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원래 그곳 옆에 있던 집들처럼 작고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할 곳이지만 그곳은 파다 만 흙더미와 그새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곳 옆에 있는 도로를 지나가면서 왜 흙을 저렇게나 많이 파놓았나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큰 건물이 들어서는 것일까. 죽어가는, 아니 이미 죽어 버린 이 지역에 2년 전부터 서서히 카페,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 요즘 세대가 좋아할 곳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낡은 건물들도 시대에 맞춰 간판을 입체적으로 바꾸고 내부 인테리어를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가게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변화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던 나로썬 이번에도 그저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곳을 지나쳤었다.
나는 이사 온 후 그곳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고 아파트 후문을 나서면 좁은 도로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 도로를 건너 오르막길을 오르고 평지가 나오면 또 그 평지를 따라 쭉 걸어간 후 왼쪽으로 꺾으면 학교가 나왔다. 평지에 나있는 길은 세월에 깎인 강물처럼 크게 몇 번 휘어져 있었다. 특이 했던 건 그 평지에도 좁은 도로가 나있었는데 그 왼쪽은 흔히 말하는 달동네였고 오른쪽엔 그곳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의 땅을 깊게 파놓았는지 오른 쪽 도로 옆 도보의 가장자리에는 행인들이 떨어지지 못하도록 높은 철판이 버티고 있었다. 왼쪽 사람들이 평지에서 본다면 보이지 않을 높이로 말이다.
나는 3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길을 걸어 다녔다. 버스를 타고 가기엔 그 시간과 거리가 너무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 들고 막연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길 중간에 있던 낡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곤 했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왼쪽 사람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길의 하늘만은 유난히 푸르다고 느껴져 넋이 나간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왼쪽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곤 했다. 그곳을 바라보는 그들의 삶을 내 멋대로 지어내는 것은 마음이 아프기도, 또 감정을 심하게 이입했을 땐 화가 나기도 했다. 철저히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은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내게 그곳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그곳엔 주상 복합의 아파트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주상복합 아파트라. 그렇다면 그 높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확실히 왼쪽 동네 보다는 높을 것이다. 더 빛나고 더 세련되고 더 튼튼하고. 왼쪽엔 칠이 벗겨져 회색 시멘트가 다 드러난 집들이 불룩 솟은 언덕을 따라 늘어져 있는데 오른쪽엔 최신형 주상 복합 아파트라니. 완성되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런 부조화를 고른 개발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의 덜 개발된 지역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아파트를 짓는 다면 그곳의 상권이 살 것이고 그럼 그곳 근처의 사람들은 소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쎄다. 나만해도 먹고 싶은걸 살 때면 버스를 타고 대형 할인마트에 가는데 그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있을까. 그들은 분명 한 집에 자동차 한 대씩은 갖고 있을 텐데 말이다. 정말 의아했다.
2학년 때 쯤, 점점 그곳에 공사가 시작된다는 걸 느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2학년도 토요일에 보충수업이 있어 매 주 토요일마다 학교에 나가야 했었다. 첫 토요일 보충 수업이 있던 날, 그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하늘은 평소보다 연한 먹구름이 끼어 시커먼 먹구름이 낄 때 보다 어딘지 서글픈 느낌을 주었다. 오후 5시, 자습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철판으로 빙 둘러진 그곳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모래를 실은 큰 트럭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공사장 인부로 보이는 어른 몇 명이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트럭에서 약간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는 철근 한 뭉텅이가 쌓여 있었다. 나는 몰래 들어왔다는 게 마음에 걸려 그것밖에 구경하지 못하고 그곳을 나왔다. 공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 고삼이 됐을 때 아파트 짓는 소리로 인해 수업시간이 방해를 받을까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나를 비롯한 우리 학교 학생들보다도 소음에 심각하게 시달리는 사람은 그곳 맞은편에 있는 왼쪽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쿵쿵, 딱딱딱, 드르르르 같은 소음에 매일을 시달려야 한다면 정말 스트레스가 심할 텐데.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희생이 없다면 새로운 것들은 영영 생겨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놓일 것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평소보다 5시간은 일찍 학교를 마쳤다. 나와 내 친구 상화는 맘 놓고 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상화에게 너희 집에 가서 놀자고 제안했고 상화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리는 상화네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기 위해 학교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낡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좁은 길을 걸어오며 우리는 시험 얘기만 하지 않고 온갖 얘기들을 다 늘어놓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바로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곳이야?”
