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웃음

by 진씨. posted Feb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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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웃음

 

 

 

 이렇게 의자에 앉아 네 얼굴을 살펴보면 네가 썼던 여러 문장이 떠오른다. 어렵고 낯선 문장들. 너는 항상 세상곳곳을 걸어 다녔고 그 한가운데서 글을 썼다. 네가 밟은 것, 본 것, 느낀 것을 너는 썼다. 그건 소설도 기행문도 일기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네 글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쓴 글이 너무 어려워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네 글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네 글은 너무 어렵다고 말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를 보며 다시 웃어줄까? 내 머리가 나쁘다며 나를 놀려도 좋다. 맞춤법이 엉망인 내 글을 보고 다시 쓰라고 놀려도 좋다. 네가 다시 나를 보고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낯선 땅에서 멋진 첫 문장을 쓰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라던 이상의 첫 문장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콕 박제될 수 있는 그런 첫 문장. 그 때 너는 공모전에 낼 소설을 쓰고 있었고, 나는 네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겠지. 지금도 눈을 감고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네가 생각난다. 거울로 매일 보는 내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데 네 얼굴은 내 기억에 박제되어 또렷하게 떠오른다. 네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네 얼굴에 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도 나는 또렷하게 그려낼 수 있다.

  네 코는 이상하게 생겼다. 언젠가 미술책에서 본 그림 속의 남자와 닮았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뜯어보며 코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콧대가 푹 주저앉아버린 낮은 코. 콧대가 너무 낮아 동그란 콧망울만 삐죽 튀어나온, 혹처럼 생긴 코였다. 멋진 코는 아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그런 코였다. 너는 그 그림과 닮았다. 너는 너의 작은 코가 콤플렉스라고 말하곤 했지만, 나는 너의 코가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내가 “너 숨은 제대로 쉴 수 있는 거야?” 라고 물어보면 너는 장난스레 콧구멍을 벌렸다가 오므렸다. 너의 장난에 내가 웃으면 너도 웃었다. 나는 웃고 있는 네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면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눈빛이 따뜻하단 걸, 사랑스럽게 빛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누군가의 눈빛을 반짝 빛나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너를 보며 사람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멍하니 너를 보다가 네가 툭 내던진 말을 생각해보았다. 낯선 땅에서 글을 쓰고 싶다던 네 말. 너는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네가 불안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네가 다른 데로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너는 항상 가본 적 없는 곳을 그리워했다. 낯선 세상을 그리워했다. 나는 네가 당장이라도 떠나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외국에 가면 동양인이라고 차별하는 사람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다며 너를 겁주곤 했다. 그러면 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도 소매치기 하면 되지.”

 

  너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여자애처럼 웃었다. 너는 나를 낭만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을까?

 

 

  나는 너를 스무 살에 처음 만났고, 그 이전의 네가 궁금했다. 너는 어떤 아이였을까? 내가 묻자 너는 싸돌아다니는 아이였다고 대답했다. 너는 ‘싸’를 발음할 때 입을 우악스레 벌렸다. 그 바람에 나는 풉하고 웃어버렸다. 너는 아랑곳 않고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어릴 때 달력 모델을 짝사랑했다. 그녀는 잊혀진 배우였고 너는 커서도 그녀의 모습을 기억했다.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밝은 갈색이었고, 속눈썹이 길고 굵었고, 두 뺨은 적갈색 크레파스로 칠한 것 같았고, 비스듬히 기울인 얼굴이 길쭉하니 예뻤다고 너는 말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너의 첫사랑에게 질투를 느껴 괜히 너를 놀렸다. 비키니를 입은 게 마음에 들었냐고. 그러면 너는 대답했다. 손톱이 마음에 들었다고. 오른쪽 쇄골에 오른쪽 손을 자연스레 올리고 있었는데 연붉은색의 매끈한 손톱이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고. 그 손톱을 본 순간 그녀의 팬이 됐다고 너는 말했다. 그녀의 손톱을 감상하며 너는 시를 쓰기도 했다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때 나는 내 손톱을 몰래 살펴봤겠지. 그러고 나서 뭉툭하고 못생긴 내 손톱을 옷소매로 가렸겠지.

