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샹들리에

by 녹매 posted Jan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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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


풍성한 꽃다발 한 아름 포옹하듯이, 먼저 웅장한 외형을 음미한 후에, 위에서부터 시선을 내리는 거야. 천장에서 내려온 기다란 금빛 등줄기를 따라 가, 심히 적나라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래, 그렇게. 투명한 크리스털, 진홍빛 루비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입맛을 다시고는 다시 집중해. 이윽고 휘어지는 곡선, 아아, 마치 사슴의 유방에 새겨진 아련한 자태를 보는 듯한……. 미세하게 떨리는 샹들리에, 그에 맞춰 일렁이는 촛불, 그 첨예한 날로 누군가 나의 귀두를 애무해 준다면 좋으련만!

시가지의 한복판, 뷔페 안은 시끌벅적했다. 이따금씩 때로는 어리둥절하고, 한편으론 냉소적인 눈빛이 나를 몰아붙이지만, 수음에 드는 나의 얄팍한 손목은 멈출 새가 없다. 진수성찬에 홀려 있는,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저 자들은 예술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고로, 지금 나의 영혼이 향하고 있는 지점이 우매한 그들에게는 불가시의 영역이리라.

미지근한 손가락 마디가, 볼록하게 차오른 나의 아랫배가, 뭉게구름 위에 발 한 쪽을 올려놓은 나의 심장이 나의 쾌감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황급히 뷔페를 빠져 나왔다.

 

영 익숙하지 않은 뜀박질까지 하며, 버스 정류장을 향하였다. 종래의 흥분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지금부터가 내 심미적 행위의 절정이 될 것이다. 오늘부로 비로소 출범하는 나의 탐미. 평소엔 뒤뚱뒤뚱 걷기만 하던 비둘기야, 오랜만에 퍼덕이는 그 날갯짓을 보아하니 너도 기쁜가 보구나.

미리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내가 승차해야만 하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새파란 버스가 머지않아 찾아 왔다. 창밖으로는 내가 품은 번뇌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햇살이 넉살좋게 나를 감싸 안았다. 그 포근한 감각 속에서, 나는 달콤한 꿈을 만끽할 수 있었다.

 

중학생 때의 수련회는 단출했다. 그저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할 뿐인 23, 몇 달 후면 눈 깜빡할 새에 새하얗게 지워져 버리겠지. 그럼에도 난 단 한 가지, 그 때의 일을 선연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당에서 진행되던 장기자랑에서 은은하게 빛나던 샹들리에,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의 머리로 수직 하강하던 그 샹들리에를.

 

샹들리에와 하나 된 그녀의 곁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꽃만이.

나는 그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같은 공기 속에 닿아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칠 정도로, 이질적인 걸작. 샹들리에가 그녀를 잡아먹은 것이었다.

그 존귀한 선혈의 감촉, 향기, 색감을 떠올린 순간, 나는 몽정 해버리고 말았다.

 

하차 벨이 울렸다. 나는 허겁지겁 몸을 추스르고 갑갑한 버스에서 탈출했다. 그때의 수련원, 지금도 변함없으려나. 이따금씩 산천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무더운 날씨에 송골송골 맺힌 관자놀이의 땀을 닦기도 하였으나, 그때 보았던 풍경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기술할 수 있을 만큼 주의 깊게 보지는 못했다. 나의 마음이 현실과는 동 떨어진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에워쌌기 때문이리라.

도착, 기억 속의 장소와 거의 일치한다. 공기의 맛은 청렬했고, 햇볕은 뜨겁게 나의 피부를 쪼았다. 누가 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입구에서 원마도가 낮은, 모서리가 뾰족한 짱돌 하나를 주섬주섬 챙겼다.

강당 앞과 마주하였을 때, 나는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현실과 이상의 국경, 나와 샹들리에의 경계, 수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잇는 단 하나의 다리. 사랑과 혁명의 이치, 부정과 도착의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지점, 그 지점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전투, 개시.

 

문을 열었다. 그곳은 별천지였다. 이 세계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까닭인지, 새빨간 핏덩이와 내 얼굴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벽화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솟구치는 피 웅덩이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필경 부드럽고, 향기롭겠지. 마치 포도주처럼. 고작 포도주 한 잔에 고주망태 되어, 내 오늘 그대를 위한 진혼가를 불러드립죠.

나는 고개를 들어, 아직은 천장에 붙어 있는 샹들리에를 바라보았다. 인생을 바꿔보자, 나의 카르멘. 우리가 영영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나는 품속에서 짱돌을 꺼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섬세한 샹들리에를 향해 힘껏 투척하였다.

크리스털 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첨예한 유리 날이 나의 안면과 어깻죽지를 씻겨 내렸다. 피가 제법 흥건했지만,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숨이 붙어 있다는 수치심, 난 그것을 양분으로 삼고 나아가야만 했다. 이제는 파편이 되어버린 샹들리에의 유리조각을 잡았다. 후회하지 않도록, 한 번에 끝내자. 내가 그녀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게끔. 그리 생각하며 유리 날을 박동하는 가슴 왼편에…….

 

누구야!”

 

한껏 뭉개진 목소리가 나 홀로 있던 강당에 메아리쳤다. 파란 조끼에 호루라기, 틀림없이 조교일 것이다. 난 사냥감을 탐색하는 밀렵꾼의 눈으로 달려오는 그를 피해, 후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유리 날을 꽉 쥐고 있던 탓에, 손가락 사이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금세 발소리가 늘었다. 여러 명이 나 한 명을 쫓고 있었다. 나의 심약한 몸뚱어리로 저들을 따돌릴 수 있을 리가 없다. 허나, 나에게는 목숨,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이 달린 문제였으므로, 간절함으로는 내가 더 위일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뒤편의 산길로 부랴부랴 뛰어갔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짐승처럼, 아니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 그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밑은 계곡이 흐르는 낭떠러지였다. 삼류 코미디에나 나올 법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밑바닥에 자빠졌다. 유리 날이 헐렁해진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더니, 미끄러운 바위를 지나 계곡 밑으로 침전하였다.

 

나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고는, 뇌까렸다. 정말이지,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어떻게 산다면, 너와 내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지금 나의 마음이 빛 바라지 않는 한 폭의 명화가 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를…….

저 멀리에서 조교들의 긴박한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어쩐지 그들이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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