상화는 그곳을 고개로 까딱, 가리키며 물었다.
“응. 공사는 올 봄부터 시작하는 것 같더라.”
“언제 완공될까? 우리가 졸업하기 전에 될까?”
“아마 안 될 것 같은데. 아직 기초단계인데 그렇게 빨리 완공될 리가 없지.”
나는 봄에 그곳에 들어가 본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아. 그렇겠네. 그런데 저기에 아파트 들어서면 이쪽 사람들, 좀 그러겠다. 지나가면서 봐도 뭔가 안 어울릴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한 쪽만 몇 십 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가 떡하니 놓여있고 그 옆에는 낮고 작은 집이랑 상가 밖에 없잖아. 개발을 할 거면 한꺼번에 다 하든지. 아님 좀 조화가 맞게 적당히 조절해서 하든지. 아파트 반대편 사람은 얼마나 위화감이 들겠어.”
“내 말이. 아, 버스 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 한 참 동안은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한 것 같다. 그러다 서로 흥분했는지 사회 구조적 모순까지 들먹였다. 우리는 사회 시간에 배운 걸 시험이 아닌 여기서 써먹는다며 웃었다. 그러다 화제는 집에 가서 뭘 하고 놀 건지, 뭘 해서 먹으면 맛있을지 등 시험이 끝난 후의 여유와 해방감을 즐기는 쪽으로 흘러갔다.
상화네 집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배고픔을 달래는 일이었다. 우리는 김치볶음밥을 초스피드로 만들어 먹었고 배가 찬 후에는 상화의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졸업사진을 보았다. 서로 아는 애가 나오면 반가워하기도 하고 옛날 상화의 촌스런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그런 후 방 바닥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학교생활 얘기, 연예인 얘기, 대학 얘기 등 별별 얘기를 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화가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꺼냈다.
“맞다, 아까 우리가 얘기 했던 거 있잖아, 그, 새로운 아파트 짓는 거.”
“어. 그게 왜?”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파트도 좀 비슷한 것 같아.”
“비슷하다고? 어떻게?”
나는 상화네 동네에 잘 몰랐기 때문에 상화에게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바라며 상화의 말에 집중했다.
“음, 우리 집 뒤에 재래시장이 있어, 혹시 아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있어. 근데 아무래도 재래시장이다 보니까 건물도 높아봐야 3층이고 그래. 대체적으로 건물이 낮은 편이란 말이야.”
“응.”
“그래서인지 우리 아파트랑 그 시장을 같이 보면 뭔가 안 어울리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 한 마디로 우리 아파트 쪽에 개발을 몰빵한 것 같은 느낌이야. 근데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그 시장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더라? 그러다가 우리 중학생 때 여기 근처에 대형할인마트 하나 생겼잖아. 그 뒤로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니까 그 시장이 다시 죽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면 아까 정류장 쪽에 있던 곳도 그렇게 될 수 있겠네.”
“꼭 그런다는 건 아니지만 뭐, 그럴 가능성이 많지.”
나는 상화의 말을 듣고 다시 그곳을 떠올렸다. 그곳에 아파트가 완공 되면 그곳 건너편의 사람들도 상화의 집 뒤에 있는 재래시장처럼 되는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기대조차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미 이런 상황을 주변에서 많이 접해 아예 신경도 안 쓸지 모른다. 나는 깊이 생각할수록 머릿속 무엇인가가 엉켜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시선을 내 멋대로 추측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람의 감정을, 그것도 집단적으로 뭉쳐있는 사람들의 그것을 파악하는 건 애초에 내겐 무리였던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시험이 끝난 날 이렇게 무거운 주제로 골머리를 앓고 싶진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곳의 잔상을 잊기 위해 다시 일상적인 얘기로 돌아갔다.
