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여나래 posted Mar 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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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안녕하세요. 아저씨."
 "여. 반갑다. 근데 아직 스물 한살이거든? 형이라고 불러라."
 케드 형이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나랑 나이차가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외모가 도저히 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었다.
 케드 형은 대장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다. 할아버지의 대를 잇고 싶다던가.
 "수염부터 밀어요. 30대 후반은 돼보이니까."
 "안돼. 그건 내 자존심이야."
 "네 아저씨."
 "읏. 그래서 오늘은 무슨 볼일이야?"
 "아뇨. 그냥 지나가는 길이에요."
 "그런가. 그럼 오늘도 수고해라."
 "아저씨도 수고하세요."
 "거 참."
 딱히 나쁜 뜻으로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수염 좀 밀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한 것이다. 그래놓고 애인이 안 생긴다고 투덜거리니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나는 처음의 목표인 식료품가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일주일치의 식료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평화로운 일상에 맞는 평화로운 일이었다. 그래야 했었다.
 "안녕. 나래야."
 "반가워. 오늘은 뭐 사러온거야?"
 가게는 여 나래라고 하는 동갑의 소녀 한 명이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7년 전 사고사 했다고 들었다. 친척의 도움으로 2년 전 여기서 가게를 열 수 있었다고 한다.
 "항상 사던대로 일주일치 부탁해."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나래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창고에서 하나 둘 씩 이것저것 꺼내왔다.
 "이거면 된 거지?"
 "어. 항상 고맙다."
 "이 쪽이야말로."
 나래가 손을 내미길래, 반사적으로 나도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려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하는 거야? 돈 달라고."
 "아. 미안. 여기."
 "그럼 잘 가. 다음에도 들려~"
 "수고해."
 나는 식료품 한 아름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이제 할 일은 집에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그 것 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나흐트. 오랜만이다."
 집에 들어선 나를 맞이해준 건 누나였다. 가벼운 천 원피스 차림에 소파에 누워 다리 한짝을 걸치고 긴 머리를 흩트려 놓고 있었다.
 "누나! 왠일이래. 집에 다 있고."
 누나인 베스페라는 스물 네 살로, 형인 노체랑은 쌍둥이이다. 누나는 따로 집에서 나와서 살고 있었기에 집에서 볼 일이 많지 않았다. 형은 일 하는데에 바빠 저녁 때쯤에 들어왔다.
 "누가 들으면 집에 안 들어오는 줄 알겠네."
 "방금 누나 입으로 오랜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네."
 "…바로 인정하지 마. 누나답지 않게 왜 그래?"
 "글쎄. 가끔은 나도 그래야지."
 누나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정말로 큰 일이 났다는 의미였다. 어느 상황에서도 절대로 내게 말로 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논리적으로 내가 우세하면 무력으로 들어왔지만.
 "무슨 일이야 진짜?"
 "아무 일도."
 "그러고보니 형은?"
 "몰라. 그거 먹을 꺼 맞지?"
 누나는 내가 들고있던 자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하나 먹을래?"
 먹고 싶어하는 눈치라 나는 자루에서 짤막한 햄 하나를 꺼내 던져 주었다.
 "고마워."
 "…저기. 나흐트."
 "왜 베스페라?"
 "조심해."
 누나의 표정은 진지했다. 본 적이 없을 만큼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런 진지한 표정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정말로 불쾌했다. 그래서 나는 자루들을 내려 놓으면서  살짝 농담을 던졌다.
 "왜 그래 정말? 차이기라도 한거야?"
 "발로 차이고 싶냐?! 누나가 걱정해주는데 그런 태도냐?"
 "차인건 맞구만."
 "시끄러워. 내가 찬거야."
 누나가 찼다니, 의외다.
 참고로 누나는 꽤 미인이었다. 누나라서 하는 애기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그래서 주변에 남자가 많은 편이지만 길게 사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누나의 성격 탓이었다. 나쁘다고 욕하는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조심하라니 뭘?"
 "저거."
 누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창문 넘어로 보이는 탑이었다. 언제부터 있는지도 모르는 백색의 탑
 "저거라면 가까이 할 생각 없어."
 "그래. 그 생각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래, 만약 내가 죽게 된더라도, 이 마을이 멸망한다더라도, 이 세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절대."
 누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그 태도는 마치 죽음을 앞에 둔 사람 같았다. 그 정도의 비장함.
 "그렇게까지 비장할 필요가 있는거…야?"
 "자고 가도 되지?"
 다시 평상시의 누나로 돌아왔다. 몇초 전의 비장함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이다.
 "당연하지. 누나 집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말인데, 부모님은 오늘 돌아오지 않을꺼야."
 "응?"
 "…어쩌면 평생."
 "…그게 무슨 소리야 베스페라?"
 "미안. 오늘은 나 먼저 잘게."
 "이제 해 지는데?"
 "그래. 자고 일어나면 이유를 말해줄게."
 "뭐 그렇다면 알았어. 방은 그대로야. 지저분한 그대로."
 "다행이네. 아무것도 안치웠다니."
 사실 누나의 방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께서도 치우는 걸 포기할정도로 지저분하다는 것 정도 밖에는 몰랐다. 딱히 들어갈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나는 항상 의지가 부족한게 문제였다. 베스페라에게 애기를 이 날 끝까지 들었어야만 했었다.


