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도플갱어 프렌드

by 지영 posted Jan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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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누구나 섬이다.’ 사람은 원래 외로운 존재니까 외로워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제주도인 사람이 있고, 일본인 사람도 있는가하면 소박한 사람들이 단란하게 모여 사는 작은 섬도 있는데 나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무인도이다. 과장이 아니다. 오빠와 엄마는 나를 두고 히키코모리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오빠는 화를 냈고 엄마는 울고 계셨다. 벌써 14개월 째. 가족들은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병적인 사람이고 극단적인 비극에 빠진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방구석 라이프는 생각보다 편안하다.

  내가 처음부터 모든 걸 자포자기한 것은 아니었다. 잘 하려고 노력도 했었다.

 ‘왜 나는 인간이란 존재로 이 세상에 던져져서 사회적 동물로 살아야 하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질문에 머리를 굴리며 긍정적인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머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고 결국 히키코모리, 열등한 사회적 동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것은 꼭 잘못된 화학 반응식 같다. 과학 시간에 배웠던 화학식은 A+B=C로 안정적이고 누구에게나 해가 없는 공식이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나의 학교생활은 평범한 공식 같았다.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학생. 2학년이 되고 친하게 지내던 반 아이들과 사이가 틀어지고 왕따를 겪게 되면서부터 A에 오면 안 될 것들이 A자리에 왔고, A와 만나면 안 되는 것들이 B자리에 와버렸다. 불쾌하고 매캐한 사건들이 폭발한 것은 한 순간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푸코라는 철학자는 학교는 학생들을 잘 감시할 수 있는 감옥 같은 구조라고 말했다. 학교가 감시하는 것은 내 성적이 어떤지, 등수가 어떤지, 내가 학교 규정을 잘 따르고 있는지 따위였다.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소외되어 있고,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담임에게도, 반 아이들에게도,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고 3이 되기 전 자퇴를 했고 대학입학에 실패하고부터 방구석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14개월 동안 방구석에만 있다 보면 유행은 뒤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름 고안해 낸 방법은 상상하기이다. TV에서 체크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이 최근에 많이 보이면, 요즘에는 체크무늬가 유행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럼 나는 파란 바탕에 흰색으로 체크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번화가 거리를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 속의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날씬하고 예뻐서 기분이 좋아진다.

  올 여름에 오렌지 립스틱이 유행이라면 내가 화장대 앞에서 그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옷이니 립스틱이니 시각적인 것들은 상상하기 방법으로 대체로 해결이 된다.

  내가 정말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맛, 미각이다. 맛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은 치즈다. 북한 김정은을 비만으로 만들었다는 에멘탈 치즈, 마다가스카와 언제나 이름이 헷갈리기만 하는 마스카포네 치즈, 계란 흰자로만 만들었다는 라코타 치즈,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고르곤 졸라, 대충 치즈 맛인 건 알겠는데 각각의 차이를 정말 모르겠다.

  남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사먹는 걸 실행할 수도 있지만 나는 히키코모리이다. 언젠가 저 문을 열고 나가 다양한 치즈들을 먹는 날이 올까?

  

 

  “너는 외롭지도 않니?” 하루는 오빠가 술이 제법 취해서는 늦은 밤에 방문을 쿵쿵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방문 앞에서 오랜만에 외로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힘들게 한 건 외로움과 소외감이었다.

  나에게 외로움이란 내 또래들이 주위에 있는데 나와 친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 2때 엄마가 새로운 스마트폰을 생일선물로 사주었을 때도 외로웠고, 오빠가 학교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나를 마중 나왔을 때도 외로웠고, 그 때 나는 ‘Exponent’의 팬클럽 로그였는데 Exponent가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하고 로그, 사랑해요!" 하고 말해주었을 때도 외로웠다. 엄마, 오빠, Exponent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친구가 되어줄 순 없기에 그들은 나의 외로움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저 우리 반에 친구라는 게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학교를 자퇴하는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히키코모리가 된 지금은 외롭지 않다. 지금은 주위에 아무도 없고, 또래도 없고, 어울리지 않아도 되고, 소외감을 느낄 수도 없다.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는 이 방에는 우습게도 안도감이라는 것이 있다.

