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부문_1950, 철원

by 영화 posted Feb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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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철원

 

      


 

곧게 뻗은 소나무가 촘촘히 박힌 장방산자락 어느 한적한 마을. 켜켜이 쌓아 올린 돌담들은 보통 어른 키보다 훨씬 낮았다.

장로 박씨가 마을 나지막한 언덕 위, 작은 교회로 목사를 안내했다. 목사는 늙은이를 어쩌기야 하겠냐며 빗장 쳐진 문을 부수고 거침없이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희끗희끗한 긴 수염에 다부진 체구에선 이내 당당함이 풍겼다.

 

먼지 자욱한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은 목사가 두 손을 모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 인도하시는 이는 오직 주 하나님이라 믿습니다. 아멘.’

목사는 폐쇄된 지 한해가 다 되어 가는 이 교회가 마지막 사역지가 될지도 모를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때, 종이 울렸다.

목사를 보고 꾸벅 인사하는 종지기 덕팔의 얼굴은 온통 멍 자국이다.

“덕팔이 쟈가 그런거이 아이래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그 사건의 밀고자로 덕팔을 지목하고 있었다.

 

두 해전, 세계전쟁의 종식과 함께 일본군이 제 나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철원 장방산골엔 해방의 기쁨은 오지 않았다.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에 위치한 이곳은 곧바로 북조선노동당(당시 공산당명)이 장악했고, 그들은 인민공화국 건설에 방해가 되는 자들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 교인들을 반동세력으로 몰아 대대적으로 숙청할 기회를 노리던 차에, 철원 지역을 대표하는 철원제일교회 바로 그 뒤편에 교회보다 더 크고 웅장한 콘크리트 건물의 ‘조선노동당사’건립을 착수하고, 교회로 들이닥쳐 교인들을 내몰고는 교회를 임시 조선노동당사로 둔갑시켰다.

 

철원제일교회에는 젊은 부목사가 부임해 와 있었다. 그는 남측에서 조직된 ‘38선 이북 관리국’의 철원 조직책으로 파견된 자였다.

젊은 목사는 노동당의 감시를 피해 인근 장방산골로 찾아와 청년들을 모았다.

그리고 얼마 후, ‘비밀결사대’가 조직 되었다.

 

덕팔은 몰랐다.

팔삭둥이로 태어난 덕팔은 지적발달장애인이다.

덕팔은 자신을 낳다가 죽은 어머니 대신 평양댁을 ‘어머이’라 부르며 같은 젖을 먹고 자란 평양댁의 딸 옥희를 좋아했다.

하지만 옥희는 덕팔의 형, 덕구를 따랐다.

덕팔은 옥희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형 때문이라 생각했다.

 

형이 자꾸만 사라졌다.

아무래도 옥희를 몰래 만나는 것 같은 낌새로 형의 뒤를 쫓았다.

“우테 팔푼이를 달고 왔드래?”

“아이래, 아이래.”

“쟈가 떠벌리믄 우짤라 그러나?”

청년들은 덕팔을 그냥 돌려보내는 덕구가 못마땅했다.

결사대는 노동당과 인민군의 집결지가 될 당사의 완공식에 맞춰 폭파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수차례 마을을 돌고 있던 옥희와 덕팔이 마주쳤다.

“덕팔이 니, 진짜루 모르나?”

“모른데니!”

크게 고갯짓 하는 폼이 의심스럽지만 쉬이 알려줄 기색이 아니었다.

“읍내 부목사님이 내더러 오라바이랑 같이 오랬는데…….”

젊은 목사가 감시망이 좁혀오자, 연락부장 덕구를 부르기로 하고 위장을 위해 옥희도 함께 오라 했던 것이다.

 

“보소, 이기 강가에서 주왔는데… 함 삶아 보드래요.”

평양댁은 덕팔의 아버지 최씨가 슬쩍 내민 붕어를 빼앗듯 받아들곤 낮은 담장 너머를 휘이 둘러봤다.

“이 간나는 또 오디메로 쏘댕기는 기야.”

옥희가 젖먹이 시절, 대장장이 지아비가 왜놈에게 끌려갈 때 간신히 도망쳐 장방산골로 들어온 평양댁은 덕팔의 젖동냥을 구하던 최씨와의 첫 만남부터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거 내랑 읍내 구경 안 갈래요?”

“고저 어방 없는 소리 말고, 날래 국밥이나 드시라요.”

쏘아붙이듯 대꾸했지만, 평양댁은 곧 최씨 뒤를 따라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뒤서거니 앞서거니 걷던 둘이 저수지 삼거리 채 못 미친 곳에 다다를 때였다.

