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사우(死宇)

by 별눈 posted Jan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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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死宇)


"예주특별시에 사는 17세 고등학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21일 새벽 2시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소년을 병원으로 긴급후송했으나 결국 숨졌다. "


따르릉따르릉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다 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화면을 보니 전화를 건 사람은 엄마였다. 뭐, 전화가 왔다고 하면 엄마 아니면 아빠고 그중 대부분이 엄마니까 그리 놀라울 것은 없었다.

 

놀라울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어 재한아. 예주특별시 고등학생 의문사 기사 봤어?"

 

"네 보고 있어요."

 

"보니까 네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더라. 가뜩이나 자취하고 있는데 조심해."

 

"알겠습니다. 조심할게요. 끊겠습니다."

 

"그래"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국에서 자기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주변에서 조심하라며 걱정해 주는 건 나밖에 없을 것이다.

 

3년 전 10월 나는 어떤 능력을 얻게 되었다. 꿈속에서 누군가를 현실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일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능력을 얻게 된 그 날은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하는 내가 그날은 웬일인지 잠이 잘 들었다.

 

그렇게 숙면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오랜만에 평범해 보이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의 공간은 온통 까맸다. 하지만 천장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덕분에 어둡지는 않았다


뒤에도 뭐가 있나 해서 뒤를 돌아봤는데 한쪽 까만 벽의 스크린에 Welcome to 死宇 라고 금색으로 떠 있었다. 집 우자를 못 알아볼 뻔했지만, 수업시간의 기억을 더듬어서 알아냈다


마음가는 대로 걸어다니다가 어느 문 앞에 다다랐다. 검은색 문이었는데 문 테두리를 따라 황금색 선이 박혀있었고 손잡이도 황금색이었다.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문을 열었다


그 방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복도에서 빛나고 있는 촛불 덕분에 언뜻 보이는 전등 스위치를 켰다.

 

스위치를 켜니 나를 고통 속에서 살게 하고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만든 그 애가 보였다. 그 애는 내가 보이지 않는지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그 애를 보자 내 속은 증오와 분노로 가득 채워졌고 그로 인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괴물처럼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서 망설임 없이 어느샌가 나타나 내 옆에 나타난 칼을 집어 들고 그 애 앞으로 걸어가서 단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찔렀다.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이 상황이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애가 영원히 고통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애가 연기가 되어 사라짐과 동시에 잠에서 깼다.

 

까만 벽을 손으로 짚으며 걸어가면서 느낀 차가움, 그 애와 대면하자 온몸에 서린 증오, 칼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손가락 마디를 타고 올라가 얼굴 피부까지 전해진 전율, 이 모든 것이 손끝에 생생히 느껴져서 꿈이 아니었다고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현실적인 꿈은 처음이었다. 그냥 평범한 꿈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꿈이 아니면 뭐겠냐라고 생각하며 다시 누웠고 금방 다시 잠에 들었다.

 

그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진들을 피하고자 다른 애들보다 20분 일찍 등교해서 먼 길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피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해도 등교 시간에 마주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당연한 듯이 따라붙고 쉬는 시간에는 눈에 띄기만 하면 따라붙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아예 마주치지 않을 수 있기라도 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가다가 꿈에 나왔던 그 애와 한패인 공우현이 저기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일은 빈번해서 이제 익숙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벽 뒤로 숨어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 후에는 다른 한패인 애들과 마주치지 않고 반으로 들어갔다. 패거리 애들은 같은 반이 아니고 아침에는 비행을 위해 몰래 으슥한 어딘가로 갔었다. 그래서 아침에는 나한테 오지 않기 때문에 아침은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지금과 다를 것 없이 패거리의 집중적인 괴롭힘이 시작되니 자신도 패거리의 목표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나마 있던 몇 명의 친구들은 다 떠나버렸기 때문에 나는 늘 혼자였다.

 

그렇지만 곁에 아무도 없어서 외로운 것을 티 내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달래는 약처럼 패거리가 없는 조용한 아침에 학교 도서관에서 늘 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금가는 유리구슬 같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다루기 쉬운 책과 노는 게 더 낫다고 자기 합리화하며 말이다.