  눈이 마주치는 곳에서부터 의식이 흐르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2시가 넘었다. 밤낮이 바뀐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창문으로 햇빛이 그대로 들어와서 공중에 떠 있는 먼지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가만있는데 이방인 같은 것들이 요란하게 신경을 자극해?!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치고 먼지들을 물리쳤다.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이젠 무얼 할 지 고민해 보았다. ‘나가자방 손잡이를 잡고 서슴없이 돌렸다. 지금은 엄마는 출근을 하고, 대학생인 오빠는 학교에 가 있을 시간이다. 내가 방 손잡이를 돌릴 수 없게 만드는 건 관계이다. “일어났니?”, “밥 먹어야지.”라는 말이나 넌 지금 일어났니?”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거나.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대화하는 것이 꺼려진다.

  혼자 있을 때는 이 방을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 속 나는 부스스한 머리와 칙칙하고 여드름 난 피부. 음침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

밖에 나가지도 않는데 아무렴 어때?!’ 서둘러 볼일을 보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까 방을 나가기 전에 전원을 켜둔 컴퓨터는 부팅을 마치고, 파란 바탕화면을 띠고 있다. 요즘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페이스 북이다. 누가 해외여행을 가든, 무얼 먹든, 누구를 만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페이스 북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 아이들보다 뒤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2때 나를 왕따로 만든 원흉들. 우연히 페이스 북에서 그 아이들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은 대학생 커플이 돼서 남자친구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2는 유럽 여행을 하고 있었고, 3은 페이스 북 상에서 천 명이나 되는 친구를 거느리고 있었고 4는 전국 맛 집이란 맛 집을 섭렵하고 다니며 잘 지내고 있었다. 내 감정은 이 아이들만큼은 해외여행을 가고, 무얼 먹고, 누구를 만나는 것이 나와 아주 상관있는 일이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질투, 열등감 이런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인 나는 히키코모리인데, 가해자인 저 애들은 웃으며 잘 살고 있다. 패배감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인과응보가 통하지 않는 부조리에 대항하기 위해 나는 페이스 북을 하기 시작하였다. 유명 블로거가 올린 음식 사진들을 내 페이스 북에 올리면서 내가 먹은 것처럼 꾸몄다. 쇼핑 사진들을 내 페이스 북에 옮겨 담으며 마치 내가 산 물건 인양 꾸며댔다. 나는 점점 더 용감해졌는데 몸단장을 하고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내 사진을 찍어 약간의 보정을 하고 페이스 북에 올리고 말았다. 그 아이들이 볼 것을 염두하고 말이다. 그곳에서만큼은 나도 똑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페이스 북에 올린 내 사진 한 장.

  며칠 후 내 사진에는 댓글이 달렸다. 모르는 누군가로부터였다.

이거 진짜 본인 사진이에요? 내 얼굴인 줄 알았어요.”

댓글을 단 사람은 최민아라는 여자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민아라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의아하기만 했다.

이제까지 페이스 북에 올린 음식 사진, 쇼핑 사진, 여행 사진은 모두 다 가짜이지만 내 얼굴 사진만큼은 진짜이기에

제 사진 맞아요. 저랑 많이 닮으셨나 봐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러니까 잠시 후 최민아라는 사람은

많이 닮은 건가요? 똑같은 건가요?” 라는 아리송한 답을 보내왔다. 나는 점점 불쾌해졌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얼굴을 가지고 모르는 사람과 닮았네, 똑같네 하며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에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잠시 후 최민아라는 여자가 페이스 북 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맙소사!”하며 깜짝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진 속 최민아는 정말로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탠다면 얼굴을 복제한 것처럼 똑같았다.

닮았죠? 그죠? 저 소름 돋았잖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우리 나이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21.”

저도 21살이에요.”

순간 잃어버린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하고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기도 했다. 비로소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얼굴을 갖고 왜 이상한 얘기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신기해요!”

