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구토를 억지로 삼킨 아이

by 시궁창속한줄기빛 posted Jan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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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를 억지로 삼킨 아이

 

구토를 억지로 삼키는 진영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숟가락이 식판을 긁으면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막 입에서 쏟아진 구토는 따뜻한 죽처럼 보였다. 조금 더 끈적거렸지만 맛도 비슷했다. 진영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구토가 구토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식판의 국그릇이 구토로 가득 찼다. 진영은 마치 식판을 베고 잠든 것처럼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구토를 다 먹어 보겠다는 처절한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진 후였다.

진영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교탁 옆에 서 있는 반장에게 식판을 든 채 다가갔다. 반장은 진영의 얼굴과 식판을 차례로 보더니 크게 놀라며 괜찮은지 물었다. 진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속이 좋지 않아 밥을 다 먹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반장은 진영의 식판을 대신 들면서 양호실에 가보길 권유했다. 진영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교실을 나갔다. 반장은 식판에 담긴 배추김치와 호박 그리고 구토를 국솥에 버렸다. 미역국 위로 새하얀 구토가 서서히 퍼져나갔다. 반장은 국솥과 밥솥의 뚜껑을 닫고 양옆으로 펼쳐진 배식카의 덮개를 덮은 뒤 그 위에 반찬통 세 개를 올렸다.

윤정아, 왜 네가 정리하고 있어? 잔반은 뭐하고?” 교실에 들어오던 한 아이가 배식카를 정리하고 있는 반장에게 말했다.

진영이가 몸이 아파서 양호실에 갔어.”

그래? 그럼 네가 배식카 정리하고 옮기는 거야?”

. 같이 갈래?”

그래, 그러자.”

반장과 그의 친구는 배식카를 복도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복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진영은 양호실이 아닌 운동장으로 향했다. 반 친구들이 3반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잠시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축구 골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벤치로 걸어갔다. 그가 점심시간 때 운동장에 나온 것은 거의 열흘 만이었다. 그는 벤치에 누웠다. 낯선 살랑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기분이 썩 좋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밀어 닥쳤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녹색 하늘에 떠있는 별 같았다.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오후의 한때를 즐겼다.

진영의 담임 선생은 잔반을 남기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반장과 부반장에게 하루씩 돌아가며 잔반 검사를 하도록 시켰다. 밥을 다 먹지 않으면 교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일종의 벌이었다. 벌은 점시시간이 끝나기 10분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때까지 밥을 다 먹지 못한 아이는 잔반을 버리고 배식카를 정리한 뒤 급식소 앞까지 갖다 둬야 했다. 주로 진영이 그 일을 도맡았다. 그는 못 먹는 음식이 많았다. 그 중 하나는 배추김치였다. 불행히도 배추김치는 거의 매번 반찬으로 나왔다.

반 친구들은 진영을 잔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를 심하게 놀리거나 따돌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편식이 심했을 뿐 대인관계가 원만했고 성적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는 알게 모르게 학기 초보다 움츠러들었다. 점심시간 내내 잔반과 씨름하였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했다. 점심시간은 사교의 장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여러 사건이 터진다. 쉬는 시간에는 할 수 없는, 점심시간에만 가능한 일들이 많다. 진영이 좋아하는 축구는 그 중 하나다. 점심시간을 빼앗긴 그에게 학교생활은 반전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흥미가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반 친구들이 자신을 한심하게 여길까봐 두려웠다. 하루는 배추김치 한 조각을 억지로 삼키고 남은 두 조각을 어떻게 먹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놀다 온 짝이 불쌍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더니 아직도 이러고 있냐?”라고 비아냥거렸다. 짝은 그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놀던 동네 친구였다. 그가 내심 좋아하고 있는 상대기도 했다. 그는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젓가락은 식판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배추김치가 정말이지 미웠다.

진영아, 한국인이면 김치를 잘 먹어야지.”

진영이 담임 선생과 상담할 때 들은 말이다. 그는 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냄새만 맡아도 속이 매스꺼워지는 배추김치를 왜 먹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배추김치가 한국 음식인 것이 몹시 언짢았다. 가끔은 자신이 한국인인 것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되어 배추김치를 남겨도 혼나지 않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 하나 더 있었다. 농부가 피땀 흘려 가꾼 쌀이나 여타 농산물을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속으로 먹기 싫은 음식을 남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반문했다. 먹고 싶은 음식만 그리고 정확히 먹고 싶은 만큼만 식판에 담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는 배식카를 정리할 때마다 밥솥과 국솥, 반찬통에 남은 무수히 많은 음식을 보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잔반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광활한 숲에 나무 한 그루 더 심거나 자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는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담임 선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10분 남았다는 종소리가 울렸다. 진영은 느릿느릿 일어나 손으로 등과 엉덩이를 털고 교실로 걸어갔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데, 한 아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성민이었다. 진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성민을 바라봤다.

