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인데요. 박 기자님의 5년 뒤를 예상해보면 어떠신가요? 그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거 같나요?”
기자가 내게 물었다.
5년 뒤라면 내가 마흔 살에 가까워 질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이든 나의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나이 들어 갈 수 있을까?
나는 자살 전문 기자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자살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인거다.
언뜻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알리는 ‘카파이즘(Capaism)’으로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나와 아주 먼 이야기이다. 나는 투철하거나 정의로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KO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비겁한 겁쟁이 일 뿐이다.
"박윤재 기자님이신가요?"
"네, 근데 누구신지?" 늘상 있는 일에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 했다.
"누구나 원하면 기사를 써주신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다시 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앳된 얼굴, 하지만 몹시 수척한, 그리고 무언가에 쫓겨 온 것만 같은 조급함 얼굴에서 보였다.
"누구나? 그건 아니고 제가 원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긴 하죠."
나는 내 말만 던진 채 그를 뒤로 하고 빌딩 밖으로 나와 계속 길을 걸었다.
"제 이야기 좀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가 계속 내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이유가 뭔데요?"
내가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그녀요……."
"네, 물론 그러시겠죠. 얼마나 많은 젊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나를 찾아왔는지 알아요? 모두 다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 같지만 당신 나이의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 때문이에요. 실현 당한 직 후 날 찾아오곤 하죠. 그 말은 곧 그들은 매우 충동적이라는 거예요. "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자살 기자로 유명해지고 온갖 사람이 나를 찾아온다. 하지만 진짜 자살하려는 사람은 극소수뿐이다.
"결론은, 죽을 수 있어요? 내가 쓰는 기사의 끝은 바로 죽음이에요. 그게 결론이죠. 나는 진짜 자살 하는 사람들만 취재합니다."
몇 년 전
따스한 햇살, 실크처럼 부드러운 바람, 지중해 바다의 자장가 같은 파도소리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깜박 깜박, 뇌의 깜빡이가 늘어진 자동차 좌측 깜빡이처럼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 했다.
나른함과 피곤함이 뒤섞인 기분에 나는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 나의 달콤한 낮잠을 방해 하는 것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기억이 났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특별했던 ‘기억’ 때문이다. 내 안에서 나를 막아 세운 건 그녀와의 기억이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서였던 걸까? 그녀는 누구였을까?
오리무중의 질문에 빠져있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노을이 붉게 물든 바닷가를 보며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섰다. 나는 그녀를 그리고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곧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노을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늦은 오후의 봄처럼 따스했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 만 같았다.
‘누구지?’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이유 모를 슬픈 감정이 올라와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가슴이 답답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숨을 쉴 수 없었고 온몸의 신경이 요동치며 혈관을 수축시켰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점점 강하고 빠르게 뛰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파도가 해일이 되어 나를 집어 삼키려 달려드는 순간,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나는 욕조 안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처음으로 비싸게 주고 산 넥타이는 나의 목을 있는 힘껏 조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자살하는 중 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네, 물론이죠. 어차피 그녀 없이는 사는 게 의미가 없으니까요."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진심을 꼭 알아줬으면 하니까요."
"모두들 그렇게 말하죠.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꿈에서 깨어나 다시 돌아가 버려요. 정말 원한다면 일주일 뒤에 다시 오세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또 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무나 쉽게 말한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은 영원할 것 같아도 내일 또 마음이 변할 수 도 있는 게 우리다.
그는 정확히 일주일 만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또 무슨 일이죠?”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하셨잖아요. 일주일전 제 마음과 변함없습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저녁 6시는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다. 거리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고 꽤 조용했다. 정돈되지 않은 느낌의 서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저 나무를 보세요.”
내가 높게 솟아 있는 나무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금은 저렇게 나뭇가지가 흔들릴지 몰라도 바람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질 겁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나는 웅장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보며 한동안 서 있었다. 노을빛이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째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잎이 아니라 빛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중간에 안하겠다고 하시면 곤란해요. 저는 기사를 써야하고 그러기위해서는 결론이 반드시 나와야 합니다.ㅠ물론 거짓으로 할 수는 없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그는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충동적인 경우도 있다. 일단 누군가에게 쫓기 듯 불안해한다. 이들에게ㅠ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나 빨리 결정한 만큼 빨리 포기하기도 한다.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준다면 쉽게 마음을 고쳐먹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경우의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쉽게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죽음 뒤에 무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자신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죽지마세요.’ ‘반드시 살아야 해요.’ 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빨리 죽으세요.’처럼 들릴 것이다.