 

  어린 너는 한껏 포즈를 잡은 그녀가 서있는 곳을 바라봤다. 여긴 어딜까? 말로만 들었던 외국의 어느 바다일까? 아니면 아무에게도 알려진 적 없는 지구의 한 구석일까? 너는 상상했고,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뒤에 있던 멋진 풍경에 호기심을 느낀 게 아닐까 라며 어른이 된 네가 말했다.

  너의 형이 어린 너에게 그 달력 모델이 나온 드라마를 보여줬을 때 너는 충격 받았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다른 남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너는 상처받았다. 화면 속 모습이 연기이고 가짜라는 걸 너는 몰랐다. 너는 실연당한 어른처럼 울었고, 형은 네가 귀여워 너를 놀려댔다. 나 역시 어린 네가 순수해서 웃어버렸다. 너는 그때부터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면 너도 모르게 달력에 걸린 그녀를 자꾸만 보게 되니까 그게 마음이 아팠다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너는 잘 때를 제외하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는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시내의 모든 다리를 건넜고, 모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면서 그녀를 잊었고, 다른 동네는 어떻게 생겼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네가 본 그녀의 모습이 드라마라는 장르였단 걸 알게 됐을 무렵에도 너는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너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낯선 사람에게 혼이 나고, 시장에서 낯선 사람에게 가래떡을 얻어먹기도 했다. 너는 낯선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리워하다가, 한강의 저녁노을에 감탄하곤 공책에 일기를 썼다. 한쪽짜리 소설도 썼다. 이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고 너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게 너는 더 넓은 세상을 돌아다녔다.

  나는 어린 너를 상상했다. 지금 얼굴 그대로 키만 작은 네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 문구점에서 오백 원 주고 산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일기를 쓸 네 모습. 솥뚜껑 같은 머리로 노을을 바라볼 너의 뒷모습. 어린 내가 어린 너를 만났다면 그때도 나는 너를 좋아했겠지. 어린 네가 어린 나를 만났다면 너는 나를 어떤 아이라 생각했을까?

 

 

  나는 종이학을 잘 접는 아이였다. 이 종이학이 천 마리가 모이면 내 소원을 들어주리라 믿었고 접고 또 접느라 밤마다 종이학과 춤을 추는 꿈을 꿨다. 나는 보름달이 둥글게 뜬 날이면 달에게 소원을 빌었고 모든 신에게 기도를 했다.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이제 잘 웃는 아이가 될 테니 더 이상 친구들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눈매가 순한 아이에게 껌 한 통을 건넨 적이 있었다. 이거 먹을래? 나는 용기 내어 말했고 심장이 터질 뻔했다. 그 애는 착했고 선뜻 나와 놀아주었다. 나에겐 친구가 그 애밖에 없는데 그 애는 친구가 아주 많았다. 그 애가 다른 친구와 귓속말을 하면 나는 질투가 났다. 다른 아이랑 놀지 말라며 울기도 했다. 그 애는 내게 지쳤겠지. 내가 아닌 반장과 짝꿍을 했고, 반장과 어울려 놀았고, 반장과 단짝이 됐다. 애초에 그 애와 나는 단짝도 아니었지만 나는 친구를 빼앗겼단 생각에 반장을 미워했다.

 

 

  언젠가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이 있었다. 창밖에선 나뭇가지가 비바람에 흔들렸고 아이들은 그게 귀신소리 같다며 무서워했던 게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에 나는 주로 엎드려 있거나 멍하니 교실을 둘러보곤 했다. 심심하긴 했지만, 혼자인 것도 나쁘진 않았다. 여느 때처럼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나와 같은 모둠인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싫어하는 아이 투표를 할 건데 너도 하겠냐고. 나는 기뻤다. 아이들이 나를 놀이에 끼워준거라 생각했다. 나는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누굴 적어야하나 생각하며 공책을 찢었다. 나는 평소에 나를 자주 괴롭히던 남자 아이의 이름을 종잇조각에 적었다. 다들 적고 있으니까 나도 당연히 적어야 했다.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적고 종이를 두세 번 접어 책상 한 가운데에 모았다. 모둠장이었던 아이가 모여 있는 종이쪽지를 하나씩 펼쳤다. 내가 쓴 아이의 이름을 뺀 모든 종이에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걸 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억난다. 다들 어리니까 천진난만하게 웃었겠지.