 

아침 시간이 끝나고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는데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내 뒤에 앉은 애가 무슨 일 있으시냐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짧게 말해주었다. 내용은 1반의 한 학생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꿈속에서 죽인 조기현도 1반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조회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죽은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겠다고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애들한테 물어봤자 얘는 뭐야?”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게 뻔했다. 그렇긴 하지만 다행히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어도 애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리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 반 애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얘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넘어 쿵쾅거렸다. 죽은 아이는 조기현이었다.

 

전날밤에 꾼 꿈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렇지만 당시 중1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술, 담배는 기본으로 깔고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애인데 비행하다가 그렇게 됐을 수도 있겠다라는 순전히 나를 위한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죽이는 꿈을 꾼 것뿐인데 내가 상관이 있겠냐는 생각이 뒤따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 애의 죽음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 밤에 확인해보기로 하고 2교시 준비를 했다. 2교시, 3교시, 4교시가 지나고 이보다 더 완벽한 지옥은 없을듯한 지옥으로 바뀌는 시간이 되었다.

 

중학교 때 그 패거리는 거의 반에 한 명씩 타깃을 정해 매시간마다 차례를 정해 그 반에 들러서 괴롭히는데 내 차례는 점심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몇 번이나 어디론가 나를 찾지 못하게 도망가 보았지만 바로 찾아내고 정도가 더 심해지기 때문에 도망다니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었다.

 

그리고 혼자서라도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가 봐도 언제 다 먹었는지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나를 잡아 인적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잡혀서 끌려갔다. 끌려간 곳에서 그 패거리는 자연스럽게 작지 않은 액수의 돈을 뜯어갔고 영악하게도 맞은 게 티 나지 않도록 복부, 허벅지 쪽을 발과 주먹으로 가격했다.

 

쓰러져서 기침을 하고 심장을 맞아 호흡곤란이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충분히 스트레스가 풀렸다고 생각할 때까지 계속했다. 조기현에게 밀려 2인자였던 공우현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동원해서 어느 때보다 크게 웃으며 나를 조롱하고 기절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구타했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참고 힘없이 터벅거리며 우리 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참함, 슬픔, 증오, 분노등 온갖 감정이 내 속에서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중 도착한 반 뒷문에는 학교폭력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적혀있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내용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알리라고 했는데 그게 가당키나한 소린가. 부모님에게는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말 못 하고 선생님에게는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말 못 한다. 그리고 117에 신고한다면 잘못하면 보복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신고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피해자가 잘 대처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종이를 문에서 뜯어내고 싶은 마음에 크게 한숨을 쉬며 손을 종이 위에 올렸다.

 

정신력으로 5, 6, 7교시를 버텼고 녹초가 되어서 교실을 나왔다. 중학교 올라가서부터 집안 사정으로 자취를 시작했고 당시 나는 자취 7개월 차였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이제 익숙해지라고, 지금보다 더 약해지면 안 된다고, 더 내려갈 곳은 없다고 스스로 세뇌한 후 TV를 틀었고 집에서 혼자 생각할 시간도 많고 내 몸에 있는 상처를 보고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고있는 집에 들어와서 시험도 끝나 달리 할 일도 없어 책가방 속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취할 때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것은 책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다 읽고 보니 밤 11시 반이었다.

 

아침에 확인해보자고 했던 것을 잊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그날도 잠에 빨리 들었고 꿈속에서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스크린에 무언가가 쓰여있는지 뜬금없이 생긴 호기심으로 뒤를 돌아보니 저번과 다르게 스크린에 Welcome to revisit이라고 떠 있는것이 보였고 내가 죽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곧장 황금무늬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보니 이번에는 공우현이 안에 있었다. 칼이 내 발 옆에 놓였고 확인하기 위해 집어들어서 지금까지 당한 것을 복수한다는 생각으로 찔렀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분노를 담아서 깊이... 천천히...

