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차 창작콘테스트 단편소설 부문 - 나는 손을 놓았다

by Yusaha posted Feb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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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놓았다.

 

 

봄날에도 땅은 질척거린다

 

 

비가 오는 날에만 땅이 질척거리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뜨거워져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여름이 다가와도 공사판의 땅은 언제나 질척거렸다. 5, , 여름을 준비하는 계절, 상철이 생각하는 봄은 그런 이미지였다. 꽃이 봉오리를 터트려 만개하고, 나무들이 싱싱한 녹음을 자랑하며 거대한 위용을 떨치기 위해 준비하는 계절, 봄은 준비단계에 불과했다.

상철에게도 봄날이 있었다. 가지를 높게 치켜들고,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아두기 위해 숨죽이며 노력했던 나날들, 비록 실패하여 젊은 나이에 벌써 겨울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상철에게도 흘리는 땀방울이 참된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바퀴를 세척하고 있는 거대한 트레일러를 보며 상철은 멍하게 서있었다. 현장을 들어왔던 차량들은 바퀴에 흙을 묻힌 채 그대로 도로에 나갔다가는 시에서 정한 환경법에 걸리기 때문에 반드시 출구 앞에서 바퀴를 세척해야만 했다. 이 거대한 트레일러도 마찬가지였다. 좌우로 달린 24개의 바퀴도 법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운전석에서 운전사가 피곤한 듯 하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세척기에서 발사된 물은 바퀴를 신나게 두들기다 흙과 함께 아스팔트를 따라 흘러서 그대로 현장에 스며들었다. 배수시설이 완비되어 있었지만, 그것도 몇 달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물이 스며든 땅은 진흙이 되어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상철은 질척거리는 땅을 밟으며 자신의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밀도 높은 진흙이 그의 발을 조금씩 묶어두려고 하고 있었다.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라고 멈추었다간 발이 그대로 진흙에 파묻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다리에 힘들 주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리가 땅에 붙지 않기 위해.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의 다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땅에 더욱 더 박히기 위해 힘을 주는 듯 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멈추었다. 몸이 점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상철은 다리에 힘을 주지 않았다. 그저 몸이 발부터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또다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질척거리는 땅,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가라앉는 익숙한 이 기분, 그가 자신의 봄날에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그가 밟아온 인생의 봄날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질척거리고, 울퉁불퉁하고, 불균형했다. 행여나 잘못 디디면 푹 빠져버렸던 위험한 땅이었다. 그러나 상철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도전과 실패의 반복, 그런 악순환 끝에 결국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학벌이 변변치 못해 면접도 보지 못했다. 물론 상철의 높은 눈도 문제가 있었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며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탓이었다.

 

 

 

나락.

공사판에 발을 들려놓았을 때 그가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 꿈도, 희망도, 땀의 참된 의미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제 끝이다. 내일이면, 내일만 되면......,'

 

그는 내일 춘천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행은 아니었으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휴식을 취하러 가는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며칠 전 어떠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상철은 이제 땅과 하나가 된 발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니다, 그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발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결국 그는 땅에서 발을 떼는데 성공했다. 그는 다시 힘주어 앞으로 나아갔다. 세찬 발걸음에도 그의 종착역은 작업장도, 춘천도 아니었다.

 

 

 

죽음.

 

 

 

바로 그가 선택한 종착역이었다.

 

 

 

 

탈선

 

 

기차는 끝이 없다. 물론 출발역과 종착역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두 곳을 끊임없이 왕복하기 때문에 사실상 끝이 없다. 다만 운행 시간이 마감되어서 멈추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차처럼 끝없이 돌고 돌다 마지막 기차까지 운행을 마치고 나면 멈추어 버린다. 시작과 끝의 끝없는 반복,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물론 내 인생의 막차는 이미 달리고 있고, 다시는 출발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운행시간이 마감되었거나, 혹은 선로나 기타 문제가 발생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기관사의 문제였다. 기관사는 처음부터 너무나 서툴게, 그리고 지나친 욕심만으로 가혹하게 기차를 몰랐고, 기차는 기관사의 가혹한 운전에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정해진 운행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운행을 끝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의 운행은 무의미했다. 내 인생의 기차는 더 이상 가야할 종착역도, 다시 시작할 출발역도 잃어버렸으니까.