 이렇게 말하고 최민아는 똑같이 닮은 것도 인연이라며 서로 페이스 북 친구를 맺자고 하였다. 친구라는 말에 행복감도 설렘도 감동도 느낄 수 없었는데, 이런 곳에서 말하는 친구란 서로의 사진에 댓글을 달아주고,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심이나 속 깊은 감정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을 필요가 없으므로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최민아와 친구를 맺었다.

 

2.

  간호대학 학생인 최민아는 저녁에는 카페 전문점에서 알바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비슷하게 생겼고 나이도 같은데 삶의 모습은 왜 이렇게 다를까? 나는 그 이유를 최민아는 나처럼 힘든 일을 겪은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최민아가 올리는 사진이나 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최민아는 내가 올리는 사진마다, 글마다 댓글을 달았고, 좋아요 버튼도 눌러주었다.

어느 날 페이스 북 상에서 최민아는 나에게

도플갱어란 말 들어봤어요?”

라고 물었다.

꼭 닮은 사람이잖아요.”

내가 대답했다.

맞아요. 우리가 도플갱어일까요?”

우리가요?”

. 닮은 것 치곤 너무 똑같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어쩌다 사진이 그렇게 나온 게 아닐까요? 실물을 보면 서로 안 닮았을 수도 있죠.”

나는 최민아가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궁금하지 않아요? 우리가 실물로도 똑같은지?”

궁금하긴 한데.”

언제 시간되면 만날까요?”

그러면서 최민아는 학교 학생증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저는 신원이 확실하고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상당히 부담스럽고 당혹스러웠다. 14개월 동안 집밖을 나간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외출을 하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피해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사람으로 붐비는 시내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돈을 준다고 해도 싫은 일이다. 만남 제의를 거절하기 위해 도플갱어 전설을 이용했다.

도플갱어를 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던데요? 즉시 아니면 1년 이내에. 우리가 만났는데 진짜로 도플갱어이면 큰일이지 않을까요?”

완곡하고 우회적인 거절 법이었다.

그런 걸 믿어요? 괴테는 도플갱어를 21살에 봤지만 80대까지 살았대요.”

최민아는 전설을 빗겨간 사람들을 들며 반박을 했다. 우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있을 행운의 사람들이라고 확신하는 듯이, 나는 어쩔 수 없이 요즘에 많이 바빠서 시간내기가 힘들어요.” 하며 둘러댔고 최민아는 이번에는 순순히 수긍을 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최민아는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해왔다. 계속 바쁘다고 거절하는 것도 성가시고, 이것도 스트레스여서 언제 한 번은 만나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딱 한번이야.’

  외출을 하도 안하다보면 우리 집에서 도착지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에 대한 감이 떨어진다. 지하철을 타고 겨우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50분이나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할 일 없이 카페 앞에서 서 있는데 이곳도 많이 변하긴 했다. 번화가라서 매출이 적은 매장은 얼마 안가서 새로운 매장으로 바뀌었다. 벌써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는 매장도 몇 군데 보였다. 차도에는 신호등이 없어서 사람들이 수시로 건너다니고 있었다. 인도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알바 생들, 피켓을 들고 자선모금을 호소하는 청년들,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1인 설교를 하는 양복 입은 중년남자와 커플과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한 번 쉬고서 빨리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최민아는 약속시간을 5분 남겨놓고 도착했다. 한눈에 그 애가 최민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웃으면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데 닭살이 쭈뼛쭈뼛 돋았다.

안녕하세요. 김한나씨죠?”

.”

우리는 마주서서 서로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똑같은지, 코가 같은지, 입술 모양이 어떤지, 눈썹은 어떤지, 나는 최민아의, 최민아는 나의 얼굴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닮았다. 정말 많이! 쌍둥이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그래도 나는 최민아를 보고 내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느끼진 않았다. 풍기는 이미지나 아우라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회색이라면 최민아는 노란색이었다.

도플갱어를 마주하면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보았다는 충격을 받는다는데 내 앞에 있는 최민아는 낯선 타인일 뿐 그저 정말 많이 닮은 동갑내기 사람이었다.

우리가 도플갱어 같아요?”

내가 물었다.