 

그 순간 잠에서 깼고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만들어서 먹고 씻고 나서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바쁜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니 공우현이 어떻게 되었을지 긴장되어서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못해 쿵쾅쿵쾅 뛰었다. 그 정도로 긴장이 되어서 나갈 시간이 될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확인되면 마음이 좀 안정될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그날은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비교적 평화롭게 도착했다. 반에 들어가기 전 1층에 있는 학교 도서관에 들러서 다 읽은 책을 반납한 다음 제목을 보고 흥미로울 것 같은 책을 골라서 빌렸다.

 

그렇게 조용한 아침 시간이 지나고 조회 시간이 되니 책에 빠져 잠시 잊고 있었던 긴장감이 되살아났다. 과연 공우현은 어떻게 됐을까.

 

아침 조회를 시작할 시간인 9시가 되니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저번보다 더 안 좋은 표정이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반 애들이 4반의 애가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공우현도 4반이었기 때문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반 애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죽은 애는 공우현이었다. 학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 두 명은 평소에 그따위로 살아서 그렇게 된 거라느니 그렇게 돼서 다행이라느니 하며 한순간에 학생들의 반찬거리가 되어 씹히고 조롱의 대상으로 변해 그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에 힘입어 학교는 루머와 소문에 휩싸였다.

 

학교는 그런 소문과 루머가 학교 밖으로 새나가서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생님들에게 두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절대 발설하지 말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함구하라고 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고 덮기에만 급급해서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학교의 이런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무리 문제아라도 그렇지 학생의 사인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지 않고 덮으려고만 해서 학교가 쓰레기라고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학교가 쓰레기인 것은 맞지만, 그 덕에 학교 밖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나에게는 다행이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 지금, 그 애들을 내가 죽인 거였다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껴질 줄 알았는데 죄책감은커녕 책상 서랍 속에 쌓인 먼지 만큼의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만들었던 주축 두 명이 없어진 것에 기쁨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날 이후로 일진들에게 당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죽이지 않고 신체에 상처만 남길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을 크게 벌이기 싫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며 되도록 죽이는 일은 피하고 그 애들의 몸에 칼에 베인 상처만 아무도 모르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남겨 보복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끝난 고1 여름방학까지 살아왔다.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3월에 강운형과 패거리들이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등하교 시간에 나를 조용히 따라와서 중학교 때 조기현이랑 알았지? 라고 아는 척을 하고 친구인척하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달라붙어 괴롭힘을 시작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을 위해 애써 그 패거리를 피해 다니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다들 자기에게 피해가 생길까 나를 피했다. 그 패거리는 고등학교에서 새 출발을 하려 했던 내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이런 처지에서 한번 벗어나 보자고 마음먹고 다가가 보았지만 역시나 내가 생각한 대로 잘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니 절망감이 배가 되었다.

 

중학교 때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겠구나라고 생각하던 그때, 담임선생님이 따듯하게 다가왔다.

 

올해 첫 발령인 젊은 선생님이라 열정적으로 대화해보려고 하는 거고 얼마 안 가서 그만두고 다른 선생님들과 다를 것 없이 관심을 주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깨고 담임선생님은 어떻게 알아채고 5월부터 매일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불러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하던 폭력에서 나를 구해주었고 오늘도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날은 급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밥을 다 먹고 오라고 한 120분까지 패거리가 책 읽으러 도서관에 올 일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 몰라 최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책을 읽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115분쯤에 도서관의 투명한 문 왼쪽 끝에서 얼굴과 손을 살짝 대고 패거리가 없는지 확인한 후 온 가족이 자고 있는 집을 터는 도둑처럼 할 수 있는 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하며 담임선생님이 계신 2층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에는 다른 선생님들은 점심을 먹으러 가서 안에는 담임선생님밖에 없었다. 교무실에 들어가서 담임선생님 앞 의자에 앉자 음식 냄새가 났다.

 

"급식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손수 만든듯한 주먹밥 3개가 들어있는 도시락통의 뚜껑을 열고 나에게 내밀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처음 받아보는 호의였다. 그때는 주먹밥에 약물을 묻혀놓거나 장난을 해 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들어준 담임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한 다음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 것을 느끼고 선생님이 어색함에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얼른 닦고 허겁지겁 먹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며 먹었다.

