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어두운 숲 속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앤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뭍은 돌멩이가 들려져있고 마치 누군가와 격렬한 전투를 벌인 듯 머리와 옷이 헝클어져있다.
“흐흐흐...하하하..”
마치 흐느끼는지 웃는지 모르겠는 섬뜩한 웃음소리만이 어두운 숲 속에서 울려 퍼진다. 숲은 마치 모든 빛을 거부하는 듯 어두컴컴하고 간신히 들어온 빛줄기마저 음산한 느낌이다. 바닥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 또한 기괴한 형상을 하고 비틀어져있다. 이상한 소리로 웃던 앤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놀란다. 그리곤 손에 쥐어져있는 돌멩이를 보곤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하아..하아..”
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보지만 주변엔 어둡고 음산한 숲만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존재하고 있다.
“아..아무도 없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누가 좀 도와줘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던 앤은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그런 앤의 귓가에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고 앤은 마구 비명을 지르며 두려워한다. 그 모습이 마치 미친 여자 같지만 누구라도 발견하길 원하는 앤의 절규가 간절해 보인다. 그런 앤의 모습을 멀리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 Step1 숲 속으로 입장
평소와도 같이 카페에 들어서서 매일 마시던 달달한 커피를 주문한 후 앤은 구석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하아..”
자리에 앉은 앤은 빈 워드 화면만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다가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중얼 하더니 워드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곧 신경질적으로 쓴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빈 워드 화면을 보며 한숨 쉬기를 반복.
그녀의 표정은 거의 절망적이기까지 해 보인다. 그러다 자포자기한 듯 그냥 인터넷을 켜고 뉴스를 보고, 이것저것 검색을 해본다.
‘미스테리한 장소’
그녀가 입력한 검색어이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앤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화면에 고정된다.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클릭하고 계속 스크롤을 내리면서 게시물을 읽어보는 앤의 모습. 거의 화면에 코를 박을 지경이다. 앤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는 것이 흥분을 한 듯 보인다.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어디다가 전화를 건다.
“잭!! 잭!!! 방금 내가 엄청난 소재를 발견했어. 진짜 이번 소재는 느낌 제대로야!! 저주받은 숲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제껏 그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단 한명도 살아나오지 못했대!!! 엄청난 소재야 진짜! 내가 딱 이런 거 찾고 있었잖아!!”
흥분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내는 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앤은 황급히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선다.
며칠 후.. 앤의 거실엔 온갖 침낭, 랜턴, 소형 텐트, 침낭, 등의 캠핑 장비가 가득하다. 그 가운데 앤과 앤의 애인인 잭이 앉아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다.
“어디보자... 텐트 챙겼고 침낭 챙겼고.. 아!! 식기류 같은 것도 좀 가져가야 하나?”
“아니 무슨 거기서 며칠이나 있으려고 그래... 그냥 간단히 챙겨 간단히.”
“에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아무도 나올 수 없는 숲이라니까,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 하아.. 아무리 그래도 난 좀 찝찝해 꼭 그런 곳을 그렇게 찾아가야겠어? 그 글 쓴 사람도 계속 말렸었다며..”
잭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하지만 앤은 잭의 말을 듣는 중 마는 둥, 마치 소풍 가기 전에 신난 아이처럼 들떠있는 모습이다.
“에이 자기야, 나도 사실 좋은 소재 발견하고 싶어서 가는 거지만 별 기대는 안하고 있어.. 왜 자기도 알잖아? 이런 소문 들리는 곳이란 곳은 내가 다 가봤는데 단 한 번도 진짜였던 적 없었던 거..”
“뭐..그렇긴 하지. 그래도 왠지 이번엔 좀 찝찝해서 그래..”
“어유~ 갑자기 왜 이러실까? 정 찝찝하면 자기는 그냥 쉬어~ 어차피 일 할 곳도 계속 알아봐야 하잖아.”
“찝찝하니까 더 내가 가야지 무슨 소리야? 그러다 뭔 일이라도 나면 내가 어떻게 하라고..”
“헤헤.. 그니까 그럼 이런 실랑이는 이제 그만하자! 응?”
“휴.. 알았어. 내가졌다! 장비들이나 빠짐없이 챙겨!”
“알았어! 나만 믿으라고!!”
못 말린다는 듯 흥분상태인 앤을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잭. 잭과 앤은 하나하나 장비를 체크하면서 짐을 챙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엄청난 크기의 가방을 맨 잭과 앤이 봉고차에서 내린다.
“여기서부터는 차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 지도에 표시된 숲은 이 길 따라 쭉 걸어가면 아마 나올 겁니다. 헌데 나도 가본 적이 없어서.. 아무튼 거기 소문이 흉흉하니까 몸들 조심해요~.”
차에 타고 있던 운전수는 말을 마치고 사라진다. 잭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지만 앤의 표정은 마치 소풍에 나선 아이처럼 들떠있다.
그들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그러나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길은 점점 인적이 닿지 않았던 곳인 듯 더 이상 길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걸어가다 보니 급기야 아주 오래전에 세워진 것 같은 허름한 진입금지 팻말이 하나 있다. 여전히 앤은 상기되어 있는 얼굴로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옆에 서있는 잭은 미심쩍은 표정이다.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아무것도 없잖아? 여기 이 팻말 좀 봐봐.”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지도에도 이렇게 찍혀 있잖아! 이상하다..분명 여기에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고 했단 말이야!”