도플갱어는 얼굴뿐만 아니라 비슷한 점이 많다니까 카페 안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최민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카페에서 최민아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설치기 때문에 치즈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도플갱어는 성격, 취미, 직업, 이력이 비슷하대요.”

저랑 민아씨는 다른 것 같아요. 성격도 그렇고. 저는 커피도 못 마시는데 그쪽은 마시는 것도 그렇고.”

최민아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청량감이 있다고 느꼈다.

지금 학생이세요?”

예상했던 질문이었으므로 계획한 대로 대학생이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딱 한번만 보고 말 사이인데 어떠냐는 심정이었다.

저는 간호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나중에 간호사가 되려고요. 혹시 한나씨도요?”

그렇게 말하는 최민아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계획한대로 전공은 경영학이라고 대답했다.

전공까지 같았으면 놀래서 소리쳤을 것 같아요.”

저도요.”

한나 씨 취미는 뭐예요?”

독서요.”

전 수영이요.”

전 수영 못해요. 물에서 노는 거 안 좋아해요.”

내 말에 최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초등학교는 어디 나오셨나요?”

한국 초등학교요.”

전 대한 초등학교요. 그럼 중학교는요?”

정문 중학교요.”

, 다르네요.”

  계속 이어진 대화 결과 우리는 서로 종교도 달랐고, 좋아하는 연예인도 달랐고, 가족관계도 달랐고, 고향도 달랐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모습도 전혀 달랐다. 최민아는 대학생이고 나는 대학입학에 실패한 히키코모리이다. 나는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우리가 도플갱어 같아요?”

최민아는 금방 대답하지 않고 좀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다른 점이 많긴 한데 외모며, 나이, 사는 곳은 똑같잖아요. 처음 봤을 땐 도플갱어 같았는데 지금은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고 아니라기엔 너무 똑같고, 잘 모르겠어요.”

최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옆 테이블에 있는 커플이 힐끔 힐끔거리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똑같이 생긴 사람 두 명이 앉아 아까부터 서로 호구 조사하는 게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니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오늘은 오전에 일어났더니 벌써 나른해졌고,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옆 커플의 호기심 섞인 시선이 어색했다. 나는 이제 그만 가봐야 한다며 즐거웠다고 형식상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최민아는 오늘 나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다음에 만날 때는 나이도 같은데 서로 말을 편하게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서둘러서 나가며 커피 값을 계산했다.

 

  며칠 뒤 저녁, 거실에서 오빠와 엄마가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나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저 둘은 항상 심각하다. 나는 방문 앞으로 가서 둘의 대화를 엿들으려고 했다. 오빠는 한나가 벌써 1년 넘게 저러고 있는데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엄마에게 선포했다. 고등학교 때 힘들었던 것도 있고, 대입에 실패한 상처도 알겠는데 이렇게 혼자 방치하는 것은 애를 더 망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도 충분히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나는 오빠가 당장에라도 이 방으로 쳐들어올까봐 덜컥 겁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문에 자물쇠라도 걸어놓을 걸 하고 생각했다. 정말로 오빠는 내 방문을 열려고 한 것인지 엄마가 성일아! 우선 앉아봐." 하고 막아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저 둘이 내 문제에 왜 저렇게 심각한 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난 이 안에서 편안하게 잘만 지내고 있다. 긍정적으로 내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제발 날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이어서 엄마가 화난 오빠를 타이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한나가 반감을 갖게 되고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상처가 많은 아이니 우리가 더 이해해야 한다. 며칠 전에는 외출도 하고 왔더라. 점점 나아지겠지. 당분간은 대화를 하는 방법으로 풀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자는 소리였다.

  이 집에서 나는 문제아이다. 내가 엄마와 오빠를 피하는 이유는 집안에서 부딪히는 짧은 시간에도 시선과 말과 행동으로 너는 문제아라고 낙인찍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고 2때부터 나는 정상이었던 적이 없다. 누구에게도.

  이어서 엄마가 불쌍한 한나. 혼자 얼마나 외로울까?”라며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난 지금 외롭지 않다. 나에게 외로움이란 내 또래들이 주위에 있는데 나와 친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엄마와 오빠가 생각하는 외로움이란 대체 무언지 궁금해졌다.