하늘은 징그럽게 맑았다. 정말 징그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손에 쥐어진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와, 바람에 살랑이며 조금씩 흔들리는 꽃의 향기가 합쳐져 속이 메스꺼워졌고, 이윽고 두통이 밀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짠 지 몇 분이 지나자 고통은 잠잠해졌고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지만 시야가 흐릿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분수대 건너편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자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문지를 덮고 있었다. 노숙자가 누워있는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원 관리인이 그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 다음 상황은 굳이 보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하였다.

역 앞에 있는 이 공원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편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역 근처에서 떠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의 또 다른 피신처 같았다. 젊은 사람들부터 늙은 사람들까지,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겉모습은 모두 비슷했다.

노숙자와 관리인이 실랑이 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813, 이제 슬슬 일어나야한다. 남들보다 느린 이 다리로는, 절뚝거리는 이 다리로는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좀 더 촉박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여유로움이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담배 불을 끄기 위해 땅바닥을 보자 무언가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개미였다. 자신보다 몇 배는 더 되는 과자 부스러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한 듯, 똑바로 기어가지 못하고 어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더듬이와 허리가 조금 구부러져 있었다. 이 개미는 어딘가 불편한 게 분명했다. 더듬이건, 허리건, 어쩌면 나처럼 다리일 수도 있다. 어쩌면 불의의 사고로, 혹은 다른 개미와의 다툼으로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건 확실한 것은, 어딘가가 불편한 이 개미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웃기는 군.'

 

마음에 안 든다, 이렇게까지 해서 무엇이 남지? 이 개미는 실패했다. 이 개미는 다쳤고, 이 개미를 돌봐줄 다른 개미도 없다. 이렇게 일을 하다가 죽어버리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보다 멀쩡한 개미가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전에 다른 개미들과 비교되어 무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결말이 되었건 간에 이 개미는 비참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에는........,'

 

나는 들고 있던 담배를 그대로 개미 위에 비벼 껐다. 개미는 허리와 등이 심하게 뒤틀리며 그대로 즉사했다. 이것이 개미에게 있어서 최선책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비참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것은 개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절뚝이는 다리를 가지고 담배를 피며 기차를 기다리는 한 남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826, 조금만 있으면 기차가 출발한다. 나는 조금 더 속력을 내어 계단을 내려갔다.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기차를 놓치나 싶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던 역장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을 들어 기관사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놓쳐서는 안 된다, 늦을 수는 없다. 간신히 기차에 올라타자 기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자리로 이동했다. 규칙적으로 절뚝거리는 왼쪽다리와, 불규칙적으로 터질 것 같이 뛰는 심장 고동소리가 듣기 싫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좌석을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았다.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거친 호흡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선천적으로 불편한 내 다리를 원망해본 적은 없다. '장애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장애를 갖고 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제프리 테이트가 그랬고, 릭 앨런이 그랬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나는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하지만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쩌면 그들은 그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운 좋은 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제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호흡이 안정되고 다리가 떨리는 것이 조금 나아지자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잠든다면, 어쩌면 꿈 한 번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서히 눈이 감긴다.

무의식 속에서 기차가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기차는 낡았고, 더 이상 운행이란 불가능해보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달리고 있다. 기관사는 성질을 내기 시작한다. '이유가 뭐야.', '벌써 이러면 안 돼 안 된다고!' 크게 소리쳐보지만 소용없다. 기관사도 지쳐간다.