오늘은 밥 빨리 먹었나 보네.” 성민이 말했다.

한때 성민은 진영의 경쟁자였다. 성민 역시 편식이 심해 자주 잔반을 남겼다. 하루는 진영이, 하루는 성민이 혹은 하루는 둘이 함께 배식카를 정리하기 일쑤였다. 둘 사이에는 일종의 경쟁의식이 있었다. 진영은 가끔 음식을 다 먹을 때면 식판을 치우고 성민을 살펴봤다. 만약 그때 성민이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빌빌거리고 있으면 묘한 쾌감이 솟아났다. 반대로 성민이 음식을 다 먹었는데 자신은 여전히 식판을 붙잡고 있다면 참을 수 없는 패배감이 들었다. 성민 역시 진영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둘은 상대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그렇다고 둘이 들어 내놓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빛이나 표정, 말투 등으로 서로의 생각을 짐작할 뿐이었다.

둘 중 한 명이 배식 당번이 될 때면 신경전이 극에 달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배식 당번은 귀찮은 잡무였지만, 진영과 성민에게는 한 주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휴식이었다. 배식 당번이 되면 배식을 마친 뒤 스스로 음식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맛이 없어 보이는 음식을 은근히 많이 주면서 상대를 괴롭힐 수도 있었다. 성민은 배식 당번을 할 때마다 호박볶음이나 오이무침, 배추김치와 같이 진영이 싫어하는 음식을 맡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더 달라고 했을 때 줄법한 음식 양을 진영에게 주었다. 진영 역시 비슷하게 행동했다. 둘 중 한 명이 배식 당번을 맡은 주는 필연적인 자유와 구속이 함께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민이 잔반을 남기지 않기 시작했다. 진영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 두 번이야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 식단이 나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민은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음식을 다 먹었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싫어하는 음식은 죽어도 먹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레를 씹는 것 같은 끔찍한 식감이나 구역질을 유발하는 맛과 냄새를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갑자기 입맛이 변한다는 건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식카를 정리하는 일은 오로지 진영의 몫이 되었다. 성민은 그런 진영을 보며 우쭐하는 듯했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렵게 쟁취한 자유를 누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어느덧 진영은 성민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식카를 정리하던 일은 먼 과거처럼 옅어졌다. 진영은 외톨이가 되었다.

수업 시작하겠다. 빨리 가자.” 성민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진영은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는 성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신나게 뛰어놀았는지 체육복 상의가 반 정도 땀으로 젖어 있었다. 교실로 향하는 아이들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복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아무렇지 않았던 진영의 배가 갑자기 쓰라려왔다. 그는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양호실에 조금 더 있고 싶다고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담임 선생에게 아프다고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진영은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은 같이 교무실로 가주겠다며 그의 팔목을 잡았다.

 

구토를 한 다음 날이었다. 진영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그러더니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거리가 있는 건 아닌지, 학교생활은 괜찮은지 물었다. 그는 멀뚱멀뚱 어머니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점심시간에 구토를 했다는 사실을 담임 선생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유를 잘못 마셨는지 3교시 수업 시간 때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다가 구토를 했다고는 말하기 싫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구토는 진영에게 작은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담임 선생이 그를 따로 불러 몸이 괜찮은지 물었다. 그의 어머니에게 부탁을 받고 그를 챙기는 것이었다. 그는 기운이 조금 없다고 답했다. 담임 선생은 아픈 곳이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바로 자신에게 말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리고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잔반을 남겨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힘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진영은 담임 선생과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자리로 돌아가 그날 점심 메뉴를 확인했다. 잡곡밥, 콩나물국, 배추김치, 제육볶음, 멸치조림, 계란찜이었다. 배추김치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먹을 만 해 보였다. 물론 제육볶음에 들어간 양파, 멸치와 함께 나오는 어슷하게 썬 고추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조금 거북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배추김치처럼 구역질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으니 말이다. 못 먹는 음식 하나 정도는 괜찮았다. 자주 쓰던 꼼수를 부릴 수도 있었다. 제육볶음 양념 속에 배추김치를 보이지 않게 빠트리기, 추잡하게 밥을 먹은 것인 마냥 식판 곳곳에 배추김치를 무심하게 붙여 놓기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담임 선생에게 이미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속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남긴다는 시늉만 내면 되었다.