 

다 먹고 난 후 흐르던 정적을 깨고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다른 뜻은 없고 나를 폭력에서 새로운 형태로 보호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종이 치기 전까지 반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뭐 때문에 그러는 건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지금은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 말씀을 들은 후 다시 어색함이 감돌게 하지 않게 하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내고 예비종이 친 후 반으로 돌아갔다. 나는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하며 수업을 들었다.

 

드디어 그날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었다. 조용히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운형과 패거리가 어디선가 와서 어깨동무했다. 이 행동은 너를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스트레스를 풀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잘 알아듣고 한숨을 쉬면, 패거리가 왜 한숨을 쉬냐고 트집을 잡아 더 심한 폭력을 가했기 때문에 듣지 못하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마음대로 한숨도 못 쉬는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내 책가방은 패거리 중 한 명에게 넘겨져 돈이 있나 샅샅이 뒤지느라 책가방에 있는 모든 지퍼가 다 열리고 지금 내 마음처럼 너덜너덜해졌다. 그 이후에도 계속 이와 같은 패턴이 지속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몇 번 사우에 들어가서 강운형과 그 패거리들에게 칼자국을 크게 남겼지만 발견하면 놀라기만 할 뿐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고,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은 후 내가 볼 땐 자랑할 게 되지도 않는 것 같지만 SNS에 올려서 싸우다 그런 것처럼 자랑했다.

 

폭력의 정도도 달라진 게 없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다음 날에도 폭력은 계속되었다.

 

이젠 제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방학 동안 패거리 연쇄살인 계획을 세웠다가 파기했다가 다시 세웠다가를 계속 반복하다가 개학을 했고 어느덧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지금, 9월까지 왔다.

 

나는 참을 만큼 참고 견뎠다. 앞으로 더 참고 견딜 만큼의 인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쌓인 증오와 분노 그리고 외로움이 땔감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복수심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오늘도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로 갔다.

 

익숙하기 전에도, 익숙해진 지금도 선생님이 먼저 말을 시작했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정적을 깨고 말을 시작했다.

 

"지금 하려는 말을 선생님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내 능력에 대해 누군가에겐 얘기하고 싶은데 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못 하고 있다가 이 선생님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해줄 것 같아서 말해 보기로 했다.

 

"뭔데? 말해봐"

 

내가 먼저 시작해 의외라 그런 것인지 내가 선생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호기심에 찬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는 3년 전에 꿈속에서 사람을 죽이면 현실에서 아무 외상, 증거를 남기지 않고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얘기한 데다 그다지 좋은 주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슬쩍 선생님을 보니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진 게 보였다. 그 굳어진 얼굴로 무슨 말을 할지 이제와서야 두려워졌다.

 

"진짜야?“

 

"."

 

선생님이 내 말을 믿을 수 있도록 확인 질문을 하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선생님은 조금 생각에 빠졌다가 흔들리지 않는 내 눈과 표정을 보고 진실이라고 확신한 것 같이 보였다.

 

"그 능력을 얻게 된 걸 알고 있다는 것은 능력을 사용한 적이 있다는 거네?"

 

잠깐 생각에 빠진 듯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이제 정리가 다 됐는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질문을 할 것을 예상하였는데도 뜨끔했다.

 

"...."

    

"그렇구나...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진 않을게."

 

이 말이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널 믿을게."

 

"감사합니다."

 

나를 믿어 준다라.... 이 말도 가족들에겐 수없이 들어봤지만, 남에게 들어 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 믿음을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유 없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가 끝난 뒤 하교 시간, 학교 바로 앞 편의점과 가게가 북적북적했다. 내가 저기에 낀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꿈꿔 본 적도 없었다. 친구들이 많지 않아도 된다. 그냥 평범하게 2~3명과 함께 거나 단 한 명이라도 괜찮으니 그 친구들 혹은 그 친구와 만화방에 가거나 노래방을 가도 좋았다. 아니 함께 있기만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내 머릿속이 좋은 추억들로 가득 찼을 텐데, 그렇게 됐어도 이러고 있는 지금도 추억을 쌓으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을 텐데 신은 왜 이렇게 한없이 가혹하고 슬픈 운명을 내게 준 것일까.