“거봐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애초에 이상한 소문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었어..”
그런 잭의 중얼거림을 듣는 둥 마는 둥 앤은 어느 방향인지도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앤이 걸어가는 길에는 점점 많은 식물들이 뒤덮고 있어 앤이 새로운 길을 만들며 걸어가고 있다. 잭이 그 모습을 보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소리치려 했을 때.
“자기야!!!!! 찾았어!!!!! 이 표지판 말이야! 이 표지판부터 숲의 시작이라고 했어!!”
앤이 흥분한 듯 가리키는 곳엔 역시 오래전에 세워둔 것 같은 ‘숲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문구만 딸랑 적힌 표지판이 있다. 잭은 그 표지판을 보더니 더욱 미심쩍은 표정이 된다. 하지만 희한하게 앤이 가리킨 표지판부터 아주 작고 구불구불한 길이 숲으로 이어져있다. 마치 숲 스스로 이 길을 통해 숲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뭐? 고작 이 표지판 하나로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걸 어떻게 알아? 또 이 표지판은 누가 세워 둔거야?”
하지만 아까부터 앤은 잭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이제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혼자 숲으로 들어가 보인다. 잭은 조금 짜증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이 앤을 따라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선다. 그 길은 너무 좁아서 둘이 함께 걸을 수도 없어 줄을 지어 숲으로 들어간다. 길의 양쪽으로는 식물들이 무성하다.
숲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앤은 점점 흥분하고 잭마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이 보인다. 숲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조금씩 휘양 찬란하고 형형색색의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한 20분쯤 걸었을까.. 이제 숲에서는 판타지 속의 요정들이 살만한 숲처럼 찬란한 빛이 흘러 나왔다.
“와... 이건 저주 받은 숲이 아니라..요정들의 숲인데..?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지...?”
“봐!!!!!내말이 맞지!??? 내가 분명 이번엔 뭔가 있을 거랬잖아!! 와.. 자기야 자기야!! 이 꽃 좀 봐봐!!! 진짜 아름답다..”
거의 반쯤 넋이 나간 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다. 잭 또한 넋을 잃은 채 묘한 빛이 나는 것 같은 꽃들을 하나하나 관찰한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갔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잭은 조금씩 섬뜩한 기분이 든다. 근데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멍하니 서서 기분 나쁜 감정의 원인을 밝히려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마냥 아름답고 신비롭던 숲이 무언가 조금씩 이상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색으로 밝게 빛나던 식물들은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갔고, 식물의 화려함이 과해지면서 점차 기괴한 형상을 띄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소름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였다.
잭이 이런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앤은 그저 더 괴상망측하게 변하고 있는 식물들의 모습에 신이나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숲 속으로 점점 들어간다.
“앤!! 앤!! 잠시만 기다려봐!!”
“응? 무슨 일이야?? 잭, 이 식물 좀 봐! 와.. 진짜 환상적이다 그치? 어떻게 이런 곳이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믿기지가 않아...”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이건.. 뭔가.. 찝찝하지 않아? 식물들 말이야.
이젠 점점 아름답기보단 징그러워 보여 그냥.. 아무래도 너무 기분 나빠.
이쯤 봤으면 됐어. 이제 나가자.”
“뭐?? 나가자고? 자기 미쳤어? 이런 숲을 두고 나가자는 말이 나와? 그렇겐 절대 안 되지! 나가려면 혼자 나가~.”
말을 마치고 앤은 혹시 잭이 더 화내진 않을까 눈치를 보며 쏜살같이 앞장서서 걸어간다.
그런 앤을 바라보는 잭의 표정은 더 이상 사랑스러운 연인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니다.
깊은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쉰 잭은 앤이 사라진 방향을 보다가 무심결에 자신이 걸어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그 순간.. 잭은 너무 큰 충격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린다.
나가는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숲의 기괴한 모습의 식물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잭과 앤이 지나온 자리를 뒤덮어 들어온 길을 감쪽같이 없애버렸다.
잭은 그 순간 앤에게 들었던 숲에 관한 소문이 생각이나 소름이 끼친 듯 동공이 커지며 손으로 입을 막는다.
"이 숲에서는 아무도 살아 나갈 수 없다.."
- Step2 숲의 정체
“앤!!! 앤!!!!!!”
충격에 거의 정신이 나간 잭은 한참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때서야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앤을 다급히 부르며 뒤쫓아 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안한 듯이 뒤를 자꾸만 돌아본다.
잭이 뒤를 보고 있을 때는 숲의 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가, 잠시 앞을 보고 앤을 찾고 다시 돌아보면 길은 이미 사라져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잭은 앤을 정신없이 부르는데 앤은 저 멀리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잭은 앤과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숲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더욱 소름이 끼친다.
그들이 서있는 숲은 더 이상 그들이 본 아름다운 숲이 아니었다. 그 숲은 마치 모든 색을 잃어버린 듯 어둡고 칙칙하고 징그럽고 기괴한 모양의 식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식물들 중간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는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웅장함이 느껴졌다. 나무 주변으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인지 원래 있었던 곳인지 알 수 없는 공터가 있었고 그 공터에 앤과 이야기하고 있는 일행이 설치했을 것으로 보이는 베이스캠프가 설치되어 있다.