 

  최민아와 다시 만난 것은 처음 만나고서 한 달 뒤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민아와 나는 말을 편하게 하게 되었는데 최민아가 먼저 동갑이니까 말을 놓자고 했고, 나는 그게 어색해서 페이스 북으로 계속 존댓말을 쓰다가 그럴 때마다 최민아가 핀잔을 주는 바람에 결국 나도 편하게 말하게 되었다.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최민아에게 너는 외로움이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었다. 최민아는 처음에는 뭐 그런 질문을 하냐며 어려워하다가 생각해 보고 대답했다.

아플 때가 외로운 것 같아.”

?”

오로지 혼자만 아픔을 감당해야 하잖아.”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과 달랐다. 세상에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많은 외로움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외로울 수도 있겠다.

옆에 누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보호자가 있으면.”

정말 너무 아프면 소용없더라. 대신 아파줄 수 없잖아. 가족이 옆에 있어도 어쩔 수 없어.”

지금 너는 아프니?”

나는 최민아가 외로운지 알고 싶었다.

지금은 최상의 컨디션. 외롭지 않아.”

최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아프니?”

나도 안 아파.”

정말?”

.”

나는 태연해보이고 싶었다.

 

3.

  오후에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집 현관이 열리더니 누군가 서둘러 신발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거실 서랍장을 시끄럽게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한나야, 엄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어.”

  오빠였다. 오빠는 입원 생활에 필요한 엄마 물건들을 챙기는 모양이었다.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동선이 분주했다. 나는 방문 앞으로 가서 얼마나 다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크게 다치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면서도 입에서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이 집에서 엄마와 오빠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문제아였다. 서로에게 켜켜이 쌓아 놓은 감정의 벽이 아무 말도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저 방문 앞에서 방문 손잡이를 부여잡고 서있기만 했다.

오빠는 이번에는 내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엄마, 오늘 수술 받아야 한다. 같이 가자.”

 나는 엄마가 얼마나 어떻게 다친 건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이 방문만 열면, 그리고 오빠에게 말을 할 수만 있다면. 마음이 딱딱한 껍데기로 덮였는지 도통 유연해지지 않는다.

오빠는 방문을 몇 번 더 두드리며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아무 반응이 없자 입원 병원을 메모해 놓고 먼저 갈 테니까 혼자라도 나중에 꼭 오라고 당부를 하였다.

  내가 방구석 라이프를 시작하자 엄마는 어떻게든 내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차려 방문 앞에 갖다 주었고, 내 빨래를 다 개놓고 방문을 두드리셨다. 나는 그것마저 그만하라며 엄마를 거부했고, 더 이상 곁을 내주지 않았다. 모녀간에 정이 없이 지내는 것은 견딜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이미 아빠의 죽음을 경험했다. 나는 아빠처럼 엄마도 병원에서 가버릴 까봐 무서워졌다.

 방문을 열고 나가서 메모지를 확인했다. 시내에 있는 큰 병원으로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었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끄고 옷을 갈아입고 교통카드와 스마트폰도 챙겼다. 14개월 동안 이렇게 몸을 바쁘게 움직인 적이 없는 듯하다.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면서 게으름과 귀찮음만 늘었다. 이제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전에 최민아를 만나면서 외출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해하지 않으며 길을 걸을 수 있고, 요즘 계절의 날씨에 딱 맞게 옷을 갈아입었고, 밖에 나가서만큼은 정상적인 사회적 동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신발을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발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할지, 많이 다친 거냐고 물을지, 울어야 할지, 담담한 표정을 지을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을지, 오빠 옆에서 가만히 있을지.

  나는 계속 그 자리에서 망설이며 있었다. 엄마와 끊어버린 관계를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이미 엉클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신발은 신어보지도 못하고 방에서 오빠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니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봐 이렇게 위안을 삼으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평생 바뀔 수 없을 거라고 예감했다. 엄마가 수술을 받는다는데, 어쩌면 다시는 엄마를 못 볼 수도 있는데도 이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빠에게 전화가 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오빠는 다짜고짜 메모해 놓은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내가 보았다고 말하자 오빠는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고 물었다. 이어서 3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되는데 퇴원하기 전에는 엄마 병원에 오는 게 좋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오빠는 더이상 나와 말하기 싫은건지 그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번만큼은 수술이 잘 되었냐고 꼭 묻고 싶었는데 또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4.

