게요? 그리고…….”

  진행자가 막무가내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 가는 미카엘 케룰라리오스의 마이크를 껐다. 한동안 마이크가 꺼진 것을 모르고 계속 폭넓은 보디랭귀지를 구사해가며 떠들어대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마치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모습 같았다. 한참 후에 자신의 마이크가 꺼진 것을 확인한 그는 욕설을 몇 마디 더 지껄이는듯하더니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났다.

  미모를 겸비한 젊은 여성원로원의원 나왈 엘 사다위가 말을 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유지해왔던 민족주의나 사상이데올로기, 종교이데올로기도 어느덧 퇴색되고, 전 세계 국가들이 유니타스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면서 나라 간의 국경이 사라지고 더불어 인종이나 민족개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독 과거의 독재망령에 대한 집착이랄지 아님 향수병이라 할지 어쨌든 과거에로의 회귀를 꿈꾸는 인종이 있는데 바로 독일계열인, 즉 게르만족혈통을 은근히 과시하려드는 그들뿐입니다. 그들은 과거 히틀러 추종자들처럼 나치즘을 표방한 선민사상에 집착한 부류들입니다. 사실 특정 계열인들을 타깃으로 비난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만,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임이 분명합니다.”

  대테러감시국장인 에티엥 클라리도 의견을 내놓았다.

  “범죄에 악용할 목적으로 세뇌시킨 인간은 오래된 범죄역사를 돌이켜봐도 알 수 있듯이 교화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투가의 확률분석에서 나타났듯이 특정 대규모집단이 동일한 성향을 보일 때엔 유니타스가 아무리 초법적 권한을 지녔더라도 문제를 수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전개되지 말란 보장도 없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인류가 생존하기위해서는 독일계열인을 집단으로 격리시킬 방법 외엔 다른 방법이 없을 듯싶습니다.”


  드윈 스뮐러는 1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의 삼엄한 경비와 5중으로 차단된 철저한 감시망에 갇혀있으면서도 특유의 거만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의 거처는 수시로 극비리에 옮겨졌으며, 일체의 매스컴으로부터도 철저히 차단되었다.

  그러나 철통같은 정보통제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들이 암암리에 유포되었다. 매스컴은 연일 그에 대한 보도를 다루었으며 차츰 매스컴을 통해 싸이파에 대한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인류 사이엔 어느덧 드윈 스뮐러가 과대 포장되어 칭기즈칸 못잖은 영웅으로 비쳐졌고, 심지어 싸이파란 테러조직조차 지구를 구하려는 집단인양 미화되는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뿐만 아니라 드윈 스뮐러를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시위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것도 독일계열인류뿐만 아닌 다국적 인류들이 더 열성적으로 시위에 가담했다.


  드윈 스뮐러가 체포되고 2개월여 동안 잠잠했던 싸이파의 테러가 또다시 재개되었다. 2037년8월23일 드윈 스뮐러가 미국 켄터키주 리시빌에 위치한 계엄법원에서 첫 재판이 진행될 때,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는 싸이파의 테러가 전 세계 2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터졌고, 사상자 수만 35만 명에 이르렀다. 특히 라스베가스의 홀리데이인카지노 폭발사고로 인해 86층짜리 맥밀리언 호텔이 폭삭 무너져 내려 그 밑에 압사하여 죽은 사람만 6만7천여 명으로, 그 현장의 참혹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었다.

  이에 고무된 듯 드윈 스뮐러는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느긋한 여유를 부리며 조건 없는 석방을 촉구했고, 심지어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에게 집중적으로 입에 담지 못할 비난과 협박을 일삼았다.

  “푸홧하하하! 누가 감히 나를 심판하려하느냐? 너희들은 나를 심판할 자격도 없거니와 나 역시 그대들로부터 심판받을 건덕지가 전혀 없느니라. 나를 당장 풀어주지 않고 무엇을 기대하느냐? 나를 가찮게 여기고 계속 가둬둔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주겠다. 아니, 오히려 그 백만 배, 천만 배에 상응하는 엄청난 고통을 너희에게 안겨줄 것이야.”