 다음 날.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밖은 기분 나쁠 정도로 어두웠다. 누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피곤한 모양이다. 그런 고로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겠다. 간단한 토스트이면 될 듯 싶다.
 "누나. 아침 먹어야지 일어나-!"
 반응이 전혀 없다. 문을 두드려 봐도 매한가지이다.
 "베스페라?"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도 내지 않기에 나는 문을 열어 젖혔다.
 방 안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지럽혀져있었다. 책상 위고 뭐고 각종 옷가지들과 책들로 난장판이었다. 이 정도면 그 누구라도 청소를 포기할 정도이다. 청소의 신이 와도 무리일 것 같았다.
 "누나 일어나라니까."
 역시나 묵묵부답. 살짝 불안한 느낌도 들기도 했지만 일단은 묻어 두기로 하고, 이불을 걷어보기로 했다. 하나 안타까운 건 햇빛이 없어 강렬한 아침햇살을 맛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강제로 깨우면 누나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지만 어제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었다.
 휙하고 가볍게 이불을 걷자. 정확히는 각종 책들과 옷가지로 가볍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불을 걷자 침대 위에는 누나가 꼼짝하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다.
 "베스페라?"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미약하게 들리는 숨소리가 안심되었다.
 "일어나라니까. 아침이야 아침."
 나는 자고있는 누나의 몸을 흔들었다. 일어날 정도로 세게.
 "으응. 누구야?"
 "나야 나. 나흐트. 아침 먹어야지."
 "…."
 누나는 부스스한 채로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얇은 천 옷 한가지만 걸치고 있어 요염해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내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어제 말해주기로 했던 거.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잘 들어. 지금 부터 말하는 건 농담이 아니니까. 또, 듣고나서 후회하지도 마. 아마 후회할 시간조차 없겠지만…."
 누나가 급작스럽게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다짜고짜 내 양 어깨를 흔들어대며 말하는 통에 어지럽긴 했지만, 누나의 비장함은 그 이상이었다.
 "좀 진정해 봐."
 나는 내 어깨를 흔드는 누나의 손을 잡고 내려 놓았다.
 "아…. 미안. 어쨌든.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면 너는 어떻게 할꺼야?"
 "…좀 뜬금없는 질문이네. 흠…. 만약 그렇다면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하는거야?"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2가지. 첫번째, 사실을 부인한다. 그래, 가장 편한 선택지이지. 그리고 두번째, 너를 제외한 현실을 무너트리는거야."
 "무너트린다고? 어떻게?"
 "이미 현실이 아닌 것으로부터 시작해 세상의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거야."
 "미안 베스페라. 도저히 무슨 의미인지 따라잡을 수 없네."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누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알려줄게. 좀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상관없어."
 "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탑? 저 멀리있는 거? 글쎄. 다가가면 안 좋다는 것 정도?"
 "그래. 보통의 사람들도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지. 사실은…."
 누나가 고의로 말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챙'하는 소리와 함께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눈 앞으로 지나갔다. 아니, 지나가고 있다. 상상해 본적도 없는 붉은색의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뭔가를 생각, 느끼기도 전에, 붉은색의 액체는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누나가 쓰러져 가고 있다. 유리창의 파편과 함께. 피를 뿜어대며 쓰러져 가고 있다. 사방으로 튀기는 핏방울들이 내 생각을 침식해갔다.
 "베스…페라?"
 가까스로 내뱉은 누나의 이름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형편없이 쓰러진 누나를 붙잡았다. 손에 기분나쁜 촉감이 가득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그 짧은 순간에. 상식선에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 차려봐!! 정신 차려보라고 좀!"
 내 외침은 누나에 귀에 닿지 않았다. 아무리 흔들고 깨어봐도 아까처럼 일어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누나를 깨워서는 안되었다. 아니,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어디부터 잘못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뭘해야 하는 거지?