고등학생의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가을에 중간, 겨울에 기말 시험을 보고 나니 어느 새 1월이 되었다. 나는 정말 올 것 같지 않았던 고삼이란 시기를 맞아버린 것이다. 겨울 방학은 했지만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그러하듯이 방학을 방학처럼 보낼 순 없다. 보충수업은 1월 내내 있었고 진짜 쉬는 방학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선생님들은 그 일주일도 고삼치곤 긴 시간이라며 감사히 여기라고 하셨다. 나는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듣고 야자를 했다. 아침마다 늘 그곳을 지나 학교를 오지만 예전처럼 그곳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겨울 방학까지 학교에 나오느라 피곤은 쌓여 잠이 많아 졌고 아침에는 거의 매일 늦잠을 잤다. 따라서 지각을 피하기 위해서는 늘 달려야만 했기에 그곳을 볼 여유가 없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선 방학보다 야자 시간이 늘어났고 공휴일마저 학교에 나왔다. 학교시험이 끝나도 수능이라는 시험이 아직 남아있기에 맘이 편하지가 않았다. 게다가 9월 달에는 대학에 원서를 접수하고 자기소개서까지 제출해야 했기에 평소보다 배로 바빴고 그 이후에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거의 인간답게 살지 못할 정도로 학업에 치이며 살았다. 그리고 수능을 봤다. 썩 만족할만한 점수는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그냥 넘겨버리기로 했다. ‘이미 끝난 것을 어쩌랴.’는 심정으로 말이다.
수능이 끝난 고3은 더 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아침 늦게 와서 점심만 먹고 바로 끝났다. 학교에선 정말 할 일이 없어 예전에 나온 영화들을 보며 시간을 때웠고 간혹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아주 좋게 보내고 있다고 만족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에 마주치는 그곳에도 다시 눈길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는 탁한 회색의 건물이 몇 개 지어져 있었는데 조금은 아파트의 형체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건물은 복도식 아파트인지 아파트 문 크기의 세로로 긴 직사각형 구멍이 일정 간격으로 뚫려 있었고 그 앞에는 복도를 두고 난간이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완성이 되겠구나. 점점 완성되어 가는 아파트를 보며 왼쪽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또 멋대로 그들의 감정을 추측했다. 사실 그들은 그곳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요즘 시대에 맞춰 신식 아파트가 들어오나 보다. 그저 그렇게만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굳이 그곳에 대한 그 사람들의 생각을 추측해서 안타까워하고 씁쓸해하는 것일까. 나는 비교적 한가했던 그때처럼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낡은 의자와 2개의 버스노선표가 붙여진 정류장. 그대로다. 낡은 의자가 더 낡아지고 버스노선 표에 때가 더 탔다는 것 빼고.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추운 날씨에 패딩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두 손은 주머니에 꽉 찔러 넣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이며 걸어가는 아줌마. 어디 예식장에라도 가는 자주색 코트에 검정바지를 입고 평소에는 잘 쓸 것 같지 않은 검은색 손가방을 들고 바삐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 그리고 가끔씩 지나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 어느 누구도 그곳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12월이 되고 얼마 안 있어서 나는 고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늘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갈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갑자기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내려오시냐고 물었고 고모는 내 친할머니의 거처를 정하기 위함이라고 답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고모를 보니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도 됐다. 고모는 오늘 저녁쯤에야 도착할 것 같다고 하셨다. 학교에 돌아오고 나서는 책을 읽는 동안에도 시간을 확인했다. 4시 35분, 5시 27분, 6시 49분. 고모가 아직도 안 오신 걸 보면 길을 헤매는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되었다. 고모는 내가 중학생 때 우리 집을 한 번 들린 후로 약 3년 만에 다시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니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고 책에 몰두했다. 한참 책에 빠져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모가 오신 것이다. 나는 책을 엎어 두고 방을 나갔다. 고모는 현관문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시면서 나를 향해 환히 웃으시곤 정말 반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고모가 웃을 때 눈과 볼에 깊이 파인 주름살을 보고 그 새 고모가 많이 늙으셨다는 걸 느꼈다. 3년 사이에 고모의 머리엔 흰 머리가 많이 자라 머리색이 거의 회색빛에 가까웠다. 나는 팔을 벌려 고모를 안았다. 예전에는 맡을 수 없었던 할머니에게서나 날 것 같은 냄새가, 한마디로 말해서 할머니 특유의 늙은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고모는 겉옷을 벗고 미리 보일러를 틀어놓은 거실 바닥에 앉으셨다. 고모는 내게 많이 컸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엄마와 예전 이야기들을 늘어 놓으셨다. 그것은 거의 친가 쪽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얘기를 주고받으며 무슨 슬픈 사정이 많은 지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시고 손을 내젓기도 하셨다. 그렇게 얘기를 하다 얘깃거리가 다 떨어졌는지 내게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그나저나 너는 저기에 있는 ○○여고 다니니?”