“어머!! 그럼 저희보다 하루 먼저 들어오신 거네요? 여긴 취재차 오신 거라고요?”
앤은 웬 성인 남성 두 명과 여성, 그리고 1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아이로 구성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성 중 한명을 카메라를 들고 있고 다른 남성도 방송 장비로 보이는 짐을 한 보따리 메고 있는 것 보니 숲을 취재 온 사람들 같았다. 여성은 4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강인한 인상과 튼튼한 신체를 소유하고 있었다.
“저는 앤이라고 해요, 소설가인데 소재를 찾으려고 이곳에 왔어요~.”
“반가워요, 저는 린이라고 해요. 탐험가인데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고 촬영을 도우려고 방송국 팀과 함께 왔어요. 여기는 제 딸 쑤.”
“어머, 안녕 쑤? 아직 어려 보이는데 여기에 따라왔네요?”
“하아.. 그러게요. 데려오고 싶지 않았지만 제가 타고 있던 차에 몰래 숨어서 따라왔어요. 얘는 항상 이렇게 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온다니까요 글쎄.”
“저희들은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인데요, 세계 곳곳의 미스테리한 장소들을 취재하고 있어요. 저는 피디인 존이고 이쪽은 카메라맨인 캔이에요.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아! 저기 잭이 오고 있네요. 잭은 저와 함께 온 제 애인이에요. 잭!!”
“네 안녕하세요. 잭이라고 합니다. 앤, 잠시 얘기 좀 하자.”
인사를 나누는 잭의 표정을 딱딱하게 굳어 있고 계속 불안한 듯 뒤쪽을 힐끔거리고 있다. 마치 어떤 괴물이 자신을 쫒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불안해 보인다.
“응? 무슨 얘기? 여기서해~.”
“지금 우리가 들어온 길이 다 사라져 버렸다고, 여기서 한가롭게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잭은 이를 악물고 속삭이는 듯이 앤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귀를 쫑긋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다. 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데 정말 잭의 말처럼 들어온 길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앤은 놀란 듯 ‘히익!!’ 하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표정은 왠지 두려움에 찬 표정이라기보다 묘하게 흥분한 듯 보인다.
“돌아온 길이 사라졌다고요? 역시.. 저희에게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저희도 지금 그걸 깨닫고 길을 찾아 헤매던 중이었어요. 이 나무를 기점으로 찾을수록 같은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함께 길을 찾는 게 어때요? 무언가 숲의 작용 같기는 한데... 수백 번 동안 탐험을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반드시 길은 있을 거예요. 뭐 같이 찾는 김에 우리는 촬영하고 그쪽은 숲을 살펴보고요.”
탐험가인 린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는데 그 모습이 왠지 믿음직하다.
남은 구성원들에게도 그런 그녀의 태도가 신뢰감 있게 보인 듯하다.
“좋아요! 우리 같이 나가는 길을 찾아봐요! 이 나무는 멀리서도 잘 보일 것 같네요!” 앤이 탐험을 나서는 꼬마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네, 제가 이 나무 밑에 호루라기를 놔둘게요. 이 나무를 기점으로 길을 찾은 사람들은 돌아와서 이 호루라기를 불어 사람들에게 신호를 주세요.” 린이 말했다.
“네!! 잭, 그럼 일단 우리도 여기에 짐을 내려놓자!!”
앤의 이야기를 듣고 잭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젖는다.
“아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 짐을 들고 다닐래.”
“뭐 그럼 그러던지~ 난 무거워서 여기 놔둘래.”
그 모습을 보고 피디인 존이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낸다. “그 전에 지금 심정에 대해서 인터뷰 한 번씩만 해 볼까요? 잭씨! 앤씨! 이 카메라에 대고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지금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길을 찾는 게 급선무일 테니 길을 먼저 찾기로 하죠. 인터뷰는 나중에 하고.”
린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쏘아붙인다. 그 말을 들은 존의 표정을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곧 린의 말에 동의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남은 길을 찾기로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숲의 밤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어두워진 숲은 마치 밤이 되었다고 보이기보다 처음부터 빛이라곤 없었던 숲처럼 어둠 속에서 더욱 기괴하게 비틀어져 있었다. 희미한 달빛만이 징그러운 숲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희미한 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탐험가는 어쩔 수 없이 나무로 돌아와 호루라기를 불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잭과 앤은 그 자리에 방송국 팀과 함께 각자의 텐트를 펴고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
탐험가는 어디에선가 장작을 구해와 불을 피우고 가방에서 음식을 몇 가지 꺼내 조리한다. 그들은 얼마 안되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잭과 앤은 탐험가를 보고 이 일행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빛을 주고받는다. 존은 아까 못 한 인터뷰를 하자며 잭과 앤에게 조른다. 잭과 앤은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한다.
“아 저는.. 미스터리 소설가인 앤입니다. 예전에 ‘바이러스’라는 소설을 썼던 작가에요.
아.. 이 숲이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누군가 저주받은 숲에 대한 이야기를 써 놓은 글을 봤는데 마침 제가 찾던 소재랑 딱 맞는 장소라서 한번 탐험차 와봤어요.
이쪽은 제 애인인 잭이에요.“
“네 저는 그냥 회사원인 잭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앤이 이곳에 오겠다고 해서 걱정돼서 따라왔어요.”