 다음 날.
 "저기…. 나흐트…?"
 "…."
 나는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밖을 이냥저냥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래를 만난 것이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축 쳐져있어?"
 "신경 쓰지마…. 너랑은 상관 없으니까."
 "그렇게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말이지."
 아마 나래는 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나에게는 뭐가 되었든 아무 상관 없었다.
 "혹시. 베렛 오빠가 사라져서 그런거야?"
 베렛 케드…?
 "나도 방금 안 건데. 뭔가 아무데도 없다는 모양인데."
 어째서? 어제까지만 해도 잘 있었잖아?
 "모르겠어."
 근데 너는 왜케 무덤덤한거야?
 "내가?"
 어째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거야?
 "지… 진정해.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지도 모르고."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머릿속으로 하나의 선이 그어졌다. 선은 점차적으로 가지를 쳐갔다.
 "베스페라가, 어제. 숨이, 멈췄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쏟아낼 순 없었다.
 "…?"
 나는 단어 몇 개를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걸 듣는 나래는 덤덤했다.
 "그건 죽었다는 의미야?"
 "…."
 죽었다 라는 말을 하는 나래의 입술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날이 흘렀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픔에 젖어 아무것도 못하던, 안하던 어제와는 다르다. 오늘은 목표가 있다. 누나가 죽음을 각오하고 꺼낸 이야기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정확히는 진실이 아닌, 내용이지만.
 "저기, 케드 형 실종에 관해서 잠시…"
 내가 가장 먼저 온 곳은 케드 형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었다.
 "누군가 했더니만. 나흐트냐. 그나저나 누구라고?"
 마을 자체가 좁고, 그래서 왠만하면 서로 다 아는 사이었다. 대장간을 운영하시는 분은 30대 후반의 아저씨로 이름은 벡. 벡 하슬롯이다.
 "케드. 베렛 케드요."
 "그런 녀석 모른다만?"
 "…? 정말로요?"
 "그래. 누구냐, 그 녀석은?
 "농담하시지 마시죠… 항상 수염으로 지저분하고 …또 할아버지 대를 잇는 다면서 여기서 일했던…"
 "항상 혼자 일했다. …베렛 케드라 했나. 내 스승의 성과 같긴 하다만. 손자가 있다는 애기는 못 들어봤군."
 벡 아저씨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이게 무슨….
 "하나만 더 물어 보겠습니다. 베스페라는 알고 계십니까…?"
 "그야 네 누이가 아니냐."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일단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 볼까.
 "감사했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그래. 잘 가라."
 같은 날, 나래의 식료품 가게.
 "나래야. 어제 이야기. 다시 할 수 있을까."
 "어제? 네 누나가…?"
 "아니. 케드 형."
 "케드? 누구야?"
 "…정말 기억 안나? 네가 어제 실종되었다고…."
 "모르겠는데. 무슨 애기야? 실종이라니."
 "…아냐. 됐어. 장사하는데 방해해서 미안. 가볼게."
 "…?"
 이후. 약  10명에게 물어보았지만 케드 형을 기억하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실종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사라져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데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신경은 탑을 향했다. 누나가 죽기 전에 했던 경고이자 부탁을 무시하게 되겠지만, 백색의 탑 이외에는 해답을 내 줄수 있을 것 같지 않아보였다.
 내 직감에 의지한 그저 단순한 것이었지만 정말로 그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탑은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마음 먹으면 하루, 혹은 이틀 정도면 충분한 거리. 당장이라도 가고 싶다. 가고 싶지만 누나의 말이 너무나도 신경쓰였다.
 그건 단지 핑계.


 그렇게 내가 망설이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이제 무서울 정도로 마을은 비어버렸다.