며칠 만에 그와 다시 만났다.
그의 눈은 긴 머리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졌다.이다.
“근데 그녀가 왜 떠난 거죠?”
“모두 제 잘못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깊게 캐묻지 않았다. 그냥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내버려 두었다. 물론 쉽게 믿지도 않았다. 자신만의 착각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 지금까지 왔고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지극히도 평범한 그가 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끝내려고 하는지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자살하지 않을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자살하는 대부분의 사람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내가 물었다.
“강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린 사람이에요. 때론 이기적이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기도 하지만…….”
나는 익숙한 내용에 그저 고개만을 형식적으로 끄덕였다.
“헤어지자고 말하기 몇 달 전부터 항상 예전 내 모습이 그립다고 했어요. 마치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하인리히의 법칙.”
“네?”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재앙의 전조가 일어나는 법이죠. 그 여자의 마음이 변한 게 그때 부터였네요.”
“변한 게 아니라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그러시는데, 정확히 뭘 잘못했다는 겁니까? 그걸 알면 더 쉽지 않을까요.”
그는 마치 답을 모르는 학생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를 만나면서 궁금한 점 한 가지가 생겼다.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던 한 가지 의문점.
‘왜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가?’
내가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 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처음 만난 상대와 혹은 몇 번 만나지 못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자리는 굉장히 어색하다. 여기까지는 모두에게 해당 되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처음 만나면 어색해하지만 이내 상대방에게 적응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지곤 했다. 정확히 말하면 도망갔다. 차라리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이해 좀 해줄래, 라고 변명이라도 했다면 학창시절 그렇게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린 나이에 왕따를 겪는다는 것은 참 극복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색함이 사라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물론 나도 모른다. 어색한 처음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어색하지 않은 친구를 만들 수 있겠는가.
기자가 되고 이모든 것이 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그를 몇 번 만나본 결과, 그는 그나마 그녀 생각을 잠시 놓았을 때만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보였다.
그의 가장 큰 착각은 그녀가 아직 그와의 추억을 그리워 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곤 했어요. 우리가 싸울 때면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거든요. 그녀는 제집 앞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죠.”
“그게 이유라고요?”
“네. 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그랬어요. 그녀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예요. 물론 모두 저의 잘못 때문이죠.”
“지금 그녀가 형주씨의 연락을 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집으로 찾아가보지 않은 이유는 뭐예요?”
내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겁이 나서요.”
“뭐가요?”
“갑자기 변해버린 그녀가 겁이 나서요. 내게 그녀는 저만 아는 어떠한 이미지로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거든요. 근데 갑자기 다른 모습의 그녀가 나타나서 헤어지자고 차갑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는 찾아가지 못했어요. 다른 그녀를 볼 자신이 없어요. 물론 계속 연락을 해보고 있지만 안 되고 있네요. 모두 제 잘못이겠죠.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했으니…….”
“그러면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시 행복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죠?”
내가 물었다.
“글쎄요……. 지금은 단지 그녀가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단 마음뿐이죠.”
여전히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는 이야기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뭐 대충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쯤으로 포장하면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지막 마음인데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를 내가 한 번 만나 봐도 될까요?”
그와 여러 번 만남이 있은 후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필요하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음날, 나는 그녀를 찾아 갔다.
하지만 그곳엔 그녀가 없었고 대전에 있는 회사 지사로 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대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전에 있는 한 회사 앞에 도착해 그녀를 찾았다. 얼마 후 그녀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검은색 머리스타일은 단발보다는 조금 더 길어 어깨 바로 위까지 닿아 있었고 무릎 위를 살짝 덮고 몸에 밀착되는 베이지색 치마에 살결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재질의 흰색 블라우스의 소매를 두세 번 걷어 올렸다. 그리고 얇은 은색 메탈 시계를 차고 있었다.
여자치고는 작지 않아 보이는 키와 비교적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임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화장은 한 듯 안한 듯(투명메이크업?) 했지만 피부는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입술은 살 구색 립스틱을 바른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젊고 세련된 직장여성처럼 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제법 눈길이 가는 그런 외모의 여성이었다.
“제가 배지나 인데요. 누구세요?”
그녀의 회사명찰이 보였다. 배진화. 내가 알고 있는 이름과 같았다.