“이 곳에 대한 글을 읽으셨다고 했는데 그 글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아.. 그냥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았는데 예전에 어떤 역사적 이유에 의해서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떠도는 숲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서 나가질 못했다나 뭐라나.. 글쓴 분에게도 쪽지를 보내봤는데 그냥 절대 이 숲에 가지 말라는 말만 해주시고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어요. 그래서 더 흥미가 생겼죠.”
탐험가인 린과 그녀의 딸인 쑤가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앤의 마지막 말을 듣고 린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쑤에게 어서 들어가서 자라고 한다. 쑤는 조금 두려운 표정으로 엄마 옆에 꼭 붙어있다.
“저기요, 저희는 그만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내일 다시 다 같이 길을 찾아봐야 되니 다른 분들도 빨리 주무시는 게 좋을 거예요.”
린은 쑤를 꼭 껴안고 자신의 텐트로 들어간다. 인터뷰를 마친 잭도 앤에게 이만 들어가자고 눈짓한다. 피디인 존은 혼자 투덜거린다.
“아까부터 혼자 왜 명령이야..”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내 텐트로 들어가고 숲의 밤은 점점 깊어간다. 활활 타오르던 장작은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지더니 이내 숲에는 완벽한 어둠이 찾아온다. 방송국 팀과, 탐험가와 딸, 잭과 앤의 텐트 안에서는 쉽사리 잠을 들지 못하는 듯 각자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밤사이에 숲 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고, 자신들 이외에 이 숲에 누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불안에 떤다.
그렇게 각자의 상상 속에 불안을 키워가며 잠을 설친 다음날 아침, 탐험가가 제일 먼저 일어나 밤사이에 꺼져버린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그 다음으로 잭, 피디인 존, 카메라맨 캔, 앤의 순서로 차례차례 일어나 텐트를 나온다. 탐험가의 딸인 쑤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앉았기 때문에 그들은 조심조심 일어나 탐험가의 지시에 따라 각자 아침 준비를 한다. 탐험가는 장작을 더 가지러 숲으로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도 숲을 돌아다니며 혹시 쓸 만한 열매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살피기도 하고 앤은 계속 호기심어린 눈으로 식물들을 하나씩 관찰하며 수첩에 무언가 적는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돌아다닌 지 30분쯤 지났을까.. 그들이 다시 큰 나무 밑에 모여들었을 때 탐험가인 린은 자신의 딸을 깨우러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텐트를 확인한 탐험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아직 모두 잠들어 있는 듯한 숲을 깨운다. 탐험가의 비명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황급히 텐트로 모인다.
“무슨 일이에요!???? 왜그래요???!”
놀란 사람들이 텐트로 모여들었는데 그 안에 분명히 잠들어 있어야 할 린의 딸이 보이지 않는다.. 린은 무척 놀란 듯 숨을 거칠게 내쉬며 텐트를 살펴봤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 나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너무 예민해 져 있었나 봐요. 미안해요.”
“분명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나갔을 거예요. 아직 어려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엔 부끄러웠나 봐요~.”
다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앤은 싱긋 웃으며 까지 말한다.
“그래도 혹시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주변을 둘러볼게요.”
“아 그럼 혹시 모르니 저희도 같이 찾아다닐게요.”
나머지 사람들은 놀란 린을 진정시키기 위해 쑤를 찾는 것을 돕는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사람들은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분명 지금쯤은 돌아왔어야 했을 린의 딸은 30분이 넘어가도록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목청껏 소리쳐 쑤를 부르며 찾기 시작한다.
린의 눈빛은 이미 정상이 아니다. 미친 듯이 쑤의 이름을 부르며 숲을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이 와중에 식물들에 자신의 몸이 마구 긁히고 있는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모두 정신없이 딸을 찾으려고 흩어지는데 이 와중에 존은 카메라맨인 캔을 시켜 빈 텐트를 몰래 찍으라고 지시한다. 이 모습을 잭에게 들키고 화가 난 잭이 이 와중에까지 촬영을 하고싶냐고 소리치는 바람에 그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접는다.
이 숲에서 나가는 길은 막혀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상하게 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점 숲 깊숙이까지 들어가 쑤를 찾게 된다. 그들이 각자 떨어져서 정신없이 쑤를 찾아 헤매던 도중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숲속에서 이상한 속삭임 같은 게 들리는 것을 발견하고 불안에 떤다. 사람들은 각자 숲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어젯밤의 생각을 떠올리며, 혹시 쑤가 그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린이 딸을 찾아 헤매다가 거의 실신 직전에 이르렀을 때 숲에 다시 한 번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꺄아악!!!!!!!!!” 이번엔 앤의 비명소리였다.
“왜 그래!!! 어디 있어!!!!!!! 앤!!!!!”
가장 가까이에 잭이 놀라 앤을 황급히 부르며 뛰어가는데 “으아악!!” 뛰어간 잭도 잇따라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앤의 눈을 가린다.
그 곳에는... 어린 쑤가 처참히 돌 같은 것에 머리를 찍힌 채 죽어 있다. 잭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죽어있는 쑤의 맥박을 집어보지만 이미 그녀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다.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 온 존과 캔도 할 말을 잃고, 뒤따라 온 린의 눈을 앤이 황급히 가리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딸의 모습을 보았다.