고모는 턱으로 그곳 쪽을 가리키며 물으셨다.
“네.”
나는 달리 덧붙일 말이 없어 짧게 대답했다.
“가까워서 좋겠네. 아침마다 걸어가지?”
“네. 올 때도 걸어와요. 가까우니까 아침 늦게 일어나도 빨리 준비해서 달려가면 되니까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그래. 근데 너 학교 가는 길 그쪽에 말이야. 뭐 짓고 있는 것 같더라. 내가 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보니까 무슨 아파트 같은 걸 짓고 있더라고. 예전엔 거기가 안 그랬거든.”
“아, 네. 아파트 짓고 있어요. 근데 예전엔 거기가 어땠는데요?”
나는 고모가 그곳에 대한 애기를 하자 조금은 놀랐다. 고모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 전까지는 이곳 △△시에 계셨는데 고모가 살던 쪽은 이쪽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고모가 그곳에 대해서 알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다. 나는 그곳이 예전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궁금했기에 친척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보다 훨씬 집중해서 들었다.
“그쪽이 원래는 다 주택이었어. 1층짜리 주택. 보니까 그쪽 옆에는 예전 그 집들 그대로 있더라고. 지금 아파트 짓고 있는 곳도 그 옆에처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 거기에서 우리 시누이가 살아가지고 가끔 가곤 했는데. 아야, 이제 보니까 거기가 싹 없어졌더라.”
맞다. 불현 듯 생각이 났다. 원래 그곳은 그 옆처럼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인가 그곳 옆 주택에 사는 친구가 내게 말해준 기억이 있다. 원래 그 쪽 주변이 다 주택이었다고, 그런데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아파트가 지어질 곳은 보상금을 받고 이사 갔는데 자기네는 한 끗 차이로 아깝게 그 보상금을 못 받았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정말 아깝다며 아파트를 한 채만 더 지어서 너희 집까지 이사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그렇다면 고모의 시누이는 보상금을 받고 이사를 갔을까. 나는 예전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지 고모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고모는 시누이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며 잘 모른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그곳에 대한 뭔가를 더 알아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나도 왜 이렇게 그곳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지 잘 몰랐다. 그저 학교를 갈 때마다-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는 밤 10시가 넘었을 때라 그 때는 건물이 귀신이 나오는 짓다 만 아파트처럼 무서웠기 때문에 일부러 그 쪽을 보지 않았다- 항상 봐서 정이 들었나? 아니면 그곳 주변의 사람들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느껴서인가? 나는 또 다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굳이 답을 내리라고 한다면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서’였다.
어느 덧 시간이 지나 12월도 다 지나가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책 몇 권을 읽고 그 동안 공부에 치여 보지 못했던 영화와 TV프로그램들을 보며 빈둥거리고 집안 일 좀 도우고 인터넷을 뒤적이며 인생에 있어서 가장 여유롭고 한가한 때를 즐길 뿐이었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맘대로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벌써 12월의 마지막이었다. 31일. 열아홉 살의 마지막 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특별할 건 없었다. 친구들은 12시에 나가 당당히 민증을 내밀고 술을 먹겠다고 했지만 나는 집 분위기 상 새벽에 나갈 수 없단 걸 알기에 일찌감치 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오늘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오늘은 방학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며칠 전부터 짐을 나눠갔기 때문에 챙길 짐이 많지 않았다. 쇼핑백 하나에 담요와 실내화만 챙기면 되었다. 반 친구들과 나는 ‘보고 싶을 거야.’, ‘연락 많이 해야 돼.’, ‘나 잊으면 안 돼.’와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나는 쇼핑백을 들고 교문을 나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앞으로 졸업 날에만 이곳에 올 것이다. 3년 동안 다닌 학교를 다시는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고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쉬움에 한 번 더 학교를 돌아보고는 다시 돌아섰다. 집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3년을 다닌 길. 어째 변한 게 없었다. 아니면 항상 지나쳤던 곳이라 그런지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일 수도.