“아, 네. 저는 박윤재 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왔고요.”
나는 얼마 전에 받은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사람들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편집장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니지만 내게 명함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명함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이형주 라고 아시죠? 그분 때문인데 잠깐 얘기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내게 그의 안위를 먼저 물었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가 잠깐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부탁해, 나는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카페에 앉아 작은 껌 종이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나타났고 나는 내가 그녀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모두 설명했다.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굉장히 당황해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자살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저는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만나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
남자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그녀는 몇 번이나 남자에게 연락을 해 만나자고 설득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가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 사람은 아니었지만.......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죠.”
“그가 받아들이지 않은 거군요?”
내가 물었다.
“아니에요. 받아들였어요. 물론 처음에는 전화하고 문자하고 무조건 자신이 미안하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했죠.”
“그래서요?”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사랑하지 않는데 그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서 결국 차갑게 대했는데 더 이상 찾아오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런 식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을 사랑했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아니더라도.......그래서 다시 연락을 했죠, 만나자고."
"그랬더니 뭐래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싫다고 하더군요."
"왜요?" 내가 물었다.
"그야 저도 모르죠. 왜 그랬는지……. 내가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뭐라고요?”
“나 용서해 주는 거야?”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라도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요?"
나는 명쾌한 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게 전부예요. 그 후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걱정돼서 몇 번이고 연락했지만 받지 않더라고요. 얼마 후, 저는 대전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이렇게 된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사람이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왜 나 때문에 자신의 귀한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지……."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다.
사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지나간 옛 연인을 걱정하겠는가. 인연의 소중함, 사랑에 대한 존중, 추억의 간직함 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사랑은 돈 주고도 살 수 있으며 과거의 향수에 젖는 그리움은 이제 옛이야기일 뿐이다.
"근데 그 기사를 쓰실 거예요?"
"네."
그녀의 질문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럼 그 사람이 죽을 걸 알면서도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거예요?"
그녀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고 나를 보는 눈빛이 원망이 섞여 있었다.
"저는 그저 기사를 쓰는 사람 일 뿐입니다. 그 분이 원하지 않는다면 쓰지 않아요."
나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스런 눈빛의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그와 만났다.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녀를 몇 번 이고 찾아갔다고, 그래도 그녀가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네, 그런데요?"
“그녀는 오히려 당신이 만나주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는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을 말이죠."
"그렇다고 지금 멈출 수는 없어요. 전 이미 마음먹었어요."
그의 결심은 생각보다 더 굳건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더 이상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하면 이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까? 아니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까?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고민에 빠진 거지?
자꾸 그녀의 표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 남자가 사라져버린다고 그녀의 추억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라져 버리면 그녀의 추억은 악몽이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나 침대 맡에 앉아 고민했다. 내 마음의 진심이 무엇인지. 잠시나마 순수하게 그녀의 추억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걸까. 아니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나의 추억이 그녀의 눈물에 비춰진 것이었을까.
잔인했던 나는 결국 뻔 한 이야기에 흔들리고 말았다. 나는 그의 기사를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 DMB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아침방송에 그 사람이 나왔다. 그녀와 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소식이었다. 그는 아직도 아프리카 지원 사업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일까지 손대고 있었다. 모두 굶주림의 벼랑 끝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사업.
그는 더 이상 정치에 미련이 없다고 말했고 방송도 원치 않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는 어디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의 ‘진심’ 은 관심 없었다. 봉사활동을 하던지 정치활동을 하던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는 지금 그와 함께 있는 걸까?
그동안 그녀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아 홍보수석의 소식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둘이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던 시간들. 내가 그런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내가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도 그는 아직도 혼자 인 것 같았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유모를 안도감.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홍보수석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안심이 되는지 나조차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저 사거리 앞에서 다른 남자와 손잡고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나의 마음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의 마음은 가을 갈대처럼 몹시도 흔들릴 것이다.
나 자신을 잊고 지냈던 지난 얼마의 시간동안 나는 오로지 ‘죽음의 끝에서’ 만 생각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홍보수석의 소식에서 과거의 나를 찾듯 귀를 기울였지만 나는 다시 죽음의 끝에서 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진짜 모습을 가둬둔 채.
다시 만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녀를 만나지 않았던 거죠?”