‘툭’...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만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리고 그녀의 눈빛은 이미 실성한 사람 같지만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아아...아아...으아아!!!!!!! 내 딸... 쑤...쑤....쑤!!!!! 정신차려봐... 엄마야 엄마!!... 엄마 여기있어... 왜!!!!!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말도 안돼... 아아...으아아아!!...”
린은 실성한 사람처럼 딸을 품에 안고 비명을 지르다가 오열하다가 반복하고 그런 린을 지켜보며 앤이 같이 울고 있다. 린은 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쑤의 맥박을 다시 짚어보고 인공호흡을 하고, 온갖 응급처치를 하지만 어린 딸은 깨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모여 있는 더 깊은 곳의 숲은 방금까지 아침이었지만 다시 밤이 찾아온 듯 빛이 희미하고 어둡고 음산하다. 숲은 마치 그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불행을 즐기는 듯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더욱 기괴하게 비틀어진다.
- Step3 비극의 시작
다 같이 절망에 빠져서 울고 있을 때 존은 몰래 캔에게 카메라를 키라고 한다. 캔이 미쳤냐는 표정으로 존을 보는 것을 무시하고 존은 계속 빨리 카메라를 키라고 속닥거린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잭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뭐하는 짓이야!!!!!!!!!!!”
캔도 한 패라도 생각한 잭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치 캔을 한 대 때릴 듯한 표정으로 캔의 카메라를 거칠게 빼앗아 부숴버린다. 존은 잭의 행동을 보고 열 받아 순간적으로 잭에게 주먹을 날리고, 잭도 지지 않으려는 듯 맞받아친다. 둘은 엉겨 붙어 싸운다.
“자기야!! 왜이래.. 하지 마!!”
“피..피디님!!!”
앤과 캔은 싸우는 둘을 말리려고 하고 린은 한쪽에서 아직도 딸을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그때 린의 귀에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오열을 하다가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둘러본 린의 눈에 잭과 존이 엉겨 붙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퍽!!!!!!!!!!!!!!!!!’
싸우던 사람들 말리던 사람들 모두 그 자리에 정지해 버린 듯 놀라서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고 할 말을 잃는다. 잭과 존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린이 옆에 있던 커다란 돌멩이로 엉겨 붙어 싸우는 피디인 존의 머리를 내리 찍어 버렸고 존은 건장한 탐험가였던 린이 휘두른 돌멩이에 비명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잭의 위로 축 늘어졌다.
“이게..무슨...” 잭조차도 너무 놀란 듯이 그녀를 쳐다보며 황급히 존의 코 밑에 손을 대본다. 단 한 번의 가격에 존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었어...말도 안 돼...”
잭의 중얼거림을 들은 앤은 너무 두려워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고 캔은 놀라서 아예 말문이 막힌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흐흐흐하하하!!! 흐흐...흐흐흑.... 저인간이야!!!!!!! 내가 다 알아!!!!! 저인간이 죽인거야!!!!!!!!! 내가 모를 줄 알고!??????? 어젯밤에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가 다 들었어.. 나를... 나를 못마땅해 했지...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하는 숲이라......흐흐흑....내가...내가...그 소리를 들었어! 내가!!!!!!!!!!! 저 인간이... 내 딸을...흐흐...흐흑...”
린은 이미 실성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소리에요!!! 이 사람이 그랬을 리 없어요. 이 숲엔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 있다고요!! 정신 좀 차려요 제발... 힘든 거 알지만..”
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딸의 시체를 안고 흐느껴 울며 숲 속 더 깊은 곳으로 사라진다. 그녀의 뒷모습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어느 한명 말리지 못한다.
남은 사람들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어젯밤에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었던 사람들 중 두 명이나 눈앞에서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된 남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그러다 간신히 정신이 든 잭이 울고 있는 앤을 달래 주며 쓰러져 있는 존에게로 다가간다.
“이제 우린 어떡하죠..? 일단 이 분을 이렇게 둘 수 없으니 여기에 묻어 드리기로 합시다.”
캔도 잭의 말에 겨우 정신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내던져져 있는 카메라를 집어 들어 한쪽에 놔두고 잭과 함께 존의 시체를 묻어준다.
“이제..우린 어떻게 하죠?”
피디가 죽어 혼나 남게 된 카메라맨 캔이 묻는다. 그는 자기와 함께 다니던 존이 죽었지만 이상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슬퍼 보이지도 않고 단지 두려워 보이기만 할 뿐이다.
한편 앤은 아직도 조금씩 훌쩍이고 있다. 그런 앤을 잭이 토닥거리며 말한다.
“글쎄요.. 지금으로써는 계속 이 미친 숲에서 나갈 길을 찾는 게 최선인 것 같네요. 사라진 린 씨는 어떡하죠? 린 씨도 같이 찾아봐야 할까요?”
“찾지 말자... 무서워.. 아까 봤잖아.. 존 씨를... 흑...”
“네.. 제 생각에도 지금으로썬 린 씨를 안 마주치는 게 우리에게 더 안전할 것 같아요. 이 숲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린 씨의 딸이 저렇게 된 게 아무래도 외부인의 소행인 것 같아요.”