  나는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고 있단 걸 전혀 몰랐었다. 눈치 채지 못했었다. 그전까진 단지 아이들이 나랑 마음이 안 맞아서 놀아주지 않는 것뿐이지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짜증을 내거나, 울진 않았으니 덤덤하게 굴었을 테지. 나 역시 싫어하는 아이의 이름을 적었으니까 괜찮았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나는 한참을 내 이름이 적힌 종잇조각을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껌 한 통을 주고 친구했던 그 아이가 말했다.

 

  “쟤는 잘 웃지도 않고 만날 찡그리고 있어. 그래서 싫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화내거나 울지 않았다. 어른인 너는 어린 나를 걱정했지만 그때 나는 하나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럼 이제 웃으면 되지. 얼마나 간단한 일이니. 그때부터 나는 항상 웃고 다녔다.

 

 

  오래전에 너는 내게 “억지로 웃지 마.”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건 내가 계속해서 문학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네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네 말에 내가 말없이 웃었는지 울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 네 표정에 내 가슴이 주체 없이 뛰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설렘이 아닌 두려움으로 가슴이 뛰었다. 걱정도, 미소도, 비웃음도 아닌 미묘한 네 표정. 나를 꿰뚫어보는듯한 네 표정. 네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을 때 네 이마에 두어겹 걸려있던 잔주름을 보고 나는 당황했다. 너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너는 별 뜻 없이 지은 표정이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네 표정이 신경 쓰였다. 너는 애써 괜찮은 척 하는 나를 위로하려 했겠지만, 나는 네 말이 신경 쓰였다. 너는 나를 억지로 웃는 사람으로 보았구나. 내 웃음이 가짜란 게 티가 났을까, 네가 나를 조롱하는 게 아닐까, 나를 가식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내가 처음부터 웃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면 너도 나를 보며 설레 주었을까?

 

  새 학기가 시작됐다. 종이학은 천 마리가 모이지 않았고, 달은 너무 멀리 있어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내겐 친구들이 생겼다. 같이 화장실에 가고 비밀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생겼다. 둥글고 네모나고 세모난 얼굴의 친구들이 내게도 생겼다. 억지로라도 밝은 척 웃고 있으니 친구들이 내게 다가와 주었다. 전엔 혼자인 게 편했지만 친구들이 생기니 이제 혼자 남는 게 두려워졌다. 친구들이 나를 떠나면 어쩌나 두려웠다. 나는 친구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다. 그래서 항상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해야했고, 아이들이 나를 뚱뚱하다 놀려도 착하게 웃어주었다. 모든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친구들은 내게 싫증을 느끼고 나를 미워할 테니까. 그게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다가도, 스티커 사진을 찍다가도, 농담을 하며 웃다가도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 애들의 둥글고 네모나고 세모난 얼굴이 항상 웃고 있길 간절히 바라곤 했다. 아이들이 항상 나를 좋아해주길 간절히 바라곤 했다.

  하루는 친구의 생일이었다. 나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손바닥만 한 작은 보석함을 샀다. 뚜껑을 열면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그런 보석 상자였다. 예쁘고 화려한 게 그 친구와 꼭 어울렸다. 친구의 집엔 많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선물과 편지를 들고 왔다. 그 중에서도 내가 산 선물이 제일 예뻤다. 나는 뿌듯했다.

  나는 큰 상에 빙 둘러앉아있는 아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마다 밝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는 아이들과 섞여 놀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내가 행복한 걸 못마땅하게 여긴 걸까? 평소에도 선생님의 관심을 사려 말썽을 피우고 다니던 남자 아이가 소리쳤다.

 

  “나는 핸드폰 진동소리가 나서 내 친구한테 핸드폰 문자 확인하라고 했거든? 근데 아니더라, 쟤가 방귀 뀐 거였어.”

 

  아이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으로 방귀소리를 냈다. 그 남자애가 말한 ‘쟤’는 바로 나였다. 아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내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들은 엄지와 검지로 코를 틀어막고 나를 놀렸다. 나는 방귀를 뀌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눈치 없는 아이가 아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비웃음이 섞여있었지만 어린 나는 비웃음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냥 아이들이 웃고 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학창시절 내내 방귀돼지라 불렸다. 하지만 슬프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별명이 생겨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학교에서도 마음껏 방귀를 뀔 수 있게 됐으니까.