기관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용납할 수 없다. 실패라니, 기관사는 천천히 운전대를 잡는다. 그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그는 결심한다. 기차를 멈추기로. 이렇게 달릴 바에야 멈추는 게 낫다. 하지만 불행히도 기차가 쉬어 갈만한 중간역 따위는 없었다.

 

 

 

탈선.

 

 

 

이것만이 기차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상철은 눈을 떴다. 분명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왠지 꿈을 꾸고도 푹 잔 것 같아 조금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커튼을 쳤다. 기차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고, 푸른 풍경들이 제법 운치 있게 지나갔다. 햇볕은 따뜻했다.

 

상철은 씁쓸하게 웃었다.

 

 

 

다리 위에 서서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무려 39.5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 이는 200329.9명에 비해 10년마다 10명씩 증가........,

 

아나운서는 나름 비장한 목소리로 정보를 전달했다.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그 통계와 수치에 대해서. 저것은 연기일까,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기사는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다. 당연한 반응이다. 아마 다리 한 가운데서 내려달라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테니까.

 

여기요?”

 

나는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차에서 내리자 스산한 안개가 내 주위를 감쌌고, 나는 그것들은 들이쉬었다. 폐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소양1.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태어난 곳에서 죽는다.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인생에서 아주 매력적인 결말이 아닌가. 사람들은 수많은 곳에서 태어나고 수많은 곳에서 죽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죽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하루에 40명 꼴........,”

 

나는 라디오에서 들은 정보를 곱씹었다. 하루에 40명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40번째 자살자일수도 있고, 어쩌면 1번째 자살자일수도 있다.

 

자살자.

 

사실 나는 과거에 이 자리에 서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집은 가난했고,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 동생은 그런 날이면 탈진할 때까지 울고는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동생을 방으로 데려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유치원 때부터 불렀던 동요와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던 가요까지 안 불러본 노래가 없었다. 대여섯 곡쯤 부르고 나면 집안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어머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는 더 큰소리로, 거의 악에 가까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아버지의 고함소리보다 듣기 싫었다.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어?”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현관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분명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빌어먹을 네 새끼들,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냐고?”

 

나는 그렇게 부정당했다. 어머니에게 나는 낳고 싶지 않은 자식이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다. 존재를 부정 당하자, 어쩌면 우리 가족이 받는 모든 고통이, 그리고 우리를 덮고 있는 모든 불행이 모두 내 탓 같았다. 아니다. 모두 내 탓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집에 들어 갈 수 없었다. 내가 없어져야 우리 가족이 행복할 테니까. 나는 걸음을 돌려 거리로 나갔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거리에는 가로등이 불필요하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몇 십 분이고 몇 시간이고 정신없이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발이 닿으면 그 곳이 목적지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리 위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나는 이곳에 왔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저 다리 위에 서있을 뿐이었는데 두려움에 다리가 떨렸다. 나는 도망치듯 다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다리 위에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왔을까.’

 

세상은 나를 부정했다. 절뚝이는 다리를 가졌기에 부정했고, 낮은 학벌이기에 부정했다. 나는 두려웠다. 부정당하고 부정당하는 것보다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나의 실패는 나의 도전의 당연한 결과라고 덤덤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무서웠다. 세상에 부정에 익숙해지는 두려움이란, 어쩌면 과거에 이 다리에서 느꼈던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 다리위에 섰다. 완벽한 죽음으로 실패뿐인 인생을 끝내고, 나를 부정한 세상을 이 다리 위에서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난간을 넘었다. 간신히 허리에 닿을까 말까한 높이었다. 나는 난간에 걸터앉았다. 아슬아슬했다. 차가운 난간을 손으로 잡았다. 이 난간을 잡은 손은, 사춘기 소년의 두려움이다. 나는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다. 바람이 조금만 불면 여지없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떨림이 멈추었다. 이제는 그 어디에도, 다리 앞에서 덜덜 떨고 있던 사춘기 소년은 없다.

 

나는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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