“만나서 뭐하게요? 그녀를 만났다면 그녀가 돌아왔을까요? 아마도 더 확실히 돌아오지 않았겠죠. 하지만.......하지만 만나지 않으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희망이 있잖아요. 그녀가 돌아올 거란 희망 말이에요.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다시 돌아올 거란 기대요.”
“그런데 그런 희망이 있는데 왜 이러는 거죠? 그 희망 가지고 살아가면 되잖아요. 그렇게 살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 무뎌지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기자님은 그렇게 되세요?”
“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서늘한 바람만 바라보며 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럼, 그런 희망을 가지고 떠나겠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나겠다. 뭐, 이런 말 인거죠?”
알듯 모를 듯 그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형주씨는 아마도 익숙해지는 법을 몰라서 그럴 겁니다. 생각해봐요. 단 며칠만이라도 해외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어때요? 낯설죠? 그런데 몇 년을 함께 했잖아요. 늘 그래요. 그렇게 갑자기 혼자가 되면 낯설어지죠. 항상 함께 하던 것을 혼자하면 외로움은 극에 달하겠죠. 하지만 조금만 그 순간을 지켜보세요. 자신의 모습을 말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떠나길 원하면 보내줘야죠. 붙잡고 있는 다고 돌아선 마음이 변하나요.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는 게 결국 그녀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
나는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나와 닮은 사람, 아니면 태어나면서 복제된 또 다른 나, 그것도 아니면 내안에 나 자신인 걸까.
그 순간 그의 눈빛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읽었다. 작은 동공 안에 그와 그녀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정말 좋은 분이더군요. 아직도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형주 씨는 지금 그녀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 본인의 추억을 지키려고 상대방의 현재, 미래 그리고 과거, 그 모든 걸 파괴하는 행동이죠. 그녀는 어느 때보다 더 괴로울 겁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지도 몰라요.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에게는 해피엔딩일지도 모르죠. 행복했던 기억만 가지고 가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럴까요? 그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겁니다. 당신과의 모든 추억은 악몽이 되어 평생 그녀의 발목을 붙잡겠죠. 그렇게 살아가다 사고로 혹은 병으로 죽게 될 겁니다. 또 모르죠, 당신과 같은 길을 선택할지.”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녀를 사랑한다면 아니, 사랑했다면 더더욱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녀의 추억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아버지 어머니의 듬직한 아들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친구로 돌아가세요. 아마도 당신의 사랑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닐 겁니다.”
‘당신은 돌아갈 곳도 있잖아…….’
"그녀는 좋은 사람이지만 당신과 인연은 아니었던 거예요. 우리에게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끝이 묶여 있어요. 누가 나와 그리고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지 몰라요. 인생은 그 상대방을 찾아가는 여정 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소리 내어 울거나 눈물을 보이면 온갖 경멸의 시선을 받는다. 특히나 여자문제로 그랬다가는 천하의 찌질 한 남자로 각인되기 십상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그의 눈물을 대신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다시는 저 같은 사람 찾아오지 말아요. 그리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누군가 불행한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에게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어둠의 나락이 아니라 그녀와의 소중한 기억이 머무는 그 안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순수의 마음 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기억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레 그녀와의 기억은 뒤편 어딘가에 가있게 될 테고 그의 기억에서 그녀와의 추억은 천천히 작아지게 될지도 모르기에 그는 겁이 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추억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던 그에게 주어질 또 다른 시간은 어떨까.
새롭게 맞닥뜨리는 삶의 순간들이 아름다운 그의 추억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나는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걸까, 아니면 그저 남들이 생각하기에 납득이 가는 일반적인 결정을 한 걸까.
알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
갑자기 나는 왜 이 남자의 기사를 쓰지 않기로 한 것일까.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린 뿌듯함? 아니, 그저 그는 ‘죽음의 끝에서’ 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살렸다고? 어림없는 말이다. 지금 이 사회는 나를 사회악으로 몰고 있다.
‘죽음을 낚는 기자’ ‘지옥에서 온 기자’ ‘악마 기자’ 등 온갖 별명이 나를 향해 있다. 비평가들은 내 기사가 인간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며 연재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언론은 이때다 싶어 삼각 스캔들을 일으킨 기자가 또 일을 저질렀다며 신나게 나를 난도질했다.
현재 나는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기자로 유명하다.
내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한 거지?
나는 죽으려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것을 글로 썼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지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내가 그들을 죽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나는 그저 그들을 가만히 지켜본 것일 뿐 빨리 죽으라고 재촉 한 적도 없고 죽지 말라고 부탁한 적도 없다.