  언젠가 내가 너를 웃게 하려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지 그랬어. 난 정말 방귀 안 뀌었어. 넌 거짓말하는 게 좋니? 그래 만약에 내가 정말 방귀를 뀌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그걸 일러서 날 창피하게 하다니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너는 뭐 방귀 안 뀌니? 고구마 먹고 방귀 한 번도 안 뀌어봤니? 네 똥구멍은 구슬로 막혀있니? 이렇게 말이야.”

 

  너는 웃었다. 나도 너를 따라 웃었다. 행복했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 나는 쾌활하고 잘 웃는 사람인 척 애썼다. 그때 나는 바보처럼 계속 웃고 있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줄 알았다.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면 동기들은 내가 활발한 사람인줄 알고 나를 반겼다. 사람들은 밝은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웃고 또 웃었다. 그때 너는 책을 읽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사람처럼 여행 관련 책을 뚫어지게 읽고 있었지. 이윽고 친구가 네 어깨를 툭 치고 재미난 얘기를 했는지 너는 입을 다문 채 웃었다. 눈가가 휘어져 쌍꺼풀이 얇고 작은 눈이 더 작아졌다. 눈 밑이 볼록 튀어나왔고 입가에 보조개 같은 주름이 생겼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 입술이 누워있는 숫자 3같았다. 너는 만화에서나 보던 동물 캐릭터처럼 생겼다.

  나는 네 웃음이 신기했다. 눈도 웃고, 입도 웃고, 얼굴 전체가 자연스레 웃는 게 신기했다. 노골적인 눈웃음이 아닌 진짜 눈웃음. 진짜로 웃고 있는 얼굴. 너는 가짜가 아닌 진짜로 웃는 사람이었다. 나는 너의 표정과 미소를 따라 지어봤다. 검지와 중지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려보았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웃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너는 무얼 먹었기에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너처럼 웃을 수 있는 걸까? 네 웃음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나는 그때부터 네가 좋았나보다.

 

  학교에서 서로의 글을 합평할 때 나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미움을 받는 게 두려웠다. 내가 누군가의 작품을 비판하면 그 누군가가 ‘그럼 자기는 얼마나 잘 쓴다고.’ 라며 나를 미워할까봐 그게 두려웠다. 나는 동기가 늦잠을 자느라 형편없게 쓴 작품에도 개성 있다고, 문체가 독특하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면 동기들도 모두 내 글을 칭찬해 주었다. 모두가 내게 영양가 없는 솜사탕 같은 말만 해주었다. 그런 분위기를 허물고 네가 내게 말했다.

 

  “맞춤법도 엉망이고 대충 쓴 것 같은데. 이렇게 쓸 거면 글 왜 써?”

 

  주위가 조용해졌다. 적막 속에서 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네 눈을 쳐다봤다. 너는 눈가가 붉었다. 밤새 글을 쓰느라 피곤해서겠지. 그때 나는 네 붉은 눈이 순진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난 덥지도 않은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건 네 말 때문에 민망하거나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네 붉은 눈이 팬더나 너구리같아 귀여워서였다. 네가 자꾸 나를 빤히 쳐다보니 나는 부끄러웠다. 너는 시선을 바로 거두지 않고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합평이 끝나고 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었는데 며칠째 잠을 못자 예민해졌다고. 너는 내게 진심으로 미안해했지만 나는 일부러 상처 받은 척 입을 쭉 내밀었다. 그러면 너는 어쩔 줄 몰라 입만 앙 다물고 있었다. 짙은 눈썹이 아래로 축 쳐졌다. 나는 그런 네가 귀여워서 그만 웃어버렸다. 그건 억지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나는 타인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너의 웃는 얼굴을 보기 전에도 나는 다른 사람의 웃음을 좋아했다. 누군가 나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하는 표정으로 흘겨보면 내 얼굴은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웃고 있지만, 내 속은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쓰레기더미가 됐다. 그 사람은 왜 나를 보며 웃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밤새 뒤척였다.