“저, 저거이 옥희 신 아이래요?”

얼마 전, 최씨가 옥희의 생일선물로 사다준 꽃신이 분명했다.

물살에 휩쓸려갈 어린애도 아니고, 신 한 짝 벗어놓고 뛰 다닐 엉성한 가시내도 아니다.

더구나 아끼고 아껴 매일 닦아놓기만 했던 꽃신. 그것도 한 짝만 덩그러니 뉘어져 있다니…….

저문 해를 뒤로하고 돌아온 평양댁은 밤이 새도록 마을 길목에서 서성였다.

평양댁이 애가 타들어가는 동안 옥희는 생사의 길목에 놓여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르고 맑았다.

내린 팔 길이만큼 자라 활짝 핀 달맞이 꽃잎이 손끝에 닿았다. 개천을 따라 장방산골로 돌아오는 옥희의 다른 한 손엔 소매 끝자락 안으로 숨긴 지령 쪽지를 쥐고 있었다.

덕구에게 꼭 전해주라는 젊은 목사의 당부를 되뇌며,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양 옥희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찬송가였다.

인민군을 가득 태운 트럭이 옆으로 무심히 지나치는가 싶더니,

“저 간나 수상하지 않네?”

“반동찬양소리 같습네다.”

“잡으라우!”

쇠 갈리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트럭에서 인민군들이 펄쩍펄쩍 뛰어내렸다.

옥희는 순간 숨이 멈췄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떨어졌다. 개천의 물소리가 멈췄다.

도망쳐 달리는 옥희의 두 팔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철원 땅 가장 높은 곳에 십자가를 세운 큰 교회로 옥희가 끌려왔다.

이곳을 점령한 인민군과 노동당원들은 지하 예배실을 취조실과 고문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사 취소, 대기하시오!’

지령 쪽지에 적힌 글귀는 명백한 증거였다.

옥희는 직감했다. 덕구도, 젊은 목사도, 그 누구의 이름도 대면 안 된다는 것을.

손가락이 차례로 부러졌다. 고문관은 손톱 속을 찌르고 사정없이 짓이겼다.

고문관들은 당사의 완공식을 앞두고 큰 공을 세우겠다며 서로 자청하고 나서 열여덟 어린 소녀에게 갖은 고문을 자행했다.

기절하기를 수십 번, 옥희는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옥희의 오라비, 동희가 잡혀 왔다.

예배실, 아니 고문실 문이 열렸다. 한낮이었으나 고문실 안은 컴컴했다.

시뻘건 핏물이 밴 꽃신 한 짝이 발끝에 걸려 있었다.

두 손은 의자에 묶인 채 피로 문드러져 있고, 저고리는 풀어 헤쳐져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초점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는 허공 위를 가리켰다.

두려움과 공포에 온몸이 바스러지듯 떨던 동희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라졌던 옥희가 꼬박 나흘 만에 반송장이 되어 업혀오자 평양댁은 넋이 나갔다.

“울음소리 낮추래요…….”

동희는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고 밖으로 나갔다.

 

덕구에게 지령 쪽지를 내밀었다.

이방인 출신인 동희를 결사대 조직에 동참시키지 않은 것에 덕구는 반대했었다.

동생 덕팔과 옥희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친남매나 다름없고, 살림을 도맡아 해주는 평양댁을 덕구 또한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었다.

덕구에게 동희는 벗이자, 형제였다.

덕구는 동희를 의심하지 않았다.

 

청년들이 야밤을 틈타 조직부장 순이 집으로 모였다.

동희는 덕팔에게 이담에 옥희를 각시로 맺어주겠다 약속하며 덕구 뒤를 밟아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알려 달라 부탁해 놨던 터였다. 

온달 빛에 빨간 완장들이 반짝였다.

“샅샅이 수색하라우!”

마을은 몇 날 며칠에 걸쳐 쑥대밭이 되었다.

툇마루 틈과 기둥 속, 다락 안, 처마 밑 등 곳곳을 파헤쳐 총기와 폭탄, 각종 증거품이 속속들이 끄집어졌다.

발견된 문서에는 결사대 조직도와 거사에 대한 계획이 쓰여 있었다. 

청년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였다. 그리고 읍내 젊은 목사의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불과 일주일, 노동당사 폭파 거사를 코앞에 남겨놓은 때였다.

 

인민군 앞잡이로 몰린 덕팔은 수시로 주민들에게 매를 맞았다.

매를 맞고 또 매일 인민군에게 찾아갔다.