  참으로 무시무시한 협박을 주저 않고 내뱉었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인 언사도 마다 않았다.

  “왜 독일계인류를 싸잡아 비난하느냐? 독일계인류야말로 모든 종족 가운데 가장 우수한 종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야. 그간의 과학발전에 이룩해온 독일계인류의 공적을 상기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열등인종은 아무리 가르친다하여도 그 혈통마저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이 곧 하늘의 섭리이며 역사가 이를 증명하여왔다. 따라서 이 세상이 쓰레기 같은 열등인종으로 뒤덮일 때, 인류의 진화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으며 그 미래 또한 보장할 수 없는 것이야.”

  그는 게르만혈통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인류가 더 진보하려면 열등인종은 제거해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그의 유태인에 대한 감정은 증오에 가까웠다.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네놈도 반드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이야. 네놈과 같은 유대종자가 세계의 통치권자란 것은 순리를 역행하는 그야말로 오만방자한 짓거리란 말이다. 유대종자란 일찍이 씨를 말렸어야했을 가장 천박하고 교활한 종자가 아니었던가?”

  유태인들에 대한 반감 때문에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유니타스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높았다.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네놈은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어. 내 휘하에는 나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쳐 충성할 정예요원들이 수십만이 넘어. 그리고 이 지구를 분해하여 먼지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가공할 광양자탄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나를 당장 석방하지 않는다면, 너희 모두는 후회할 기회도 없이 죽음을 맞게 될 것이야. 파~아핫하하하하하하……!” 





7


  드윈 스뮐러에 대한 재판은 판결이 계속 미루어졌다. 웬만한 재판은 한 달을 넘기지 않고 판결하며 그 즉시 집행하기 마련인 것에 비해 매우 이례적이었다. 싸이파의 테러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그에 대한 처벌을 놓고 배심원들 간의 첨예한 의견대립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드윈 스뮐러를 그의 죄질에 걸맞게 최고형이라 할 수 있는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인류에게 공개하여 욕을 보이자는 의견을 고집했으나 또 한쪽에서는 그의 추종세력의 규모가 워낙 크고 그들이 지닌 전투력이 워낙 막강하여 과소평가해서는 큰 화를 자초하게 되리라는 주장을 폈다.

  “이것 보세요. 드윈 스뮐러를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구경하게끔 전시해놓겠다는 게 어디 제 정신 갖고 하는 소리요? 그 싸이판가 뭔가 하는 잡당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대뜸 전시장을 폭파하려들 테지. 그렇다고 사람들이 늘 드나드는 전시장 주변에 1개 사단급 병력과 탱크니 미사일이니 하는 것들을 배치해놓을 수도 없고 말이야.”

  “그렇다고 달리 적용할만한 마땅한 형벌도 없잖우. 아무리 극악무도해도 죽일 수 있는 법조항이 없으니……. 거 왜 사형제도를 폐지했는지 모르겠어. 차라리 사형언도를 내릴 수만 있다면……. 결국 최고형인 밀랍인형 형벌밖엔 선택할 여지가 없지 않겠소?”

  “참, 딱도 하시구려. 지금 드윈 스뮐러 재판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싸이파의 테러 때문에 애꿎은 목숨을 잃고 있는지 그걸 아직까지 모르고 하는 소리요? 밀랍인형 판결만 났다하면 아마 지금보다 더한 테러를 각오해야할게요.”

  “그러게……. 드윈 스뮐러인지 뭔지는 잡아놓고서도 오히려 더 골머리를 썩이고 있으니……. 풀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가둬둘 수도 없고…….”

  “방법은 딱 한 가지요. 싸이판지 뭔지 하는 불순세력들을 하루빨리 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잡아다 밀랍인형으로 만들어놓는 것이요.”  