  잠들기 전엔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을 떠올렸다. 한 쪽 입술을 구긴 채 나를 노려보던 눈이나, 가느다란 눈이 나를 내려다보던 걸 생각했다. 그 온갖 눈을 떠올리면 크고 무거운 쇠공이 나를 짓누르곤 했다. 쇠공에 짓눌린 나를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이 지켜보았다. 그 어둠 속에서 상상 속의 내가 튀어나와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이리저리로 내던졌다. 그러면 목이 답답했고 작고 다리가 많은 벌레가 밭 밑에서 기어와 내 팔뚝을 물어뜯는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냄새나고 시커먼 물속으로 한없이 잠길 때마다 나는 눈동자로 네 눈을 그렸다. 그러면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고, 가슴은 한없이 편안해졌다. 너는 사람을 내려다보지도 노려보지도 않았다. 너는 그저 하나의 보석을 감정하듯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게 얼마나 나를 설레게 했는지 너는 알까?

 

 

  너는 밝은 사람이 아니다. 조용한 사람이다. 활짝 웃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를 좋아했다. 나는 그런 네가 신기했다. 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사람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탐정처럼 눈에 돋보기를 끼고 이 사람의 눈이 어떻게 생겼나 관찰하듯이 그렇게 쳐다봤다. 너는 항상 진지한 눈으로 타인에게 집중했다. 단 한 명도 네 눈빛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니 항상 존중받는 기분이었다고 너의 친구들은 회상했다.

  

  네가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너를 불러내 긴 수다를 늘어놓았다. 네가 너무 반가워서 그랬다. 그럼 너는 피곤할 텐데도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주의 깊게 귀 기울여 주었다. 내가 주절주절 말하면 너는 잘 듣고 있다고 말해주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다가 내가 우스운 이야길 들려주면 너는 살며시 웃었다. 그때마다 쌍꺼풀이 얇은 네 눈가에 가볍게 주름이 졌다. 토끼마냥 살짝 긴 앞니가 드러나며 입꼬리에 주름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너의 웃음이다.

 

  너는 사람을 좋아했다. 예전에 너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터미널을 떠돌아다니던 사람과 술을 마시며 친해졌지만 그가 돈지갑을 훔쳐갔다던 이야기나, 해변에서 술 취한 남자를 숙소에 데려와 재웠더니 인신매매 범으로 오해 받았지만 결국엔 친구가 됐다는 이야기. 나는 네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것 같아 걱정했다. 그러면 너는 그래도 사람들은 미우나 고우나 모두가 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100쪽에서 만났다면 99쪽까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상상하는 게 너의 악취미라고. 그럼 나는 네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한없이 작아졌다.

 

  너는 타인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도, 마음에 없는 말로 사람들을 네 편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너는 그저 조용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도 너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너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나는 너처럼 새벽마다 일기를 썼다. 혼자서 여행도 다녀오고, 너와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네가 읽었던 두꺼운 책을 구입해 읽고, 너와 대화하려고 네가 본 지루한 영화도 끝까지 보았다. 언젠가 너와 함께 외국으로 여행을 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낯선 언어도 공부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일상의 한 부분을 네가 차지해 버렸고, 내 웃음은 점점 너처럼 자연스럽게 변했다.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네가 문학잡지에 등단했을 때 나는 네가 자랑스러웠다. 사람들이 너의 글에 감탄하면 내가 더 기뻤다. 처음 듣는 네 큰 웃음소리에 나는 설렜다. 그러다가 곧 네가 미워졌다. 네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외국에서 지내겠다고 말해서였다. 나는 외국까지 가서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려고 그러느냐고 너에게 핀잔을 줬다. 괜히 짜증도 부렸다. 그러지 말걸 그랬다. 너의 웃는 눈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 겨우 그거라니. 겨우 그것밖에 아니었다니.