“아 제 생각도 그래요. 저녁에 잠을 잘 때 숲에서 꼭 누군가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거든요.”
“잭 씨도 들으셨어요? 저도 들었는데.. 앤 씨는요?”
“저도 들었어요..”
“하아.. 그럼 일단 린 씨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나가는 게 우선이니 같이 힘을 합쳐서 나갈 길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분명 나가는 길이 있을 거예요. 일단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서 그 곳을 기점으로 나눠서 찾아봅시다.”
잭이 제법 리더십 있게 말을 내뱉었다. 앤과 캔은 그런 잭의 말에 동조하며 함께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앤과 잭이 앞장서서 걷는데 캔은 뒤에 남아 부서진 카메라를 챙긴다. 거의 절반은 부서져 버린 카메라를 보는 캔은 순간적으로 분노에 찬 듯 잭의 뒷모습을 노려보지만 이내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잭과 앤을 따라 나선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앤은 재빨리 자신의 수첩을 챙겨서 무언가를 빠르게 적는다. 잭이 슬쩍 보고 방금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는 앤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져 할말을 잃는다.
“지금...지금 뭐하는 거야...?”
“혹시..혹시 모르잖아... 나중에라도...”
“나중에 뭐? 소설에 써먹을 수도 있겠다고? 너 진짜 미쳤어? 지금 이 상황들이 다 장난 같아?! 사람이 죽었다고 지금!!!!!”
잭이 머리가 핑 도는 듯한 느낌을 느끼며 앤에게 마구 소리를 지른다. 앤은 그런 잭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수첩을 닫는다. 앤은 잭과 몇 년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잭의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잭씨, 아까부터 너무 예민하신거 아닙니까?”
뒤따라오던 캔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한마디 거든다.
“뭐요?”
“아니 그렇잖아요. 아까 일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조용히 말로 풀 수도 있었는데 잭 씨가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피디님도... 카메라도 이렇게 부실 건 뭐 있어요?!”
“그럼 지금 피디가 죽은 게 내 책임이란 소립니까? 자신들이 한 잘못은 생각도 안 해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난 피디를 말리려고 했단 말입니다. 댁이야 말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남의 일에 괜히 끼어들어서 일 크게 만든 거 아니에요!!”
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격해지더니 서로에게 삿대질까지 한다. 둘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있다.
“잠..잠깐만요!! 지금 우리끼리 이렇게 싸우면 어떡해요.. 지금 남은 건 고작 우리 셋인데.. 그러지 말고 화 푸세요, 캔 씨, 응? 자기야 내가 미안해 다신안그럴게.. 화 풀어~.”
갑자기 둘 사이에 끼어든 앤의 중재에 둘은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더니 마지못해 화해를 한다.
“하아.. 그래요 지금 이 와중에 우리끼리 싸워서 뭐하겠습니까. 아까 카메라는 미안하게 됐어요. 그만하고 이제 이 지긋지긋한 숲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봅시다.”
캔은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희미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혼자 길을 찾으러 떠난다. 잭도 앤에게 아직 화가 안 풀린 듯 앤에게 각자 떨어져서 길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들 셋은 각자 우울한 표정을 하고 숲으로 나가는 길을 계속 찾아 헤매는데 이상하게 숲 속을 돌면 돌수록 자꾸 같은 길을 맴도는 기분이다. 분명 멀리까지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어느 새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있었다. 숲 속에서는 여전히 기분 나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는 다시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곳의 영원한 어둠속에 잠깐씩 찾아온 낮의 햇살은 바깥세상의 낮 보다 훨씬 짧고, 그래서인지 마치 남겨진 사람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려는 숲의 의도처럼 보인다. 마치 잠시 찾아온 햇빛으로 인해 이 곳을 조금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들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을 바라는 듯이..
남은 캔과 앤과 잭은 다시 베이스캠프로 모여든다. 배터리가 다 되어가는 듯 희미한 후레쉬 불빛으로 간신히 장작만 모아서 불을 피운 그들은 절망에 빠진 듯 한참동안 말이 없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이 숲을 나갈 길은 없는 걸까요..”
앤이 침묵을 깨고 간신히 말을 꺼낸다. 그때서야 남은 세 명은 정말 이 숲을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확 몰려온다. 그들은 각자 이 숲에 들어와서 차례로 벌어졌던 죽음과 끔찍한 사건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숲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속삭임,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짧은 낮의 햇빛에 대해 생각하지만 아무도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려고 하지 않는다.
“전 이제 모르겠어요.. 사실 이런 곳 오고 싶지 않았는데 피디님의 협박 때문에 억지로 끌려온 건데.. 애초에 이런 불길한 곳 오질 말았어야 했어..”
카메라맨의 캔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눈에 억울함의 눈물이 조금 고이는 것 같다. 그는 생각보다 소심하고 여린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에요. 우린 이제까지 나갈 길을 찾는 데에만 몰두 했잖아요. 우리가 직접 길을 만듭시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우리가 이 식물들을 다 없애버리고 어디로든 향하는 길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길이 조금씩 보일 겁니다.”
그나마 아직 가장 의지가 강한 잭이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은 그럴 듯 했다. 이 몇 일간 순식간에 벌어진 너무 많은 사건들 때문에 그들은 오직 나갈 길을 찾는 데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앤과 캔은 잭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비로소 조금의 희망이 생기고 마음이 편해진 일행은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이때 캔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근데.. 아무래도 숲 속에서 들리는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아요? 린씨의 딸이 그렇게 시체로 발견된 것도 그렇고.. 우리 불침번을 서는 게 어떻습니까?”
