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맨홀을 찾아서

by dltmdals posted Jan 04,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맨홀을 찾아서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10분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늘은 여태껏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갔고 길거리 한복판에 있던 전광판의 아나운서는 그 순간 마저 보도하기에 바빴다.

전문가들은 10분 이내 전 지구가 잿가루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것에는 어떤 징조도 없었고...”

혼란과 혼돈 그 자체였다

검붉은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허둥지둥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초점을 잃은 채 그저 두려워할 뿐이었다

민수는 이 모든 상황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하다

어떻게 저렇게 큰 운석이 사전에 어떤 징조도 예견도 없이 10분 내로 추락해서 수억년간 파인 적은 있어도 산산조각 난 적은 없었던 지구를 잿가루로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도 민수 뿐인 것 같았다

그저 어디로 가야할지 허공만 응시하던 사람들이 이제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고 살기 위한 마지막 발악에 시동을 거는 듯했다.

현실성 없을 만큼 붉은 하늘은 점점 갈색으로 변해갔고 마치 사체의 굳어버린 피의 색깔을 냈다. 그리고 그러한 하늘의 색깔은 두려운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켰다.

도대체가 설명이 될 수 없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인 지금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는 게 맞아? 민수는 손가락으로 볼을 힘껏 꼬집어 보았다.

아파.” 분명 아프다. 이건 모두 현실이고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기민수는 지금 지구 멸망의 한 순간에 서있다. 운석이 점점 다가옴을 확실하게 실감하도록 하늘은 점점 검고 또 검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있음을 느꼈다. 죽음이 임박한 이 상황이 침착한 그녀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일평생을 한번도 간절히 살아보고자 한 적이 없었다. 살면 사는거고 죽으면 죽는거지. 죽음에 어떤 미련도 없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삶이었다. 어쩌면 삶보다 죽음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어떤 순간에는 죽음을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그녀 자신도 그녀가 어색할 정도로 그녀의 심장이 살고자 하고 있다.

그렇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로 떨고 있는 그녀의 눈 앞에 맨홀이 보였다

더 이상의 생각은 정지되고 그녀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맨 손으로 그 뚜껑을 애써 당기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절대 맨홀 뚜껑을 열 수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작고 고운 손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그녀는 그 미동도 없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애타게 긁었다.

쾅쾅 내려치기도 해보고 쇠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에 억지로 손을 집어넣어도 봤다.

점점 숨이 차올랐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손으로 안된다는 생각에 발로 있는 힘껏 밟았다.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온몸을 맨홀에 부딪혔다

40키로가 채 안되는 그녀의 몸이었기에 수백번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들이받아도 맨홀은 미동도 없었고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운석이 곧 이 지구를 산산조각 낸다는 것을 예고하듯이 잠깐 사이에 주위는 칠흙같이 어두워졌다.

뭐해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이거..이것 좀 열어주세요.”

이거 열어서 뭐하게요.”

짧고 단호한 말 속에는 맨홀 뚜껑을 열어서 그 안에 들어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들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민수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살기위해 하는 마지막 최소한의 몸부림. 이걸 지속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것도 상관 없었다. 어둠 속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냉정한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아무 의미없는 거 알면서.”

손톱이 쇠에 닿아 만나는 기괴하고 끔찍한 소리가 이윽고 잦아들었다.

살고 싶어서요. 아무것도 안 해보고 먼지처럼 사라지기 싫어서요.”

살고싶어서. 라는 말이 순간 그녀 자신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그녀를 움직이고 있었다. 운석이 떨어지기까지 주어진 10분 채 남지 않은 시간동안 그녀는 1초도 쉬지 않았다. 살기위해서, 살고싶어서.

 

!’

. 수고하셨습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는데 손가락 간의 마찰음 그 작은 소리에 세상이 눈부시도록 하얗게 빛났다.

이건 또 뭐야.’

너무 하얗게 빛나는 나머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비벼보는데 두 눈이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방금 전까지 살기위해 발버둥치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상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 어디예요? 다들 괜찮대요? 다 살 수 있는거래요?”

그녀가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로 쉴 틈 없이 물었다. 앞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는 사람의 옷을 부여잡은 채로 그녀의 몸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회복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그녀의 말에 어떤 대답도 없이 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았다.

곧 퇴원하셔도 되겠네요.”

아직도 민수는 그 당장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곧 있으면 다시 또 세상이 어두워질 것만 같았고 그 때 주위의 어수선함과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모르겠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갑자기 내가 모르는 곳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고 갑자기 지구는 곧 산산조각이 난다고 하고 그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주변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없이 아비규환이었다. 어떤 중간과정도 없었고 그 모든 걸 이해시켜줄 사람도 없었다.

저기요... 이게 다 무슨 상황이에요? 왜 다 사라졌고 왜 다...여긴 어디예요?”

그녀 앞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말하던 그 누군가가 말을 멈추고 의자를 빙글 돌려서 테이블에 놓여있던 하얀 차트를 집어들었다.

, 여긴 병원입니다. 아까 당신에게 있었던 그 모든 일은 최면 치료의 일종이니 더 이상 두려워하실 것 없어요.”