진영은 쉬는 시간마다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속이 조금 좋지 않다고 답했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책상에 엎드려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위한 일종의 복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반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속은 좀 어때?”

그저 그래.”

선생님이 많이 안 좋으면 밥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셨어.”

일단 먹어보고 못 먹겠다 싶으면 남길게.”

배식 당번은 진영에게 배추김치를 주지 않았다. 그는 창백한 미소를 살짝 지어 보였다. 고추가 없는 멸치조림이 나왔다. 게다가 그가 받은 제육볶음에는 양파가 거의 없었다. 그는 집에서 반찬 투정을 힘껏 한 후 밥상에 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젓가락질은 가벼웠다. 거리낄 게 없었다. 오히려 아픈 척을 하느라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해 아쉬웠다. 일부러 제육볶음과 멸치조림, 콩나물국을 남겼다. 잔반을 버릴 때 국솥과 식판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뭇 경쾌하게 들렸다.

진영은 교실을 둘러봤다. 친구들이 교실 구석에 놓인 전기 라디에이터 옆에 서서 떠들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옆에는 아직 밥을 다 먹지 못한 성민이 보였다. 성민은 밥을 먹다 말고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멸치조림을 한 숟갈 퍼더니 플라스틱 수저통 안에 쏟아 부었다. 진영은 속으로 깜짝 놀라며 성민에게서 고개를 돌려 교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그렇게 몇 초간 있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진영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성민을 힐끔거렸다. 성민은 두어 번 더 멸치조림을 수저통으로 옮겼다. 그 후, 잠시 밥을 깨작깨작 먹다가 배추김치 두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진영은 친구들에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성민의 뒤를 쫓았다. 성민은 화장실로 곧장 걸어가 첫 번째 변기 칸에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민이 변기 칸에서 나왔다. 진영은 소변을 누는 척하며 화장실을 나가는 성민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렇게 어느 날부터 성민이 잔반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던 비밀이 풀렸다. 성민은 먹기 싫은 음식을 수저통에 숨기거나 변기에 버린 것이다. 의도치 않게 비밀을 알게 된 진영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성민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진영이었다. 진영은 부당한 방법으로 음식을 버려온 성민이 괘씸했다. 성민이 얼마동안 보인 우쭐함에 움츠려들었던 자신을 잊고 싶었다.

그런데 동시에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다. 수저통에 멸치조림을 숨길 때 주변을 둘러보던 성민의 불안한 눈빛이 떠올랐다. 변기에 몰래 배추김치를 뱉으면서 얼마나 비참했을까? 진영은 아침부터 일부러 아픈 척을 하던 자신이 화장실을 나가던 성민의 뒷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진영과 성민은 잃어버린 점심시간을 되찾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언가를 더 해야만 했다. 둘은 어딘가 특별했다. 당연하게 누려야할 것을 누리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과는 분명 달랐다. 진영은 문득 홀로 서 있는 화장실이 유난히도 커 보여 낯설게 느껴졌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진영은 이틀 동안 고민 없이 잔반을 남겼다. 하지만 더는 꾀병을 부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담임 선생이 그를 불렀을 때, 그는 이제 몸이 괜찮다고 말했다. 담임 선생은 배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딱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동물원을 잠시 탈출했다가 잡혀온 맹수처럼 다시 철장 안에 적응해야만 했다. 담임 선생의 지시는 필요 없었다. 반 친구들은 당연히 잔반을 남기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는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머물길 원했다. 이는 담임 선생이 아닌 반 친구들을 향한 자발적인 복종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추김치와 연근조림이 나왔다. 배추김치는 어찌어찌 한 두 조각 삼킨다고 쳐도 연근조림은 도무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식판을 앞에 두고 점심시간을 다 보냈다. 반장은 교실을 오고가며 그를 몇 번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에 잔반을 국솥에 버리고 배식카를 정리했다.

진영은 상민에게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저 상민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상민을 생각할 때마다 구토를 했던 순간의 악몽이 떠올랐다. 억지로 잊으려 노력했던 기억이었다. 구토를 먹기 위해 시뻘건 얼굴을 식판에 처박고 있던 자신이 안쓰러웠다. 교실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내는 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울렸지만, 그것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아득했다. 이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참을 수 없는 고독, 그것은 한 인간이, 그것도 10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진영은 그 어느 누구도 구토를 마주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상민을 제외하고 말이다.