캔의 제인을 듣고 잭은 왜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생각한다.
“좋은 생각이에요. 앤은 지금 많이 충격을 받은 것 같고 여자니까 제가 앤의 몫까지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아, 아니야 괜찮아! 나도 설 수 있어.”
“아니야, 넌 일단 푹 자. 그래야 내일 또 이곳을 빠져 나가지..”
“네, 그래요. 잭 씨가 굳이 그러실 필요 없고 저랑 그냥 반반씩 나누어 섭시다. 일단 제가 먼저 서고 잭 씨를 깨울게요.”
“네, 그럽시다. 그럼.”
앤과 잭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남겨진 캔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다가 모닥불 한 쪽에 자리 잡고 앉는다. 그는 골똘히 무슨 생각에 빠진 것 같은데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짐작을 할 수 없지만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표정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이 꽤 지났지만 캔은 전혀 졸린 눈빛이 아니다. 그는 불침번 당번을 교대하기 위해 잭을 깨우러 간다. 잭은 졸린 눈을 비비고 간신히 캔에게 눈인사를 하고 모닥불 한편에 자리를 잡고 불이 꺼지지 않는지 살핀다.
캔은 잭에게 자러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잭의 등 뒤쪽에 있는 텐트로 향하는데 그곳은 캔의 텐트가 아니다. 하지만 잭은 너무 졸려 비몽사몽인 터라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숲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졌을 때 잭은 무언가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치는 느낌을 받고 재빨리 몸을 앞으로 숙이다.
‘퍽!!!!!’
손에 부서진 카메라를 든 캔이 그 카메라로 잭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고 잭은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머리 한 쪽이 제대로 긁혀서 피가 나기 시작한다.
“지금...지금..뭐하는 겁니까!!!!!!!”
놀라서 말까지 더듬은 잭의 눈에 비친 캔의 눈빛엔 광기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아까부터 재수 없었어. 네가 뭔데 혼자 잘난 척이고 명령 질이야!!!!!!! 니 애인이나 잘 간수해 이 새끼야!!!!!”
캔은 소리를 지르며 잭에게 달려들고 그 둘은 뒤엉켜서 싸운다.
그 둘의 바로 옆에 있던 모닥불이 싸우고 있는 둘의 모습을 비추는데 둘의 표정은 다 악만이 남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 때 그들의 싸우는 소리에 앤이 잠에서 깨 놀라서 텐트를 나온다.
잠이 확 깬 듯 심호흡을 하던 앤의 귀에 순간 또 숲에서 이상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어느새 앤의 손에 돌멩이가 쥐어져있다.
다시 한 번 ‘퍽!!!’
“하아..하아...” 거친 앤의 숨소리만이 숲 속에 가득한 채 다시 한 번 고요해진다. 앤의 손에 들려진 돌멩이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잭의 위에서 잭을 때리려고 했던 캔의 몸뚱이가 축 늘어진다. 잭은 잠시 상황 판단이 안 된 듯 그 자리에 멈춰 있다가 재빨리 일어나 캔을 살핀다. 그의 몸은 이미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있었다.
“지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미쳤어???? 그걸로 어떻게 사람을 내려 쳐!!!!! 그럴 것까진 없었잖아!!!”
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한 번 ‘퍽!!!’
앤의 손에 들린 돌은 이번엔 잭을 향해 있다. 잭은 충분히 돌을 피할 수 있었으나 앤이 휘둘렀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정지해 버렸기 때문에 미처 제대로 돌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히히히..흐흐하하하!!!!!” 갑자기 이상한 귀신 소리처럼 웃어재끼던 앤은 피 뭍은 돌을 들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 Step4 오프닝
어두운 숲 속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앤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뭍은 돌멩이가 들려져있고 마치 누군가와 격렬한 전투를 벌인 듯 머리와 옷이 헝클어져있다.
“흐흐흐...하하하..”
마치 흐느끼는지 웃는지 모르겠는 섬뜩한 웃음소리만이 어두운 숲 속에서 울려 퍼진다. 숲은 마치 모든 빛을 거부하는 듯 어두컴컴하고 간신히 들어온 빛줄기마저 음산한 느낌이다. 바닥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 또한 기괴한 형상을 하고 비틀어져있다. 이상한 소리로 웃던 앤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놀란다. 그리곤 손에 쥐어져있는 돌멩이를 보곤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하아..하아..”
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보지만 주변엔 어둡고 음산한 숲만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존재하고 있다.
“아..아무도 없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누가 좀 도와줘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던 앤은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그런 앤의 귓가에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고 앤은 마구 비명을 지르며 두려워한다. 그 모습이 마치 미친 여자 같지만 누구라도 발견하길 원하는 앤의 절규가 간절해 보인다. 그런 앤의 모습을 멀리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 Step5 엔딩
앤을 지켜보던 사람은 다름 아닌 잭이었다. 잭은 앤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졌지만 평소에 운동을 많이 했던 건장한 남성이었기 때문에 가까스로 치명적인 타격은 피한 것이다. 그는 잠시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가 미쳐서 달아나는 앤을 보고는 뒤에서 조심스레 쫒아간다. 잭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큰 충격에 그 아픔마저 잊은 듯이 보인다.