 마침내 남은 사람은 4명 정도가 되었다. 남았다는 표현이 올바를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비어버린 건 마을 뿐만이 아니었다. 내 기억 역시 구멍이 생겨난 것 같았다. 알고 있던 것들이 모르게 되어간다. 앞뒤가 맞아가지 않는다. 대화를 해보면 어긋남이 많아지고 있다.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 걸어가고 있다. 향하는 곳은 물론, 그 곳.'탑'
 이제 탑의 문은 코 앞이었다. 쓸데 없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큰 문이었다. 만약 열리지 않는다면…의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문을 힘껏 밀…었다. 순간 멈칫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형이. 노체 형이. 뒤 쪽에서 걸어 나온 것이었다.
 "…형?"
 "용케 기억하는 구나."
 "그야…."
 "베스페라가 죽은 건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내가 지금 여기 서있으니까. 라고 말하려다 멈추었다. 그런 의미로 말한게 아니었을 테니까.
 "오랜만이야. 나흐트. 변한게 없구나."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성의없이 대답했다. 다른 생각에 열중하느라였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형에 관한 애기는 하나도 꺼낸 적이 없었다. 다들 사라지기에 그런가 보다 넘어갔다. 그렇게 형 역시 사라진거라고 '확정'해버렸다.
 "그래? 그렇다면 물을게. 네 기억에선 나를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야?"
 방금의 형의 질문으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형은, 누나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알고 있다난 것을.
 "알고 있었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내 누이동생과 같이 말이지."
 "베스페라는 어째서? 어째서 죽은건데?"
 "당연한걸 묻는구나 나흐트. 물론 말하려고 했기 때문이야."
 "진실을?"
 "네가 진실이라고 부른다면, 그 진실이지. 베스페라는 저격총에 의해 사살당했어."
 "이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자. 말해봤자 슬픈 추억 밖에 되질 않으니까."
 "…."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
 "넌 스스로 여기까지 걸어왔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은 충분해. 좀 길어질테니까 그냥 들어 줘."
 「어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나와 베스페라가 세계를 알게 된 계기가 좋을려나.
 그 당시 그러니까 13살 쯤 무렵이야. 기억날려나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 둘이 실종되었다고 난리가 났을꺼야.」
 아아. 기억난다. 뭔가 큰 소란이 있었지. 약  3일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부모님이 큰 걱정을 하신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때, 우리가 다녀온 곳은 바로 여기. 이 탑이었어. 철이 없던 시절의 무모함이랄까. 탑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왔지만 모험심만 올라갔지.
 그래서 결국 도착한 여기는, 지금과는 다르게 열려 있었어. 우린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지. 내부는 글쎄, 말도 안되는 것들로 가득차있었다고 해야하나.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었지. 애초에, 내부는 '탑'이라고 불릴만할 공간이 아니었어. 마치 또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었지.」
 형은 숨을 고르는 듯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건, 기분이 아니었어.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세계. 아니 오히려, 이 쪽 세계가 거짓이었지. 거짓은 좀 그런가. 나중에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면 고쳐줄게.
 그건그렇고, 우리가 그 쪽으로 간 게 그들에게는 꽤 신기했나봐.
 참고로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야. 차림이 많이 달랐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와 매우 흡사해.
 그들은 아주 이례적인 사례라고 생각했는지 몇 가지를 물어봤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간단한 것들이었어. 지금은 생각도 안나네.
 그건 그렇고, 그 후로 4년 쯤 후에, 일이 하나 생겼어. 마을에서 누군가가 사라진거지. 기억하는 건 나와 베스페라뿐.」
 그 때도 그런 일이 있었던건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기까진 뭐 평범한 이야기지. 그대로 우리가 관심을 끊었다면 어린 날의 추억으로 끝날 평범한 이야기.
 그 후로 우리 둘은 여러가지로 조사해보기 시작했어. 처음 1년, 2년까지는 조사라고 부를만한 것도 없었지. 그냥 일기였달까. 뭐 그건 사족이니까 넘어가고.
 자세한 애기를 들려주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보이네.」
 「딱 결론만 말할게.
  여긴
       현실이