  배심원들 사이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재판이 거듭될수록 전 세계 도처에서는 싸이파로 인한 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싸이파의 테러대상은 사람들이 밀집한 학교나 영화관, 백화점, 공항이나 전철역 등 장소나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모든 스페이스넷 언론매체들은 쉴 새 없이 싸이파가 저지른 테러사건들과 드윈 스뮐러나 그의 조직 싸이파에 관한 내용을 방영했다. 처음엔 그를 단순 테러리스트로 보도하면서 흉악무도한 인간으로 묘사하더니,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과거행적이 부풀려지기 시작했고, 일부 언론은 그를 미화하고 더 나아가 영웅시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비록 드윈 스뮐러가 악질 테러리스트는 분명하지만, 그 사람이 어디 보통사람인가? 그 카리스마만 놓고 봐도 분명 비범한 인물임엔 틀림없네. 차라리 그 사람을 대통령자리에 앉히면 어떨까 싶네. 물론 그리된다면 그 사람이 싸이파를 시켜 더 이상 테러를 저질러야할 이유도 없어지고 말이야. 내 말이 틀렸는가?”

  “뗏끼 이 사람아!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 따위 말 함부로 지껄이지 말게. 어디 가서 그 따위로 주절대다간 아마 실없는 놈 취급당하거나 아님 얻어터지기 딱 맞는 소리니까. 그 놈은 인간이 아닐세,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이지. 자기가 하버드법대니 또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니 등등 아무리 명문대 나왔기로 또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으면 뭘하나, 하는 짓거리가 악마 같으면 악마일 뿐이지. 그런 인간에게 뭔 대통령을 맡긴단 말인가, 세상 망쳐놓기 딱 십상이지. 괜한 소리 아예 하지를 말게. 말이 씨가 되네.”

  한동안 극성을 부리던 싸이파의 테러가 잠시 주춤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드윈 스뮐러에 관한 보도가 뜸해지고 사람들 입방아에도 차츰 덜 오르내리는 듯했다. 


  드윈 스뮐러가 에치엠에 의해 체포된 지 5개월여가 지난 서기 2037년11월24일 오전10시, 전 세계 주요 스페이스넷 언론방송을 통해 스스로 싸이파의 제2인자라 자칭하는 해머 스콧트의 5분에도 채 못 미치는 녹화테이프가 일제히 방영되었다.

  화면이 시작되면서 첫 장면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전투복차림에 별 네 개짜리 대장 계급장을 단 해머 스콧트가 ‘하잇, 스뮐러!’를 외치며 주먹 쥔 손을 위로 뻗어 올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이어 광양자화학탄 데쓰루의 모형과 그 데쓰루가 가져올 엄청난 파괴력을 담은 시뮬레이션을 공개했다.

  일반영상은 아마추어가 촬영한 듯 화면이 다소 거칠고 흐릿했다. 그러나 데쓰루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영상이나 데쓰루의 파괴력과 관련된 시뮬레이션은 마치 실제상황처럼 정교하게 묘사되어있었다.


  화려한 외모에 고운 목소리를 지닌 40대 중반의 중년여성이 데쓰루의 일반적 사양과 시뮬레이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300기가급 광양자화학탄 데쓰루는 암벽지반 지하 300미터 지점에 건설된 두께 2미터의 듀얼크롬(Dual Chrome) 돔(Dome)속에 안치되어있습니다. 데쓰루의 외관은 언뜻 보기에는 외계인이 몰고 왔을법한 비행접시, 즉 도톰한 원형접시처럼 생겼습니다.”

  영상은 데쓰루의 외관부터 구조가 하나하나 절개되어가는 모습을 상세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직경은 17.62미터이며 높이는 4.33미터, 무게는 261.82톤으로 은백색 몸체부분의 둥근 윗면에는 무수한 디지털 계기들이 형형색색의 불빛을 깜빡이며 촘촘히 박혀있습니다. 이 계기들은 사전에 입력된 정보 외에 시시각각 변화되는 외부환경을 스스로 계산하고 제어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몸체에 내장되어있는 슈퍼컴퓨터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보이는 각종 디지털계기들이 각종 그래프와 수치들을 형형색색의 빛깔들로 표시하고 있고 그 현란함은 불꽃놀이 못잖은 아름다움마저 지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데쓰루는 리모트컨트롤에 의해 원격조정되며, 작동시 176개의 각기 다른 핵탄두로 분해되어 각 핵탄두마다 미리 입력된 정보에 의해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여 폭발하게끔 추적장치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분해시의 엄청난 핵폭발력에 의해 순간 최고속도는 광속에 가까운 20마하에 이릅니다.”