 

그렇게 속으로 내 삶을 한탄하고 패거리가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 많은 버스 대신 패거리를 피해서 혼자 조용히 걸으며 가기를 택했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면서 했던 많고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와 몸 둘 다 힘들어서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옷 갈아입기도 귀찮고 그냥 이대로 누워서 자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 해야 할 것들을 부탁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원래 식욕이 없었는데 더 없어져서 집 바로 앞의 편의점에서 파는 간단한 즉석식품을 사 와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소화 시킬 겸 빌라 5층 계단을 한번 오르내리고 자취방에 소파는 없기 때문에 다시 침대로 가서 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정했다. 대처도 다른 사람들에게 꼬리 잡히지 않게 확실하게 해두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랑 단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능력을 알고 있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이제 내가 능력을 쓰기 시작하면 그 믿음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몇 시간 후 드디어 계획을 실행할 때가 왔다. 처음 몇 번은 꿈이 시작될 때 몸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두근했지만, 이제는 그냥 빨리 사우에 들어가서 끝내야겠다는 것밖에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 생각을 하니까 내가 사이코패스가 된듯한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이성을 잃지 않고 정신 차리고 행동하기 위해 두 손으로 양 볼을 쳤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 전에 장롱에서 몇 달 만에 다시 꺼내 세탁한 춘추용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역시 결심한 날은 늘 그렇듯 바로 잠이 들었고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제는 익숙해진 방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뒤에 스크린에 뜬 것을 볼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직 계획을 실행시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걸어가서 황금색 문고리를 잡고 어쩔 수 없는 떨림으로 문을 열었다.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자는 내 계획에 맞게 내가 생각한 대로 패거리 서열 6위 정도 되는 김무연이 안에 있었다. 패거리에 더 아래 서열인 애들도 있었지만 좀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게 윗서열 애들에게 두려움과 주는데 좋을 거라고 판단해서 6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저번까지는 칼이 나타나서 땅에 떨어져 내가 주워야 했는데 이번에는 내 손에 쥐어졌다. 과거에 들어왔었을 때와는 달리 뛰어가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고 차분하게 걸어서 김무연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윗서열에게 할 것보다 비교적 가볍게 통아저씨 게임을 하듯 배에 꽂았다.

 

그 순간 김무연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딱 등교 준비하면 될 시간에 잠에서 깼다.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으려고 교복 셔츠가 걸린 옷걸이를 작은 거치대에서 뺐다.

 

그런데 빼자마자 교복이 얼룩지고 더러워진 것이 눈에 띄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하고 들은 정당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폭력과 말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괴로움과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며 그런 기억들을 떨쳐 버리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떨쳐 버리려 노력한 후 입었는데도 떨쳐내지 못해서 교복이 나를 조여오는 것 같았고 교복과 이런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도저히 교복을 입고 있을 수가 없어서 한 달 전에 사놓은 생활복을 꺼내 생활복으로 갈아입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숨어서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 책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 분위기와 등 뒤가 싸해졌다. 직감적으로 그 패거리가 온 것이 느껴져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혹시가 역시가 되었고 이제는 지긋지긋해진 학교 내 으슥한 곳으로 끌려갔다. 패거리 내 서열 1, 2, 3, 4, 5위는 곧 자기들에게 닥칠 일을 모르고 신나게 구타하고 조롱했다.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해 봐라. 나는 너네들이 설레는 2년 뒤 1231일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어 줄 거니까.

 

간신히 아침 조회 시간에 맞춰 반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으니 힘이 쭉 빠져 자동으로 책상에 엎어졌다. 계속 엎어져 있고 싶었지만 얼마 안 지나 바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속으로 끙끙대며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들자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굳어진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별다른 전달사항 없는 아침 조회가 끝나고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서 교무실로 잠깐 와보라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부름이지만 당연히 부르실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교무실로 가서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왜 불렀는지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데 숨길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빠르게 인정했다.