                아냐.
 이해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물론 여긴 우리한테는 현실 그 자체지.
뭐라고 할까…. 그래.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적당해 보이네.」
 누나가 얼핏 이야기 했던 듯한 기억이 났다.
 「생각난 모양이네. 베스페라가 죽은 날의 그 말.」
 "…어떻게 알고있는 거야."
 「그야.
 내가 죽였거든.」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형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설명해 보라고!"
 「그런거야. ‘진실을 말하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형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평범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지금은 뭔데? 어째서 이제와서 말하는 거냐고?!"
 「끝났거든.」
 "도대체 뭐가…?!"
 그리고 난 끝났다는 말이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원인이라고 직감했다.
 "…넌 도대체 누구야."
 형, 아니. 이 사람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인가…?
 "그야 네 형이지. 베스페라와 쌍둥이인."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 지금—!"
 "진정해. 흥분한다고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설명하라니까. 사람들이 사라진 건 끝났기 때문인건가?"
 "맞아. 역시 실패작. 이라고 해야하나. 역시 내 동생. 이라고 해야하나."
 "실패작…?"
 「원래 넌 최종단계에서 제작. 즉 태어날 예정이었나 봐. 누군가의 소행인진 몰라도 갑작스럽게 태어나버렸어. 이건 가장 큰 문제였지. 이유를 묻고 싶은 표정이네.
 너는 이 현실을 인지하도록 설계되어있어. 즉, 넌 처음부터 이 세계의 의문을 품고 ‘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거지. 하지만 넌 이제서야 여기로 왔지. 단지 의지 라는 것만의 문제가 아냐.」
 「그렇게 되야 할꺼 였는데, 꼬였어. 사실 애초의 원인은 나 일지도 모르겠는데 말야, 그래서 많은 논란이 오고갔어.」
 “그렇게 내린 결정이 폐기…라는 거야?”
 「비슷해. 여기서 너에게 한가지 혜택이 있어.」
 “실패라고 했으면서 무슨 혜택이라는거야.”
 「너의 그 인지가능 능력을 보고 결정한거야. 물론 앞으로도 생산도 가능하지만 일단 만들어졌으니 그렇게 결정한거야. 뭐, 너한테도 기회 아니겠어?」
 “여기서 물을게. 그럼 형은 도대체 뭐야? 나와 같은 거 아냐?”
 「아니. 달라. 너랑 같았던 건 ‘베스페라’지. 말도 안되는 가능성으로 태어났어. 베스페라는 말이지. 자연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전후 유무할 인간이었어. 그야말로 예상에도 없던,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
 그래. 그 때, 여기로 와보자고 제안한건 베스페라였어.」
 “….”
 「그리고 탑은, 너에게 방금 했던말을 똑같이 했지. 한 가지 혜택이 있다고.」
 「그 혜택은 관리. 지금 내가 맡고있는, 베스페라를 대신해서 맡고있는 지구(地區)의 관리. 탑에 도달했을 때에, 우리는 둘이었기에 그랬지. 베스페라는 혜택을 거부하고 그대로의 삶을 택하기로 했지. 하지만 그 대답도 상정 외였나봐. 그 대타로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되어버렸어. 사실 나도 원한 건 아니었어. 그렇지만 거절하면 사라지게 되버리게 될테니까. 어린 나이에도 그런 건 싫었나.」
 「뭐, 그렇게 된건 최근 이니까. 아마 베스페라가 독립한 시점일꺼야. 그 후로 나는 어찌저찌 관리같은 걸 해왔고, 베스페라는 조용히 지내왔지.」
 “그리고 이제와서 말을 꺼낸 누나를 죽였… 그런 애기라는거야? 지금?”
 「간단히 없앨 생각이었으니까. 이 지구를 말이지. 자꾸 이야기가 헛도는데 지금. 그렇게 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잖아?」
 “시끄러워.”
 「이미 관리자가 있는 시점에서 불필요한 정보는 필요 없잖아. 하지만 좀 늦은 모양인 것 같지만. 꼬일대로 꼬여서 그냥 막을 내리기로 한거야. 그냥 그렇게 알아두면 되.」
 「그리고 드디어 본론.
  넌 어떻게 할꺼야? 관리의 권한을 받아드릴꺼야?」
 요약하자면 그런것 같다. 이 세계는 우리가 말하는 단편적인 세계이고, 누군가에게 관리 당하고 있는 세계이다. 그 중추가 탑이며 나는 그 사실을 깨닫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지금 이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를 관리하는 역활이 되는 것.
 “거절하면 누나처럼 죽는건가?”
 “아니. 그건 아냐. 네가 원한다면 원래대로 복구 시켜줄 수도 있어. 네가 말하는 세계를. 너의 주변인 모두를. 베스페라를 포함해서 말이지.”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뭐야…?”
 “단, 너는 나한테 들은 것 이상으로 진실을 알게 될꺼야. 모든게 거짓임에도 만족하며 살아갈껀지 아니면 그걸 버리고 새롭게 살아갈껀지.”

 모든게 만들어진 세계. 그렇다고 내게 크게 와닿는 건 없다.


 하지만 모든게 거짓이라면 그 속의 삶은 의미가 있는건가…? 내 삶은 진짜라고 부를 수 있는건가?


 수많은 단어들이 오고가고.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가고, 수많은 사상들이 오고가고. 그리고 난 결정한다.


- 끝.


 여민구. swear11112@naver.com 01028463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