  시뮬레이션은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천지가 온통 검은 잿더미에 쌓이게 되는 섬뜩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데쓰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7천5백만 배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녔으며, 광양자폭풍이 미치는 영향권은 대기권으로 38킬로미터 지점과 암벽으로 이루어진 지하 60여 미터 지점까지 미치게 됩니다.”

  여성의 멘트가 끝나자 화면이 ‘찌직!’거리며 몇 초간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해머 스콧트가 다시 두툼한 살집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본인은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드윈 스뮐러 각하로부터 비상시 전권을 위임받은 해머 스콧트 대장이다.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 각하, 그리고 원로원의원 여러분,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경고한다. 오는 11월25일 낮12시 정각까지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드윈 스뮐러 각하를 조건 없이 석방하라.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건대 11월25일 낮12시 정각까지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드윈 스뮐러 각하를 조건 없이 석방하라. 어떠한 대화나 협상도 거부할 것이며 요구에 불응하면 그로부터 정확하게 3시간 후인 오후3시 정각에 데쓰루를 가차 없이 터뜨릴 것이다. 인류가 몸담고 있는 이 지구를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만들 것이다.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이상!”


  해머 스콧트가 제시한 시간적 여유는 불과 26시간뿐이었다. 인류는 불안에 떨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해머 스콧트란 작자는 누구인가?” 

  매스컴에서는 해머 스콧트에 대한 집중적인 보도를 하는 한편, 그에 대한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에 관련된 보도는 최근의 그의 모습을 담은 영상 몇 편을 제외하고는 그의 출생 및 성장과정의 자료며 군 경력의 자료며 형무소 수형기록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증발해버린 상태로 그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과거 한때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증언과 추측에서 나온 것들뿐이다.  

  유씨씨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기관이나 언론기관에서 해머 스콧트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 해도 드윈 스뮐러와는 달리 그와 관련된 정보는 유니타스의 초집적지능컴퓨터 투가는 물론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유니타스특별수형자형무소에 수기로 된 단편적 기록 일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드윈 스뮐러를 체포하고 나서 그 시각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싸이파와 관련된 크고 작은 테러가 총 126건이나 되었으며, 그러한 테러는 모두 해머 스콧트에 의해 지시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테러에 의한 사상자는 200만 명을 육박했고, 유니타스인구통계부가 밝힌 보다 정확한 통계에 의하면 764,276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수만 1,207,352명이나 되었다. 그렇듯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처럼 다루는 싸이파가 무슨 짓인들 못 저지르겠는가 하는 우려가 여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유니타스가 다시 발령한 1급 계엄령 하에 에치엠을 비롯한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전 세계에서 펼쳐진 싸이파 소탕작전에서 사살된 싸이파는 52, 782명이고 사로잡힌 싸이파는 23,916명이나 되었지만, 그들 사로잡힌 싸이파들로부터는 그 어떠한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사살되었거나 사로잡힌 싸이파들은 모두 행동대원으로서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 얼굴 없는 상부의 지시에 의해 행동했을 뿐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순수 게르만혈통으로만 이루어진 슈틀러란 제국을 건설하는데 자신의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친다’라는 것이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나서게 하는 당위성의 전부였다.

  매스컴에서는 싸이파의 실세가 드윈 스뮐러가 아닌 해머 스콧트라고 단정 짓고, 오히려 해머 스콧트가 드윈 스뮐러를 전면에 내세워 그를 조정해왔을 것이란 그럴듯한 스토리를 엮어냈다. 그리고 그의 우람한 덩치에 걸맞게 그의 대담무쌍하고 과격한 성격을 조명했다. 


  인류는 어느새 드윈 스뮐러보다 해머 스콧트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대개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 싸움이야. 싸이파의 우두머리인 해머 스콧트와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 간의……. 결국 해머 스콧트가 기 싸움에서 이기게 되겠지만…….”

  “만약에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가 해머 스콧트의 요구대로 드윈 스뮐러를 풀어줬을 경우, 어떻게 되는 걸까?”