나는 길을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앞으로 이 곳을 오는 일은 졸업 날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가족과 외식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 길을 지나서 집에 오진 않을 것이기에 나는 이 길을 마지막으로 눈여겨보기로 했다. 칠이 벗겨진 버스 정류장, 그 뒤에 있는 낮은 돌담과 내 손바닥의 두 배정도 되는 수많은 돌들 사이를 뚫고 나온 작은 풀들, 길을 따라서 줄줄이 늘어선 키 작은 가게들. 그리고 그 정겨운 곳과 배치되듯이 서있는 건너편의 높은 아파트. 이제는 거의 완공이 된 듯하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아파트 뿐 아니라 아파트 주변을 싸고 있는 높은 담까지 새로 지어져 있었다. 아예 아파트 사람이 아니면 접근 자체를 차단하려는 듯이 높게 서 있는 장벽은 아파트와 더불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불러냈다.
‘아예 접근 자체를 막아놔 버렸군. 감히 올려보지도 못하게.’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속으로만 감히 비아냥거렸다. 그리곤 그곳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몇 십 년은 된 것 같은 가게들이 나왔다. 조금만 여길 벗어나도 가게들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는데 이곳은 유난히도 구석진 곳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 동네 사람들의 뚝심인지는 모르겠어도 이곳 가게들은 칠이 벗겨지면 벗겨진 대로 지붕이 녹슬면 녹슨 대로 두었다. 처음에는 조금 지저분하고 융통성 없다 생각했는데 많이 보다 보니 낡은 건물 특유의 정감이 느껴졌다. 찬찬히 뜯어보면 낙서도 없고 유리창이 부서지거나 하는 등의 위협적인 요소들도 없어 건물들이 그리 나쁘게 늙은 것 같진 않아 보였다.
나는 다시 길을 따라 쭉 걸었고 아쉬운 마음 반, 완전한 해방감 반으로 집에 왔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대충 집에 있는 반찬으로 밥을 챙겨먹었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책을 읽을까. 아니면 영화를 볼까. 나는 평소 매일 하던 고민이지만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더 고민되는지 몰랐다. 나는 고민 고민하다 상화한테 전화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화도 나처럼 오늘은 어떻게 무료함을 달래며 하루를 보낼지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상화야, 뭐해?”
“뭐하겠어. 빈둥거리고 있지.”
상화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말했다.
“심심하다. 얘기나 하자. 오늘은 몇 분 통화할까? 저번에는 한 시간 넘겼잖아. 별 말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삼천포로 빠져. 문제야 문제.”
“근데 그래야 재밌잖아.”
나와 상화는 벌써부터 수다에 빠졌다. 의미 없는 서론을 이렇게나 길게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근데 걱정되지 않아? 대학가는 거 말이야.”
상화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우리 기숙사 떨어지면 방 얻어야 되잖아. 요새 서울 방 값도 말이 아니게 비싼데.”
“그러니까. 부모님한테 미안해 죽겠어.”
“알바를 한다 해도 주말알바밖에 못하잖아. 평일엔 공부해야 되니까.”
“아휴. 장학금 받고 싶어도 서울 애들은 공부 잘 하니까 힘들 거 아니야.”
“하. 답이 없다. 답이.”
나는 막막한 듯이 말했다. 우리는 대학 얘기만 30분을 더 했다. 걱정은 접어두고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을 말하며 고등학교 생활과 다른 대학 생활의 자유로움을 미리 상상해 보았다. 봄이 오면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으며 교정을 거닐고, 여름이면 대학 근처 카페에서 동기들과 시원한 빙수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가을이면 길가에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며 이유 없는 쓸쓸함을 느끼고, 겨울이면 눈이 수북이 쌓인 곳에 드러누워 고요히 떨어지는 함박눈을 맞고. 우리는 캠퍼스 생활에 한없는 기대를 보태며 앞날을 꿈꾸었다.