  세 번째로 최민아를 만난 것은 엄마가 입원한 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카페에도 가니 벌써 밤 9시가 넘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우울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오빠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은 깜깜하다. 거실의 불도 꺼있고, TV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오빠와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 혼자만으로는 집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게 할 수 없었다. 적막한 냄새, 외로운 냄새 때문에 들어가기 싫었다.

  나는 최민아에게 어디 가서 술이라도 마시자고 먼저 제의했다. 우리는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나는 소주인데 최민아는 맥주를 마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최민아는 나에게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내가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페이스 북에서 본 고급 음식, 쇼핑 사진들 때문에 나를 명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웃으면서 그곳은 원래 좋은 것만 보여주는 곳이잖아. 난 명품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어서 최민아는 너에게도 나쁜 것이 있냐고 물었다.

많지.”

나도 많아.”

최민아가 말하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벌써 취기가 올랐는지 볼이 붉어져 있었다.

카페에서 알바 하는 거. 커피 만드는 것도 공부해야 하고, 하루 종일 일어서서 일하니까 다리도 아프고, 그래도 우리 집 형편에 학비가 부담이니까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어야 해.”

나는 최민아의 말을 들으면서 술잔을 비웠다.

알바 하다보면 학과 공부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고, 간호대 생들 악바리처럼 공부하니까 시험 보면 밀리고, 장학금은 딴 애한테 가 있지. 나도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고 싶다.”

그렇게 푸념하고 최민아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도플갱어는 자신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또 다른 자아래.”

최민아가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너의 또 다른 자아. 너는 나의 또 다른 자아.”

또 다른 자아?”

내가 물었다.

. 넌 나의 또 다른 자아야.”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깐 서로를 또 다른 자아로 생각하고 나쁜 것도 말해보는 게 어때? 나를 최민아가 아니라 김한나의 또 다른 자아로 생각하고 말해봐. 우리는 도플갱어 프렌드니까.”

나는 바로 엄마와 오빠를 떠올렸지만 이 이야기를 최민아에게 털어놓을 순 없었다. 망설이고 있자 최민아가 먼저 시작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었어. 그 때는 사람들한테 먼저 마음을 못 열었어.”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듣고만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동안 한번 쯤 왕따 안 당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혹시 너도?”

.”

최민아는 재미있다며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자아와 얘기하고 있다. 여긴 나와 또 다른 자아가 있다.”

그러면서 최민아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집, 중학교 때까지는 괜찮게 살았었는데, 아빠가 먼 친척한테 보증을 잘못 섰어. 그래서 네 식구가 낡은 집으로 이사를 갔어. 그것도 밤에 꼭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 때 아빠가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처지가 꼴이 말이 아니게 됐지. 거지꼴로. 그 후로 아빠는 밤에 대리운전까지 하면서 빚을 갚으셔. 앞으로 1,2년 정도 더 있어야 빚을 다 갚을 수 있대. 이제는 소처럼 일의 노예가 된 아빠가 불쌍해.”

 나는 인생의 즐거움만 알고 웃음 짓는 최민아보다는 인생의 고통을 알아버린 최민아가 더 좋았다.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가 나의 진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지 가늠해 보았다.

즐거움만 알고 웃음 짓는 최민아에게는 말할 수 없다. 인생의 고통을 알아버린 최민아에게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또 다른 자아, 도플갱어 라면 말하고 싶었다. 나는 비어있는 최민아의 술잔에 맥주를 따라 주며 말했다.

니가 정말로 내 도플갱어였으면 좋겠어.”

맞다니까.”