  “글쎄……, 나중 문제야 어찌되든 간에 해머 스콧트의 요구를 안 들어줄 수도 없잖아. 데쓰루인지 뭔지 터뜨리는 날엔 모두가 끝장난다는데 대통령인들 무슨 수로 버틸 수 있겠어. 그리고 그리되면 그 해머 스콧튼지 드윈 스뮐런지 하는 인간은 유니타스 최고의 권력기관조차 통제할 수 없는 막강한 세력을 거머쥐게 되겠지.”   


  그러나 계엄령 발효 이후 원로원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는 인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초강경 입장을 표명했다. 

  해머 스콧트의 협박성명이 발표된 지 불과 4시간 후, 전 세계 매스컴을 통해 테러범과의 타협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으며, 또한 그러한 생각조차 가져서는 안 될 것이라 강변하고, 따라서 해머 스콧트의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본인은 전 세계 통합국가 유니타스의 전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으로서, 32억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과 협박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동안 싸이파에 의한 수많은 테러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숱하게 죽거나 다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테러를 미리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를 드립니다.”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는 잠시 연설을 중단하고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한동안 침묵상태를 유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인류들도 아마 죽은 영령들을 위해 묵념하는 중일 것이란 생각이 들자 덩달아 숙연한 감정에 휩싸였다.

  “전 세계의 모든 인류는 네 시간 전, 해머 스콧트의 협박방송을 보아 잘 알고 있듯이, 지금 우리는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해머 스콧트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안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참으로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한동안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장한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번쩍 들더니 전면을 빤히 응시하고는 단숨에 다음 말을 이어갔다.  

  “본인은 어떠한 테러에도 굽히지 않고 강경한 대응으로 맞설 것입니다. 우리가 해머 스콧트의 협박에 굴한다면 그 순간부터 이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과 대혼돈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주인처럼 설쳐대는 세상에서, 모든 공권력이 제 기능을 상실한 무정부상태에서 힘없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인류에게는 더 이상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없으며, 희망이란 것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는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싸이파 전멸작전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천명했고, 싸이파가 보유하고 있다는 데쓰루란 광양자화학탄의 존재마저 완강하게 부인했다.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는 성명이 끝나는 즉시 기존에 발동한 1급 계엄령 대신 전 세계에 특A급 전시상황체제를 선포했다. 일체의 사적인 통행은 물론 산업활동행위, 수송수단의 운행 등 모든 가시적 활동 일체를 금지시켰다. 에치엠은 물론 군 병력, 경찰 및 자위대와 정보기관 등을 총동원하여 모든 시설에서 가정집까지 철저히 수색하고 싸이파의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의심되는 모든 사람들을 체포, 구금하기 시작했다.

  모든 활동이 철저히 통제되어 도시의 거리는 물론 위성으로 내려다보이는 모든 산야에서도 사람의 움직임은커녕 그림자조차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처럼 개미새끼 한 마리의 움직임조차 파악되고 모든 것이 엄격하게 통제된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싸이파라 해도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싸이파의 테러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전에 모두 원천봉쇄가 된 듯했고, 해머 스콧트의 협박도 실행으로 옮길 가능성이 희박해보였다. 





8


  예상과는 달리 대통령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가 해머 스콧트의 드윈 스뮐러를 석방하라는 요구에 끝내 응하지 않고 철저하게 맞대응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자, 인류는 이에 큰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잘한 짓이다. 이참에 일당들 모조리 잡아 죽일 수만 있다면 속이 다 시원하겠다.”

  “참 미친놈들이야. 아무리 물불 안 가리는 테러리스트라지만 인류와 지구를 볼모로 그따위 협박이나 하고……. 그런 놈들은 잡히기만 하면 갈가리 찢어 죽여야 하는데…….”

  “폭탄 터뜨리면 제 놈들은 안 죽나? 어찌 생각하는 게 그 모양인지…….”

  “저들 목숨뿐인가? 저들한테도 부모나 처자가 있을 텐데…….”

  “설마 폭탄 하나 터뜨린다고 그 영화처럼 지구가 그 모양이 되겠나. 괜히 겁주려고 그러는 거겠지.”

