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혼자다. 외롭다. 주말이다. 더 외롭다. 혼자 애인도 없는 사람이 주말이 되면 더 외롭다. 외로움의 극치다. 마음이 외로우니 육체 까지 쳐진다.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다. 한 마디로 미치겠다. 담배를 피워 문다. 후-한숨이 나온다. 창밖을 본다. 하필이면 그 때 나만한 쌍쌍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지나간다. 휴- 한숨이 한 번 더 나온다.
일단 옷을 주워 입는다. 누추하지 않게, 솔로 라는 티를 내서는 안 된다.그땐 외로움을 넘어 비참해 지니까.
밖으로 나선다. 길 위를 걷는다. 날씨가 춥다. 내일이 크리스마스다. 코트 깃을 세우고 걷다 보면 종종 솔로 여자가 눈에 보인다. 문득, 다가가고 싶어진다. 내 이상형 이면 더 그렇다. 허나, 마음뿐이다. 용기가 안 생긴다. 그러니까 여태 혼자지. 자학 까지 하게 된다.
내게 여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나도 있었다. 단지 깊이 사귀질 못했을 뿐이다. 오래간 여자가 없다. 손도 못 잡아 봤냐고? 손도 잡아보고 키스도 해 봤다. 그런데 오래 못 갔다. 왜? 진단을 해 봤다. 무엇이 문제 일까?고민도 해 봤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손을 잡고 키스를 해도 더 이상 진전을 바라지 않는 나의 이상심리. 왜? 도대체 왜? 마음속에서 싹트지 않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움트지 않는데 더 만날 필요가 있을까. 그럼 어찌해서 손잡고 키스를 해도 진정한 사랑이 생기지 않을까? 연구를 해도 답이 안 나왔다. 단지, 인연이 아니니까 .로 결론이 도출되면 그 때에야 한 시름 놓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는 온통 축제 빛이다. 담배를 피며 계속 걷는다. 시계를 본다. 낮 12시 . 밤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밤이 되면 도심의 거리는 온통 형형색색의 빛이 되겠지. 역전 까지 걷다 무작정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 밑으로 내려간다.
그때다 !
“내가 뭘 잘못 했는데 ...... .”
내 또래의 남자와 여자가 계단 중앙에서 싸우고 있다. 여자가 고함친다.
“오빤 , 항상 그런 식이야.”
“그런 넌 어떻고.”
남자가 핏대를 세운다. 그 둘을 피해 지나면서 나는 속으로 짐작한다.
“상당히 오래 사귄 것 같은데...... .”
뒤에서 남자가 소리친다.
“어디, 니 멋대로 해봐.”
여자가 급기야 울음을 터뜨린다.
“끝이야. 헤어져. 아-앙.”
나는 둘의 사이가 은근히 부러워진다.
“저런 싸움 한 번 해 봤으면.”
혼자 중얼거리며 개찰구로 들어간다. 지하철 안은 복잡하다. 귀찮다. 두 정거장 가다 내린다. 배가 고파온다. 점심을 안 먹고 나온 게 후회된다. 다행히 돈은 있다. 김밥을 두 줄 사먹고 가게문을 나서자 후-욱 찬바람이 불어온다. 행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간다.
“혁수 씨는 비관 주의자 같아.”
언젠가 마지막 만나는 날에 혜숙이 말했다.
“난 비관 주의자는 싫어.”
그녀는 훌쩍 떠났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린 깊게 사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 아니었을까? 그녀는 내게 마음을 연건 아니었을까? 내 마지막 여자는 그렇게 떠났고 그 후로 1 년 동안 나는 아무도 사귀지 못했다. 혜숙이 떠나도 나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미련도, 여운도 없었다. 그녀는 몇 번 문자를 보내 왔으나 나는 답 하지 않았다.
“가벼운 사람.”
그녀의 마지막 문자였다.
“그래, 난 비관 주의자 에다 가벼운 사람이다.”
나는 혜숙의 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녀는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
“집에 가자.”
혼자 중얼거리며 오던 길을 되돌려 집으로 온다.
썰렁-.집 안이 귀신도 안 나올 것 같이 허허롭다.t.v를 켠다. 곧 끈다. 책을 집어 들었다가 접는다. 잠을 청해 본다. 곧 일어난다. 창밖을 본다. 커튼을 닫는다. 이리저리 방 안을 서성이다 고등학교 친구 놈에게 전화를 한다.
“나, 바쁘다. 나중에 통화하자.”
놈은 크리스마스에도 일 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는다.
“놈에 비하면 내 직장은 상관이네.”
나는 거울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
“내가 누나죠?”
북한산을 손잡고 걸으며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2학년 이었고 나는 1학년 이었으니 누나 맞았다.
“...... .”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 내려.”
“...... .”
여전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갈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곧장 내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우린 그 후로 만나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번호를 확인한다. 김 윤정 ! 북한산을 함께 손 잡고 올라갔던 누나. 문학 동호회에서 만나 나는 주장으로 그녀는 부 주장으로 그냥 별 일 없었던 누나. 아무 일 없이 손만 잡고 덤덤했던 관계. 전화벨이 계속 울리다 지쳐 꺼진다.
“인연이 아니니까.”
나는 옹아리 하듯 중얼댄다. 나도 여자를 깊게 사귀고 싶고 싸움도 하고 싶고 너 없으면 죽네 사네 아옹다옹 하고 싶다. 그런데 ...... .거울을 본다. 안경 쓴 모습이 낯설다. 안경을 벗는다. 희미하다. 다시 고쳐 쓴다.
“나도, 내 마음을 , 진실된 마음을 줄 여자가 필요 하다고.누나든 , 동갑이든 ,연하든 말이야.”
침대에 벌렁 누우며 소리친다.
“그런데 왜? 안 나타나는 거야 !”
바깥에서 케럴이 들려온다. 무자비한 겨울을 혼자 보내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설핏 잠에 빠져든다.
“오빠가 첫 키스예요.”
옥화는 말했다. 극장에서 만났던 여자.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던 여자. 혹시 혜숙이나 윤정이나 옥화는 내게 마음까지 연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왜? 왜? 언 듯 잠에 빠져들며 나는 울고 있었다. 케럴 소리가 사라지며 멀리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비관 주의자. 가벼운 사람.”
누군가 했던 말이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끝-
남 상봉 .
010-9224-3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