“우리 성, 언제 돌아온대요?”

“거, 옥에서 뒤지지 않았음, 아오지로 보내졌을 끼야. 기다리지 말라우.”

인민군 군영에서 온갖 잡심부름을 하며 덕팔은 형의 안부를 물었었다.

 

덕팔이 세차게 종을 쳤다. 종소리를 듣고 형이 돌아올까 싶어서다.

“저, 저 팔푼이 놈이 찌른 거예요.”

빨랫감을 머리에 인 아낙이 핏대를 세우며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동네 꼬맹이들이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저리 못 꺼지나!”

달려온 옥희가 윽박질렀다.

“다 큰 머스마가 어째 맨날 맞고 다니네.”

덕팔은 옥희를 보고 히죽거렸다.

다 헤진 천 조각으로 칭칭 감은 손이 보였다.

목사가 살피려하자, 옥희가 두 손을 뒤로 숨겼다.

“예배당 집회 다시 열리믄 제가 찬양 반주 칠거래요.”

목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매일 이른 아침 종이 울렸고, 옥희의 손톱도 새로이 자라났다.

이듬해 늦여름, 남측 대한민국과 북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또 해가 두 번 바뀌었다.

 

인민군들이 다시 마을로 들이닥쳤다.

“당의 징집 명령이야. 용감한 의용군들 날래 나서라우!”

인민군이 덕팔의 뒷덜미를 잡아채듯 끌었다.

“이놈은 모지라요. 내, 내가 대신 갑니다.”

덕팔을 뒤로 젖히고 최씨가 앞으로 나서자, 동희가 덩달아 옆에 붙어 섰다.

“덕팔아, 느그아부진 걱정말더래, 내 지켜드릴 테니.”

동희는 죗값을 치르기라도 할 양, 최씨 팔에 힘주어 팔짱을 꼈다.

“오라바이 어데 가는데…….”

옥희가 동희에게 매달렸다.

“종간나, 비키라우!”

인민군이 총기로 등을 찍어 눌렀다.

끌려 나오는 장정들의 옷자락을 잡은 아낙들도 총기에 눌려 쓰러졌다.

쌀독을 털다시피 포대에 담고 나오는 인민군의 멱살이 잡혔다. 박씨였다.

“이, 이 날강도래….”

인민군이 박씨의 아구창을 후려쳤다.

뒤에 섰던 박씨 처가 낫을 들었다.

“지금 뭣들 하는 기야!”

인민군 소좌가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위대하신 김일성 장군님께서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시고 인민들을 위해 조국 통일을 하시 갔다는데 이렇게밖에 동참 못 하갔어?”

“다들 총살당하고 싶어 환장했나!”

이때, 총을 든 소좌 앞으로 목사가 나섰다.

“이보게, 잠시만 시간을 좀 주시게. 이들을 위해 잠시만 기도하게 해주시게.”

“단 몇 분 준다고 조국 통일이 늦춰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목사는 끌려가는 이들의 손을 잡았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

“주께서 함께하실 걸세.”

인민군 소좌는 목사를 향해 협박조로 소리쳤다.

“목사 양반, 두고 보기요. 곧 당에서 공개 처형하라는 명이 떨어질 테니.”

 

한여름의 기승에 매미들이 밤새 울어댔다.

6월 25일 이른 새벽, 교회 종이 울렸다.

요란한 소리가 상공을 휘갈겼다. 전투기들이 벌떼같이 하늘을 뒤덮었다.

마을 사람들이 언덕 위 교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드넓은 벌판엔 시꺼먼 탱크들이 남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인공기래요!”

“인공기를 흔들어요!”

사방에 붉은 기가 휘날렸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주민들은 일제히 장방산 숲속 방공호로 들어가고, 다시 교회 종이 울리면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석 달 조금 지났을 무렵, 전투기들의 비행방향이 뒤바뀌었다. 남쪽이 아닌 북쪽이었다.

연방 울려대는 공습경보 사이렌이 집중 폭격을 알렸다.

미군 전투기 한 대가 마을 위로 낮게 날아와 찰나에 지나갔다. 폭격이 조준된 곳은 바로 조선노동당사 건물.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굉음이 철원 땅을 뒤흔들었다. 철원제일교회 십자가도 날아갔다. 건물의 형태도 남기지 않았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폭탄에 곳곳에서 화염 불이 타올랐다.

 

장방산 숲속 바위 굴 안은 폭탄이 터질 때마다 천장이 흔들렸고, 공포에 떠는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잔잔한 찬송가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목사의 찬송에 의지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고, 찬송가는 자장가가 되었다.