  “도대체 그 미치광이 해머 스콧트란 놈은 어디에 숨어있는 거야? 하여튼 그놈 잡으려고 난리법석인데도 잡히질 않으니 말이야.”

  “어딘가 쥐새끼처럼 꽁꽁 숨어있겠지. 하도 인간들이 많다보니 별 미친놈들이 다 섞여있네. 꼭 테러하는 놈들 보면 떳떳하게 나서서 하질 못하고 숨어서 뒤통수만 깐다니까. 도둑괭이처럼……. 치사하고 야비한 놈들 같으니…….”


  그러나 인류 대다수는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의 결단에 전적으로 동조하면서도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인류는 해머 스콧트의 경고방송을 지켜본 이래,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시계와 멀티스크린만 계속 들여다보며 지구와 인류의 운명을 점치기에 바빴다. 모든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해머 스콧트의 석방요구시한이 지나갔다. 

  그리고 보복의 시간인 오후3시도 예정대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페이스넷방송마다 대통령궁에서 초조한 듯 팔짱끼고 서성거리는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 대통령의 모습과 원로원의원들, 주요 수장들의 동태를 시시각각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모두들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엉덩이를 자꾸 들썩이며 마른 침을 삼켜대고 있었다. 누구라도 예외 없이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그 외에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아 애꿎은 멀티스크린만 뚫어져라 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최후의 카운트다운을 지켜보는 그 시각에 재벌이나 특권층들은 해머 스콧트의 경고를 피하여 지하도시로 숨어들거나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지하도시는 지표면의 오염이 가속화되던 2018년경부터 일부 신귀족층들의 수요에 맞물려 대기업들에 의해 벙커형식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던 것이 나중엔 각 나라별로 한꺼번에 수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지하도시 건설붐이 일었었다. 따라서 그간 건설된 지하도시는 전 세계 곳곳에 걸쳐 지하 300m에서 깊게는 1,500m 지점에 모두 230여 개소가 건설되었으며, 모든 지하도시의 수용능력을 합산하면 4억5천만 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한 지하도시들은 모두 극비리에 건설되었으며, 일반서민들은 전 세계에 지하도시가 이미 수백 개나 건설되었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어도 그저 풍문으로 떠도는 소문이려니 여길 뿐이었다. 

  지하도시는 땅 속에 거대한 인공공간을 조성하여 도시 하나를 수용해야하는 만큼 건설공사로서의 난해함은 물론, 지상과 다를 바 없는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상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야했다. 따라서 똑같은 전용면적이라도 지상의 것에 비해 적게는 20배, 많게는 60배 이상의 건설비용이 소요되었다. 

  데쓰루 투하 협박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지하도시에 입주하려는 인류들의 성황으로 불과 7시간 만에 여유 주거공간이 모두 매진되었는데, 최소단위 1블록 30입방미터에 웬만한 고급저택 한 채 값인 2천4백만 유니타스 달러까지 치솟았다. 