사회는 기사 내용, 의미는 생각지도 않은 채 자살을 취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그들에게 ‘죽음의 끝에서’ 의 이해를 요구 하지 않았다.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글의 옮고 그름은 읽는 독자들의 몫이지 내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님이 쓰시는 글로 인해 사회 전반에 혼란이 오고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나는 나를 취재 온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보다 더 나빠 진다고요?”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하루에 수십 명이 자살하는 현상을 내 기사와 연관 지었다.
‘얼마 전 명문외고에 다니는 A(16)군이 성적 비관을 이유로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했는데요. 자, 2010년을 기준으로 평균 42.6 명이 하루에 자살로 사망을 합니다.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죠.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층의 자살률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기자의 자살취재가 화재가 되고 있는데요. 여러 전문가들이 오늘 토론회의에 나와 주셨습니다.’
여러 방송매체에서 나의 기사를 가지고 이제는 토론 까지 하며 심각성을 부여 하고 있었다.
‘........네네 그렇습니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들어보셨나요?’
전문가는 안경을 고쳐 쓰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 이라고 하는데요.
영어로는 Copycat suicide 라고 합니다. 독일의 작가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서한체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 하였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남자 주인공이…….’
나는 TV를 껐다. 지겨운 내용, 모두 거기서 거기, 매일 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 한국이 이렇게 자살이 많은데 자살자들을 취재해서 좋을 게 뭐가 있느냐, 모방 자살만 늘어날 뿐이라는 게 거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제는 비난에 익숙해졌다. 나도 내가 그런 사람 같다고 느끼고 있으니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때론 그들의 화려한 말 빨에 왠지 내가 잘못한 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소식이 들려온 순간 내 몸의 모든 피는 가던 길을 멈추고 심장으로 돌진했다.
가슴이 뛰었다. 무뎌질 때도 되었는데…….
그들은 내가 삼각스캔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항상 빼놓지 않고 말했는데 그녀의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녀의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다뤘다.
‘삼각스캔들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근 ’죽음의 끝에서‘ 라는 기사를 연재해 대중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자가 있다. 박모 기자는 3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각 스캔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삼각 스캔들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첫 번째 김건우 전 홍보수석은 아프리카와 한국을 오가며 봉사활동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아직 결혼 전이지만 측근에 의하면 미래를 약속한 여성이 있다고 한다. 현명하고 그의 일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미모의 재원이라는 소식이다. 두 번째 주인공인 박모기자. 박 기자는 현재 자살자들을 취재해 시골 잡지사에 연재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삼각스캔들의 주인공이 아닌 비난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이모여인은 그 당시 뛰어난 미모를 소유한 재원으로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당시 기자들은 삼각스캔들 보다 자신들의 평범한 동료가 그녀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현재 그녀의 정확한 소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2년 전 청와대에서 나온 후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만 있을 뿐이다. 김 전 홍보수석을 따라 외국으로 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유추해보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평범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이처럼 삼각스캔들의 주인공들의 현재 삶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려와 달리 의미 있는 삶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의 삶과 비교해 보았을 때 박모기자의 삶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진정 존재하지 않느냐고.’
‘선아가 자취를 감췄다니…….’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같은 하늘 아래 가까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고 혹은 지구반대편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에 한번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번개는 같은 곳에 다시 떨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와 그녀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린 이대로 서로에게 아픈 기억만을 남긴 채 늙어가고 결국에 죽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내안에 있는 나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그녀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안해 졌다. 마치 한곳에 모였던 피가 다시 제자리로 자리를 찾아가 안정된 것처럼. 축구경기에서 영 대 영으로 끝났을 때와 같은 마음이랄까. 이기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지지 않아서 다행인 경기.
나는 정말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는 걸까?
사랑한다면 그녀의 행복을 빌어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녀가 누군가와 행복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나는 종료직전 골을 먹어 진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정말 나는 그녀를 사랑하긴 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말한 대로 나는 사람에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그녀와의 시간은 과거에서 흘러 현재의 나와 섞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처럼 스스로 과거에 머물기로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은 과거에서 영원히 사는 것과 같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 졌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내가 정확히 어떤 인간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또한 인생의 해답을 찾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 풀리지 않는 질문의 해답을 얻고자 마지막 까지 살아갈 것이라고.
박덕우 ksum58@naver.com 010-9344-3762