그러면서 최민아도 내 술잔을 채워주었다. 술이 차 있는 소주잔을 바라보며 이 술기운을 빌러 또 다른 자아에게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 병원에도 가고 싶었다. 모든 이야기를 또 다른 자아가 가져가 버렸으면 좋겠다. 약하고 소심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나눠가 준다면 엄마에게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술잔을 비우고 나는 최민아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자아라고, 거울을 보고 얘기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가짜야. 대학생도 아니고 페이스 북도 가짜야.”

최민아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또 다른 자아가 맞지?”

내가 서둘러 묻자 최민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하고 자퇴를 했어. 검정고시를 봐서 고졸이 되었지. 남들 다 들어가는 대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20살부터 내 방에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 나는 자의식에 빠져 살았지.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차마 갈 수가 없어. 내 방에서 사는 동안 엄마도 외면해 버렸거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또 다른 자아의 얼굴을 보았다. 그 눈동자에서 울먹이는 내가 비쳤다.

 최민아는 내 고백 때문인지 맥주 때문인지 알딸딸한 표정을 하고 있다.

취한 것 같다. 그만 마셔야겠어.”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많이 다치셨니?”

잘 몰라.”

이렇게 말하고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5.

  다음 날 아침. 기상시간이 아닌데 눈이 떠졌다.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려댔기 때문이다. 무거운 눈을 억지로 떠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최민아였다. 최민아는 다짜고짜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이 어디야?” 하고 물었다.

시내 병원이야.”

“11시까지 병원 앞에서 만나자.”

?”

나는 놀라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11시까지 병원에 안 오면 내가 네 대신 엄마에게 갈 거야. 너도 내가 가짜 딸 행세를 하는 게 싫겠지?”

병원에는 나 혼자서 갈 수 있어.”

그러니깐. 여기로 11시까지 와서 엄마를 만나러 가라고. 네가!

나는 오늘 말고 다른 날에 꼭 가겠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최민아는 오늘 꼭 가야한다며 병원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정말이지 왜 그렇게 자꾸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930분이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많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11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최민아가 나대신 엄마를 만나러 간다. 그것부터 막아야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정말로 나와 닮은 사람이 병원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지금 우리가 닮은 걸 오용하는 거야.”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닌데 내 말에 최민아가 웃었다.

오용이 아니라, 필요한 응용이지.”

어쩌려고 그래?”

또 다른 자아가 그러는데 용기를 내래. 자퇴를 한 것도, 대학을 못 간 것도, 가족을 피했던 것도 모두 다 괜찮대. 우린 늘 잘 하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잘 안될 때가 많잖아. 이젠 방에서 나와. 그리고 엄마를 만나러 가.”

최민아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동안 외롭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제 그만 들어 가봐.”

나는 최민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젠... 가볼게.”

나는 천천히 뜨거우면서도 묵직한 것을 가슴에 안고 병원에 들어갔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곳은 신경외과 병동 4인 병실이었다. 병실 입구에 엄마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제일 안, 창가 쪽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고 계셨다. 쭈뼛쭈뼛 병실 입구에 서 있다가 엄마가 나를 발견해 주고서야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한나야.”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바닥으로 침대를 꾹 누르면서 팔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허리보호대를 가져다가 허리에 감고 고정을 시켰다.

많이 다친 거야?”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허리 골절이야.”

수술은 잘 됐어?”

잘됐어. 3주 정도 입원해 있어야 해.”

다른 데는 괜찮고?”

.”

엄마는 거동이 불편해서인지 머리도 며칠 못 감고 얼굴에 화장기도 하나도 없었다. 집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엄마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바라보는 것은 14개월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건강하고 푸근한 엄마 얼굴이 아니라 추레하고 아픈 얼굴이라서 마음이 쓰렸다.

어떻게 온 거니? 너 혼자 왔니?”

지하철 타고 혼자 왔어.”

엄마가 웃으셨다. 그리고 엄마는 두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려놓고 천천히 신발을 신으셨다. 엄마의 행동은 슬로모션 영화처럼 천천히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TV옆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꺼내셨다.

이것 좀 마셔.”

이따가 먹을게.”

엄마에게 음료수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오랜만의 모녀상봉치고는 얌전하고 담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고,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 끌어안고, 카타르시스가 절절한 것보다 지금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오빠는 언제와? 잠은 여기에서 자?”