  신귀족층을 비롯한 특권층 가운데 일부는 화성행 우주여행선을 택했다. 유니타스는 과거 미국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진행하여왔던 우주개발계획 미저리-4의 일환으로 건설된 화성연구기지 외에 여행객 2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마르스센텀시티를 건설했다. 평상시엔 성인 1인 우주여행선 왕복탑승비용과 20일간 화성체류비용 등의 합산비용이 1백7십2만 유니타스 달러였으나 협박성명 발표 직후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여행선 편도비용만 8백6십만 달러까지 폭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두 시간 만에 매진된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핵물리학자와 핵무기관련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광양자화학탄의 성격이나 그 파괴력에 대한 열띤 토론들을 보여주고, 데쓰루가 미칠 파장에 대한 모의장면을 재구성해보이기도 했다. 학자와 전문가 간에도 많은 의견차이가 드러났다. 학자들은 데쓰루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전문가들은 현재의 화학 및 핵무기제조기술로도 한 발의 폭탄으로 세계를 쓸어버릴만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는 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장담하며 광양자화학탄의 성능을 300기가급으로 높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구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예끼 여보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한 발의 폭탄으로 어찌 지구를 빙 돌아가며 파괴할 수 있단 말이오? 만유인력의 법칙도 모르슈? 중력에 의해 폭발력은 확산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그러니 아무리 파괴력이 대단한 광양자폭탄이라도 지구 한쪽 면은 파괴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발로 전 지구면을 파괴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순 억지에 불과하다, 그런 말이오.”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마침 중력을 거론하시는데, 이 중력이란 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확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중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일정 압력을 넘어서면 그 초과된 여분의 에너지에 의해 확산이 진행되고, 또 이 중력이란 것이 광양자화학탄의 폭발력을 대기권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억제하면서 일견 확산을 돕게 된다는 이치지요. 그리고 단 한 발이라지만 데쓰루가 폭발하면서 176개의 핵탄두로 분해되어 그 핵탄두들이 전 세계 각지의 목표물로 흩어지면서 연쇄적으로 폭발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주제가 빗나가는 말씀만 하시는구려. 지금 단 한 발의 폭탄으로 지구를 과연 폐허로 만들 수 있냐 없냐를 논하는 자리로 여겨지는데……. 어쨌든 제 생각은 혹 네 발을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린다면 모를까, 단 한 발로는 어림없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거 해머 스콧트가 단 한 발 어쩌고 하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 이런 말이지요. 아마 그 친구 괜한 엄포일 겁니다.”

  “제 생각은 그 친구의 말을 단순한 엄포로 하찮게 여겼다간 오히려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비록 지구 전체를 절단 낼 수는 없을지 몰라도 광양자화학탄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만 보유하고 있다면, 언제라도 상당한 피해를 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스페이스넷 방송들은 싸이파란 테러조직에 관한 실체가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그것과 관련된 뉴스를 내보냈다. 싸이파의 본거지인 베링거마을이 집중포화를 맞아 화염에 휩싸인 광경도 보였고, 지하 깊숙이 파고들어간 벙커들을 대규모 병력이 에워싸고 하나씩 폭파해나가는 장면도 보였다.

  가끔씩 싸이파와 관련된 특집과 뉴스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싸이파 대원의 검거나 사살과 관련된 속보도 보도되었다. 한동안 인류는 그런 속보가 보도될 때마다 함성을 지르며 즐거워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해 질뿐 도무지 그런 뉴스에도 감흥이 일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이 증폭되어 숨 막힐 듯한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참으로 매정한 것이 시간을 재는 시계들이었다. 불안에 떠는 인류의 조바심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 세계의 모든 시계들이 일제히 그리고 정확하고도 어김없이 1초, 1초……, 촌각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이다.

  해머 스콧트가 데쓰루를 터뜨리겠다고 호언장담한 시각인 3시 정각을 불과 100초 남겨놓고 전 세계 모든 스페이스넷 방송들이 카운트다운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화면마다 디지털 숫자 100이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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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카운터의 숫자는 어김없이 깜빡거리며 계속 내려갔다.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모든 인류는 입의 침이 바싹 마르고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한 숨 막히는 긴장 속에 오직 ‘죽음의 사자’가 제발 빗겨가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빌 수밖에 없었다. 카운터의 숫자가 작아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려서 아랫도리가 흥건하게 젖은 사람은 물론, 똥까지 싼 사람도 제법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어떠한 테러에도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며 시종일관 초강경세로 밀어붙이던 알렉산드로 미하일로프의 협상거부로 결국 지구는 죽음의 별로, 그리고 인류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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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이브’


4 ‘포오’


3 ‘쓰리’


2 ‘투’


1 ‘원’


0 ‘제로’


  드디어 운명의 시각은 정확하게 들이닥쳤다.


  서기 2037년11월25일 오후3시 정각, 모든 인류가 초조함과 긴장감 속에 맞이한 운명의 시각. 숨 막히는 정적으로 쌓인, 어쩌면 그로인해 더욱 평화롭게 비쳐지기만 하던 세상이 3초 동안 눈을 뜰 수 없는 백광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흔적 없이 녹아 사라지고, 세상은 창세기의 태초처럼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 제2화에서 계속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