 

수일간의 우렛소리가 멈추고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돌아온 마을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폭격을 맞지 않은 교회를 피신처로 삼았다.

해가 저물자, 패잔병 인민군들이 스멀스멀 마을로 들어왔다. 교회 안은 인민군, 아니 부상병들로 가득 찼다.

몇몇 주민들은 부상병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며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간 가족을 물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동희와 닮은 부상병을 부축하던 평양댁이 멀뚱 서있는 박씨 처에게 소리를 높였다.

“날래 돕지 않고 뭐 합네까?”

“시방 누기를 도우라는 건데요? 우테 그래요, 그리 못해요!”

“인민군이 사람이가? 저것들은 사람이 아이래.”

박씨가 한소리를 보탰다.

“다시 말해 보기요, 고저 인민군으로 끌려간 우리 동희 두고 한 말입네까?”

평양댁이 옆에 선 박씨 처의 머리채를 잡았다.

싸움을 말리는 주민들이 두 패로 갈리어 서로 몸을 튕기기 시작했다.

“진정들 하세요. 이럴 때일수록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 또한 살인입니다! 살인자가 되시겠습니까?”

백발이 성성한 목사의 만류에 가까스로 싸움은 멈추었으나, 좀처럼 설득되지 않은 주민들은 결국 교회를 떠나 방공호로 거처를 옮겼다.


때마침, 비밀결사대 체포사건 당시 극적으로 도망쳤던 석배가 돌아왔다.

석배가 이끄는 남한군 일개 소대는 방공호로 들어가 주민들과 치안대를 결성하여 퇴진하는 인민군과 전투를 이어갔다.

한동안 총성은 끊이지 않았다….

포로로 잡은 인민군 수가 늘어날 때마다 치안대는 태극기를 흔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간혹 보급품을 구하러 마을로 들어온 대원들은 가족의 생사만 확인하고 곧바로 숲으로 돌아가곤 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주둔하고 있는 인민군 부상병들이었다. 이들이 교회 밖, 마을 밖으로 나가면 치안대에게 떼죽음을 당할 것이 자명했다. 주민들도 밥 먹듯 굶는 판에 이들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덕팔이 종탑 앞에 섰다.

짙은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시야는 한 치 앞이 안 보였다.

인기척이 났다.

“옥희나?”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에, 뒤에서 누군가 덕팔을 버럭 끌어안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덕팔이 종 줄을 사정없이 당겼다.

‘뎅뎅뎅뎅-!’

“인민군이다!”, “인민군이다!”

덕팔의 입을 틀어막은 인민군은 바로, 덕팔의 아버지 최씨였다.

“아부지!”, “덕팔아!”

덕팔과 최씨가 얼굴을 비비며 오열할 때, 치안대들이 교회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서 옥희가 나왔다.

“뭐이가? 무신 일이래니?”

총구들이 그림자를 따라 움직였다.

대장 석배가 방아쇠를 당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이 빗발쳤다.

교회당 안의 인민군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때,

“멈추시오!”, “멈추시오!”

교회에서 목사가 뛰쳐나왔다. 목사는 양팔을 높이 쳐들고 포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간, 목사의 다리가 그대로 꿇렸다. 총알이 관통한 다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멈추시오!”

목사 뒤로 금빛 동이 터 올랐다.

“사격 중지!”

석배의 신호에 드디어 총성이 멈췄다.

고꾸라진 최씨와 옥희를 온몸으로 감싸 안은 덕팔은 벌집이 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옥희가 일어나 덕팔을 끌어안았다. 평양댁이 혼비백산되어 달려 나왔다.

“살인을 멈추시오!”

목사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양팔은 십자 모양으로 벌린 채였고, 꿇린 다리엔 피가 흥건했다.

대장 석배는 목사를 부축하며 인민군들에게 도망 길을 허락했다.

 

인민군도 치안대도 물러간 마을엔 상처만 남은 주민들뿐이었다.

얼마 후, 방공호에서 치안대가 철수 준비를 서둘렀다.

석배는 마을로 내려와 목사에게 피난 갈 것을 권고하고, 백골부대로 합류하기 위해 급히 돌아갔다.

“우테 여적이래요. 목사님요, 떠나셔야 해요.”

떠나는 주민들의 설득에 목사는 마을에 남는 이들과 함께 있겠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인민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옥희와 평양댁은 동희의 귀환을 기대하며 되레 들 떠있었다.

“형제자매님들, 곧 다시 만납시다.”