 

"네가 중학생 때부터 힘들었던 거 알고 있고 어제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지 않겠다고 말했지. 믿는다고도 했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 나도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그 말을 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그 말을 철회하고 싶지 않아"

 

선생님은 내 눈과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은 학생으로서 믿음을 배반하고 그 말을 철회하게 하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니 단 한 가지라도 달라져서 지금과는 다른, 이 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들처럼 평범한 삶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그래. 네 마음 알아. 하지만 그 애들을 죽여 나간다면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거고 네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그 애들과 똑같은 범죄자가 되어 평생 죄를 안고 가야 살아가야 하는 거야. 너는 그저 다른 애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시간 나면 친구들이랑 함께 어디 놀러 가고, 장난치고,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아파하지 않고 나중에 이 시절을 돌아보면 재밌었다고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선생님의 말씀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맞는 말이라서 울컥했다. 내 마음을 안다고 하신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잠깐 동요되었지만, 다시 돌아와서 말을 이었다.

 

"제가 이렇게 지금까지 쌓아온 감정들에 휩쓸려서 계획한 대로 연쇄살인을 계속 진행한다면 훗날 어쩌면 이 시간을 후회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단 한 가지라도 바꿀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겁니다."

 

선생님이 어떤 말을 꺼내실까 추리해보고 그 말을 하시면 무슨 말을 할까 4배속으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보며 고민하던 그때 타이밍 좋게 수업 종이 울렸다.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다시 얘기하자는 말을 했고 나는 인사를 한 후 교무실을 나와서 나는 반으로, 선생님은 수업 들어가야 하는 반으로 수업 준비물을 챙겨서 들어갔다. 덕분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침부터 아픔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찾아오리라는 것을 망각하고 바보같이 잠깐 좋아했고 1교시 수업시간 내내 하던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멋대로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수업은 조금만 내려놓고 문제집을 평소 때보다 더 많이 풀어야겠다는 공부 계획을 짜고 대충 들어야 할 것만 듣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4교시까지 마쳤다.

 

오랜만에 배고픔을 느껴서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에 가고 있는데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싶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점심을 먹고 급식실을 나왔다. 왜 나쁜 예감을 틀리지 않는 것일까.

 

나와 보니 그 패거리 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그곳으로 끌려갔고 끌려가면서 패거리 애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었고, 자기 패거리의 애가 죽어서 학교에 온갖 소문이 쫙 퍼지고 술렁거리고 있는데 그 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끌려오자마자 바로 명치를 세게 맞았다. 한 번 때리고 가격 부위를 옮길 줄 알았는데 몇 대를 더 맞고 심장이 아픈 기침을 했고 호흡곤란 직전 상황까지 왔다.

 

그런데도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다리, 팔도 자기들이 생각할 때 가장 아프게 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수십 대를 때렸다. 아니 때린 게 아니라 팬 거였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반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감정에 충실한 편인 내 마음은 원래 연쇄살인 계획 추진에 기울었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수평에 가까워졌었는데 다시 추진 쪽으로 완벽히 기울었다.

 

선생님에게 가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갈 시간도 없고 힘도 남아 있지 않아서 반으로 들어가 엎드려 처음으로 두 팔 속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닌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고 있다가 예비종이 쳐서야 정신이 들었다.

 

시간표를 보니 5교시는 음악이었다. 나는 이동수업이 제일 싫다. 잠긴 문 앞에서 몇십 분처럼 느껴지는 5~6분 동안 애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을 홀로 의자에 앉아 바라보며 외로움을 타고 괜히 어색해서 의자에서 일어나 볼 것도 없는 창밖의 운동장을 보는 게 이제는 힘들었다.

 

그랬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러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음악실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음악 시간은 지루했고 애들도 모둠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애들은 딱 해야 할 것만 했다. 그렇게 음악 시간이 끝나고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원망하며 마지막 교시 수업까지 들었다.

 

드디어 하교 시간, 선생님이 계속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패거리한테 맞느라 못 갔다고 말하기는 싫어서 학교 나갈 때까지 선생님과 애써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는 패거리를 마주치지 않게 애쓰며 걸어갔다.

 

무사히 집에 들어와서 아무런 생각 없이 침대 위에 앉아 있다가 책을 읽었고 배고픔을 잊은 지 오래여서 한 끼 정도는 넘겨도 아무렇지 않아 저녁을 먹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공부도 다 하니 심심해서 IPTV 앱으로 TV를 봤다.