진영은 상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토한 것을 들키기 싫어 억지로 구토를 먹었던 그였다. 상민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아픔을 외면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상대가 원치 않는 위로는 위선일 뿐이다. 진영은 그저 멀리서 상민을 바라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대신 상민처럼 몰래 잔반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상민이 우연히 자신의 행동을 봐주길 바랐다. 그렇게 된다면 상민이 스스로가 완전히 혼자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수저통에 음식을 숨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처음 시도한 날, 진영은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시선을 느꼈다. 괜히 뜨끔하여 주변을 경계하기도 했다.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어 옮기는 행위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일상을 의식하는 순간 일상은 일상이 아닌 법이다. 진영은 배추김치를 여러 번 들었다 놓다가 결을 따라 조각조각 찢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214분이었다. 그는 15분이 되는 순간 배추김치를 수저통에 옮기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되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30초 뒤에는 반드시 한다.’라고 다시 결심했다. 수저통에 옮기기 편하게 조각난 배추김치를 숟가락 위에 올렸다. 주위를 둘러봤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꼭 쥐었다. 28, 29, 30. 그는 배추김치를 수저통 안으로 잽싸게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몇 초 간 고개를 숙이고 하얀 쌀밥을 내려다 봤다. 그는 수저통과 숟가락이 부딪칠 때 난 소리가 너무나도 컸다고 생각했다. 뚜껑을 닫으면서 난 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 아이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고개를 들었을 때,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김치 두 조각을 수저통에 더 옮겼다.

진영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수저통을 꺼냈다. 그의 어머니는 대형 마트에 반찬거리를 사러 간 터라 집에 없었다. 그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설거지대에 버리기에는 배추김치가 너무 많아 보였다. 왠지 하수구가 막힐 것 같았다. 변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뚜껑을 열었다. 휴지 조각으로 반쯤 차있었다. 배추김치가 휴지 조각 사이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어색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배추김치를 버려야겠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분리수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초조한 듯 시간을 확인했다. 언제 집에 올지 모르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서둘러 배추김치를 처리해야만 했다. 그는 거실을 몇 바퀴 빙빙 돌다가 주방 옆에 위치한 베란다로 달려갔다.

까치발을 하고 창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5층 높이였지만 어린 그에게는 까마득해 보였다. 그는 계속 내려다보고 있자니 겁이 나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수저통 뚜껑을 열었다. 새하얀 수저통이 배추김치 국물로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막상 배추김치를 버리려고 하니 죄를 짓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을 훔쳐보듯 슬쩍 봤다. 그는 검지와 엄지로 배추김치 한 조각을 집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국물이 두어 방울 뚝뚝 떨어져 그의 발등을 때렸다. 톡 쏘는 시큼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것은 그에게 끔찍한 기억과 함께 약한 헛구역질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배추김치를 창밖으로 냅다 버렸다. 배추김치는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변하더니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는 아파트와 인도 사이에 심어진 단풍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배추김치가 떨어진 곳이었다. 색이 진하게 든 단풍잎은 그의 발등에 둥글게 고인 붉은색 방울과 잘 어울렸다. 그는 단풍나무를 향해 나머지 배추김치 조각들을 던졌다. 처음 던질 때와 달리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까치발을 한 발가락이 아플 때까지 창문에 붙어 서 있었다. 그 후, 화장실로 가서 손과 발등에 묻은 배추김치 국물을 말끔히 씻어냈다.

진영아, 다음 달에 이사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시장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그에게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는 몇 년 전에 모델 하우스에 구경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어머니와 함께 놀러 간다고 생각했다. 백화점에 가서 장난감을 구경하는 것처럼 신나 있었다. 그는 모델 하우스가 무엇이고 아파트가 어떻게 분양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부모님으로부터 시간이 지나면 이사를 갈 거라는 말을 스쳐지나가듯이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일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금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현실로 닥쳐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진영은 저녁을 먹고 태권도 도장에 갔다. 머릿속에는 온통 이사 생각뿐이었다. 한 달이면 나름 긴 시간이었다. 아직 많은 것이 새로울 초등학생에게는 그랬다. 그는 이삿날까지 많은 날이 남았다며 애써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부모님이 마음을 바꿔 이사를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석 점차로 지고 있는 축구 경기를 볼 때 느낄법한 것이었다. 극적으로 경기를 뒤집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대게는 어김없이 패배로 끝나기 마련이다.