앤을 한참을 지켜보고 있던 잭은 결심 한 듯 베이스캠프로 홀로 돌아온다.
잭은 잠시 멍하게 혼자 앉아 있다가 이내 자신 혼자서 만이라도 이 숲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결심을 하려고 일어서는데 잭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
“하아...”
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충격에 그는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지만 살아야겠다는 생존 본능이 그를 지탱하고 있다. 피가 흐르는 머리를 가방에서 스카프를 꺼내 단단히 감고 짐을 하나씩 챙긴다.
잭이 눈물을 흘리며 짐을 하나씩하나씩 다 싸고 베이스캠프를 떠나려 했을 때, 그의 눈에는 아까 전에 카메라맨이 자신을 내려치려고 했던 카메라를 발견한다.
카메라는 액정이 다 부서져 있었지만 완전히 고장 나지는 않은 듯 보였다. 갑작스러운 호기심이 든 잭은 카메라를 켜보는데 카메라에는 마지막에 탐험가가 피디를 죽이기 전까지의 내용들이 녹화되어 있다. 액정이 깨져서 잘 보이진 않지만 잭은 카메라에 거의 코를 박고 녹화된 내용을 돌려보기 시작한다. 한참을 코를 박고 보던 잭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며, 큰 충격을 받은 듯 숨이 가빠진다. 그러다 이내 도저히 못 보겠다는 듯 카메라 액정에서 떨어지며 끝내 손에서 카메라는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 카메라에는 차마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녹화되어 있었다..
아침에 모두가 아침준비로 분주해 베이스캠프가 비어있는데 앤이 홀로 베이스캠프로 돌아온다. 카메라는 조심스럽게 앤을 뒤따르고 앤은 탐험가와 그의 딸이 잠들었던 텐트로 들어가 잠시 후 잠든 쑤를 안고 나온다.
그 작은 채구로 아이를 안고 힘들지도 않은지 조심스레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런 앤을 카메라가 뒤쫓는다. 한참을 어디론가 갔을까, 카메라 안에는 피디의 숨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카메라는 재빨리 숨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앤은 쑤를 내려놓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혼자 킥킥 웃는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완전히 미친 여자 같이 보인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돌멩이 하나를 발견한 앤은 망설임 없이 돌로 어린 쑤를 내리찍는다.
카메라를 찍고 있던 피디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화면이 흔들리고 피디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아이를 죽이고 나서 혼자 중얼거린다. “이 숲에서는 아무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어.. 그건..현실이 되어야해... 흐흐..맞아.. 그래야지 당연히...”
피디는 가까이서 이 장면을 찍고 있는데 혼자 미친 듯이 중얼거리던 앤은 갑작스럽게 피디를 보곤 정신이 드는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을 집어던지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카메라에 담긴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카메라를 떨어트린 잭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이제까지 몇 년 동안 지켜봤던 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운다.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스럽던 자신의 애인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잭은 귀에서 윙윙대는 듯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낀다. 순간 잭은 이 숲에 무언가가 이상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숲을 미친 듯이 돌아다닌다.
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까 있던 자리에 가 봐도 없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숲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꽤 어두워졌을 때 쯤 그는 멀리 있는 나무 하나에 사람이 서 있는 듯한 형상을 발견하고 앤이라고 생각하고 뛰어간다.
그러나..
“으아악!!!!!”
나무에는 사라졌던 탐험가가 목을 매달아 죽어있고 그 밑에는 탐험가가 직접 만든 듯한 아이의 무덤이 있다. 아이의 무덤에는 정성스레 십자가까지 꽂혀 있다.
그 모습을 본 잭은 이제껏 간신히 지켜왔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낀다. 잠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잭은 눈이 광기로 가득 차 돌을 집어들고 미친 듯이 앤을 부르며 뛰어다닌다.
“잭...잭??”
숲 한편에서 어느 덧 정상적인 눈빛으로 돌아온 앤이 눈물을 흘리며 잭에게 뛰어온다.
“잭...잭...내가 미쳤었나봐... 정말 미안해.. 근데 내가 그런게 아니라 이 숲에 뭔가 있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잭... 잭...”
앤은 잭을 보며 흐느끼며 용서를 빌며 잭에게 와서 안기려고 한다.
잭은 그런 앤을 말없이 안고 있다가 손에 쥐어진 돌로 앤을 죽이고 만다.
- 에필로그
이제는 해가 져버려 어둡고 기괴한 숲들 사이로 잭이 앤의 시체를 안고 터덜터덜 걸어온다.
잭이 머리에 감았던 스카프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머리에는 피가 엉겨 붙어 있고 몰골도 엉망이다. 잭의 눈빛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은 눈빛이다.
잭이 앤의 시체를 안고 도착한 곳은 탐험가가 죽어있는 나무였다.
잭은 정성스럽게 땅을 파고 앤을 탐험가의 딸 옆에 묻어준 후,
탐험가의 시체가 매달린 나무 옆에 자신도 목을 매단다.
죽어가는 잭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
잭의 시체가 매달린 나무 밑동에는 누군가 오래전에 새겨놓은 것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아무도 이 숲에서는 살아 나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