  나는 인터넷을 뒤져 여기저기 유명한 가게를 찾아봤을 너를 상상했다. 피사의 사탑에서 찍을 온갖 재미난 포즈를 연구하던 너를 상상했다. 세느강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문장을 메모지에 옮겨 적을 너를 상상했다. 긴 여행을 가기 전에 기대감에 한껏 부푼 너를 상상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네가 사고 나던 때로 돌아가는 걸 상상했다. 네가 탄 택시가 트럭에 부딪히는 걸 내가 온몸으로 막는 상상을 했다. 그럼 내가 너처럼 잠들어있고, 너는 자유롭게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까? 아니 착한 너는 내 걱정을 하느라 여행을 갈 수 없었겠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너는 여행도 가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지금도 누워만 있다. 나는 그런 너를 미워하다가, 울다가, 아무 것도 먹지 않다가 네가 가려던 도시에 다녀왔다. 밀라노에서 융프라우를 거쳐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갔다. 네가 가려던 낯선 곳들로 갔다. 사실 나는 그 낯선 세계가 두려웠다. 하지만 너에게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내가 다녀왔는데 아주 멋진 곳이었다고. 풍경과 분위기에 압도되어 저절로 멋진 생각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었다고. 그러니까 다음엔 꼭 같이 가자고. 그럼 네가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줄까? 나의 여행담이 더 듣고 싶어 밤새 나를 기다리겠지. 나는 그런 너를 떠올리곤 낯선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네게 들려 줄 여행지를 눈에 담았다.

  나는 낯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기타를 치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여자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아무렇게나 앉아 기타를 쳤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든, 휘파람을 불든, 돈을 던지든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은 채 기타를 쳤다. 그녀는 옛날 화가가 그린 그림 같았다. 짙은 눈썹에 엷은 미소 그리고 깊은 눈매. 그때 네가 생각났다. 아니, 그때도 네가 생각났다.

 

 

  나에겐 그 여행이 설레지 않았다. 온갖 멋진 풍경을 봐도 설레지 않았다. 네가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서 그런지 내겐 더 이상 설레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웃지도 않고, 부끄러워 숨고,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너는 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거리에서 기타를 치던 여자처럼 미소 지은 채 여행을 즐겼겠지. 네 특유의 웃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렸겠지. 나는 네가 보고 싶어 여행지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호텔에서 창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보면 참 낯설고 아름다웠다. 나는 바깥을 내다보며 글을 쓰곤 했다. 몇 개의 단어와 네가 떠올라서 나는 걷다가도 글을 썼다. 낯선 거리, 낯선 언어, 이방인인 나를 보는 낯선 시선들. 그곳은 외계가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외계에 온 것 같았다. 내가 외계에 살고 네가 지구에 산다면 그래도 나는 너를 좋아했을까?

  나는 글을 썼다. 소설 속의 나는 망원경으로 별을 구경하다가 지구라는 별을 발견했다. 그 옆에 달이라는 위성이 사랑을 구걸하듯 쫓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매력 있는 별이기에 저 큰 별이 쫓아다니는 걸까? 나는 지구를 관찰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너를 찾게 됐고 망원경을 확대해 너를 관찰했다. 그렇게 호기심에 너를 바라보다가 너의 팬이 되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됐고 너와 닮지 않은 나를 미워했다. 먼 훗날 너는 내가 사는 별로 여행을 왔다. 너는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워 점점 작아지는 나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네가 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네가 내게 해줬던 말들이 큰따옴표 안에 있어서 너는 내 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소설을 쓰며 웃다가 울었다.

 

 

  나는 여전히 너를 바라보고 있다. 반듯하게 누워 눈만 감고 있는 너를 바라보고 있다. 산소호흡기가 너의 코와 입을 막고 있다. 그래서 네가 입을 다물고 웃는지 토끼 같은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지 보이지 않는다. 너는 밑동이 잘린 나무처럼 누워있다. 잠버릇이 없어서 이를 갈지도 코를 골지도 않는다. 답답할 텐데 뒤척이지도 않고 가만히 잠만 잔다. 오랫동안 잠만 자고 있다.

  혹시 너에게 기적이 생길까? 아니,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너의 가족이나 너를 아끼는 너의 친구들은 기적을 믿어보자고 말하지만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아주 오랫동안 너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다. 네가 답답해한다는 걸 나는 안다. 내가 너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혹 이해는 하더라도 울면서 나를 때리고 욕하겠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상관없다. 이런 게 너를 위한 일이라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상관없다. 욕을 들어도 괜찮다. 이젠 모든 게 상관없다. 네가 잠만 자니까 모든 게 소용없다. 이제 오랫동안 답답했을 너를 놓아주고 싶다.

  나는 산소 호흡기에 묶여있는 너를 본다. 빤히 쳐다본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