초, 충, 고를 거쳐 오면서 맞은 방학 중에 이처럼 여유롭게 보낸 방학이 있을까. 초등학교 때는 방학 숙제가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보충 수업과 학업 부담이 있었지만 이번 방학은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교양을 쌓기 위해 도서관을 들리며 책을 빌렸고 수험생활 동안 쪘던 살을 빼기 위해 틈틈이 운동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을 정식으로 마치는 졸업식을 행복하고 섭섭한 복잡 미묘한 마음으로 치렀고 그 후 본격적으로 서울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기숙사 선발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을 알아봐야 했다. 방 값이 비쌌기 때문에 친구들 중 나처럼 기숙사에서 떨어진 아이가 있다면 같이 방을 써 방 값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지만 주변에 기숙사를 떨어진 친구가 없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외삼촌 집에서 사나흘 정도 머물며 방을 알아보았다. 대학교 근처는 다른 데 보다 평균 십 만원은 더 비싼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와는 좀 떨어진 곳에 방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내가 쓸 짐을 들여왔고 간단한 생활용품들은 근처 대형마트에서 사왔다. 짐을 다 들여 놓고 청소까지 하고 나자 방에 한결 생기가 돌았다.
서울은 내가 살던 시보다 훨씬 넓었다. 그렇기에 지명을 익히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내가 살았던 시는 동만 있었는데 여기는 무슨 구, 무슨 동 이렇게 있었기 때문에 지명을 외우는 게 훨씬 복잡했다. 나는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서울 지리를 익혔다. TV프로그램에서 간간히 나오는 서울의 명소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속으로 내가 이렇게 촌년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걸 태어날 때부터 옆에 끼고 사니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인 듯 했다. 버스 안에서 신기한 눈길로 창밖을 살펴보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그게 아니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항상 시내버스만 탔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내가 아주 알지 못하는 곳에 떨어져 길이라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마지막 정류장에 쫓기듯 내리고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오는 막차를 타고 집에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서울의 중심부를 벗어나면 그곳은 아주 미지의 곳일 것 같은 못 된 선입견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시내버스만 타는 것도 지겨워졌다. 나는 편리한 지하철이 있고 손만 들면 택시가 서는 곳을 벗어나는 건 정말 무서웠지만 마음속에서 약간은 그걸 즐기고 싶은 욕구가 기어 올라왔다. 미지의 곳을 탐험한다는 것. 내가 마치 전문 여행가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마을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나는 내 마음이 다시 편안하고 익숙한 것만 찾을까봐 급히 방금까지 있던 버스 정류장을 나와 마을버스가 오는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나는 버스 노선표를 보지 않고 마을버스 중 제일 빨리 오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여행하는 게 더 낭만적일 것 같아서였다. 나는 내가 기다린 후 맨 처음으로 온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이전에 탔던 버스들과 다르게 할머니들이 세 네 분 계셨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몇 보였다. 대체적으로 사람이 많이 타지 않는 버스 같았다.