목사는 떠나는 이들에게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석배의 말대로, 개미떼 같은 중공군이 밀려와 벌판을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을로 인민군들이 들어왔다.

1950년 12월 마지막 날. 교회 종은 울리지 않았다.

종지기 덕팔이 죽고 난 후로 목사가 매일 종을 울렸었다.

인민군들은 치안대가 교회 소속이었다며 목사를 주동자로 몰았다.

 

어렵사리 면회가 허락되어 박씨가 목사를 찾았다.

목사는 곧 처형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총상 입은 다리가 채 아물기도 전에 더해진 모진 고문으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몸이 된 목사는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 직접 두 발로 걸어가고 싶다며 지팡이를 부탁했다.

수없이 밟혔던 벌판이 새하얀 눈으로 덮였다.

처형장, 새문안 골짜기로 지팡이와 두 발자국이 새겨졌다.

 

동희는 남으로 다시 북으로 또다시 남으로… 끊임없이 전장에 끌려 다녔다.

중공군의 합세에 사기가 오른 인민군들은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하던 도중, 혹한 추위와 보급품의 부족으로 점차 다시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전쟁 발발 1여 년 만에 다시 원점이었다. 북위 38선을 놓고 휴전회담이 오갔다.

하지만 전투는 더욱 치열했다.

백마고지의 탈환을 두고 뺏고 뺏기는 피의 전장은 숨을 고르지 않았다.

 

“뒤지고 싶지 않으믄 날래날래 움직이라우!”

동희 옆에서 소리치던 소좌가 쓰러졌다. 소좌는 구멍 난 배에서 쏟아지는 장기를 받쳐 들고 껄떡껄떡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뜬 눈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보리주먹밥 한 덩이를 받아들었다. 사흘 만이었다.

빈 물통을 차고 다닌 지 벌써 여러 날, 물소리를 따라갔다.

개울가는 시뻘겋게 물들었고, 꺾여 뉘어진 갈대숲 위로 인산을 이룬 시체들에서 썩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목구멍에서 피 냄새가 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 겨우 삼켜 넘긴 까슬까슬한 밥알이 그대로 역류해 올라온 것을 손으로 받아, 다시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쓰러지듯 누우면 죄책감에 눈이 감기지 않았다.

깜깜한 밤하늘엔 쉼 없이 불꽃이 터졌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수많은 병사들이 사라졌다.

“고저 우리 마누래, 막둥이는 잘 낳았는지 모르겠고만….”

“이래하다 다 죽는거이 아이래요?”

“간나 새끼, 그리 나약해 빠진 생각하다 죽는 거이야. 정신 줄 꽉 잡으라우.”

밤새 가족 걱정을 하던 인민군도, 의용군으로 끌려온 까까머리 녀석도 다음날은 보이지 않았다.

아군, 적군의 경계조차 알 수 없는, 허공을 떠도는 비명이 총성보다 무서웠다.

 

퀭해진 눈가에는 독기가 가득차고 총을 든 손에선 살기가 흘렀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형제와도 같은 이들을 잡아 죽이고, 어린 누이에게 갖은 고문을 자행한 자들을 위해 살인 병기가 된 자신을 생각하면 죽도록 괴로웠다.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죽여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밟고 지나가는 시체더미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바로 총부리를 갖다 댔다.

솜털이 보송한 앳된 병사였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집으로 보내주세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병사의 눈에선 피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동희는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순간, 총알이 동희의 팔을 스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총성이 울린 쪽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희의 이름을 부르는, 희미하지만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남한군 탱크부대가 밀려왔다.

“퇴각, 퇴각하라우!”

하지만 동희가 향한 곳은 반대방향, 남쪽이었다.

동희는 석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꼭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석배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1953년 7월, 판문점에서 협정이 맺어지고 휴전이 선언되었다.

장방산골엔 태극기가 꽂혔다.

뎅 뎅 뎅…….

동희가 활짝 열린 교회당 문 앞에 섰다.

풍금 앞에 앉은 옥희와 동희의 눈이 마주쳤다.


 

 

<에필로그>

그로부터 16년 후, 장방산골 작은 교회 뜨락에 목사님의 순교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교회 뒤편 동산에 공산당 활동에 앞장섰던 이들의 후손들이 사죄의 뜻으로 세운 충혼탑이 있다.

 

- 고 서기훈 목사님의 이야기를 소재로 창작하였으며, 한국전쟁으로 희생되신 모든 분께 이 글을 바칩니다. -

 

 

박영옥

jennyok29@daum.net

010-5357-6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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