진영은 아침부터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없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반장은 그가 또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닌지 물어봤다. 그는 그냥 생각할 일이 조금 있다고 대답했다. 이별을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이사 소식을 알리고 이별 파티라도 열어야 될까? 친구들은 한 달 동안 나를 따뜻하게 대해 줄까? 아니면 이제 곧 떠날 사람 취급을 할까? 머리가 아파왔다. 그는 숨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자신으로 인해 무언가가 변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친구들의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말을 걸어오지 않길 바랐다. 그편이 마음이 놓였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진영은 2교시가 끝나고 학급번호가 자신의 바로 뒤인 아이와 함께 우유 배급소로 내려갔다.

, 급식, 무슨 일 있어? 아침부터 누워 있던데.”

, 아니, 그냥.”

또 아픈 거야? 아프면 조퇴해. 학교도 째고 얼마나 좋아.”

아픈 건 아니고,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나 같으면 아픈 척이라도 하겠다. 아마 쌤도 속을 걸?”

거짓말 하기는 조금 그렇고, 나도 진짜 아팠으면 좋겠다.”

진영은 친한 친구들에게 넌지시 이사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음 쉬는 시간에.’라고 속으로 되뇌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책상에 엎드려 있으니 양팔이 저려왔다. 양팔에 짓눌린 두 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감은 두 눈 속으로 펼쳐진 텅 빈 어둠에 형형색색의 별들이 쏟아졌다. 각종 선과 원, 고대 건축물에 새겨진 장식에 어울릴 법한 무늬가 별천지를 이루었다. 불편함에 머리를 여러 번 뒤척이기는 했으나,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진영은 어둠 속으로 조금씩 침전해 들어갔다. 이윽고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의 뒤에 앉은 아이가 그를 깨웠다. 눈꺼풀에 눈동자가 붙은 듯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빛은 순식간에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비볐다. 막 교실로 들어오고 있는 담임 선생과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 아이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눈에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담임 선생과 아이들이 멀게 느껴졌다.

종이 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밥솥, 국솥, 반찬통, 배식카를 가지러 갔다. 진영은 점심 메뉴를 확인했다. 흰쌀밥, 어묵조림, 소시지볶음, 배추김치, 치킨샐러드, 우거지된장국이었다. 배추김치와 우거지가 눈에 거슬렸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먹기 싫으면 몰래 반찬통에 넣거나 변기에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밥을 먹었다. 적어도 점심시간 때는 이사를 간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은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갑자기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3반에서 싸움 났어!” 한 아이가 교실 앞문에 서서 외쳤다.

반 아이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영, 만화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 두 명, 이어폰을 귀에 꼽고 엎드린 아이, 그리고 성민만이 교실에 남았다. 평소였다면 싸움을 구경하러 뛰쳐나갔을 진영이었지만 그날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게 무의미해보였다. 그의 모든 생각은 스스로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된장국 위에 뜬 우거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한숨을 내셨다. 그런 그의 옆으로 성민이 식판을 든 채 지나갔다. 진영은 식판을 다른 식판 위에 포개 놓는 성민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다가 왼손으로 턱은 괴고 다시 젓가락으로 우거지를 휘저었다. 우거지는 젓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하찮게 끌려 다녔다. 된장국에 거품이 일었다. 그때 진영의 눈에 사람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성민이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 또 어디 아프냐?” 성민이 말했다.

진영은 고개를 들어 성민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성민은 진영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밥을 먹는데 성민이 진영에게,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서로서로 잔반과 싸우느라 힘겨웠다. 혹여나 밥을 빨리 먹으면 놀기 바빴다. 진영은 성민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넌 순진한 척하는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성민이 말했다.

진영은 성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말을 얼버무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성민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먹기 싫은 음식 있으면 몰래 남겨. 수저통이나 비닐봉지 같은 데 넣으면 되잖아.”

성민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판 위에 놓인 진영의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배추김치 한 조각을 퍼서 수저통에 던지듯이 놓았다. 진영은 성민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성민은 싸움구경이나 가야겠다고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진영은 성민이 몇 발자국 떼지 않았을 때 이름을 불렀다. 성민이 뒤로 돌았다. 진영은 왜 인지 모르겠지만 온종일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 한 마디를 하고 싶었다.

.” 진영이 말했다.

성민은 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하라는 듯 조용히 진영을 내려다봤다. 진영은 얼마간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그리고 미소를 살짝 지으며 말했다.

나 곧 이사 간다.”


배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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