버스는 이제 서울 중심부를 벗어난 것 같았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낮은 상가들과 주택단지가 보였다. 버스가 그곳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자 버스 유리창 너머로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그곳의 맞은 편. 몇 십 년은 된 것 같은 가게와 다닥다닥 붙어있는 키 낮은 집들. 내가 살던 시의 낡고 낡은 동네가 서울에도 있었다. 나는 버스가 그 마을로 가길 기다렸다. 이윽고 버스는 예전에 사라지고 없어야할 구멍가게를 향해 갔다. 나는 벨을 누르고 그 가게에서 내렸다. 평상에 앉아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차마 그분과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앞만 보았다. 앞에는 낮은 언덕길이 난 곳 양 옆으로 한 칠 팔십 년대에 지어졌을 만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좀 더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곳의 분위기는 예전 그곳의 맞은편과는 확연히 달랐다. 낮은 집 위의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만이 바람에 나부꼈고 그 안에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진 않았다. 걸린 빨래로 보아 사람이 사는 것만은 확실한데 사람은 없는 것 같은 분위기. 공허하면서도 싸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한 가지 생기 있어 보이는 점은 있었다. 집집마다 그려진 벽화들이었다. 해바라기, 장미 같은 각종 꽃들과 무지개 구름 같은 희망적인 그림들이 집집마다 그려져 있었다. 지붕은 거무죽죽한 회색인데 벽만은 화사하고 선명한 색들로 가득했다. 동네의 분위기가 벽화로 인해 한 층 밝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바꿔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올라가 보았다. 완만하고 가파른 계단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나는 계단에 서서 옆에 늘어서 있는 집들을 보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정상이 있기는 한 걸까. 땀이 났고 숨소리도 거칠어 졌다. 온 몸에서 열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여기까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몸이 너무 힘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더 올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계단에 앉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혔다. 나는 앉아서 이때까지 내가 올라온 길을 바라봤다. 딱 봐도 정교하지 않은 계단. 그 옆에 펼쳐진 들쑥날쑥한 집들. 그리고 이 동네의 맞은편이 보였다. 같은 서울이지만 이곳과는 반대로 정말 서울 같은 서울이었다. 높은 아파트에 형형색색의 간판들. 쓰임은 모르겠지만 아파트 같진 않은 고층 빌딩들. 시대에 맞추어 그 만큼 높아진 건물들과 시대가 멈추어 버린 이곳. 나는 내가 살았던 곳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쯤이면 그곳의 아파트는 완공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맞은편은 아직도 그 때 그대로일 것이다.
5월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년 우리 반 반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장은 스승의 날 때 선생님을 뵈러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작년 우리 반 애들 중 나까지 포함하면 7명 정도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그즈음에 가족들을 볼 예정이어서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날짜는 5월의 둘째 주 토요일이라고 했다. 그날 담임선생님이 토요자습 담당이라는 정보를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알아냈다고 했다. 나는 둘째 주 토요일이 되기 바로 전날에 내가 살던 시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해가 지기 전에 버스를 탔는데 내리고 보니 벌써 밤 열시가 넘어있었다. 나는 터미널에서 내가 살던 아파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바라 본 도시의 모습은 내가 이곳에 살던 때에 보았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불빛들과 건물들의 익숙한 모습은 내가 드디어 고향에 왔단 걸 알게 해 주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족들과 반가움의 인사를 나눈 뒤 씻고 바로 잘 준비를 했다. 내 방도 내가 살던 때와 다를 게 없었다. 방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침대와 그 맞은편에 있는 책상과 그 옆에 있는 옷장까지. 내가 짐을 싸고 나올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내일 가기로 한 친구들과 스마트 폰으로 연락을 나눈 후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나는 주말의 햇살을 맞으며 일어났다. 시각을 확인해 보니 열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열두시까지 학교로 가야했기 때문에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일어났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씻었고 신중히 옷을 골라 입고 나갔다. 그리고 3년 동안 늘 다니던 길을 따라 학교를 가기로 했다. 아, 학교 가는 길에는 그곳이 있다. 아파트를 짓던 곳. 이제는 그곳에 있는 아파트에 사람들이 살 것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길을 피해가고 싶었다. 사실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있지만 한참 돌아 가야했기 때문에 선뜻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복기로 했다. 그곳을 마주한 후 화가 나지 않도록, 아니 화를 최대한 참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기로 했다.
구불구불한 길은 그대로였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건물들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옆을 보았다. 역시 그곳엔 아파트가 있었다. 여기 시에선 보기 드문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이때까지 맞아왔던 햇살이 갑자기 비치지 않았다. 그림자였다. 그 고층의 아파트가 그 맞은편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설계를 할 때 이런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예상한 것인데 그냥 무시해버린 것일까. 나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어 그대로 걸어갔다. 기분 좋은 주말이었는데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낮 열두시가 다 된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어둠은 사라지고 다시 빛이 나왔다. 이제 그곳을 벗어난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높디높은 아파트가 그렇지 않은 곳을 집어 삼킨 것처럼 그림자는 그곳의 반대편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이젠 분명히 보였다. 그곳과 그곳의 맞은편을 가르는 도로, 절대 양쪽으로 넘어갈 수 없는 선이 바로 거기에 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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