저녁에나 올 거야. 너 집에 혼자 있다고 집에 가라는데도 기어이 여기에서 잔다잖니.”

나 때문에 집에 오기 싫었을 거야.”

오빠가 기다란 보호자 침대에서 쭈그리고 자는 모습을 상상하며 약간의 가책을 느꼈다.

엄마 옆 침상에는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붕대를 한 젊은 여자가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의 보호자는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중년여자였는데 나를 보더니 따님이에요?” 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

매일 아드님만 오더니 오늘은 딸도 왔네요.”

얘는 사정이 있어서 못 왔어요.”

 엄마가 복잡한 가정사를 사정이라는 한 단어로 무난하게 변명해 주셨다. 나는 정상적인 사회적 동물로 행동하기 위해 그분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그러자 보호자는 .”하고 웃어 보였고, 젊은 여자는 스마트폰을 잠시 멈추고 힐끗 나를 보았다.

엄마가 침대에 앉아 그 보호자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의자에 앉아 tv를 보았다.

  12시가 다가오자 각 병실로 점심식사가 배급되었다. 엄마는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허리가 불편해서 앉는 것보다 일어서서 먹는 것이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더러는 침대에 가서 앉으라고 하셨다.

이거 양이 많아서 나눠먹자.”

엄마 드세요. 나는 이따 사먹으면 돼.”

남기면 아까우니까 같이 먹어.”

엄마가 밥을 덜어 그릇에 담아주셨다. 밥을 뜨는데 그동안 거부했던 엄마 밥상이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모진 말들은 모두 후회의 씨앗들이었다. 결국 나는 밥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데 옆에 있던 보호자가

엄마가 입원해서 우나보네.”

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얘가 마음이 여려요.”

엄마 금방 좋아지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그 보호자는 엄마가 다친 걸 속상해하는 눈물 많은 딸로 나를 생각해주었다.

 

  오빠는 5시가 좀 넘어서 병실에 도착했다. 나를 보고는 놀라는 눈치였다.

오빠와 나는 원래부터도 사이좋은 남매 사이가 아니었다. 오빠는 자상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나도 살가운 여동생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나 이렇게 대면하니 어색하기만 했다.

병원에 안 오면 호적에서 파버리려고 했어.”

예나 지금이나 오빠는 이런 말만 잘한다.

그러자 엄마가 한나가 밥 먹는 것도 도와주고, 씻는 것도 도와줬어라며 나를 두둔해 주었다.

오늘은 걷는 게 어떠세요?”

아까 한나하고 복도 몇 바퀴 돌았는데 좀 나아진 것도 같고.”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어."

14개월 전보다 오빠는 더 듬직하고 남자다워진 것 같았다.

오빠는 그 날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엄마가 퇴원하실 때까지 둘이 교대로 엄마를 간호하기로 약속했다.

 

  매일매일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면서 기상 시간은 오전으로, 취침 시간은 밤으로 바뀌었다. 한걸음씩 생활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바보 같은 페이스 북은 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가짜가 판치는 세상 나까지 일조하고 싶지 않다.

  일본에서 몇 년 동안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남자를 방에서 나오게 한 것은 큰 지진이라고 했다. 남자는 살기 위해서 방 밖으로 나갔고 절박한 상황에서 가족들과 대피를 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앞으로는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면서 나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이 무언지 생각해보았다. 지진만큼이나 특별한 것이 나에게도 있었다. 도플갱어 프렌드, 나와 닮은 친구. 모든 게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준 친구. 방에서 나오라고 해준 친구. 그런 사람이 내 친구이고 이 세상을 밝고 씩씩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든든한 일이었다.

 ​ 나도 앞으로 그렇게 살기 위해서 이제부터 무얼 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수능을 봐서 대학을 갈 수도 있고, 직업 훈련학원에 다니고 취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인다. 시작이 괜찮은 것 같다. 나도 그 친구처럼 잘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긴다.



이름 : 고지영

이메일 : kjy5512@hanmail.net

전화 : 010-3235-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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