그가 빙긋 웃으면서 곁에 있던 담요를 건네주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제 할말만 늘어놔서 당황하셨겠네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벌 떨고 있는 어깨를 감추고 싶어서 민수는 그 담요를 집어들었다

그제서야 팔에 꽂혀있는 링거바늘이 보였고 자신이 앉아있는 곳이 병실 침대임이 보였고 그녀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간호사들이 보였고 여지껏 떠들고 있던 자신 앞의 남자가 의사가운을 입었음을 눈치챘다.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돼요?”

왜 제가 여기 있는건데요? 전 아픈 데도 없었고...”

아파도 병원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병이 나면 나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방치한 삶이었다. 어둠 속에서 외친 살고싶어서.’ 라는 말이 그녀 자신에게 너무도 낯선 말이었던 건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반지하 방에서 연탄피우고 자살 기도하셨고 실패하셨어요. 다행이게도.”

제가요?”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죽어도 상관 없을거라 생각은 해왔지만 진짜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길 정도로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죽으려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거 아니야

나약한 그녀에게는 그 정도의 굳은 의지도 뚝심도 없었다.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상황에 맞게 흘러가는 삶을 사는게 당연한 거였다. 주변의 의지와 흐름에 어긋나는 건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죽으려고 결심한 여자가 살고 싶다며 발악하는 꼴이란...참 우스웠겠네요..하하

민수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며 낮게 읊조렸다. 나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결심했으면서 그 와중에 온 힘을 다해 살려고 애썼던 좀 전의 모습이 떠올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우울증이란 건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죽음으로 몰고 가요. 그니까 한마디로 내 안에 있는 나를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살인마 인거죠.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그 살인마한테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말아요. 그게 우울증 이라는 병이죠.. 기민수씨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고 싶은거야. 스스로 죽으려 했던 게 아니라 살해당할 뻔 한거고. 우습다니요

그가 차트에서 눈을 떼고 민수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당신은 포크레인으로 겨우 열리는 맨홀에 온몸을 던질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에요. 살인마가 당신을 또 다시 찾아오기 전에 있는 힘껏 그 어둠 속에서 나오려고 애써요. 살고 싶잖아. 당신은 계속해서 미치도록 숨쉬고 싶은 사람이잖아요.”

 

기민수는 집으로 돌아와서 일기장을 펼쳤다. 내면의 살인마는 유서까지 써놓고 치밀하게 그녀를 살해할 모든 설정을 마친 것이다.

‘<인간이 왜 산다고 생각해? 사실 살 이유 같은 건 없어

행복하기 위해서. 이런 건 다 개소리야

평생을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 사는 사람도 당장 눈 앞에 행복의 기미 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도 다 살아가

그렇게 살다보니까 행복이 가끔은 찾아와서. 그래서 억지로 버티는거고. 사는데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거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써야하니까.>이 말 기억나? 중학교 때 학교에서 인간이 사는 이유 숙제로 받아와서 밤새 쓰고 학교에 내지도 못했었잖아.’

엄마나 아빠에게 쓰여진 게 아니라 기민수가 기민수에게 쓴 편지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은 그녀 내면의 또 다른 기민수가 평생을 머저리처럼 살아왔고 이번에도 또 바보같이 갈팡질팡하는 기민수에게 죽음을 설득하는 글이었다.

그때부터 넌 이도저도 아니었던 거야. 행복하지 않아서 삶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또 그렇다고 죽는 것도 두려워하는 세상 둘도 없는 머저리. 한번도 니가 선택했던 건 없었어. 그래서 실패한 것도 없었으니까 잃은 건 없다고 또 합리화 했지.’

초등학교 때는 가방 하나 원하는 것 사본 적이 없었고 중 고등학교 때는 진로를, 대학교 때는 취업 결정까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뭔가 표현하려 했을 때 겪어야 했던 고통과 주장하려 했을 때 맞이해야 했던 폭력이 그녀를 정해준 길 외의 다른 길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호기롭게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았던 거 기억나네. 그 때 정말 다시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다시는 맞지 않으려고, 불행하지만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길만 걸었잖아

정말 니가 원했던 것은 단 한 개도 없는.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그런 무가치한 인생.

니가 태어난 날인 오늘 선택이라는 선물을 줄게. 행복하지 않아서 죽는 것도 불행해서 죽는 것도 아니야. 너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지 않았고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애쓰지도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한 번 꿈틀거려 보지 못한 기민수가 태어나 보겠다고 처음으로 이 세상에 소리 지른 바로 이 날. 죽음이란 선물을 주겠다고 내가. 기민수 바로 내가.’

나약한 기민수가 이런 속삭임에 설득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너무도 달콤한 말이었다

기민수안의 치밀하고 영악한 그 살인마는 소름끼칠만큼 기민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고싶다고 울부짖었던 건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숨을 쉬고 싶다는 뜻이었다

왜 남들이 다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인생에서 당연히 성취할 거라고 믿는 행복이 그녀에게는 삶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한낱 말장난에 불과해야만 했을까.

죽고 싶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다. 살고싶다는 그 마음을 인식한 그 순간부터 살아야만 하겠다

그녀는 일기장에 쓰여진 유서를 찢어버렸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삶과 죽음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건 너무 많았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맨홀 뚜껑에 무모하게 온몸을 찧어가면서 얻고자 한 삶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소리의 겨우 손가락 간의 마찰음으로 그녀의 세상이 곧 멸망해버릴 세상에서 계속 살아야할 삶으로 바뀌었다

결국 맨홀 뚜껑은 열렸다.

그녀가 열었기에.

  

이승민

01051900190

apple9901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