 

한참을 보다가 불가항력적으로 눈이 슬슬 감겼고 잠이 들었다.

 

역시 검은 공간에 들어왔고 검은 공간은 과장 조금 하자면 이제 더 이상 미지의 공간이 아닌, 2의 집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길을 걸어서 황금색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어보니 서열 3, 4, 5등이 각각 조금 떨어져서 몇 명이 함께 있으면 그랬듯이 서로를 보지 못하고 서 있었다. 당연히 나를 보지도 못했다.

 

이 애들은 학교폭력을 교사하고 어쩌다 걸리면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애들이다. 물론 나에게도 폭력 교사를 했었고 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댔었다.

 

이번에는 장검이 천천히 나타났다. 방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다.

 

의외로 무게가 좀 나가는 것 같은 그 검을 든 후 지금까지 쌓인 한을 푼다는 생각으로 5위부터 차례대로 내 감정을 충분히 담아서 벴고, 늘 그렇듯 다 끝난 후 깼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소파에서 일어나서 빠른 속도로 능숙하게 간단한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난 다음 생활복으로 갈아입고 남들보다 2~30분 정도 빨리 집을 나섰다.

 

그 어떤 것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 일 없이 학교에 도착했다.

 

반에 들어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러서 내 시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소설 한 권을 재빨리 책장을 훑어보고 고른 후 빌리고 반으로 들어갔다.

 

이십몇 분이 지난 후 내 귀에 들려오는 주말에 뭐할지. 시험 어떡할지 같은 고민을 이야기하는 소리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즐거워 보이는 애들이 모습이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중학교 때부터 외로울 때는 독서를 약으로 썼고 미비할지라도 효과가 있었지만 이런 소외감은 그 약이 전혀 듣지 않았다. 나도 저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온갖 잡생각을 떨쳐 버리고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앞문으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어제보다 더 걱정스러워진 눈빛으로 나를 잠깐 본 후 전달사항을 전달하고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1교시 끝나고 교무실로 와 보라고 하셨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1교시 수업을 마친 후 바로 교무실로 향했다.

 

시간은 달라졌지만 자연스럽게 교무실 문을 열고 매일 앉는 의자에 앉았다.

 

"오늘 들려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생각 안 바뀌었나 보네."

 

어제 왜 오지 않았냐는 물음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심한 배려인 건지 할 얘기가 급한 건지 분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

 

"내가 저번에 말했었지.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너는 그 애들과 똑같은 범죄자가 되어 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

 

"저도 말씀드렸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조금이라도 달라져서 평범한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뭐든 할거라고."

 

"이렇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최소한 폭력에선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선생님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했다.

 

"이렇게는 안 되겠어. 오늘 새벽 1~2쯤에 네가 받을 때까지 전화할 거야. 신호음이 4번 갔는데도 안 받으면 찾아갈 수도 있어."

 

""

 

대답은 ""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전화가 와도 받지 않기로 했다. 나도 이렇게는 안 되겠다.

 

더 이상 서로 할 말은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 봐도 된다고 했고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교무실에서 나와 반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에는 집중해서 남은 수업까지 마친 후 시작된 하교 시간에 오늘은 운 좋게 패거리를 마주치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방에 가방을 놓고 손을 씻으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 안의 이 집에서 제일 큰 거울에 비친 나의 눈동자에서는 황폐함과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내가 하려는 행동을 보고 나를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해도 좋다.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다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런 생각을 하고 밤을 고대하며 문제집을 푼 후 침대에 누우려고 하는 순간, 오늘 학교 끝나고 따로 지정해놓은 선생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벨 소리를 조금 줄이고 책상 위에 놓은 후 침대 위에 바른 자세로 누웠다.

 

2번째 신호음이 울렸다.

 

3번째 신호음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울렸다.

 

사우에 들어가기 위해 눈을 감으니 나도 모르게 고인 눈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어. 그냥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 하면 돼.

 

이름: 김나영

이메일: kimna9724@naver.com

번호:010-8599-9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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